고풍의상
- 조지훈 -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珠簾)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 밤이 두견(杜鵑)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힌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나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古典)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胡蝶)
호접(胡蝶)인 양 사풋이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문장3호>(1939)-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고전적, 감각적, 정적
◆ 표현 : 의고체 (~도소이다), 4음보의 산문율
◆ 주제 : 의상으로 본 우아한 고전미
[시상의 전개(구성)]
1∼3행 : 시의 배경
4∼7행 : 저고리의 우아한 아름다움
8∼10행 : 치마의 아름다운 선(線)
11∼14행 : 아름다운 옷맵시와 춤사위
15∼18행 : 자아의 일체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조지훈은 시인을 일러 "미의 사제(司祭)요, 미의 건축사이다."라고 정의함으로써 그 자신을 전통적 시관(詩觀)을 지킨 시인임을 밝힌 바 있다. 이 시는 그러한 그의 시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옛 여인의 옷과 춤사위의 아름다움을 예스런 어투와 가락으로 조화 있게 표현하고 있다.
<승무>와 함께 이 시는 고전적 소재와 전통 무용에 대한 시적 탐구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승무>가 춤을 소재로 하면서도 번뇌의 종교적 승화를 표현하고 있다면, <고풍 의상>은 한복의 우아함과 이를 통해 표현되는 춤사위의 그윽함을 보여 줌으로써 한 폭의 미인도(美人圖)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고풍스런 의상과 춤의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살리기 위해 시인은 부드럽고 우아한 가락과 '호장저고리', '치마', '운혜', '당혜', '호접', '아미'와 같은 옛 정취가 넘치는 시어들을 사용하는 한편, '밝도소이다', '보리니', '흔들어지이다'와 같은 의고적(擬古的) 종결 어미를 구사하여 한층 더 옛스런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이 시는 고전 시대의 풍물에서 민족 고유의 우아하고 섬세한 미를 찾아내 세련된 서정으로 형상화시킴으로써 전통을 중시하는 시 세계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다. 특히, 창작 시기가 일제 치하인 점을 생각하면, 우리 것을 점차 상실해 가던 당시에 우리 것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을 작품 내면에 투영시킴으로써 민족 정서를 환기시켰다는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좀더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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