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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 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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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근찬(河瑾燦, 1931 - )
경상북도 영천 출생. 1957년 부산 동아대학교 토목과 중퇴. 한때 교사, 잡지사
기자 생활. 1955년 신태양사 주최 전국 학생 문예작품 모집에 단편 [혈육]이 당선되는 등, 대학 시절에 당선 과정을 거치고 1957년 <한국일보> 신춘 문예에 [수난이대]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함. 이후 대개 궁색하게 사는 농촌을 무대로 민족적 비극이나 사회의 여러 병폐를 밀도있게 다루었다. 1970년 [족제비]로 한국 문화상을 수상. 그이 작품 세계는 주로 6. 25의 비극이라는 중심적 주제를 구심점으로 해서 전쟁의 아픔을 형상화하는 한편 농촌의 실상을 파 헤쳤다.
대표작으로 [나룻배 이야기](1959), [흰 종이 수염](195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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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 출생. 동아대학교 토목공학과 중퇴.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수난 이대]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는 서민의 애환을 소설화하면서 토속적인 언어를 즐겨 구사하였다. 비극적인 현실을 그리면서도 낙관적인 시각에 바탕을 두고 항상 현실에 순응하면서, 긍적적으로 살아가거나 역경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지닌 인물들의 삶을 그렸다. 따라서 그의 문학은 넓은 의미에서 휴머니즘 문학으로 분류될 수 있다. 대표작으로는 [수난 이대(受難二代)], [낙뢰(落雷)], [산중고발(山中告發)], [나룻배 이야기], [흰 종이 수염], [왕릉(王陵)과 주둔군(駐屯軍)], [붉은 언덕], [삼각(三角)의 집], [족제비], [일본도(日本刀)] 등이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처음에 농촌을 소재로 하여 형성되었다. 그 농촌이 폐쇄된 자연이 아니고, 한국의 역사적 상황에 연관된 현실인 점에서 중요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른바 실존주의의 영향과 전후파적(戰後派的) 취향이, 소설에 지적(知的) 허영 내지 관념적 난삽을 적지 않게 유행시켰던 50년대 후반에, 무지하고 가난한 시골 사람들 이야기를 들고 나와 사실 자체가 획기적이며, 이야기가 생활 속의 절실한 인정(人情)과 역사적 수난의 아픔이며, 그 아픔을 이기고 일어서는 삶에의 강한 집념인 점에서 창작의 당연하고도 새로운 본령(本領)을 일깨웠다. 이 요소들이 잘 응축되어 있는 것이 [수난 이대]이다. 일제(日帝) 식민지 치하와 625 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을 겪는 두 세대로서의 아버지와 아들, 일제 때 징용에 나가 한 쪽 팔을 잃은 아버지가 625 전쟁에 나가 한 쪽 다리를 잃고 돌아오는 아들을 마중나가 등에 업고 외나무 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다. 상황 의식(狀況意識)의 도식(圖式)이 골자인 것 같지만, 독자가 느끼는 감명은 그와 반대로 구체적 묘사와 진실한 정신이 넘친다. 그 뒤 외국 군대가 들여온 경박한 문화와, 타락한 윤리에 갈등을 일으키는 토착 정신이 주제인 [왕릉과 주둔군], 도회지 서민의 생활상에 현대 세계의 부조리를 조응(照應)시킨 [삼각의 집]의 순서로 작업의 각도와 차원이 발전했다. [족제비], [일본도] 등에서는 일제 하의 소년 시절의 기업이 동원되는데, 생활적 체험이 작품의 실체를 이루어 온 성향에 비추어, 이 작가의 또 다른 단계의 작품이다. 즉 50년대 말 이후 도회에 옮겨져 있는 작가의 생활 체험에서 어떻게 생명력을 발견할 것이며, 현실 인식의 수단이 직관뿐 아니라, 사회 과학적 이성(理性)으로서 어떻게 원만해야 될 것인가가 과제로 대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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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이대(受難二代, 1957년, <한국일보>) / 하근찬(河瑾燦, 1931 - )
경상북도 영천 출생. 1957년 부산 동아대학교 토목과 중퇴. 한때 교사, 잡지사
기자 생활. 1955년 신태양사 주최 전국 학생 문예작품 모집에 단편 [혈육]이 당선
되는 등, 대학 시절에 당선 과정을 거치고 1957년 <한국일보> 신춘 문예에 [수
난이대]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함. 이후 대개 궁색하게 사는 농촌을 무대로 민족
적 비극이나 사회의 여러 병폐를 밀도있게 다루었다. 1970년 [족제비]로 한국 문
화상을 수상. 그이 작품 세계는 주로 6. 25의 비극이라는 중심적 주제를 구심점으
로 해서 전쟁의 아픔을 형상화하는 한편 농촌의 실상을 파 헤쳤다.
대표작으로 [나룻배 이야기](1959), [흰 종이 수염](1959) 등이 있다.
등장인물
박만도: 아버지. 왼팔이 없다.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나 만주 징용에서 불구가 됨.
진수: 아들. 6.25에 참전하여 한 쪽 다리를 잃음. 상이군인이 되어 귀향.
줄거리
진수가 돌아온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개는 전사했다는 통지가 왔고,
아무개는 죽었느지 살았는지 통 소식이 없는데, 우리 진수는 살아서 오늘 돌아오
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어깨 바람이 날 일이다. 그래 그런지 몰라도 박만도는 여
느 때 같으면 아무래도 한두 군데 앉아 쉬어야 넘어설수 있는 용머리재를 단숨에
올라 채고 만 것이다. 가슴이 펄럭거리고 허벅 (하략)
박만도는 3대 독자인 아들 진수가 전쟁터에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마
음이 들떠 있다. 그는 아직 아들이 탄 기차가 들어오려면 멀었음에도 일찌감치 역
전으로 나간다. 병원에서 나온다는 말에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기는 했으나, 설마
하니 아들이 자기처럼 불구가 되진 않았으려니 하고 애써 마음을 편히 먹는다. 그
는 한쪽 팔이 없다. 일제 때 강제 징용을 나가 비행장 건걸 중 폭격에 잃어버린
것이다. 그때 그는 기절까지 했었다. 그는 항상 왼쪽 소맷자락을 조끼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꽂아놓고 다녔다. 일말의 불안감이 없었던 바는 아니나, 그는 아들이
돌아온다는 생각에 어서 시간이 흘러가버렸으면 한다.
아들에게 주려고 역전으로 가는 길에 고등어도 한 마리 산다. 정거장에 도착
한 시간이 10시 40분, 점심때쯤 온다고 했으니 시간은 아직도 한 시간이나 넘게
남았다. 기다리는 동안 박만도는 옛날에 자신이 당했던 일들을 떠올려본다.
멀리서 기적 소리가 울려 만도는 벌떡 일어선다. 괜히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
한다.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하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
인지 아들의 모습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상이 군인 하나가 서있을 뿐이
다. 조바심에 안달이 난 박만도가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아부
지!"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뒤로 돌아선 순간 그는 입이 딱 벌어지고 눈은 무섭
도록 크게 떠지고 만다. 아들은 틀림없었으나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쪽 다리
가 없어져 빈 바지 자락이 펄럭이고 있었고, 목발을 집고 있었던 것이다. 박만도
는 눈앞이 아찔해진다. 기진하고 실성한 모습으로 두 부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으로 향한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 진수는 이같은 꼴을 하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느냐고 아
버지에게 하소연한다. 만도는 "나 봐라! 팔뚝 하나 없어도 잘만 안 사나. 남 봄에
좀 덜 좋아서 그렇지 살기사 왜 못 살아!" 라며 격려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외나무다리가 하나 있다. 진수는 도저히 다리를 건널 수가 없다. 머뭇거리는 아
들을 바라보던 만도는 대뜸 등을 돌리며 진수에게 업히라고 한다. 팔 하나가 없
는 아버지와 다리 한쪽이 없는 아들이 조심스레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있다. 눈 앞
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만도는 아직도 술기가 약간 있었으나 용케 몸을 가누며,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
리를 조심조심 건너 가는 것이었다. 눈 앞에 우둑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
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설
[흰 종이 수염]과 함께 작가의 대표작이다. 일제에 의해 한 팔을 잃은 아버지와
6.25전쟁으로 한쪽다리를 잃은 아들의 상봉, 즉 2대에 걸친 수난이 한자리에서 확
인되는 짧은 한 순간의 이야기를 통해 민족사적 비극을 암시한다. 간결한 문체 위
에 이야기하는 시간의 사건과 과거 회상의 사건이 서로 적절히 교차되어 흥분과
격정이 고조되는 미적 쾌감을 가능케 한다. [수난이대]는 한국 현대사가 당면했
던 역사적 비극을 조그만 마을에 사는 부자를 통해 보여준다. 이 수난이대는 단편
소설로서 정통적이고 모형적인 가족사 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제목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역사의 변환 속에서 한 가족 부자이대(父子二代)가 겪는 비
극과 수난의 역사, 즉 수난의 가족 세대적인 역사의 기술이라는 면에서 다분히 가
족사 소설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이 이야기하려는 것은 역사적인 비극
의 재확인이 아니라 차례로 팔과 다리를 잃은 이 두 세대가 서로 협력하여 외나
무다리를 건너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적인 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재기를
위한 화합(和合)을 기본 주제로 하고 있다.
외팔이인 아버지가 외다리가 된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마지막 장
면은 수난의 연대기를 살아가는 삶이 지탱해야 하는 휴머니즘의 귀결적 화해라는
측면이기도 했다.
(주제) 민족의 비극과 초월의 의지.
민족적 비극과 그 극복.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조명하고, 비극을딛고 일어서는 재기를 화합
의 차원에서 제시.
(갈래) 단편 소설, 전후 소설, 본격 소설, 유사한 의미에서 가족사 소설.
(시점) 작가 관찰자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의 혼합 형태
(표현) 과거와 현재가 서로 교차, 토속적, 해학적 어조.
(성격) 향토적, 비극적, 해학적
(구성) 단순 구성, 입체적 구성(과거와 현대사의 역전)
참고문헌
임헌영 외(1991), {한국문학명작사전},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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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난 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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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근찬
(1931~ )
소설가,경북 영천 출생,전주 사범,동아대학교 수학
▶ 작품세계 :1957년 한국일보 신춘 문예에 단편소설 '수난 이대'가 당선되어 등단,초기 수난 이대 등에서는 가난한 농촌을 역사적 상황에 연결된 비극적 현실로 인식하여 아픔을 이기고 일어서는 삶에의 강한 집념을 보여 주었다.그 뒤 왕릉과 주둔군에서는 외국 군대가 들얻온 경박한 묺문화와 타락한 윤리에 갈등을 일으키는 토착 정신을, 삼각의 집에서는 도회지 서민의 생활상에현대 세계의 부조리를 조응시키는 문제를 ,야호에서는 일제 말과 6.25등을 거치면서 한 여인 위에 덮치는 수난사를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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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개관
이 작품은 1957년 한국 일보 신춘 문예 당선작으로, 한 가족의 부자(父子) 이 대(二代)에 걸쳐 계속된 시련을 요약과 극적인 장면 제시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하여 역사와 인간의 삶이 떼어 놓을 수 없는 상호 관련성을 지닌 것으로 포착하여, 우리 현대사의 뼈아픈 경험인 일제 말기와 6.25의 전쟁 체험의 비극적인 모습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문학적으로 형상화시킨다.
이 작품에 나오는 두 인물은 부자(父子)의 사이지만, 그 관계는 상징일 뿐 하나의 구체적인 기록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면 동지애, 민족애, 인류애로 확대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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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돌아온다. 아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개는 전사했다는 통지가 왔고, 아무개는 죽었지 살았는지 통 소식이 없는데, 우리 진수는 살아서 오늘 돌아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어깻바람이 날 일이다. 그래 그런지 몰라도, 박만도(朴萬道)는 여느 때 같으면 아무래도 한두 군데 앉아 쉬어야 넘어설 수 있는 용머리재를 단숨에 올라채고 만 것이다. 가슴이 펄럭거리고 허벅지가 뻐근했다. 그러나 그는 고갯마루에서도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들 건너 멀리 바라다 보이는 정거장에서 연기가 물씨물씬 피어오르며 삐익----하고 기적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아들이 타고 내려올 기차는 점심때가 가까워서야 도착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해가 이제 겨우 산등성이 위로 한 뼘 가량 떠올랐으니, 오정이 되려면 아직 차례 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공연히 마음이 바빴다.
'까짓것, 잠시 앉아 쉬면 뭐 할 끼고.'
손가락으로 한쪽 콧구멍을 찍 누르면서 팽! 하고 마른코를 풀어 던졌다. 그리고 휘청휘청 고갯길을 내려가는 것이다.
내리막은 오르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고 팔을 흔들라치면 절로 굴러 내려가는 것이다. 만도는 오른쪽 팔만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왼쪽 팔은 조끼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있는 것이다.
'삼대 독자가 죽다니 말이 되나. 살아서 돌아와야 일이 옳고 말고, 그런데 병원에서 나온다 하니 어디를 좀 다치기는 다친 모양이지만 설마, 나같이 이렇게사 되진 않았겠지.'
만도는 왼쪽 조끼 주머니에 꽂힌 소맷자락을 내려다보았다. 그 소맷자락 속에는 아무것도 든 것이 없었다. 그저 소맷자락 그것뿐이 어깨 밑으로 덜렁 처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상 그 쪽은 조끼 주머니 속에 꽂혀 있는 것이다.
'볼기짝이나 장딴지 같은 데를 총알이 약간 스쳐 갔을 따름이겠지. 나처럼 팔뚝 하나가 몽땅 달아날 지경이었다면 그 엄살스런 놈이 견뎌 냈을 턱이 없고말고.'
슬며시 걱정이 되기도 하는 듯 그는 속으로 이런 소리를 주워 섬겼다. 내리막길은 빨랐다. 벌써 고갯마루가 저만큼 높이 쳐다보이는 것이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이제 들판이었다. 내리막길을 쏘아 내려온 기운 그대로, 만도는 들길을 잰걸음쳐 나가다가, 개천 둑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는 조그마한 시냇물이었다. 한여름 장마철에는 들어설라치면 배꼽이 묻히는 수도 있었지마는, 요즈막엔 무릎이 잠길 듯 말 듯한 물인 것이다. 가을이 깊어지면서부터 물은 밑바닥이 환히 들여다보일 만큼 맑아져 갔다.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물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절로 이뿌리가 시려 것이다.
만도는 물 기슭에 내려가서 쭈그리고 앉아 한 손으로 고의춤을 풀어 헤쳤다. 오줌을 찌익---깔기는 것이었다. 거울면처럼 맑은 물 위에 오줌이 가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뿌우연 거품을 이루니 여기저기서 물고기 떼가 모여들었다. 제법 엄지손가락만씩한 피리도 여러 마리였다.
'한 바가지 잡아서 회 쳐 놓고 한 잔 쭈욱 들이켰으면 .'
군침이 목구멍에서 꿀꺽했다. 고기떼를 향해서 마른코를 팽팽 풀어 던지고, 그는 외나무다리를 조심히 딛는 것이었다.
얼마 길이가 되지 않는 다리였으나, 아래로 물을 내려다보면 제법 어찔하기도 했다. 그는 이 외나무다리를 퍽 조심하는 것이다.
언젠가 한 번 읍에서 술이 꽤 되어 가지고 흥청거리며 돌아오다가, 물에 굴러 떨어진 일이 있었던 것이다. 지나치는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가 보았더라면 큰 웃음거리가 될 뻔했었다. 발목 하나를 약간 접쳤을 뿐, 크게 다친 데는 없었다. 이른 가을철이었기 때문에 옷을 벗어 둑에 널어 넣고 말릴 수는 있었으나, 여간 창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옷이 말짱 젖었다거나 옷이 마를 때까지 발가벗고 기다려야 한다거나 해서가 아니었다. 팔뚝 하나가 몽땅 잘라져 나간 흉측한 몸뚱어리를 하늘 앞에 드러내놓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나치는 사람이 있을라치면, 하는 수 없이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얼굴만 내놓고 앉아 있었다. 물이 선뜩해서 아래턱이 덜덜거렸으나, 오그라붙은 사타구니께를 한 손으로 꽉 움켜쥐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흐흐흐 "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곧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하늘로 쳐들린 콧구멍이 연신 벌름거렸다.
개천을 건너서 논두렁길을 한참 부지런히 걸어가노라면 읍으로 들어가는 행길이 나선다. 도로변에 먼지를 부옇게 덮어쓰고 도사리고 앉아 있는 초가집은 주막이었다. 만도가 읍에 나올 때마다 꼭 한번씩 들르곤 하는 단골집인 것이다. 이 집 눈썹이 짙은 여편네와는 예사로 농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술방 문턱을 넘어서며 만도가
"서방님, 들어가신다." / 하면 여편네는,
"아이 문둥아 어서 오느라."
하는 것이 인사처럼 되어 있었다. 만도는 여간 언짢은 일이 있어도, 이 여편네의 궁둥이 곁에 가서 앉으면 속이 쑥 내려가는 것이었다. 주막 앞을 지나치면서 만도는 술방 문을 열어 볼까 했으나, 방문 앞에 신이 여러 켤레 널려 있고, 방안에서는 지금 웃음소리가 요란하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하였다.
신작로에 나서면 금시 읍이었다.
만도는 읍 들머리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정거장 쪽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걸음을 놓았다. 장거리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진수가 돌아오는데 고등어나 한 손 사 가지고 가야 될 거 아닌가?'
싶어서였다. 장날은 아니었으나, 고깃전에는 없는 고기가 없었다. 이것을 살까 하면 저것이 좋아 보이고, 그것을 사러 가면 또 그 옆의 것이 먹음 직해 보이는 것이었다. 한참 이리저리 서성거리다가 결국은 고등어 한 손이었다. 그것을 달랑달랑 들고 정거장을 향해 가는데, 겨드랑 밑이 간질간질해 왔다. 그러나 한 쪽밖에 없는 손에 고등어를 들었으니 참 딱했다. 어깻죽지를 연신 위아래로 움직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정거장 대합실에 들어선 만도는 먼저, 벽에 걸린 시계부터 바라보았다. 두 시 이십 분이었다. '벌써 두 시 이십 분이라니, 내가 잘못 보나?'
아무리 두 눈을 씻고 보아도, 시계는 틀림없는 두 시 이십 분인 것이다. 한쪽 걸상에 가서 궁둥이를 붙이면서도 곧장 미심쩍어했다.
'두 시 이십분이라니, 그럼 벌써 점심때가 겨웠단 말인가?'
말도 아닌 것이다. 자세히 보니 시계는 유리가 깨어졌고 먼지가 꺼멓게 앉아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 엉터리였다. 벌써 그렇게 되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여보이소, 지금 몇 싱교?" / 맞은편에 앉은 양복장이한테 물어 보았다.
"열 시 사십 분이오."
"예, 그렁교."
만도는 고개를 굽실하고는 두 눈을 연신 껌벅거렸다.
'열 시 사십 분이라, 보자. 그럼 아직도 한 시간이나 넘어 남았구나.'
그는 안심이 되는 듯 후유 하고 숨을 내쉬었다. 궐련을 한 개 빼 물고 불을 댕겼다. 정거장 대합실에 와서 이렇게 도사리고 앉아 있노라면, 만도는 곧잘 생각키는 일이 한 가지 있었다. 그 일이 머리에 떠오르면 등골을 한 기운이 좍 스쳐 내려가는 것이었다. 손가락이 시퍼렇게 굳어져서 마치 이끼 낀 나무 토막 같은 팔뚝이 지금도 저만큼 눈앞에 보이는 듯하였다.
바로 이 정거장 마당에 백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만도도 섞여 있었다.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으나, 그들은 모두 자기네들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모르는 것이었다. 그저 차를 타라면 탈 사람들인 것이었다. 징용에 끌려나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십 이삼 년 옛날의 이야기인 것이다.
북해도 탄광으로 갈 것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틀림없이 남양 군도로 간다는 사람도 있었다. 더러는 만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만도는 북해도가 아니면 남양군도일 것이고, 거기도 아니면 만주겠지, 설마 저희들이 하늘 밖으로사 끌고 가겠느냐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 들창코로 담배 연기를 푹푹 내뿜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이 좀 덜 좋은 것은 마누라가 저쪽 변소 모퉁이 벚나무 밑에 우두커니 서서 한눈도 안 팔고 이쪽만을 바라보고 있는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주머니 속에 성냥을 두고도 옆 사람에게 불을 빌리자고 하여 슬며시 돌아서 버리곤 했다. 홈으로 나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마누라는 울 밖에 서서 수건으로 코를 눌러 대고 있는 것이었다. 만도는 코허리가 찡했다. 기차가 꽥꽥 소리를 지르면서 덜커덩!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덜 좋았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그러나 정거장이 까맣게 멀어져 가고 차창 밖으로 새로운 풍경이 휙휙 날아들자,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것이었다. 오히려 기분이 유쾌해지는 듯하였다.
바다를 본 것도 처음이었고, 그처럼 큰배에 몸을 실어 본 것은 더구나 처음이었다. 배 밑창에 엎드려서 꽥꽥 게워 내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만도는 그저 골이 좀 띵했을 뿐 아무렇지도 않았다. 더러는 하루에 두 개씩 주는 뭉치밥을 남기기도 했으나, 그는 한꺼번에 하룻것을 뚝딱해도 시원찮았다. 모두들 내릴 준비를 하라는 명령이 내린 것은 사흘째 되는 날 황혼 때였다. 제가끔 봇짐을 챙기기에 바빴다. 만도는 호박덩이만한 보따리를 옆구리에 덜렁 찼다. 갑판 위에 올라가 보니 하늘은 활활 타오르고 있고, 바닷물은 불에 녹은 쇠처럼 벌겋게 우쭐렁거리고 있었다. 지금 막 태양이 물 위로 뚝 떨어져 가는 것이었다. 햇덩어리가 어쩌면 그렇게 크고 붉은지 정말 처음이었다. 그리고 바다 위에 주황빛으로 번쩍거리는 커다란 산이 둥둥 떠 있는 것이었다. 무시무시하도록 황홀한 광경에 일동은 딱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만도는 어깨마루를 번쩍 들어올리면서, 히야---하고 고함을 질러 댔다. 그러나, 그처럼 좋아할 건덕지는 못되는 것이었다. 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숨막히는 더위와 강제 노동과 그리고 잠자리만씩이나 한 모기떼였던 것이다.
섬에다가 비행장을 닦는 것이었다. 모기에게 물려 혹이 된 곳를 벅벅 긁으며,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무릅쓰고, 아침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산을 허물어 내고, 흙을 나르고 하기란, 고향에서 농사일에 뼈가 굳어진 몸에도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었다. 물도 입에 맞지 않았고, 음식도 이내 변하곤 해서, 도저히 견디어 낼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병까지 돌았다. 일을 하다가도 벌떡 자빠지기가 예사였다. 그러나 만도는 아침 저녁으로 약간씩 설사를 했을 뿐, 넘어지지는 않았다. 물도 차츰 입에 맞아 갔고, 고된 일도 날이 감에 따라 몸에 배어 버리는 것이었다. 밤에 날개를 차며 몰려드는 모기 떼만 아니면 그냥저냥 배겨 내겠는데, 정말 그놈의 모기들만은 질색이었다.
사람의 힘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그처럼 험난하던 산과 산 틈바구니에 비행장을 다듬어 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일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벅찬 일이 닥치는 것이었다. 연합군의 비행기가 날아들면서부터 일은 밤중까지 계속되었다. 산허리에 굴을 파고 들어가는 것인데 비행기를 집어넣을 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시설을 다 굴속으로 옮겨야 했던 것이다.
여기저기서 다이너마이트 튀는 소리가 산을 흔들어 댔다. 앵앵앵----하고 공습 경보가 나면 일을 하던 손을 놓고 모두 굴바닥에 납작납작 엎드려 있어야 했다. 비행기가 돌아갈 때까지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근 한 시간 가까이나 엎드려 있어야 하는 때도 있었는데, 차라리 그것이 얼마나 편한지 몰랐다. 그래서 더러는 공습이 있기를 은근히 기다리기도 했다. 때로는 공습 경보의 사이렌을 듣지 못하고 그냥 일을 계속하는 수도 있었다.
그럴 때는 모두 큰 손해를 보았다고 야단들이었다. 어떻게 된 셈인지 사이렌이 미처 불기 전에 비행기가 산등성이를 넘어 달려드는 수도 있었다. 그럴 때는 정말 질겁을 하는 것이었다. 가장 많이 손해를 입는 것도 그런 경우였다. 만도가 한 쪽 팔뚝을 잃어버린 것도 바로 그런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굴속에서 바위를 허물어 내고 있었다. 바위 틈서리에 구멍을 뚫어서 다이너마이트 장치를 하는 것이었다. 장치가 다 되면 모두 바깥으로 나가고 한 사람만 남아서 불을 당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터지기 전에 얼른 밖으로 뛰어나와야 되었다.
만도가 불을 당기는 차례였다. 모두 바깥으로 나가 버린 다음 그는 성냥을 꺼내었다. 그런데 웬 영문인지 기분이 께름직했다. 모기에 물린 자리가 자꾸 쑥쑥 쑤시는 것이었다. 긁적긁적 긁어 댔으나 도무지 시원한 맛이 없었다.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성냥을 득 그었다. 그래 그런지 몰라도 불은 이내 픽 하고 꺼져 버렸다. 성냥 알맹이 네 개째에사 겨우 심지에 불이 댕겨졌다. 심지에 불이 붙는 것을 보자, 그는 얼른 몸을 굴 밖으로 날렸다.
바깥으로 막 나서려는 때였다. 산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사나운 바람이 귓전을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만도는 정신이 아찔하였다. 공습이었던 것이다. 산등성이를 넘어 달려든 비행기가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지나는 것이었다.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또 한 대가 뒤따라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만도는 그만 넋을 잃고 굴 안으로 도로 달려들어갔다. 달려들어가서 굴 바닥에 아무렇게나 팍 엎드리고 말았다. 그 순간이었다. 꽝! 굴 안이 미어지는 듯하면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졌다. 만도의 두 눈에서 불이 번쩍났다.
만도가 어렴풋이 눈을 떠 보니, 바로 거기 눈앞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팔뚝이 하나 놓여 있었다. 손가락이 시퍼렇게 굳어져서 마치 이끼 낀 나무 토막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만도는 그것이 자기의 어깨에 붙어 있던 것인 줄을 알자, 그만 '으악!' 하고 정신을 잃어버렸다.
재차 눈을 떴을 때는, 그는 푹신한 담요 속에 누워 있었고, 한쪽 어깨쭉지가 못 견디게 쿡쿡 쑤셔 댔다. 절단수술(切斷手術)은 이미 끝난 뒤였다.
꽤액----기차 소리였다. 멀리 산모퉁이를 돌아오는가 보다. 만도는 앉았던 자리를 털고 벌떡 일어서며, 옆에 놓아 두었던 고등어를 집어 들었다. 기적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울렁거렸다. 대합실 밖으로 뛰어나가 홈이 잘 보이는 울타리 쪽으로 가서 발돋움을 하였다. 째랑째랑 하고 종이 울자, 한참 만에 차는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기관차의 옆구리에서는 김이 픽픽 풍겨 나왔다. 만도의 얼굴은 바짝 긴장되었다. 시커먼 열차 속에서 꾸역꾸역 사람들이 밀려 나왔다. 꽤 많은 손님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만도의 두 눈은 곧장 이리저리 굴렀다. 그러나 아들의 모습은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저쪽 출찰구로 밀려가는 사람의 물결 속에 두 개의 지팡이를 의지하고 절룩거리면서 걸어 나가는 상이 군인이 있었으나, 만도는 그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리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릴 사람은 모두 내렸는가 보다. 이제 미처 차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홈을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놈이 거짓으로 편지를 띄웠을 리는 없을 건데!'
그는 자꾸 가슴이 떨렸다.
'이상한 일이다.'
하고 있을 때였다. 분명히 뒤에서,
"아부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만도는 깜짝 놀라며,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만도의 두 눈은 무섭도록 크게 떠지고, 입은 딱 벌어졌다.
틀림없는 아들이었으나, 옛날과 같은 진수는 아니었다. 양쪽 겨드랑이에 지팡이를 끼고 서 있는데, 스쳐 가는 바람결에 한쪽 바지가랑이가 펄럭거리는 것이 아닌가?
만도는 눈앞이 노래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한참 동안 그저 멍멍하기만 하다가 코허리가 찡해지면서 두 눈에 뜨거운 것이 핑 도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느 때처럼 코를 팽팽 풀어 던지지는 않았다.
"애라이 이놈아!"
만도의 입술에서 모지게 튀어 나온 첫 마디였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고등어를 든 손이 불끈 주먹을 쥐고 있었다.
"이기 무슨 꼴이고 이기."
"아부지!"
"이놈아, 이놈아!"
만도의 들창코가 크게 벌름 하다가 훌쩍 물코를 들이마셨다. 진수의 얼굴에는 어느 결에 눈물이 꾀죄죄하게 흘러 있었다. 만도는 진수의 잘못이기나 한 듯 험한 얼굴로,
"가자, 어서."
무뚝뚝한 한 마디를 던지고는 성큼성큼 앞장을 서 가는 것이었다. 진수는 입술에 내려와 묻는 짭짤한 것을 혀끝으로 날름 핥아 버리면서, 절름절름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앞장 서 가는 만도는 뒤따라오는 진수를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한눈을 파는 법도 없었다. 무겁디무거운 짐을 진 사람처럼 땅바닥을 응시하고, 이따금 끙끙거리면서 부지런히 걸어만 가는 것이었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걷는 진수가 성한 사람의, 게다가 부지런히 걷는 걸음을 당해 낼 수는 도저히 없었다. 한 걸음 두 걸음씩 뒤지기 시작한 것이 그만, 작은 소리로 불러서는 들리지 않을 만큼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진수는 목구멍을 왈칵 넘어오려는 뜨거운 기운을 참느라고 어금니를 야물게 깨물어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두 개의 지팡이와 한 개의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대는 것이었다.
앞서 간 만도는 주막집 앞에 이르자, 비로소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진수는 오다가 나무 밑에 서서 오줌을 누고 있었다. 지팡이는 땅바닥에 던져 놓고, 한 쪽 손으로 볼일을 보고, 한 손으로는 나무둥치를 감싸안고 있는 모양이 을씨년스럽기 이를 데가 없는 꼬락서니였다. 만도는 눈살을 찌푸리며, '으음!' 하고 신음 소리 비슷한 무거운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술방 앞으로 가서 방문을 왈칵 잡아당겼다.
기역자판 안에 도사리고 앉아서, 속옷을 뒤집어 까고 이를 잡고 있던 여편네가 킥 웃으며 후닥닥 옷섶을 여몄다. 그러나 만도는 웃지를 않았다. 방 문턱을 넘어서면서도 서방님 들어가신다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아마 이처럼 뚝뚝한 얼굴을 하고 이 술방에 들어서기란 처음일 것이다. 여편네가 멋도 모르고,
"오늘은 서방님 아닌가배."
하고 킬룩 웃었으나, 만도는 '으음!' 또 무거운 신음 소리를 했을 뿐,도시 기분을 내지 않았다. 기역자판 앞에 가서 쭈그리고 앉기가 바쁘게
"빨리 빨리."
재촉이었다.
"하따나 어진간히도 바쁜가 베."
"빨리 곱배기로 한 사발 달라니까구마."
"오늘은 와 이카노?"
여편네가 쳐 주는 술사발을 받아 들며, 만도는 후유----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입을 얼른 사발로 가져갔다. 꿀꿀꿀 잘도 넘어가는 것이다. 그 큰 사발을 단숨에 말려 버리고는 도로 여편네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그렇게 거들빼기로 석 잔을 해 치우고사 '으으윽' 하고 게트림을 했다. 여편네가 눈을 휘둥그레져 가지고 혀를 내둘렀다.
빈 속에 술을 그처럼 때려마시고 보니 금세 눈두덩이 확확 달아오르고 귀뿌리가 발갛게 익어 갔다. 술기가 얼근하게 돌자, 이제 좀 속이 풀리는 것 성싶어 방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진수는 이마에 땀을 척척 흘리면서 다 와 가고 있었다.
"진수야!"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리 들어와 보래!"
" ."
진수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어기적어기적 다가왔다. 다가와서 방 문턱에 걸터앉으니까, 여편네가 보고,
"방으로 좀 들어오이소." / 하였다.
"여기 좋심더."
그는 수세미 같은 손수건으로 이마와 코언저리를 싹씩 닦아 냈다.
"마, 아무 데서나 묵어라, 저----국수 한 그릇 말아 주소."
"야."
"곱배기로 잘 좀 . 참지름도 치소, 알았능교?"
"야아."
여편네는 코로 히죽 웃으면서, 만도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고는 소쿠리에서 삶은 국수 두 뭉텅이를 집어 들었다.
진수가 국수를 훌훌 끌어 넣고 있을 때, 여편네는 만도의 귓전으로 얼굴을 갖다 댔다.
"아들이가?"
만도는 고개를 약간 앞뒤로 끄덕거렸을 뿐, 좋은 기색을 하지 않았다. 진수가 국물을 훌쩍 들이마시고 나자, 만도는
"한 그릇 더 묵을래?" / 하였다.
"아니예."
"한 그릇 더 묵지 와?"
"고만 묵을랍니더."
진수는 입술을 싹 닦으며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막을 나선 그들 부자는 논두렁길로 접어들었다. 아까와 같이 만도가 앞장을 서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진수를 앞세웠다. 지팡이를 짚고 찌그뚱찌그뚱 앞서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팔뚝이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가 느릿느릿 따라가는 것이다. 손에 매달린 고등어가 대고 달랑달랑 춤을 추었다. 너무 급하게 들이부어서 그런지, 만도의 뱃속에서는 우글우글 술이 끓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콧구멍으로 더운 숨을 훅훅 내뿜어 보니, 정신이 아른해서 역시 좋앗다.
"진수야!"
"예."
"니 우야다가 그래 댔노!"
"전쟁하다가 이래 안 댔심니꾜? 수류탄 쪼가리에 맞았심더."
"응, 그래서?"
"그래서 얼른 낫지 않고 막 썩어 들어가기 땜에 군의관이 짤라 버립디더. 병원에서예, 아부지!"
"아부지!"
"와?"
"이래 가지고 나 우째 살까 싶습니더."
"우째 살긴 뭘 우째 살아. 목숨만 붙어 있으면 다 사는 기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 ."
"나 봐라, 팔뚝이 하나 없어도 잘만 안 사나? 남 봄에 좀 덜 좋아서 그렇지 살기사 왜 못 살아."
"차라리 아부지같이 팔이 하나 없는 편이 낫겠어예. 다리가 없어 노니 첫째 걸어댕기기에 불편해서 똑 죽겠심더."
"야야 안 그렇다. 걸어댕기기만 하면 뭐 하노? 손을 지대로 놀려야 일이 뜻대로 되지."
"그럴까예?"
"그렇다니. 그러니까 집에 앉아서 할 일은 니가 하고, 나댕기메 할 일은 내가 하고, 그라면 안 되겠나, 그제?"
"예."
진수는 아버지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만도는 돌아보는 아들의 얼굴을 향해서 지그시 웃어 주었다. 술을 마시고 나면 이내 오줌이 마려워지는 것이다. 만도는 길가에 아무 데나 쭈그리고 앉아서 고기 묶음을 입에 물려고 하엿다. / 그것을 본 진수는
"아부지, 그 고등어 이리 주이소."
하였다. 팔이 하나밖에 없는 몸으로 물건을 손에 든 채 소변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용변을 마칠 때까지는 진수는 저만치 떨어져 서서 지팡이를 한 쪽 손에 모아 쥐고, 다른 손으로는 고등어를 들고 있었다. 볼일을 다 본 만도는 얼른 가서 아들의 손에서 고등어를 다시 받아 들었다.
개천 둑에 이르렀다.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는 그 시냇물인 것이다. 진수는 딱 걱정이 되었다. 물은 그렇게 깊은 것 같지 않지만, 밑바닥이 모래흙이어서 지팡이를 짚고 건너가기가 만만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었다. 외나무다리 위로는 도저히 건너갈 재주가 없고 .
진수는 하는 수 없이 둑에 퍼지고 앉아서 바지 가랑이를 걷어올리기 시작했다. 만도는 잠시 멀뚱히 서서 아들의 하는 양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진수야, 그만두고 자아 업자."
하는 것이었다.
"업고 건느면 일이 다 되는 거 아니가? 자아 이거 받아라."
고등어 묶음을 진수 앞으로 민다.
" ."
진수는 퍽 난처해하면서 못 이기는 듯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만도는 등어리를 아들 앞에 갖다 대고 하나밖에 없는 팔을 뒤로 버쩍 내밀며,
"자아, 어서!"
진수는 지팡이와 고등어를 각각 한 손에 쥐고, 아버지의 등어리로 가서 슬그머니 업혔다. 만도는 팔뚝을 뒤로 돌려서 아들의 하나뿐인 다리를 꼭 안았다. 그리고
"팔로 내 목을 감아야 될 끼다."
하는 것이었다. 진수는 무척 황송한 듯 한쪽 눈을 찍 감으면서 고등어와 지팡이를 든 두 팔로 아버지의 굵은 목줄기를 부둥켜안았다. 만도는 아랫배에 힘을 주며 '끙!' 하고 일어났다. 아랫도리가 약간 후들거렸으나 걸어갈 만은 하였다. 외나무다리 위로 조심조심 발을 내디디며 만도는 속으로
'이제 새파랗게 젊은 놈이 벌써 이게 무슨 꼴이고? 세상을 잘못 타고나서 진수 니 신세도 참 똥이다 똥.'
이런 소리를 주워섬겼고, 아버지의 등에 업힌 진수는 곧장 미안스러운 얼굴을 하며,
'나꺼정 이렇게 되다니 아부지도 참 복도 더럽게 없지. 차라리 내가 죽어 버렸더라면 나았을 낀데 .' / 하고 중얼거렸다.
만도는 아직 술기가 약간 있었으나, 용케 몸을 가누며,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너가는 것이었다.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작품의 구조화 및 장면별 사건
구성 | 시제 | 구조화 | 장면별 구체적 사건 |
발단 | 현재 1 | 진수의 귀향 | 아버지 박만도의 기쁨 |
아들 진수와 박만도의 상황 | 진수는 삼대 독자, 아들에 대한 만도의 불안 | ||
마을 배경 제시 | 깨끗하고 조용한 산골 마을 | ||
박만도의 불안감 | 행동 묘사를 통한 심리 상태(외나무다리는 삶의 어려움 상징) | ||
과거 1 | 개천에 얽힌 옛 경험 회상 | 불구에 대한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심리 표현 | |
현재 2 | 정거장까지 가는 도중의 주변 상황 | 단골 주막과 주모와의 친분 | |
정거장 가는 도중 | 고등어를 삼(아들에 대한 사랑, 불편한 모습을 통한 비운 묘사) | ||
역 대합실의 도착과 옛날 회상 | 아들을 기다리며 회상(사건의 전개) | ||
전개 | 과거 2 | 옛 일에 대한 회상 시작 | 징용에 끌려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던 만도 |
과거 회상 | 고국을 떠남, 아내와 이별,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 ||
여행 도중의 어려움과 징용지 도착 | 배에서의 고충, 일몰에 도취. | ||
징용지에서의 고역 | 노동의 괴로움 | ||
박만도가 처해 있는 역경 |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된 노동 | ||
징용지에서 겪었던 전쟁의 상황 | 공습과 그에 대한 피해 | ||
팔을 잃게 된 사고 순간 회상 | 다이너마이트 사고로 팔을 잃게 됨 | ||
사고의 종결 | 만도의 비극 (아들의 사고 암시) | ||
위기 | 현재 3 | 진수와의 충격적 만남 | 다리 잃은 아들과의 해후(발단의 걱정이 현실화됨) |
박만도의 분노 | 불구에 대한 시대 상황의 분노 | ||
박만도의 좌절과 진수의 불편한 거동 | 침울한 분위기, 아들의 행동거지로 절망감을 느낌 | ||
주막집에 도착함 | 만도의 좌절이 다소 전환되는 상황 | ||
아들과 아버지가 자신들의 불행 앞에 마주 섬. | 아들에 대한 만도의 숨겨진 사랑(부성애) |
||
절정 | 술로 마음이 누그러진 박만도 | 긴장감의 완화 | |
진수의 사고 경위 | 대화를 통한 사고 경위 | ||
진수의 좌절과 박만도의 위로 | 진수의 좌절과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 | ||
박만도의 불구를 보완하는 진수 | 아들과 아버지의 공감대 형성(갈등의 해소) | ||
결말 | 외나무 다리에서 진수의 고충과 걱정 | 아들의 고통을 덜어 주려는 만도의 사랑 | |
박만도가 아들을 업고 외나무 다리를 건너감 | 자신들의 비극과 불운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씁쓸한 웃음) |
갈래
단편소설, 순수소설, 전후소설, 본격소설
구성 역순행적, 병렬, 대조형 구성
시점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과 관찰자 시점의 복합 시점
문체
간결체, 토속어, 비속어의 사용
인물
박만도 : 주인공. 일제하에 징용에 끌려가 팔 하나를 잃은 삶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현실에 순응하는 인물
박진수 : 만도의 아들. 6.25로 한쪽 다리를 잃음. 현실에 순응
주제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시련과 그 초극 의지
1. 작품의 줄거리
박만도는 삼대 독자인 아들 진수가 돌아온다는 통지를 받고 마음이 들떠서 일찌감치 정거장으로 나간다. 그런데 그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길이라 하니 많이 다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는 팔이 없어서 늘 주머니에 한쪽 소맷자락을 꽂고 다닌다.아들의 귀향 생각에 휩싸여 시간이 빨리 가기를 기다린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면서, 언젠가 술에 취해 물에 빠져 옷을 널어 말리면서 사람들이 지나가면 물 속으로 들어가 얼굴만 내놓던 일을 생각한다. 정거장 가는 길에 진수에게 주려고 고등어 두 마리를 산다. <발단>
정거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만도는 과거의 일을 회상한다. 일제 강제 징용에 의해 남양의 어떤 섬에 끌려갔었다. 비행장을 닦는 일에 동원되었는데 굴을 파려고 산허리에 다이너마이트를 장치하여 불을 당기고 나서려는 순간 연합군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당황한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장치했던 굴로 들어가 엎드렸다가 팔을 잃었다.<전개>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하는데도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만도는 초조해진다."아부지"하고 부르는 소리에 뒤로 돌아선 만도는 다리를 하나 잃은 채 목발을 짚고 서 있는 아들을 보고 눈앞이 아찔해진다. 만도는 분노를 씹으며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가다 주막에 이르러 어찌할 수 없는 부정을 나타낸다. 술기운이 든 만도는 진수에게 자초지정을 묻는다. 수류탄에 그렇게 된 것을 알게 되며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살겠느냐는 아들의 하소연에 아들을 위로한다. <위기,절정>
외나무다리에 이르러 만도는 머뭇거리는 진수에게 등에 업히라고 한다. 진수는 지팡이와 고등어를 각각 한 손에 들고 아버지의 등에 슬그머니 업힌다. 만도는 용케 몸을 가누며 조심조심 걸어간다.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결말>
2. 작품의 구성상 특징
시간 구성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상호 교차시키는 시간 처리 및 회상 또는 연상의 수법을 적절히 활용한 구성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 도식화
시 간 | 회상 및 연상 내용 |
현재 1 | 외나무 다리 |
과거 1 | 다리에서 추락 -> 과거 연상(추락) |
현재 2 | 궐련에 불(대합실) |
과거 2 | 성냥불 -> 과거 연상(폭발 사건) |
현재 3 | 아들을 만남 |
이 도표에서 보듯 서술된 시간의 단위는 모두 다섯이다. 현재는 순행적 질서를, 과거는 시간의 역전을 각각 보여 주고 있다. 즉, 이 작품의 시간 구조는 현재의 시간이 순행하는 질서를 지니면서, 그 속에 외나무다리, 정거장 대합실, 또는 궐련의 불, 성냥불 등의 매개물을 통한 연상 작용에 의해 과거가 삽입되는 역순행적 시간 질서를 보이고 있다. -'되돌아가기' 기법-
사건 구성
이 작품은 표제가 암시하듯이 두 개의 다른 사건 내용을 담고 있다. 일제 때에 아버지 박만도가 겪은 사건과, 6.25때에 아들 진수가 겪은 수난이 그것이다. 이 두 개의 사건은 비극적인 성격을 지니면서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어쩌면 그것은 서로의 화합을 염두에 둔 작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품 전체의 문맥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현재'의 사실임에 틀림없다.
인물의 성격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박만도와 그의 아들 진수, 그리고 술집 여편네 등이다. 박만도는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나가 한쪽 팔을 잃은 불구자요, 그 아들 진수는 6.25 전쟁에 참전하여한 쪽 다리를 잃은 상이 군인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지만 뜻하지 않은 외부 압력으로 육체적 손상을 입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들 부자는 이 땅의 현대사가 경험한 역사적 수난의 과정을 상징한 것이다. 이들 인물이 제시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쓰이고 있다. 작중화자가 직접 인물의 내면 심리 세계를 해설하고 있는가 하면, 인물의 행위나 말씨에 의하여 간접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박만도는 일정한 버릇을 가지고 있다. 단골 술집에 들를 때마다 서방님 들어가신다고 하여 술집 여편네와 농담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아들을 만나기 위해 가는 이 날만은 그대로 지나쳐 버림으로써 여느 때와는 다른 심리 상태여 놓여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우야다가','똥이다,똥' 등의 어투에는 농민다운 투박한 성격이 반영되어 있어서 역시 간접적인 성격 제시의 한 국면을 읽을 수 있다. 아버지 박만도는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서 두 차례의 역사적 수난을 겪었지만 거기에 좌절하지 않고 화합을 통해 의연히 극복하려는 건강성을 지니고 있다. 최초의 수난으로 당황해하는 아들 진수와는 이점에서 구별된다. 실천의지를 보이는 박만도를 통해 비극적 현대사를 극복하기 위한 강인한 정신력을 읽을 수 있다.
박만도 : 순박한 시골 사람. 수난의 가족사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품은 긍정적 인물. 세계의 폭력(제2차 세계 대전, 일제 때 징용)에 희생된 사람이지만 살려는 의지는 눈물겹다. 다소 급하고 직선적이면서도 의지가 굳고 낙천적이며 익살기가 있다.
박진수 : 박만도의 아들. 세계의 폭력(6.25전쟁)에 희생된 순박한 시골 청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전쟁과 인생과 역사의 의미 등 거창한 것에 대한 사색 같은 것은 할 줄 모르나, 자기에게 닥치는 사태를 감수하면서 살아가는 드러나지 않는 끈기, 곧 한국의 토속적 인간상이 엿보이는 인물이다.
주막네 여편네 : 쾌활하고 스스럼 없는 성격의 소유자임. 작중 보조 인물로 서, 만도와 진수의 심리 상태를 표면으로 드러나게 하며, 두 사람 사이의 침울한 분위기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함.
반영론적 관점의 이해
사회적 현실 및 반영된 역사 : 수난이대는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팔 하나를 잃은 아버지 박만도와 6.25 전쟁에 참전하였다가 다리 하나를 잃은 아들 진수, 한 가족의 부자이대가 겪는 비극과 수난의 역사를 반영함으로써 민족 전체의 역사와 사회적 현실의 한단면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글에서 아버지 박만도는 일제의 강제 노역에 아무 저항 없이 따랐던 순박한 농민이다. 그런 그가 팔을 잃게 된 경위가 담담하고도 세심하게 그려져 있으나 징용이라는 일제의 만행에 저항하거나,비판하지 않는다. 여기서 작가는 한 순박한 인간의 비극을 보여 줌으로써, 일제의 만행에 의한 우리 민족의 상처를 더욱 예리하게 들추어 내고 있다.
효용론적 관점의 이해
문제 해결 방식
▶ 결말 부분(불구의 두 인물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장면)이 지닌 상징성은?
① 현실에 도피하거나 그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현실을 극복하는 민족
의지(삶의 낙관적, 긍정적 의지)
② (불구가 된 상황이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의미한다면) 두 부자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모습은 분단 극복의 의지를 의미(상징)함
작가의 현실 인식 태도와 가치관
▶ 이 작품의 결말은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세계관)를 엿보게 한다. 작가의 현실 인식이나 가치관은 어떠한가?
① 이 작품의 결말에서 작가는 용머리재라는 자연물의 시선을 빌려 두 인물을 바라보게 하고 있다. → 두 인물에 대한 직접적인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사실과 작품의 주제를 단일하게 결합하려는 의도임
②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무사히 외나무다리를 건너 새로운 삶을 사는 두 사람(부자)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 점으로 보아 그의 가치관은 [미래 지향적]이라 할 수 있다.
▶ 전통적 문제 해결 방식(...조화와 화합)과 이 작품의 전통성
'수난이대' 작가가 인식한 삶(현실)의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을 긍정적, 합리적으로 제시함. 특히, 작가의 미래 지향적인 가치관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와 현실 인식인 '정신적인 고양에 의한 갈등의 해소'(한 풀이)라는 점에서 전통성이 있다.
가족사 소설(家族史 小說, family novel)
역사의 변화 속에 있는 한 가족의 융성하고 몰락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는 소설을 가족사 소설이라고 한다. 즉, 가족의 역사를 소설로서 기술한 것, 세대의 지속을 통해서 한 가족의 융성과 쇠퇴의 반복적인 순환 과정을 서술함으로써 변천하는 사회나 역사와 인간과의 밀접한 상호 관계를 보여 주는 소설이다.
이런 소설로는, 염상섭의 '삼대', 채만식의 '태평천하' 등이 있다.
'수난이대'는 단편 소설로서 정통적이고 모형적인 가족사 소설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역사의 변화 속에서 한 가족의 부자 이대가 겪는 비극과 수난의 역사, 즉 수난의 가족 세대적인 역사의 기술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가족사 소설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운명론자 또는 체념론자
이 작품은 역사의 거대한 조류에 휘말려 불구자가 된 두 부자의 상봉 장면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버지 박만도와 아들 박진수는 어찌 보면 역사의 대기권 밖에서 그날그날 자족하며 살 줄 알았던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두 부자는 똑같이 본인의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역사와 시대의 부름을 받아 역사의 권내로 뛰어 들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상흔(傷痕)을 안고 다시 권외로 밀려 나오게 된 것이다.
애초부터 이들 부자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소박하고 이정 넘치는 삶의 자세를 계속 지켜 살 수 있는가 하는 쪽으로 쏠려 있었다. 만도는 속으로 '인제 새파랗게 젊은 놈이 벌써 이게 무슨 꼴이고? 세상을 잘못 타고나서 진수 니신세도 참 똥이다 똥.' 이런 소리를 주워 섬겼고, 아버지의 등에 업힌 진수는 곧장 미안스러운 얼굴을 하며, '나꺼정 이렇게 되다니, 아부지도 참 복도 더럽게 없지. 차라리 내가 죽어 버렸더라면 나았을 낀데…….' 하고 중얼거리는……. 이렇게 두 부자는 자신들의 불해을 아파하고 탓하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들 부자는 운명론자, 혹은 체념론자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이들 작중 인물에게는 흔히 말하는 '의식'이란 것도 없고 자신의 아픔을 역사와 비판으로 이끌어 올릴 만한 지성도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아버지 박만도는 아들의 돌아오면 반찬해 주겠다고 고등어 묶음이나 들고 다니고, 똥 외다리가 되어 돌아온 아들의 모습을 보고 홧술을 거푸 몇 찬 마셔대는 정도의 반응밖에 보니지 못하는 극희 소박하면서도 직정적(直情的)인 인간형에 속한다. 아버지 박만도와 아들 박진수는 자신들이 불행을 마음놓고 통곡할 만한 적극성도 지니고 있지 못하며, 또 자신들의 삶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고 간 거대한 힘의 존재에 대한 분석과 항변을 시도할 만한 지성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이런 유형의 독특한 인간형을 형상화한 것은 확실히 하근찬 특유의 개성이 낳은 산물이라 하겠다. 6․25를 소재로 한 다른 소설들, 가령 최인훈의 '광장',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위의 두 부자를, 특히 전쟁으로 인한 충격과 상처를 어떻게 수습하고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비교한다면 아주 흥미 있는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다. 앞에 예시한 세 작품의 주인공들이 자신들이 받은 유형, 무형의 상처를 '적극적으로'다스리고 음미 하고 있다면 '수난이대'의 두 부자는 어리석다고 할 정도로 '소극적'인 대응법을 취한다. 이들 부자는 기껏해야 운명론의 무드에 빠지거나 아니면 팔자 타령을 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똥 앞서 예시한 세 작품의 주인공들이 전쟁이란 무엇이고 왜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역사와 전쟁이 남기고 산 상처를 생존 본능의 확인을 통해서 잊으려 하거나 뛰어 넘으려 하고 있다.
----조남현, '상혼 속의 끈질긴 생명', 백철 외, 「한국 소설 문제작」(일념,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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