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ing n Seeing

[문학작품]화랑의 후예-김동리 분석 및 줄거리

by 휴리스틱31 2021. 6. 4.
728x90

화랑의 후예

 

1. 김동리(金東里,1913 -1990)

경북 경주 출생. 본명은 시종(始終). 1929년 경신고보를 중퇴하고 귀향하여 문학 작품을 섭렵함. 1934년 시 [백로]<조선일보>에 당선되고 단편 [화랑의 후예]1935<조선중앙일보>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처음에는 서정주 등과 함께 <시인부락> 동인이었으며 '생명파'라 불리웠다.

그의 작품 경향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인간 구원의 문제를 주제로 순수한 소설을 창작한 것으로 대표된다. 그의 문학적 여정은 3기로 나눌 수 있다. 초기에는 토속적, 샤머니즘적, 동양적 신비의 세계에서 제재를 선택하여 인간 생명의 허무적인 운명과 신비함을 추구하여 [무녀도], [황토기] 등을 남겼다. 중기에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보다 더 역사 의식과 현실 의식이 강화되면서 참여 의식인 강한 작품을 창작하여 [귀환장정], [흥남철수], [역마] 등을 발표했다. 후기에는 보다 근원적인 인간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근대 문명에 대한 차원 높은 비판 의식을 형상화하여 [등신불], [사반의 십자가] 등을 남겼다.

 

2. 단원 개관

이 작품을 실은 의도는 문학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상상을 통해 창조적 체험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것과 사건의 의미와 그 관계를 통한 깨달음에 이르기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최종의 목표는 작품이 내포한 의미를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깨닫는 것이므로 먼저 작품을 정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작품은 종래의 교과서에서 주류를 이루는 사건 전개 위주의 소설이 아니어서 스토리의 전개가 뚜렷한 복선이나 갈등을 표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작품의 내면적 가치를 발견하기 어렵다. 복잡하면서도 상징적인 황진사라는 인물의 행동을 관찰자의 시점에서 담담하게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본격 소설(순수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로서는 언뜻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3. 작품 내용 파악

'화랑의 후예'라는 제목에서 연상된 내용은?

제목만으로 의미가 긍정적일 가능성이 많다. 왜냐면 화랑이란 삼국 통일의 초석이었고, 또 우리가 읽은 많은 전기의 주인공들을 배출한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긍정적 의미보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였다. 그렇다면 화랑의 후예가 부정적 의미를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황진사의 행동과 사고 방식에서 찾아야 한다. 화랑의 후예라는 말은 이 소설의 절정부에서 비로소 단 한 번 나오는데, 이 말은 황 진사의 가벌 의식의 연장선상에서 그의 가벌 의식의 정점을 이루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의 가벌 의식인데 이 소설에서 그의 혁혁한 문벌 의식과 가벌 의식은 그로 하여금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 능력으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무능과 무기력을 낳고, 또 그 무능과 무기력으로 인한 현실의 모욕을 위장하고 보상받기 위한 시대 착오적, 자기 과시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황 진사'의 성격

소설에 등장하는 황진사의 성격은 사건들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황 진사는 끼니를 때우지 못할 정도로 궁색하면서도 겉으로는 가문과 자존심을 앞세우는 허세에 가득 찬 인물이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비굴해지기도 하나 일단 먹고 나면 다시 허세를 부리는 위선적 인물이며, 지략과 조화를 부리고 싶어하면서 근대화, 도시화에 적응하지 못해 몰락해 가는 전근대적 인물이다. '쇠똥 위에 개똥 눈 흙가루 약'을 명약이라고 호령하고, 타문에 출가했던 과부는 양반 집안에 당치도 않다고 하면서 돈 있고 젊은 규수의 중매도 거절하는 오만한 인물이다. 이러한 황 진사가 여러 가지 서적을 상고하던 중 자신의 조상이 신라적 화랑임을 알아 냈다고 감격해하면서 자랑하는 장면은 그의 가벌 의식과 양반으로서의 허세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 준다.

 

이 작품의 주제에 담긴 작가의 의도

이 작품의 주제는 관찰자이자 작중 인물인 ''가 황 진사와 관련된 몇 개의 삽화를 나열하면서 황 진사의 성격을 부각시키는 데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의 관찰에 따르면, 황 진사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몰락했으며, 봉건주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 근대적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을 통해, 작자는 시대의 변화를 직시하지 못하고 낡은 관념에 사로잡힌 채 방황하는 일제 강점기 몰락한 양반 계층의 정신적 오만과 허위성을 폭로, 비판하고자 했던 것 같다. 대종교 사건으로 수감된 숙부와 가짜 약 장수를 도와 파출소에 끌려가는 황 진사를 대비시킨 점이라든지, 아직 젊은 세대인 ''로 하여금 이러한 이원적인 사회 구조를 관찰하게 한 점으로 보아, 이 작품은 그 배경이 되는 식민지 시대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예리하게 분석, 해부하려는 작자의 의도가 구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황 진사의 가치관을 비판

황 진사의 가치관은 가벌 의식과 전통 중시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변화하는 시대적 현실 속에서 과거에만 집착하고 허세를 부리며 보다 나은 현실 대응의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어리석은 태도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황 진사의 가벌 의식이나 전통에 대한 집착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좌절감에서 오는 보상 심리일 뿐, 올바른 현실 극복 태도라고 할 수 없다.

 

이 작품의 짜임

(1) 발단 : 황 진사와의 만남

(2) 전개 : 황 진사의 성격

황 진사의 몰염치한 성격

'쇠똥 위에 개똥 눈 것을 명약'이라 우기며 아침밥 얻어 먹음

쓸데없는 책상을 들고와 돈 이십 전 우려감

가벌 의식에 바탕을 둔 시대 착오적, 자기 과시적 성격

시전, 주역외우기

교우 관계, 일등 규수 중매한다며 자기 과시

(3) 위기 : 과부 중매로 인한 황 진사의 분노와 비통

(4) 절정 : 정점에 이른 황 진사의 가벌 의식과 희극적 행동

(5) 결말 : 연행되는 황 진사의 태연한 태도

 

'황 진사'가 했던 일 중에서 독특한 성격이 나타나는 점

명약이라며 아침밥 얻어 먹음, 책상으로 돈 우려냄,

새해 인사 드린다며 남의 덕에 설쇰, 과부 중매 거절,

약장수의 증인 노릇 )

본문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살필 수 있는 구절

거리 묘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시대상 : 파고다 공원에서 ~ 도시의 심장

주인공의 외양 묘사 : 얼굴이 누르퉁퉁한, 나이 한 육십 가량 된 영감, 까닭 없이 벗겨진 이마 밑의 두 눈엔 불그스름한 핏물같은 것이 돌고 있었다.

당시의 생활상 묘사 :

의생활 - 푸르죽죽하고 거무스레한 고약 때 오른 당목 두루마기 깃 밖으로

누런 털실이 내다 뵈는, 연록색 인조견 조끼

주생활 - 아궁이에 불을 넣고 방구석에 숯불을 피움

식생활 - 흰떡을 사다 숯불에 구워 먹음

어휘를 통해 알 수 있는 시대상 : 완장, 궐자, 순사, 일 오너라, 모르히네,

하개 아다마

 

군상의 묘사에 담긴 피폐한 조선의 현실 : 술이 묻고 ~ 뒹굴고 있었다.

머리가 더부룩한 ~ 수족 병신들

 

4. 요점 정리

 

문종 : 단편소설, 본격소설

문체 : 간결체, 우유체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제재 : 황진사라는 몰락한 양반 후예의 노년 생활

배경

시간적 - 1930년대 중반

공간적 - 서울(관상소, , 거리)

시대적 - 일제 강점기

인물

- 지식인이며 황진사에 대해 연민을 가지는 관찰자

황진사 - '조선의 심벌'로 표상되며, 문벌에 대한 자만심으로 세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양반의 후예

숙부, 숙모 - 황진사에 대해 우호적인 보조 인물

 

주제

낡은 과거의 권위에 의존하며 조화와 이적을 기대하는 시대착오적인 삶

 

역마(驛馬, 19481, <백민>)

 

 

등장인물

성기: 역마살을 타고난 운명적 인물. 계연과의 사랑의 좌절로 역마살을 극복하지 못하고 팔자에 따라 고향을 떠남.

 

옥화: 성기의 모. 주막을 운영하고 아들의 역마살 제거에 힘쓰나 실패하고 운명을 받아들임.

계연: 옥화의 이복 동생. 성기를 사랑하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아버지를 따라 떠남.

체장수: 계연의 부. 역마살이 낀 인물로 36년 전 옥화의 어머니와 관계한일이 있음.

 

줄거리

'화개장터'의 냇물은 길과 함께 흘러서 세 갈래로 나 있었다. 한 줄기는 전라도 땅 구례쪽에서 오고 한 줄기는 경상도 쪽 화개협에서 흘러내려, 여기서 합쳐져, 푸른 산과 고목 그림자를 거꾸로 비치인 채, 호수같이 조용히 돌아, 경상 전라 양 도의 경계를 그어 주며, 다시 남으로 남으로 흘러 내리는 것이, 섬진강 본류였다.

 

남사당 패 우두머리가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에서 주막집 홀어미와 하룻밤의 인연을 맺는다. 그는 전라도 지방을 여행하다가 40여 년만에야 어린 딸 계연이를 데리고 화개에 들른다. 옛 주막집에는 그 홀어미 대신 딸이 환대한다.

 

화개 장터에서 주막을 꾸려 가며 사는 옥화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역마살을 없애기 위해 쌍계사에 보내 생활하게 하고 장날에만 집에 와 있게 한다. 어느 날 체장수 영감이 딸 계연을 데리고 와 주막에 맡기고 장삿길을 떠난다. 옥화는 계연을 성기와 결혼시켜 역마살을 막아 보려는 심정에서 성기와 계연이 가깝게 지내도록 한다. 계연으로 하여금 성기의 시중도 들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계연의 귓바퀴에 난 사마귀를 보고 놀란 옥화는 계연이 자신의 동생일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어 두 사람이 가까이하지 못하게 한다. 남사당 패 우두머리가 바로 체장수 영감이고, 옥화와 계연은 서로 이복 자매가 되는 예감이 든 것이다. 체장수 영감이 돌아옴으로써 예감은 맞게 되고, 옥화와 계연이 이복 자매임이 밝혀지게 된다. 36년 전, 옥화의 모와 하룻밤 관계한 체장수의 딸이 옥화임이 밝혀진 것이다. 서로 맺어질 수 없는 사이이기에 채장수 영감은 계연을 데리고 고향으로 떠나가게 된다. 이 일이 있은 후 성기는 중병을 앓게 되고 병이 낫자 역마살을 따라 엿판을 꾸려 집을 떠난다. 계연이 간 반대 방향으로... ...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겨 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어,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서 있을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갈 무렵 하여서는,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었다.

 

 

 

해설

이 작품은 '역마살' 이라는 무속을 소재로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을 나타낸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체장수 영감과 성기가 역마살이 낀 인물들이다. 주인공인 성기의 역마살은 외할아버지인 체장수 영감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그것으로 인해 성기와 계연의 결혼은 불가능해진다. 이 소설에서 주된 갈등은 역마살을 제거하려는 인간들의 노력과 운명적인 역마살과의 대결이다.

 

역마살을 타고난 성기는 사랑하는 계연과 정착을 이루려 하지만 운명은 그를 죽음과 유랑의 길 중 어느 하나만을 강요한다.여기서 성기가 유랑을 택한 것은 현실적으로 운명에의 패배를 뜻하지만, 그 내면에서는 한국인의 의식 속에 담긴 극기의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자연법칙과 인간의 생명이 하나의 원리에서 조화되는 세계를 그리는 김동리 문학의 중요한 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팔자소관에 순응함으로써 도리어 죽음에서 구제된다는, 동양적 운명론을 실천하고 있는 작품이다. 성기는 엿판을 메고 떠나면서 콧노래까지 부르지 않는가 ?

 

(주제) 팔자 소관에 순응함으로써 죽음에서 구제받으려고 함.

 

(갈래) 단편 소설

 

(구성) 단순 구성, 입체적 구성

 

(상징) 역마 -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유랑할 수 밖에 없는 운명

 

화개 - 남녀 간의 사랑

 

(성격) 무속적, 운명적

 

(문체) 간결체, 화려체

 

 

김동리의 {역마}에 대한 작품 연구

 

.서 론

 

김동리는 가장 한국적인 가정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초기작 {무녀도}, {황토기}, {바위}, {}, {역마}를 비롯해서, 근래의 작품인 {까치소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원초적 민간신앙과 토속적 분위기를 그의 창작 활동의 집념적인 모티브로 삼고 있어서, 한국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김동리의 작품이 한국적일 수 있다는 것은 한국 문화의 원형적 요소를 담고 있다는 말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한국의 문화를 가리켜 [풀이의 문화]라고 말하듯이, [맺힘][풀이]의 기능은 한국인의 의식에 기조를 이루고 있다. [풀이]는 한국인의 마음 속에 연연히 이어져 내려온 정신이요 의식이다.

본 연구는 첫째 {역마}란 작품이 究竟的 生形式運命問題에 인식되었다고 보고 풀이기능으로 그 구조적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역마}에는 <할머니>, <옥화>, <성기>, <계연>, <남사당패>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소설로서의 드라마는 <옥화><성기> 사이에 전개된다. 이들은 모두 신비하게도 윤회적 운명의 사슬에 묶여져 있으며, 그 운명이란 조건 아래에서 포기할 수 없는 인간 구경적 삶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마음의 소망을 빌어온 점에서 한국인의 고유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II. 본 론

 

1. 究竟的 生形式

 

[화개 장터]의 냇물은 길과 함께 흘러서 세 갈래로 나 있었다. 한 줄기는 전라도 땅 구례 쪽에서 오고, 한 줄기는 경상도쪽 화개협에서 훌러내려 여기서 합쳐서, 푸른 산과 검은 고목 그림자를 거꾸로 비치인 채, 호수같이 조용히 돌아, 경상 전라 양 도의 경계를 그어주며 다시 남으로 흘러 내리는 것이 섬진강 본류였다. 하동, 구례, 쌍계사의 세 갈래 길목이라 오고가 는 나그네로 하여, [화개장터]엔 장날이 아니라도 언제나 흥얼거리는 날이 많았다. (중략)

장이 서지 않는 날일지라도 인근(隣近) 고을 사람들에게 그곳이 그렇게 언제나 그리운 것은, 장터 위에서 화갯골로 뻗쳐 앉은 주막마다 유달리 맑고 시원한 막걸리와 펄펄 살아 뛰는 물고 기의 회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막 앞에 늘어선 능수버들 가지 사이사이로 사 철 흘러나오는 그 한() 많고 멋들어진 춘향가 판소리 육자배기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게다가 가끔 전라도 지방에서 꾸며나오는 남사당 여사당 협률(協律) 창극 광대들이 마지막 연 습 겸 첫 공연으로 여기서 으례 재주와 신명을 떨고서야 경상도로 넘어간다는 한갓 관습과 전 례가 '화개장터'의 이름을 더욱 높이고 그립게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역마}의 서두는 단순한 물리적 배경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어서 그 구조적 의미 분석은 매우 중요하다. 언제나 그리운 것의 지향성은 운명에 근거를 둔다 할지라도 과 분리되지 않아, 을 푸는 행위가 진양조이고 남사당인데, 신명을 떨친다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은 운명적으로 무엇인가를 향한 志向性을 가지는데, 이것은 定着性을 향한 志向性을 승인하고 있어, 定着性이 한국적 혹은 동양적 가족 제도의 윤리관을 확립시켰다. 이러한 문화주의 속에 혹은 장치 속에 포함되지 못하고 일탈된 사람을 限界人間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성기,옥화,할머니 는 이 限界人間의 모습을 띠고 있다. 즉 모두 무엇인가 그리움을 안고, 그것이 이 되어 살고 있는데, 그리움唐四柱에서의 역마살이다.

이 역마살에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극복하려 한다. 그 방법이란 문화주의라는 것의 장치들인데, 성기를 쌍계사 절에 보내는 일을 들 수 있다. 곧 그것은 불교가 일종의 장치인 것이다. 계연옥화의 배다른 동생임이 판명됨으로써 성기계연을 사랑하고 결혼하여 정착하려는(역마살의 극복) 모든 의지를 일거에 無化시킨자. 그러기에 궁극적으로는 "운명"뿐이다.

역마에서 이 운명의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 모습에 하나의 형식을 부여하였는데, 이른바 究竟的 生形式인 것이다.

 

갈아입은 옥양목 고이적삼에 명주수건까지 머리에 동여매고 난 성기는 새로 맞춘 새하얀 나무 엿판을 걸빵해서 느직하게 엉덩이 지음에다 걸고…….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어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 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서 있을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갈 무렵 하여서는,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었다.

 

작가는 역마살이라는 당사주로 표상된 인간의 공통된 운명 중의 하나를 발견하였다. 할머니나 어머니의 강요에 대한 절대적 복종은 개인성의 전적인 소멸, 즉 죽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성기에 있어서는 주어진 운명으로서의 역마살에 순종함으로써, 죽음에서 재생한다는 것은(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운명의 극복이 아니라, 이른바 運命愛로 해석될 수 있다. 그것이 문화주의에 인접하여 안정성을 획득하여 限界人間으로서의 究竟的 生形式을 추구한 것이다.

 

2. {역마}의 원류

김동리의 작품 중에서 [황토기]를 비롯해서, [원왕생가], [수로부인]같은 작품들은 설화를 형성의 소재로 삼고 있는 예라 볼 수 있다.

{역마}의 경우, 주인공 <옥화><성기>의 탄생이 강이나 산의 결구와 깊이 연관지워졌던 것도 풍수사상에 근거를 두었던 것이다. 또 설화 문학의 보고인 삼국유사에 전하는 주몽신화와 이규보가 지은 영웅 서사시 [동명왕편]을 종합해서 살펴 볼 때, {역마}의 구조와 일치하고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본시 하백의 딸로 이름은 유화인데, 여러 아이들과 나와 놀고 있을때, 한 남자가 있 어 자기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 하고 나를 웅신산하 압록강가의 집 속으로 꾀어 사통하고 가 서 돌아오지 않으므로, 부모가 나의 중매없이 혼인한 것을 꾸짖어 이곳으로 귀양 보낸 것이라 하였다.

 

주몽의 출생 부분이다. 이 신화의 인물, 플롯, 배경, 테마는 바로 {역마}를 성립시키고 있는 구조적 요소와 일치하고 있다. 대응적 관계를 이루는 인물과 배경을 도해하면 아래와 같다.

 

(A) 하백과 할머니 : 주인공의 탄생과 관계 있는 모계의 혈통.

(B) 유화와 옥화 : 아들 하나를 의지하고, 언제 돌아올줄 모르는 님을 기다리며 외롭게 살아가는 여인.

(C) 주몽과 성기 : 무부지자로 성장, 어머니와 이별하여 남행함.

(D) 해모수와 남사당 : 후손의 씨를 뿌리고 돌아오지 않음. 가버린 님.

(E) 웅신산하 압록강산과 푸른산을 감싸고 흐르는 물 : 강과 산의 지리적 결구로서 생명탄생의 근원지

(F) 집과 주막 : 정을 통한 곳.

 

위에서 {역마}의 구조적 요소와 일치하는 두드러진 몇 가지를 비교해 보았다.

소재의 근원을 찾아내려는 일은, [문학이 전통의 파괴가 아니라 전통의 끊임없는 재조정]이란 점에서, {역마}는 우리 고전과 맥락이 닿고 있는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3. 의 맺힘과 풀이

역마의 작중인물들이 화개장터를 끼고 흐르는 강물과 연관이 맺어져 있음은, 더욱 의 이미지를 더해 주고 있는 것이다. 평생 기다리던 남편이 끝내 돌아오는 것도 보지 못한 채, 할머니는 어느덧 한 많은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떠돌이중)을 막연히 기다리며 사는 것은 옥화에게 있어 이어내려 오는 이 아닐 수 없으며, 이제 모든 희망을 걸고 의지하며 살려 했던 아들 성기마저 멀리 떠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가? 떠난다], [이별한다]는 것은 비극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으며, 떠남을 당한 한국인의 마음은 이 을 화해하려는 내심의 세계가 작용할 때, 더욱 심화되어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할머니나 옥화는 늘 떠나고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 왔다는 점에서, 한 많은 인생을 살아 온 비극의 여인이다. 그런데 하늘처럼 믿고 살아야할 아들이건만, 성기마저 어디론가 훨훨 떠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여간 큰 절망이 아닐 수 없다.

서방이 있나 일가 친척이 있나, 너 하나만 믿고 사는 이년의 팔자에 너조차 밤낮 어디로 간 다고만 하니 난 누굴 믿고 사냐?

 

애써 팔자소관으로 돌려 버리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궁극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맺힌 을 풀어야 한다는 의식이 또한 강렬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성기에게 중질을 시켜서 살을 때우려고도 서둘러 보았던 것이요, 중질에서 못다푼 살을 이번에는 옥화가 그에게 책장사라도 시켜서 풀어보려는 속셈인 것이었다. 성기로서도 불경보다는 암만해도 이야기책에 끌리는 눈치요, 중질보다는 차라리 장사라도 해 보고 싶다는 소청이기도 하다. 그러나 옥화는 꼭 화개장만 보이기로 다짐까지 받은 뒤, 그에게 책전을 내어주기로 했던 것이었다.

 

역마살을 때우려는 계산이 할머니에나 옥화에게 강렬히 작용한 것을 짐작할 수 있고, 한걸음 나아가 성기로 하여금 혼사를 이루어 처자식을 갖게 함으로써 한 곳에 안주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옥화는 체장수 늙은이가 자기의 집에 맡겨 두고 간 그의 딸<계연>이를 성기의 배필로 삼아 혼사를 이루게 하려 한다.

옥화성기계연을 가까운 사이로 만들려 했던 모든 행위가 퍽 계산된 계획 아래 이루어 진 것이니, 어떻게 해서라도 성기를 집에 머룰게 하려는 마음이 강렬했기 때문인 것이다.

이 한을 풀어야 한다는 옥화 마음의 세계는 바로 이러한 전통적인 의식에 바탕을 둔 점에서, 가장 보편적인 공감성을 준다고 보는 것이다.

 

4. 비극적 행려인

 

성기의 방랑은 그가 타고난 비극의 역마운이 작용한 결과라는 의미로 간단히 설명되어질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마지막 성기가 엿모판을 메고 출가하는 것은, 역마살의 인과율의 실현이 아니라 영원으로의 행려인 것이다. 죽음을 건 영원한 삶에 대한 자기 시련을 거친 성기의 출가는 오히려 인간적 인과율을 끊어버린 인간 비원의 실현이다. 그것은 재생의 힘찬 발걸음이다. 성기의 방랑은 혈육을 찾고자 떠나려는 것이 아니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아직도 너, 강원도 쪽으로 가 보고 싶나?"

"………"

성기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장가들어 나랑 같이 살겠냐?"

"………"

"성기는 역시 고개를 돌렸다.

(중략)

아버지를 찾아 강원도 쪽으로 가 볼 생각도 없다. 집에서 장가들어 살림을 할 생각도 없다 하는 아들에게 그러나 옥화는 이제 전과 같이 고지식한 미련을 두는 것도 아니었다.

 

이 대목은 옥화가 아들 성기가 왜 늘 떠나고 싶어 하는지를 알고 싶어 하는 면을 드러낼 뿐 아니라, 동시에 성기로서는 왜 그렇듯 정처없이 가야하는 지에 대해서 말이 없지만, 아버지를 찾는다든가 사랑에 빠졌던 계연을 찾아 떠나는 데 있지 않음을 암시한다. 떠남은 찾음의 원리에서 시작된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움직이고 멀리 떠나는 이미지가 나그네로 나타난다. 성기는 불우한 운명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고자 유랑의 길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성기가 어머니 곁을 떠나 집을 나오는데서부터 독립된 자기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성기의 유랑은 규범에 대한 복종과 반발이라는 이율배반적 모순의 감정에서 한 걸음 다 나아가, 인륜과 본능의 문제에까지 확대 되었다.

 

. 결 론

 

역마는 역마살로 표상되는 당사주(唐四柱)라는 한국인의 깊은 運命觀因緣說形象化한 작품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운명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여 패배를 당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 운명적인 조건 때문에 역마살을 피하려는 인위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얽혀가는 인간 관계를 통해서 현실로 나타나는 숙명적인 한국인의 의식 속에 깊이 잠긴 어둠의 측면이 하나의 질서관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즉 인위적으로 운명을 극복하려는 노력도 천륜에 의하여 좌절된 성기로 하여금 운명에 순종케 함으로써, 죽음에서 再生하는 運命愛로 해석될 수 있다.

작가는 土俗的이고 샤머니즘적인 역마에서 동명왕 설화의 모티브를 형상화시켜 전통적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또 운명에 순종할 수 밖에 없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과 이 함께 깔려 있다.

이것은 1930년대 말의 世代 論爭에서 광복 이후의 純粹文學 是非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추구해온 작품의 세계가 究竟形式을 추구하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 참고 문헌 *****

 

김윤식 : 한국현대문학사 일지사 1992

홍태식 : 한국 현대소설의 이해와 감상 문음사 1993

김동인 외 : 한국 현대 단편소설의 분석과 감상 송정문화사 1992

이광풍 : 김동리의 '역마' 연구 국어국문학 831980

 

 

 

무녀도(巫女圖, 19365, <중앙>) / 김동리(金東里,1913 -1990)

경북 경주 출생. 본명은 시종(始終). 1929년 경신고보를 중퇴하고 귀향하여 문학

작품을 섭렵함. 1934년 시 [백로]<조선일보>에 당선되고 단편 [화랑의 후예]

1935<조선중앙일보>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처음에는 서정주 등과 함께

<시인부락> 동인이었으며 '생명파'라 불리웠다.

그의 작품 경향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인간 구원의 문제를 주제로 순수한

소설을 창작한 것으로 대표된다. 그의 문학적 여정은 3기로 나눌 수 있다. 초기

에는 토속적, 샤머니즘적, 동양적 신비의 세계에서 제재를 선택하여 인간 생명의

허무적인 운명과 신비함을 추구하여 [무녀도], [황토기] 등을 남겼다. 중기에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보다 더 역사 의식과 현실 의식이 강화되면서 참여 의식인 강

한 작품을 창작하여 [귀환장정], [흥남철수], [역마] 등을 발표했다. 후기에는 보

다 근원적인 인간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근대 문명에 대한 차원 높은 비판 의식

을 형상화하여 [등신불], [사반의 십자가] 등을 남겼다.

 

등장인물

모화:무당. 전통적인 무속을 고수하려다 끝내 죽음.

욱이: 모화의 아들. 기독교도. 모화에게 죽음.

낭이:모화의 딸. 귀머거리. 욱이와는 의붓남매 사이.그림을 잘 그려 이 작품의 서

두에 나오는 무녀도를 그렸음.

 

줄거리

 

뒤에 물러 누운 어둑어둑한 산, 앞으로 폭이 널따랗게 흐르는 검은 강물, 산마

루로 들판으로 검은 강물 위로 모두 쏟아져 내릴듯한 파아란 별들, 바야흐로 숨이

고비에 찬 이슥한 밤중이다. 강가 모랫벌엔 쿤 차일을 치고, 차일 속엔 마을 여

인들이 자욱이 앉아 무당의 시나위 가락에 취해 있다. 그녀들의 얼굴 얼굴 들은

분명히 슬픈 흥분과 새벽이 가까와 온 듯한 피곤에 젖어 있다. 무당은 바야흐로

청승에 자지러져 뼈도 살도 없는 혼령으로 화한 듯 가벼이 쾌자자락을 날리며 돌

아간다....

 

우리집에 있는 무녀도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경주읍에서 십여 리 떨어진 집성

촌 마을의 퇴락한 집에 사는 모화는 무녀였다. 그녀는 세상 만물에 귀신이 들어앉

아 있다고 믿었으며, 그녀의 생활은 굿이 그 전부였다. 그녀의 식구는 넷이었는

, 남편은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 해변가로 나가 혼자 해물 장수를 하

고 있었고, 아들 욱이는 무당의 사생아로서 동네에서 배겨나기가 힘겨워, 몇 해

전에 마을을 나가고 없었으므로, 집에는 그녀와 고명딸 낭이의 두 모녀가 앙상히

살아가고 있었다.

낭이는 귀머거리 소녀였다. 그러나 그녀는 대단한 화제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아버지의 끔찍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방에 들어앉아 그림만 그렸

. 한편 모화는 매일 술만 마셨다. 그러나 그녀 역시 낭이를 소중히 했다. 모화는

낭이를 낳을 때의 태동으로 짐작해서 낭이를 용신(龍神- 용왕)의 딸의 화신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몇 해 두고 소식이 없던 욱이가 돌아왔다. 모화

는 기뻐서 안고 울었다.

그러나 이윽고 욱이가 예수교에 귀의했다는 것을 알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 때부터 그녀는 욱이에게 귀신이 붙었다고 아들을 위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

. 한데, 욱이는 욱이대로 어머니에게 마귀가 붙었다고 걱정했으며, 마태복음에

적혀 있듯이 낭이가 귀머거리가 된 것도 그 탓으로 알았다. 그는 하느님께 어머

니와 누이를 구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잘 때도 언재나 성경을 가슴에 품고 잤

. 어떤 날 밤, 욱이는 잠결에 가슴이 허전함을 느꼈다. 깨어보니 성경이 없었

. 때마침 부엌에 불이 밝혀져 있는데, 어머니가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녀는

벌써 성경 첫 장을 불에 태우고 있었다. 그는 부리나케 뛰어 나가 성경을 뺏으려

했다. 그 때 머리 위로 식칼이 날았다. 그녀의 눈에는 욱이가 예수 귀신으로 보

였다. 그는 기어코 세 곳에 칼을 맞고 넘어졌다. 그녀는 그로부터 두문불출하고

아들의 병을 간호했다. 그 사이 이 마을에도 교회가 서고 예수교가 퍼지기 시작

했다. 그리고 교도들은 무속을 비방하며 돌아다녔다. 교회는 욱이의 청으로 목사

가 주선해서 세웠던 것이다. 욱이는 기어코 소생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녀는 예

수 귀신이 욱이를 잡아갔다고 말했으며, 매일 같이 귀신 쫒는 주문을 외었다.

달포가 지났을 때, 그녀는 물에 빠져 죽은 젊은 여인의 혼백을 건지는 굿을 맡

게 되었다. 그녀는 그날따라 어느 때보다 정숙했다. 외아들을 잃은데다가 예수교

도로부터 박해까지 받고 사는 모화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예쁘게 보

였다. 그녀는 신나게 굿을 했다. 그것은 그녀는 이제 이 괴로운 세상을 떠나 용신

에게 귀의할 결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여인의 혼백을 건지

기 위해 여인이 죽은 못 속으로 넋대를 쥐고 하염없이 들어갔다. 그녀는 마침내

꼭지물이 가까운 곳까지 가서는 구슬픈 노래를 불렀다. 봄철에 꽃 피거든 낭이더

러 찾아 달라는 것이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는 기어코 물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

.

모화가 죽은 지 열흘이 지난 어떤 날, 낭이의 아버지는 나귀 한 마리를 몰고 모

화의 집으로 왔다. 그는 낭이를 나귀에 태우고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그들은 곳곳으로 귀한 집을 찾아다니며, 그녀는 무녀의 그림을 그려주고, 아버지

는 낭이에 대한 내력을 애기하고는 댓가를 받으면서 정처없이 또 돌아다녔다.

 

낭이는 잠자코 그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나귀 위에 올라 앉았다. 그들이 떠난

뒤엔 아무도 그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고, 밤이면 그 무성한 잡풀 속에서 모

기들만이 떼를 지어 울었다.

 

해설

'무녀도'는 우리의 전래 토속 신앙인 무속과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 신앙의 충

돌로 인한 모자 간의 대립. 갈등을 다루고 있다. , 기독교로 대표되는 외래 문화

와 무속으로 대표되는 토속 신앙 간의 대립을 기본 축으로 하여 결국은 토속 신

앙이 패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욱이의 죽음은 교회의 설립이라는 미래 제시

적인 죽음이며 상대적으로 모화의 죽음은 외래 신앙인 기독교 사상이 퇴조할 수

밖에 없다는 시대 조류를 나타내는 비극적 죽음이다. 한쪽은 승리의 죽음이요,

쪽은 패배의 죽음이다.

한편 이 작품은 탐미주의적 에로티시즘이 깔려있다. 모화의 장단에 맞추어 저고

리와 치마를 벗고 나체춤을 추는 낭이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는 작가가 샤머니즘

의 세께를 미화하기 위하여 사용한 효과적인 무기로 보여진다.

 

[무녀도]는 원래 <중앙>에 발표된 이래 1947년 판 단편집 {무녀도}에서, 1967

{김동리 대표작 선집}에서, 각각 개작(改作)되었고 1978년 장편 [을화(乙火)]

로 완전 개작되었다. 원작 [무녀도]에서는 욱이는 살인범이며 기독교도가 아니었다.

 

(주제) 외래 문화와 토속 문화의 갈등에 의한 혈육간의 비극

소멸하는 것을 지키려는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

(갈래) 단편 소설. 액자 소설, 본격 소설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도입 액자)과 전지적 작가 시점(내부 이야기)의 혼용

(성격) 무속적(巫俗的), 신비적

 

참고

허웅 외(1975),{국어국문학사전},일지사.에서 줄거리를 전재.

 

 

 

等身佛 / 김동리

[등신불]196111[사상계]101호에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이 작품은[무녀도]와 마찬가지로 토속적이고 종교적 색채가 배어 있는 전통적 서정주의 세계를 보여 준 김동리의 후기 작품 세계를 대표한다.인간의 운명은 추구하는 서정성과 순수 문학의 옹호라는 김동리의 문학관이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의 고뇌와 슬픔을 만적의 소신 공양을 통해 종교적으로 승화되어 있다.[등신불]은 그의 단편 소설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액자 소설형식으로 생생하게 담아 내고 있다.

전체 구조로 보아 내부 이야기에 작품의 무게가 실려 있지만 전후의 ''의 행위와 깨달음에도 상당한 의미를 주고 있다. 외부 이야기는 ''의 생활과 금불각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그렸고,내부 이야기는 이 작품의 핵심 사건인 주인공 만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하게 되고 등신불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일제 말기 학병으로 끌려간 나는 중국의 북경을 거쳐 남경에 주둔해 있다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하여 탈출,불교 학자인 진기수 씨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생면 부지 적국의 옷을 입은 한국인을 믿지 않자,오른손 식지를 깨물어 '원면살생 귀의불은(願免殺生 歸依佛恩)'이라는 혈서를 써 올려 결국 그의 도움으로 정원사라는 절에 머물게 된다. 나는 그것에서 수업을 하는 도중 금불각 속에 있는 결가부좌상의 등신불을 보고 경악과 충격에 빠져 든다.그 등신불은 오뇌와 비원이 서린 모습을 지니고 있어서''가 생각한 거룩하고 운만하고 평화스로운 불상과는 반대이므로 충격을 받은 것이다. 등신불은 옛날 소신 공양으로 성불한 만적이란 스님의 타다 굳어진 몸에 금불을 입힌 특유한 내력의 불상이다.

만적(법명.속명은 기().성은 조씨)은 이복 형제인 '사신'을 독살하려는 어머니의 사악함에 환멸을 느껴 스님이 되었다. 그후 금릉 방면에서 우연히 ''을 만나게 되었는데 ''은 불행히도 문둥병이 들어 있었다. 만적은 그의 목에 염주를 걸어 주고 절로 돌아와 소신 공양을 결심한다. 만적이 몸을 태우던 날 육신이 연기로 화해 갈 때 갑자기 비가 쏟아졌으나,단 위에는 내리지 않았으며,또한 그의 머리 뒤에는 보름달 같은 원광이 씌워져 있었다.이러한 신비가 일어나 3년간이나 새전이 쏟아지게 되며,이 새전으로 타다 남은 그의 몸에 금물을 입혀 등신불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불교적 소재를 취급하고 있지만 불교의 초울적 신앙을 주제로 삼은 것이 아니고,어디까지나 실존적 인간 경험과 그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만적이 자기 몸을 불사르는 의식에는 자신과 배 다른 형제를 죽이려던 어머니의 죄를 사하고,그 죄의식이 가져온 번뇌로부터 자기를 구원하려는 것이다. 동시에 이복 형''이 앓는 문둥병을 비롯한 모든 인간의 숙명적 고통에 대한 절대자의 자비를 구하는 대속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불타는 만적의 머리 위에 나타난 '보름달 같은 원광'은 실존적 인간의 초극적 힘을 상징한다.

또한, 이 소설은 '''만적'과의 대비를 통해서 불교 사상이 보여주는 삶의 번뇌와 한계 상황,그리고 인간 의지를 통한 초극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불교에 귀의한 소승적 의지와 자신의 몸을 불살라 인간적 아픔과 슬픔을 성불의 경지로 승화시킨 만적의 대승적 의지를 통하여 살신 성불의 비장미로 형상화 하고 있다. 이와같이 주인공이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쓴 실존적 경험은 만적이 육신을 불사를 때 느낀 처절한 인간체험과 같은 현실의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러므로 ''가 식지를 깨물어 혈서를 쓴 것과 만적선사의 소신 공양은 개인과 중생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구원의 의미 즉,운명을 극복해 보려는 인간의 몸부림이라는 공통된 의미를 갖는다.

김동리는 인간의 원초적 죄의식과 번뇌,그리고 이에 대한 종교적 구원이라는 주제를 즐겨 다루는 작가이다.{역마}에서는 운명에 순종하므로써 구원을 얻은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인간고뇌의 종교적 승화를 통해 구원을 성취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이 주제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탐구는 장편{사반의 십자가}에서 볼 수 있다.

 

작품 요약

1. 주제:인간고뇌의 종교적 승화.

2. 인물:

 

-작중 화자이며 일제시대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정운사에 머문 대학생.금불각에 안치된 등신불을 보고 감동하여 깨달음을 얻는 정적 인물

만적-1200년 전,소신 공양으로 성불한 정운사 스님.인간의 오뇌와 비원의 화신이며,신념이 확고한 내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중생의 죄업을 짊어지고 소신 공양을 한 동적 인물.

원혜대사-정원사의 주지 스님이며 ''에게 깨달음을 주는 인물.

 

3. 배경:2차세계대전 당시 중국 양자강 북쪽 정운사(공간 배경은 중국 남경에 있는 정원사로 세속 인간이 등신불을 보고 갈등을 겪는 자아의 세계이며 시간 배경은 현재의 시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과거의 시간이 나타나고 다시 대과거로 이동한다.)

 

독서토론

1.이 작품은 이 작가의 단편소설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독특한 구성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그 구성 방식은 무엇인가?

2.이 작품에서 ''의 오른손 식지와 만적의 '소신 공양'과의 차이점과 공통점은 무엇인지 서술하라.

 

 

황토기 / 김동리

줄거리

 

 

황토골에 힘이 장사인 억쇠라는 사내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힘이 세어 전설을 의식한 마을사람들은 그를 두려워 하였다.그러던 어느날,억쇠는 주막에서 득보라는 사내를 알게되고 둘다 남들보다 힘이 센 그들은 금방 친해졌다.그들은 틈만 나면 둘이 붙어 술을 마시고 이유없이 싸움질만 하였다. 득보는 억쇠에게 분이라는 계집을 붙여주면서 데리고 살라 한다. 그러나 분이의 마음은 늘 득보에게 가 있는 것이었다.억쇠는 늙은 어머니와 한 점 혈육 이 없는 것을 생각하여 용모와 행실이 바른 설희라는 여자를 얻어 함께 살게 된다. 설희는 득보도 마음에 두고 있었던 여자 였다. 득보마저 설희에게 마음이 쏠리자 분이는 억쇠의 늙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애를 밴 설희를 죽이고,자고 있던 득보마저 칼로 찌르고 사라진다.다행히 목숨을 건진 득보는 깨어나 분이를 기다리다가,그녀를 찾아 마을을 떠난다.얼마후 득보는 분이는 없이 그녀와의 사이에서 나은딸을 데리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평설

 

 

이 작품은 1937년에 발표된 김동리의 작품으로 <무녀도>와 함께 작가의 초기 작품성향이 잘 나타나 있다.

이소설은 황토골에 전해 내려오는 상룡,혹은 쌍룡과 절맥설의 전설이 먼저 제시되고나서,얘기가 시작된다. 두 마리의 영이 등천하지 못하고 싸우다가 피를 흘려 황토골이 생겼다는 전설을 통해 억쇠와 득보란 두 장사를 등장시키고,또 설희와 분이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은,비슷한 시기 작가의 작품인 <무녀도>처럼 이소설도 신비적이고 토속적이며 샤마니즘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나타나있다.

마을의 전설이 이미 인물의 운명을 정해놓고 있다는 점,두 마리의 용이 끝없이 무의미한 싸움을 벌인 것처럼 억쇠와 득보도 틈만 나면 술을 마시고 의미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점들을 벼면 이미 합리적인 세계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그런 세계를 초월한 샤마니즘적인 세계의 본질적에 가깝게 접근해 있다.

 

 

분이는 질투와 복수심 때문에 설희를 죽이고 득보까지 죽이려다 큰 상처만 입히고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을 때도 억쇠와 득보는 이미 현실적으로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없는데 그들은 두 마리의 영이 여의주를 잃은 후에도 그랬듯이 무의미한 싸움들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아 쉽게 이 작품 속에서 운명론적인 신비주의적 요소를 파악할수있다.

또 한편으로 이 작품에 나오는 절맥설과 같은 전설이 지닌 숨은 뜻을 분석해 보면 식민지 시대의 비극적인 민족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유추해 볼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황토골은 우리 조국을 상징하며,힘이 있어도 쓸 수 없는 억쇠의경우에는 일제의 압박을 받고 있는 민족의 울분과 한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

 

 

1

 

황 진사(黃進士)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해 가을이었다.

아침을 먹고 등산을 할 양으로 신발을 신노라니 윗방에서 숙부님이 부르셨다.

"오늘 네, 날 따라가 볼래?"

숙부님은 방문을 열고 툇마루로 나오시며 이렇게 물었다.

"어디요?"

"저 지리산에서 도인이 나와 사주와 관상을 보는데 아주 재미나단다."

"싫어요. 숙부님께서나 가슈."

나는 단번에 거절하였다.

", 싫긴?"

"난 등산할 참인데……."

"건두 좋긴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한번 따라와 봐……. 무슨 사주 관상뵈는 게 재미나단 말이 아니라, 그런 데서도 배울 게 있으니……. 더구나 거기 모여드는 인물들이란 그대로 조선의 심벌들이야.󰡓

"조선의 심벌요?"

나는 반쯤 웃는 얼굴로 이렇게 물은즉, 숙부님도 따라 웃으며,

"그렇지, 심벌이지.󰡓

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의 심벌'이란 말에 마음이 솔깃해진 나는 등산하려던 신발을 끄르기 시작하였다.

파고다 공원에서 뒷문으로 빠지면 서울 중앙 지점치고는 의외로 번거롭지도 않은 넓은 거리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있고, 바로 그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목에 '중앙 여관'이란 간판을 걸고 동남쪽으로 대문이 난 여관이 있고, 이 여관에 소란한 차마(車馬) 소리와, 사랑의 아우성과, 입김과 먼지와, 기계의 비명이 주야로 쉬지 않는 도시의 심장 속에 ――접신(接神), 통령(通靈)의 간판을 내걸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도인'이 있다.

방 안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술이 묻고 때가 전 옷을 입고, 눈에 핏발을 세우고, 볼에 살이 빠져 광대뼈들이 불거진 불우한 정객, 불평 지사들이며 문학가, 철학가, 실업가, 저널리스트, 은행원, 회사원 들이 무수히 출입하고, 금광쟁이, 기미꾼 들이 방구석에 뒹굴고 있었다.

나는 무슨 아편굴 속에나 들어온 것처럼 기분이 불쾌했다. 내가 얼굴을 붉히며 숙부님을 향해 얼른 다녀 나가자는 눈짓을 했을 때, 그러나 숙부님은 나의 눈짓에 응한다느니보다는 분명히 묵살을 하고 나를 좌중에 소개를 시키셨다. 바로 그 때,

", 이분이 김 선생 조카 되시는 분이구랴."

하고, 거무추레한 두루마기에 얼굴이 누르퉁퉁한, 나이 한 육십 가량 된 영감 하나가 방구석에서 육효를 뽑다 말고 얼굴을 돌리며 어눌한 음성으로 이렇게 물었다. 그는 하도 살아갈 지모(智謀)가 나지 않아 육효를 뽑아 보았노라 하면서, 반가운 듯이 삼촌 곁으로 다가앉았다. 그의 까닭 없이 벗겨진 이마 밑의 두눈엔 불그스름한 핏물 같은 것이 돌고 있었다. 내가 자리를 고치고 머리를 굽히려니까,

", 괜찮우, , 거 자리에 앉으우."

하고 손을 내저으며,

"나 황일재(黃逸齋). 이 와, 완장 선생과는 참 마, 막역지간이우."

하는 것이었다.

좌중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집중된 듯하였다. 바로 그 때였다. 나와 바로 마주 앉은 접신, 통령의 도인은 그 손톱 자국과도 같이 생긴 조그마한 새빨간 눈으로 몇 번 나의 얼굴을 홀낏홀낏 보고 나더니,

"부모와는 일찍이 이별할 상이야."

불쑥 이렇게 외쳤다.

"형제도 많지 않고, 초년은 퍽 고독해야."

하고, 또 인당이 명료하고 미목이 수려하니 학문에 이름이 있으리라 하고, 준두와 관골이 방정해서 중정에 왕운이 있으리라 하고, 끝으로 비록 부모가 없더라도 부모에 못지않은 삼촌이 계셔서 나의 입신 출세에 큰 도움이 되리라 하였다.

나는 어쩐지 쑥스럽고 거북하여져서 얼굴을 붉히며 그만 자리를 일어나 버렸다. 내 뒤를 이어 숙부님이 일어나시고, 숙부님을 따라 황일재 황 진사가 밖으로 나왔다.

파고다 공원 뒤에서 황 진사는 때묻은 헝겊 조각 같은 모자를 벗어 쥐고 그저 몇 번이나 절을 하고 나서 공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디루 가우?"

숙부님이 물으신즉,

", 여기 공원에서 친구 좀 만나구……."

했다.

해는 오정이 가까웠다. 구름 한 점 없이 갠 하늘엔 북한산이 멀리 솟아 있었다. 안타까움에 내 몸은 봄날같이 피곤하였다.

 

 

나뭇잎이 다 지고 그 해 가을도 깊어졌을 때다. 삼촌은 금광에 분주하시느라고 외처에 계시고 없는 어느 날 아침, 막 밥상을 받고 있으려니까, 문 밖에서 '에헴', '에헴' 연달아 헛기침 소기가 나더니,

"일 오너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밥 숟가락을 놓고 문 밖으로 나가 보니, 어느 날 관상소에서 육효를 뽑고 있던 그 황 진사였다. 이 날은 처음부터 그'조선의 심벌'이란 생각을 머릿속에 가지지 않은 탓인지, 처음 보았을 때처럼 그렇게 불쾌하거나 우울하지도 않고, 그보다도 다시 보게 된 것이 나는 오히려 반갑기도 하였다.

"웬일로 이 치운 아침에 이렇게……."

인사를 한즉,

", 괜찮우. 거 완장 어른 안 계수?"

하는 소리는 전날보도 더 어눌하였다. 그 푸르죽죽하고 거무스레한 고약 때 오른 당목 두루마기 깃 밖으로 누런 털실이 내다뵈는 것으로 보면, 전날보다 재킷 한 벌은 더 입은 모양인데도 그렇게 몹시 추운 기색이었다.

", 숙부님 아침 출타하셨어요."

한즉,

"어디 출타하신 곳 모루? 예서 얼마나 머, 멀리 나가셨슈?"

"."

"언제쯤 도, 돌아오실 예, 예정……."

"글쎄올시다, 아마 수일 후라야……."

한즉, 갑자기 그는 실망한 듯이,

"아아, ."

하는 소리가 저 목구멍 속에서 육중한 신음과도 같이 들려 왔다.

"어쩐 일로 오셨다가……. 춘데 잠깐 들오시죠."

한즉, 그는 두루마기 속에 찌르고 있던 손을 빼어 모자를 쥐려다 말고 한참 동안 무엇을 망설이며 내 눈치를 보곤 하더니, 모자를 잡으려던 손으로 콧물을 닦으며 왼편 손은 사뭇 두루마기 속에서 무엇을 더듬어 찾고 있었다.

"이거 대, , 댁에 잘 간수해 두."

하며 종이 조각에 싼 것을 주는데, 받아서 보니 이건 흙에다 겻가루를 심은 것 같이 보였다.

"……?"

내가 잠자코 의아한 낯빛으로 그를 쳐다보려니까, 그는 어느덧 오연(傲然)한 태도를 가지며 위엄 있는 음성으로,

", 쇠똥 위에 개똥 눈 겐데 아주 며, , 명약이유."

한다. 나는 그의 말뜻을 바로 이해할 수 없어 어리둥절해 있으려니까,

"허어, 어떻게 귀중한 약인데 그랴!"

하며, 그 물이 도는 두 눈에 독기를 띠고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민망해서

"대개 어떤 병에 쓰는 거죠?"

하고 물은즉,

", 거야 만병에 좋은걸, ."

하고 나를 흘겨보고 나서,

"거 어떻게 소중한 약이라구……. 필요할 때는 대, 대갓집에서두 못 구해서들 쩔쩔매는 건데, 괘니……."

그는 목을 내두르며 무척 억울한 듯한 시늉을 하였다. 나는 왜 그가 이렇게 공연히 분개하고 억울해하는지를 알 수 없어, 한순간 내 자신을 좀 반성해 보고 있으려니까, 그도 실쭉해서 잠자코 있더니, 갑자기

"괘애니 모르고들 그랴."

또 한 번 고함을 질렀다.

내가 막 아침 밥상을 받았다 두고 나간 것을 언짢게 생각하고 몇 번이나 힐끔힐끔 밖을 내다보시고는 하던 숙모님이, 기다리다 못해

", 무얼 밖에서 그러니?"

하고, 어지간하거든 손님을 모시고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이 '밖에서'란 말에 힘을 주어 주의를 시킨다. 바로 그 때였다.

", 아침밥 자시고 남았거든 좀……."

하며, 입가에 비굴한 웃음을 띠고 고개질을 하는 양은 조금 전에 흙가루를 내놓고 호령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나는 그를 방에 안내한 뒤, 나의 점심밥을 차려 내오게 하였더니, 그는 밥상을 받으며 진정 만족한 얼굴로,

"이거 미안하게 됐소구랴."

하였다.

그는 밥을 한입에 삼킬 듯이 부리나케 퍼먹고 찌개 그릇을 긁고 하더니, 숟가락을 놓기가 바쁘게 곧 모자를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번이나 절을 하곤 했으나, 아까 하던 약말은 아주 잊어버린 듯이 다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 후, 사흘째 되던 날 아침에 또 황 진사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그의 친구라면서, 그보다 키는 더 크고 흰 두루마기는 입었으되 그에 지지 않게 눈과 코와 입이 실룩거리는 위인이었다. 이 흰 두루마기 친구는 어깨에 먼지투성이가된 자그마한 책상 하나를 메고 왔다.

황 진사는

"이거, 댁에 사 두."

하고 거의 명령하듯이 말했다.

"글쎄올시다, 별루……."

"아아이, 값이 아주 염하니 염려 말구 사 두."

"그래두 별루 소용이 없는걸……."

"아아이, 값이 아주 염하대두 그래."

"……."

", 오십 전 인 주."

황 진사는 그 누르퉁퉁하고 때가 묻은 손바닥을 내 앞에 펴 보였다.

"글쎄, , 소용이……."

"그럼 제에길, 이십 전만 내구 맡아 두."

"……."

"것두 싫우?"

"……."

"그럼 꼭 십 전만 빌려 주."

황 진사는 어느덧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애걸을 하였다.

"나 그 날, 댁에서 그렇게 포식한 이래 여태 굶었수다. 여북 시장해서 이 친구를 찾아갔겠수? 아 그랬더니, 이 친구도 사정이 딱했던지 사무 보는 이 책상을 내주는구랴."

그는 손으로 콧물을 닦아 가며 한참 신이 나서 떠들어 대었다. 그의 친구란 사람은 연방 입을 실룩거리며 외면을 하고 서 있었다.

한 오 분 뒤, 내가 안에 들어가 돈 이십 전을 주선해 나와 그들에게 주었을 때, 그들 두 사람은 무수히 절을 하고 나서 책상을 도로 메고 가 버렸다.

 

 

길바닥이 얼어붙고 먼산에 눈이 치고 그 해는 이른 겨울부터 몹시 추웠다. 그 동안 숙부님은 몇 번이나 집에 다녀가시고 관상소 출입도 더러 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황 진사의 얼굴은 그 뒤로 보이지 않았다. 다만, 삼촌을 통해서 그의 시골이 충청도 어디란 것과, 그의 문벌이 놀라운 양반이란 것과, 그의 조상에는 정승 판서 따위가 많이 났다는 것과, 그 자신도 현재 진사 구실을 한다는 것과, 그의 머릿속은 자기 가벌에 대한 자존심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가지 우스운 것은 그가 곧장 진사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처음 관상소에서 어느 장난꾼이 농담삼아 그에게 서전과 춘추를 외게 하여 급제를 주고 진사라 부르기 시작한 것인데, 그 후로 만나는 사람마다 반조롱으로 '황 진사', '황 진사' 부르게 되니, 그러나 '황 진사' 자신은 조금도 어색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럴싸하게 여겨, 이즘 와서는 아주 뽐내고 진사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몹시 추운 날이었다. 아궁에 불을 넣고 방구석에 숯불을 피우고 나는 온종일 책상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낮이 짐짓했을 때다. 밖에서

"일 오너라 ----."

하는 소리가 마치 '사람 살리우' 하는 소리같이 바람결에 싸여 들어왔다. 나가 보니 황 진사가 연방 손으로 콧물을 닦고 서 있는 것이다. 나는 대체 얼어 죽지나 않았나 하고 궁금해하던 차라, 이렇게 다시 보게 된 것이 진정 반가웠다.

나는 곧 그를 나의 방에 안내한 뒤,

"그런데 그 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한즉,

"거야 친구 집에서 지냈지요, . 흐흐……."

하여, 재미난 듯이 웃었다.

"아 참, 완장 선생은 여태 안 왔시우?"

"수차 다녀가셨어요."

", 그렁 거루 난 여태 한 번두 못 뵈었으니 이거 죄송해서, 흐흐……."

그는 숯불을 안고 앉아 또 히히거리고 웃었다.

흰떡을 사다 숯불에 구워서 그에게 대접을 하고, 나는 아까 하다 둔 일을 마저 해치울 양으로 잠깐 책상에 앉아 있으려니까, 그는 언 것, 구운 것도 가리지 않고 한참 부지런히 집어먹더니, 그 동안 흥이 났는지 아주 목청을 뽑아서,

"관관저구(關關雎鳩)는 재하지주(在河之洲)로다. 요조숙녀(窈窕琡女)는 군자호구(君子好逑)로다."

하는 대문을 외곤 하였다.

나는 그 동안 책상에 앉아 있느라고 모른 체하고 있으니까,

", 성인께서도 실수가 있단 말야!"

그는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 공자님께서 서전에 음군을 두셨거던!"

그는 무슨 큰 문제나 발견한 듯이 나 있는 쪽을 옆눈으로 흘겨보며 마구 기를 뽑아 이렇게 외쳤다.

그래도 내가 모른 체하고 있으려니까 그는 화로 곁에서 일어서더니, 두루마기 자락을 뒤로 젖히고 저고리 섶을 위로 쳐들고 손을 넣어 무엇을 꺼내는 시늉을 하였다. 나는 속으로 옷의 이를 잡아내어 숯불에 넣으려는 겐가 하고 있는데, 그는 또 한 번 나 있는 쪽을 흘겨보고 나서 배를 두르고 있던 때묻은 전대 하나를 꺼내었다. 전대 속에서는 네 구가 다 이지러지고 종이 빛까지 우중충하게 묵은 모필 새책 한 권과, 백지로 싸서 노끈으로 친친 감아 맨 솔잎 한줌과, 휴지 조각 몇 장이 나왔다.

", 무슨 책이유?"

내가 이렇게 물은즉,

", 주역책이지 그랴."

하고 된소리를 질렀다. 과연 그 이지러진 네 귀미다 넓적넓적한 괘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주역책임에 틀림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주역책은 왜 하필 전대에 넣어서 두르고 다니느냐고 물은즉,

", 공자님께서도 역은 삼천독을 하셨다는데 그랴."

하고, 된소리를 질러 놓고 나서, 다시 조용히 음성을 낮추어,

", 여북해 지략의 조종이오? 조화의 근본 아니요?"

하였다. 나는 처음 관상소에서 그를 보았을 때부터 "하도 지모가 나지 않아 육효를 뽑아 보았노라." 한 것을 들은 일이 있어서, 그가 평소 얼마나 이 '지략''조화'를 부려 보고 싶어하는 위인인가를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이와 같이 언제나 몸에 지닌 솔잎 한 줌과 네 귀 모지라진 주역 속에서 우러난 음양 오행의 지모 조화가 겨우 '쇠똥 위에 개똥 눈' 흙가루 약과, 친구의 책상을 들리고 다니는 것쯤인가 하고 생각할 때, 나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저녁때가 되어 그는 전대를 다시 배어 두르고 돌아갔다. 종종 오라고 한즉, 매양 신세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하며 절을 몇 번이나 하였다.

그 해 겨울, 그는 내가 성이 가시도록 자주 나를, 아니 내 삼촌을 찾아왔다. 그는 언제나 나를 볼 때마다 오랫동안 삼촌께 못 뵈어 죄송하다고 하였다.

그는 나에게 한시를 지어 달라면서 사오 차나 운자를 가지고 왔다. 어디 쓰냐고 물으면 친구의 환갑 잔치에 대노라고 한다. 친구가 누구냐고 물으면, 이 참봉, 윤 승지, 무슨 참판, 어디 남작 하고 모조리 서울서도 유수한 대가와 부자들의 이름만 꼽지만, 거리에서 그가 어울려 다니는 것을 보나 가끔 친구라고 데리고 오는 것을 보면, 그의 말과는 딴판으로 황 진사 자신보다 별로 유여한 축들도 아니었다.

좋은 규수가 있으니 장가를 들지 않겠느냐고 그는 여러 차례 나를 졸랐다. '좋은 규수'가 어딨느냐고 물으면, 단번에 친구의 딸이라 하고, 어떤 친구냐고하면 무슨 승지, 무슨 자작 하는 예의 대갓집 따위를 꼽았다. 색시 얼굴이 어떻게 생겼더냐고 하면 매양 자기의 누르퉁퉁하게 부은 얼굴을 가리키며 이렇게 아주 유복스럽게 생겼다고 한다. 내가 웃으며, 색시가 일재 선생 같아서야 좀 재미 적다고 하면,

", 일등 규수라는데 그랴."

하고 화를 내었다.

"그렇지만 너무 육중해서야."

하면,

", 거기 식록이 들었는 걸 그랴. , 여북해 일등 규수라는데 그래도 못 믿어서 그랴."

하고 기를 쓰곤 하였다.

 

 

눈에 고인 물이 눈물이라면 황 진사의 두 눈에는 언제나 눈물이 있었다. 그는 가끔 나에게 그가 혈육 없는 것을 한탄하였다. '친구'집 회갑 잔치 같은 데서 떡국 그릇이나 배불리 얻어먹고 술기라도 얼근해서 돌아오는 날은

", 명가 종손으로 혈육 한 점이 없다니, 천도가 무심하지 그랴."

대개 이런 말을 했다.

"혼담은 사방 있지만, 어디 천량이 있어야지."

이런 말도 하였다.

언젠가 숙모님이 그의 맘에 제일 드는 규수의 나이와 이름을 물었더니, 하나는 열아홉 살이고 하나는 갓 스물인데, 열아홉짜리는 성이 오씨고, 갓 스물짜리는 윤씨라 하였다.

"열아홉 살?"

듣던 사람이 놀라니,

", 자식을 봐야지유."

하였다.

숙모님이

"좀 나이 짐짓해두 넉넉할걸 뭐."

하니,

"그야 그렇지유. 허지만, 암만하면 젊은 규수를 당할라고."

하는 것이, 아무래도 그 열아홉 살인가 갓 스물인가 난 규수에게 마음이 가는 모양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며칠 뒤, 숙모님이 황 진사의 중매를 들게 되었다. 그 즈음 황 진사는 거의 날마다 우리 집에 들르게 되어 그의 딱한 형평을 은근히 걱정하고 있던 숙모님은, 그 때 마침 집에 돌아와 계시던 숙부님과 의논하고, 그를 건넛집 젊은 과부에게 장가를 들게 해 주자고 하였다. 나는 물론 그리 되기를 원했다. 숙부님도 웃는 얼굴로,

"몰라, 허기야 저도 과부지만 그렇게 늙은 사람과 잘 살라구 할는지."

하셨다. 그러나 숙모님이

"젊고 예쁜 홀아비가 어딨어요? 딸린 자식 없구 한 것만 해두……."

하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듣고 나도 적이 안심이 되었다.

그 날 저녁때 황 진사가 온 것을 보고, 숙부님이

"일재, 여기 젊고 돈 있는 색시가 있는데 장가 안 들라우?"

하고 물어본즉,

", 들면야 좋지만 선생도 아시다시피 천량이 있어야지."

하는 그의 얼굴에는 완연히 희색이 넘쳤다.

그의 얼굴에 희색이 넘침을 보신 숙모님은, 돈이 없어도 장가를 들 수 있다는 것과 장가만 들게 되면 깨끗한 의복에 좋은 음식도 먹을 수 있으리라 하는 것을 일러 주신즉,

", 그럼야 여북 좋갔수? 규수 나이 몇 살이고……? 집안도 이름 있구……?"

그는 연방 입이 벌어져 침을 흘리며 두 눈에 난데없는 광채를 띠고 숙모님께로 대드는 판이었다.

"과부래야 이름이 아깝지, . 이제 나이 삼십도 다 못 될걸……."

숙모님도 신명이 나는 모양으로 이렇게 자랑삼아 말한즉, 황 진사는 갑자기 낯빛이 확 변하며,

"아 규, 규수가, 시방 말씀한 그 규수가 과, , 과부란 말씀유?"

이렇게 물었다.

"왜 그류?"

한순간, 침묵이 흘렀다. 황 진사의 닫힌 입 가장자리에 미미한 경련이 일어나며, 힘없이 두 무르팍 위에 놓인 그의 두 손은 불불불 떨리고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 소리가 '뚝딱뚝딱'하고 들리었다. 그는 조용히 고개질부터 좌우로 돌렸다.

"당찮은 말씀유……. , , 과부라니 당치 않은 말씀을……."

그는 곧 호령이라도 내릴 듯이 누렇게 부은 두 볼이 꿈적꿈적하며 노기 띤 눈을 부라리곤 하더니, 엄숙한 목소리로

"황후암(黃厚庵) 육대 종손이유."

하고 다시,

"황후암 육대 손이 그래 남의 가문에 출가했던 여자한테 장갈 들다니 당하기나 한 소리요……? 선생도 너무나 과도한 말씀이유."

그는 분함을 누르느라고 목소리에 강한 굴곡이 울리었고, 낯에는 비통한 오뇌의 경련이 일어나 있었다.

"내일이래두 그럼 어린 규수 골라 혼인하시지요, ……."

하고, 숙모님도 무안해서 일어났다.

숙부님도 딱했던지,

"일재, 일재, 염려 말우. 농담했수. 그럼 일재 되구야 한번 타문에 출가했던 사람과 혼인을 하다니 될 말이유? 내가 어디 황후암을 모루, 황익당을 모루?"

한즉, 그 때야 그도

", 아무렴 그랴 그렇지, 거 어디라구, 함부루 어림없이들……. 황후암이 누구며 황익당이 누군데 그랴?

얼굴을 펴고 이렇게 높은 소리로 외쳤다.

 

 

해가 바뀌고 새해가 되었다.

숙부님은 사뭇 금광에 계시느라고 새해맞이까지도 숙모님과 나와 단둘이서 쓸쓸히 하게 되었다. 섣달 중순 즈음에서 한 보름 동안은 일금 얼굴을 뵈지 않던 황 진사가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대문 밖에서,

"일 오너라."

하고, 언제보다도 호기 있게 불렀다. 그 고약 때가 찌든 두루마기를 빨아 입은 위에 어이한 색안경까지 시커먼 걸로 하나 쓰고는, 숙부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러 왔노라고 하였다. 숙부님이 안 계신다고 하니, 그러면 숙모님이나 뵙고 가겠다고 하였다.

숙모님은 마침 있는 음식에 반갑게 구시며, 떡과 술상을 차려 내주셨다. 그는 몇 번이나 완장 선생을 못 뵈어 죄송스럽다고 유감의 뜻을 표하고는, 술을 몇 잔을 들이켜고 나더니,

"일배 일배 부일배로 우리 군자 사람끼리 설 쇰을 이렇게 해야지."

홍취에 못 배기겠다는 듯이 손으로 무르팍을 치곤 하였다.

숙모님이

"새해에는 장……."

하다가 말끝을 움츠러들여 버리자, 그는 그 말끝을 잡아서,

"금년 신운은 청룡이 농주랬지만, 아 천량이 생겨야 장갈 들지."

하였다.

이튿날도 찾아왔다. 사흘째도 왔다. 이리하여 정월 한 달 동안을 거의 매일같이 숙부님께 새해 인사를 드려야 할 것이라면서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결국 숙부님께 새해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말았다.

그 뒤 한철 동안을 그는 아주 우리 집에 발길을 끊고 나타나지 않았다. 검은 둥치에 새움이 트고 버들가지에 물기가 흐르는 봄 한철을 나는 궁금한 가운데 보냈었다.

봄도 지나 여름이 되었다. 새는 녹음 속에 늙고, 물은 산골을 울리며 흘렀다.

그 때 돌연히 숙부님이 어떤 사건으로 피검(被檢)이 되자, 나는 시골 어느 절간에 가 지내려던 피서 계획을 포기하고, 괴로운 여름 한철을 서울서 나게 되었다. 물론, 숙부님의 사건이란 건 당시 나도 잘 몰랐는데, 세상에서 들리는 말로는 만주에서 발달된 '대종교 사건'의 연루라는 것으로, 숙부님 검거, 금광 채굴 중지, 가택 수색,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당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어느 날은 서대문밖에 숙부님을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에 광화문통을 지나오려니까,

", 이건 노상 해후로구랴!"

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 보니, 연록색 인조견 조끼에 검은 유리 안경을 쓴 황 진사가 빨아 말린 두루마기를 왼쪽 팔에 걸고, 해 묵힌 누렁 맥고모는 뒤통수에 잦혀 쓰고, 그 벗겨진 알이마를 햇살에 번쩍거리며 총독부 쪽에서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 일재 선생 오래간만이올시다."

하고 내가 인사를 한즉,

"댁에서들 모두 태평하시구, 완장 선생께도 소식 자주 듣고……. , 이건 참 노상 해후로구랴!"

또 한 번 감탄하고 나더니,

"이리 잠깐 오. 날 좀 보."

하고, 그는 나를 한쪽 구석에 불러 놓고, 지극히 중대한 사실을 발견했노라고 한다. 나는 사정이 전과 다른 형편에 있던 터이라, 혹시나 이런 데서 무슨 자세한 내용이나 알게 되나 하여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긴장한 낯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것인데, 그는

", 내 조상께서는 모르고 지낸 윗대 조상을 근일에 와서 상고했구랴."

이런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나는 너무 어이없어 어리둥절해 있노라니,

"왜 그루? 어디 편찮우?"

한다. 괜찮으니 얼른 마저 이야기하라고 하니,

", 이럴 수가……. , 내 조상이 대체 신라적 화랑이구랴!"

하고 혼자 감개해서 못 견디는 모양이었다. 그건 또 이떻게 알아 냈느냐고 한즉, 근일에 여려 가지 서적을 상고하던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라 하였다.

황 진사를 광화문통에서 만난 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숙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다가 총독부 앞에서 전차를 내려 필운동으로 들어 가노라니'모루히네' 환자 치료소 옆에서 조금하면 못 보고 지나칠 뻔하다가 그를 보게 되었다.

머리가 더부룩한 거지 아이 몇 놈과, 아편 중독자 몇과 그밖에 중풍쟁이, 앉은뱅이, 수족 병신들이 몇 둘러싼 가운데에 한 두어 뼘 길이쯤 되는 무슨 과자 상자를 거꾸로 엎어 놓고, 그 위에 삐쩍 마른 두꺼비 한 마리와, 그 옆의 똥그란 양철통이 흙빛 연고약을 넣어 두고 약 쓰는 법을 설명하는 위인이 있다.

"두꺼비기름, 두꺼비기름, 에헴, 두꺼비기름이올시다. 옻 오른 데도 쓰고, 등창, 둔창, 화상, 동상, 충치, 풍치, 이 앓은 데도 쓰고, 어린애 귀젓 앓은 데, 머리가 자꾸 헐어 '하개 아다마' 되랴는 데, 남녀노소, 어른 애, 계집 사내 할 것 없이, 서울내기 시굴띠기 물을 것 없이, 거저 누구든지 헌 데는 독물을 빼고, 벌레가 먹는 데는 벌레를 내고, , 깊이깊이 감춰 두면 반드시 한 번씩은 찾게 되는 약, 첩첩이 싸서 깊이깊이 넣어 두면 언제든지 한 번은 보배가 되는 약! 자아, 두꺼비기름이올시다. 두꺼비 코에서 짠 두꺼비 기름. , 그러면 이 두꺼비가 얼마나 무서운 신효가 있는가를 여러분의 두 눈 앞에 보여 드릴 터이니까 단 단히 보시오."

그는 약물에다 흙빛 고약을 찍어 넣어서 저으며,

"자아, 단단히 보이오. 우리 몸에 있는 썩은 피가 두꺼비 코끝만 들어가면 그만 이렇게 홍로일점실, 봄철의 눈과 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하고, 약물 접시를 들어 여러 사람 앞에 한 번 내두르고 나서 기침을 한 번 새로 하더니,

"여러분, 여기 계시는 이분은 우리 조선에서 유명한 선생이올시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두 달 전부터 충치를 앓으셔서 병석에 누워 계시다가 이 약으로 말이암아 어저께 벌레를 내고 오늘부터 이렇게 이 곳까지 나와 주시게 되었습니다."

하고, 궐자가 손으로 가리키는 바로 그 곁에는 전날에 보던 그 검정색 안경을 쓴 우리 황 진사가 점잖게 먼산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궐자는 다시 말을 이어,

"선생께서는 또 이 방면에 대한 연구가 대단히 깊으실 뿐 아니라, 곰의 쓸개, 오리 혀, 지렁이 오줌, 쥐의 똥, 고양이 간 같은 걸로 훌륭한 약을 지어서 일만 가지 병마를 퇴치시킬 수도 있는, 말하자면 이인과 같은 능력을 가지신 어른이올시다!"

한 즈음에 순사가 왔다. 에워싸고 있던 거지, 아편쟁이, 수족 병신들은 각기 제구석을 찾아 헤어졌다.

이 꼴을 보신 숙모님은 나에게 눈짓을 하시면 앞서 가셨다. 나도 숙모님 뒤를 쫓아 한참 오다 돌아본즉, 아까 연설을 하던 작자는 빈 과자 상자에 마른 두꺼비와 고약통을 담아 가슴에 안고, 황 진사는 점잖게 두 손을 두루마기 옆구리에 찌른 채 순사를 따라 건너편 파출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