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역사를 배우는가?
1. 역사란 무엇인가 ?
○ 개념
① 서양
a. 영어 history, 불어 histoire, 이태리어 Storia
→ 희랍어 - historia가 어원(“탐구에서 얻어진 지식”)
제일 먼저 지금의 ‘역사’의 뜻으로 사용 - Herodotus 페르시아전쟁사
Thucydides 펠로폰네소스전쟁사
이들은 현재적 관심에서 과거의 사실을 탐구.
헤로도투스의 경우 페르샤인들과 희랍인들 사이에서, 투키디데스의 경우 펠로폰네소스인들과 아테네인들 사이에서 각각 일어난 전쟁의 역사적 사실만을 단순하게 그리고 단편적으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사실과 사실 사이의 연관성을 그 전후관계에서 탐구하고 그 의미를 부여하는 동시에 그 관련성은 또한 그들 두 史家가 살고 있던 당시의 현재적인 문제와 연결시킴.
그렇지만, 이들은 사실의 판단에 냉장하고 불편부당하며 객관적이었음.
→ 이들 두 사가는 다 함께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놓고 헤로도투스는 자신의 조국(할리카르나소스)도 아닌 아테네 민주제의 승리를, 투키디데스 또한 자신의 조국(아테네)이 아닌 적대국의 과두제의 승리를 각각 기술하였다는 게 주목됨.
⇒ 2천년 전의 헤로도투스와 투키디데스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된 ‘히스토리아’의 개념이란, 페르샤 전쟁이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객관적인 사실 또는 존재를 놓고 이에 그들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것
(cf. E.H.Carr -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의 기록”)
b. Geschichte(독일어. ‘발생한다’ ‘일어난다’의 의미를 가진 geschechen이라는 동사의 과거분사가 명사화한 것
→ ‘일어난 일’ 또는 ‘발생한 사건’을 의미하고 있는 동시에 ‘그 같은 일이나 사건에 관한 지식과 설명’이라는 뜻도 내포.
⇒ ‘사실의 발견’과 그것에 대한 ‘인과론적인 설명’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가짐.
<소결론>
‘역사’란 개념은 단순히 ‘과거’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또는 ‘기록’이라는 뜻도 있다. ‘과거’는 고도의 사유능력을 가진 학자들이 과학적인 방법론을 구사하여 재구성해야만 우리 앞에 어떤 실체로서 비로소 나타난다. 이와 같이 역사가에 의해서 해석되고 걸러진 과거(역사적 사실 : historical facts)가 바로 엄밀한 의미의 ‘역사’이다.
이러한 작업 과정에는 반드시 역사가의 현재적 주관성이 개입되는데, 이를 역사관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주관성은 또한 엄밀한 사실에 근거를 두고 남들로부터 객관적 타당성을 인정받지 않으면 안된다.
② 동양(중국)
‘史’ : 서양의 <히스토리아>나 <게쉬히테>가 갖고 있는 이중의 의미(과거의 사실, 역사서)는 물론, ‘기록자’ 또는 ‘역사가’(史官)의 뜻도 있음.
後漢代의 許愼의 說文解字(史部)
“史 記事者也 從手持中 中 正也”(史는 事를 기록하는 자이다. 손에 中을 쥐는데, 中은 곧 正이다)
→ a. ‘史’ 자는 ‘手’와 ‘中’을 합친 것. 中을 正이라고 한 것은 ‘公平’의 뜻으로 역사 기록자는 공평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종래의 일반적 해석)
b. ‘正’을 官府의 ‘算’을 넣는 그릇이라고 함(算-고대에 제후가 祭禮시에 여러 신하와 射術의 大會를 행하는 大射禮에 있어서 弓射의 적중 수를 계산하기 위한 대나무개비). 즉 史는 본래 제후의 측근에서 제례시의 궁사의 적중 수를 기록하는 자라는 뜻에서 비롯한 것. 따라서 史는 지배자의 측근에 있는 한 관직이었으며, 본래 ‘史官’을 뜻함.(청나라 고증학자들의 해석)
중국에서 ‘歷史’란 낱말이 처음 사용되게 된 것은 明末의 袁黃이 편찬한 歷史綱鑑補에서임.
중국의 역사가들(사관)이 역사를 기술하는 사상 - 天의 사상
→ 그들에 있어서 천은 만물의 생성과 존재의 근원이며, 그들의 생성과 존재의 여부를 결정하는 至高의 권위였다.
그 천은 아들 天子(國王)를 천하의 지상세계에 보내 이를 통치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에 지상의 천자들은 先天子(先王)의 모범을 따라야 했고 이것이 곧 천의 의지를 따르는 것이었다.
周禮는 바로 천의 의지를 받아 선천자들이 제정한 것이기에 천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생활규범. 유가(공,맹)에 의해서 강조된 禮는 천의 명령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 이러한 天命 내지 天意는 곧 천체의 운행, 토지의 형세, 즉 天文․地理 등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됨. 이 역법을 제정하는 것이 천자의 신성한 특권. 실제 역법 제정은 사관이 담당. - 동양 역사서에 자주 보이는 일식, 월식, 지동 등의 천문자연 현상의 언급은 당시의 그들에게 있어서는 하늘의 뜻을 보여주는 중대한 사실로 간주됨.
이 천문역법의 기본 이론인 음양오행설은 인간생활의 원리로서의 인륜도덕의 기초이론이 되었던 것.(周易이 생활의 원리를 설명하는 기초이론으로 등장)
-> 결국, 인간의 일상생활과 도덕생활도 천의와 천명에 의하여 지배된다는 것. 그리고 천의 사상은 관념상의 것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의 실천을 요구. 그리하여 천명과 천의에 따르는 실천행위가 없을 때(그것을 위배하였을 때) 革命이나 파국이 올 수도 있음.
<< 결론 >>
동서양에서의 역사라는 낱말의 개념은 이와 같이 요약될 수 있으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인간의 생활양식과 시대정신의 변천에 따른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없이 또 복잡하게 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재적인 이 시점에 서서 객관적인 존재로서의 사실을 어떻게 주관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서술하는가에 있다. 그런데 그 객관적인 사실은 우리들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기록자로서의 어느 누군가의 주관적인 사고를 담고 있음.
-> 그 사고와 인식의 여하에 따라서 객관적인 사실의 내용이 다양하게 달라진다. 여기에서 객관적인 사실의 인식주체가 되는 역사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필요에 직면. 그들 역사가 개개인을 알다보면 스스로 역사란 무엇인가의 물음에 대해 다양한 해답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
2. 왜 역사를 배우는가?
○ 역사의 목적
Bossuet(프랑스, 절대군주정 옹호, 왕권신수설) - 역사는 治者의 것이다.
그러나 역사란 것이 지배계층만의 역사는 아니다.
1) 君主龜鑑(계몽)의 역사 기술에서 탈피하여야 함.
2) 대중 역사의 필요. 대중화되고 접근하기 쉬운 역사. 좀더 많은 대중의 역사 서술(사회사)
○ 역사를 왜 배우는가?
1)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perspective) - 시간적 전망
현재·과거·미래를 연결
2) Collingwood, “The Idea of History"
역사란 것은 자기 인식(self-knowledge)을 위한 것이다.
자신의 개인적 특성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본성을 안다는 것이다.
자기를 안다는 것 - a. 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b. 내가 어떠한 종류의 인간인지를 아는 것
c. 나는 바로 그러한 종류의 사람이니, 그 외의 아무 다른 인간도 아니다라는 것을 아는 것
내 자신을 안다는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가를 아는 것
→ 내가 무엇을 했는가를 돌이켜 보는 것. 그러므로 내 자신을 알기 위해서 역사를 한다.
결국 역사란 인간이 집단적으로 무엇을 해 놓았는가를 아는 것.
self-discovery, identity → 남에 대한 이해로 연결됨.
Dilthey ‘이해의 철학’(남에 대한 이해)
We are social-being.
가족·사회·집단의 일원. 그로부터 무엇인가를 상속받고 있음.
그러므로 역사를 함으로써 인간에 대해서 더 알 수 있음.
입장 치환의 원리(易之思之) - 진정한 이해·평등·자유·형평의 원칙을 위함
3) 모든 학문의 기초적 지식 제공(배경적 지식). 문과 교육의 일환
역사란 인간의 집단적인 경험의 기술
역사학이 과학(하나의 학문)으로서 독립한 것은 19세기 랑케에 의해서이다. 랑케에 의해서 인문학(humanities)으로 확립된 것. 19세기 당시만 하더라도 인간을 다루는 인문·사회과학으로서 이렇다 할 학문이 없었음. 인문학이라야 그리이스·라틴어의 고전 연구가 그 주축을 이룸. 사회과학은 아직 영아 단계. 그 때의 사회학이나 경제학, 심리학 따위는 아직 인문학의 왕자인 역사학 앞에서 감히 기침마저 크게 할 수 없었음.
19세기 영국의 랑케학파 역사가 액튼경(Lord Acton ; 1834-1902)
“모든 과학은 각기 특유한 방법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모든 과학에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적 방법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특수한 학문의 한 분과일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분과에 있어서의 특수한 학문 형태요 방법이다.”
그러나 역사학의 권위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흔들리기 시작. 역사학은 대중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실을 세밀하게 따지고 드는 학문이라 인식됨.
“역사란 진절머리 나는 사건의 경과”(dates and boring facts of course)
그리고 이 시기 예전에는 인문학의 변두리에 겨우 자리잡고 있던 사회과학이 완전히 독립하여 인문학과 대등한 자리를 차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분리에 따라서 사회과학과 역사학과의 연관성이 문제시됨. 이제는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방법론적 교역시대가 도래. 역사학은 이로 인해 심한 상처를 입음. 역사학계 내부에서도 역사학을 인문학으로 믿는 보수주의와 역사학을 사회과학의 한 문야로 믿는 급진주의의 두 진영으로 갈라짐.(한국 - 문학석사, 문학박사의 명칭)
역사학이 인문학이냐 사회과학이냐?
역사학은 그 연구 대상의 범위가 그 어느 다른 학문보다도 광활하고 유동적이다. 비록 연구의 방법은 다르지만 사회과학도 역사학의 연구대상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역사학은 인문·사회 두 과학의 교차영역에 자리잡고 있음.
4) 역사의 교훈성
상식을 존중하는 일반인들은 교훈적 역사를 믿음.
이완용의 행위를 거울삼아 어느 정치가의 태도를 비교. 기원전 3세기에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이 알프스 산맥을 넘은 고사를 본따서 19세기초에 나폴레옹이 같은 길로 이탈리아 원정을 실행.
동양의 鑑戒主義
중국 송대의 司馬光의 資治通鑑 - 국가의 盛衰, 백성의 安否에 관한 일과 본받아야 할 선한 일, 경계하여야 할 악한 일을 다루는 사서라고 자칭.
역대의 사관들도 이 감계주의에 따라서 군주의 언행을 직필하였음.
Polybios(200-120 B.C. 로마의 역사가)
“참다운 역사의 연구에서 얻은 지식은 실제생활을 위한 가장 좋은 교육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역사는 우리가 실제 위험에 부닥치지 않더라도 우리의 판단을 가능하게 하고 옳은 견해를 갖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 역사를 배우며 또한 기술하는 목적이 우리의 장차의 행위와 사고에 실제로 도움이 되도록 하는 데 있다고 있다고 말하고, 처음으로 실용적 역사라는 용어를 사용.
Cicero(키케로, 106-43 B.C. 로마의 정치사상가·철학가·문학가)
“역사는 인생의 스승”
마키아벨리(Nicolo Machiavelli ; 1469-1527)
“역사를 실물교육이라 주장하고 인간본성은 불변적이며 어느 시대에도 동질적이다. 한 시대를 알면 모든 시대를 안다. 그러므로 군주에게 있어 역사를 경시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E.H.Carr - Webster의 회고를 통하여 교훈 얻음(역사란 무엇인가, 탐구당, 86-91 필독)
a. 약소민족의 입장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b. 비밀 엄수
역사의 교훈에는 이중성이 있다(과거->현재, 현재->과거).
교훈의 근거 - 일반화(generalization)에 있다. 개별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역사가는 교훈성을 근거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이유
역사적 전개과정이 어느 정도의 규칙성을 갖고 있기 때문.
역사는 되풀이한다는 것.
순환사관 -
18세기 이탈리아의 비코(Giambattista Vico ; 1668-1744), 새로운 과학
인간의 역사는 나선형적으로 되풀이하는 과정(1인지배의 군주제 → 소수지배의 귀족제 → 다수지배의 민주제가 반복).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 1818-97), 세계사적 고찰
역사가의 목적은 「일정하고 반복되는 유형적인 것」을 연구하는 데 있다고 함.
역사가 반복된다는 주장은 인간 본질의 불변을 전제로 함.
기원전 1세기의 로마인과 20세기의 한국인이 다 같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속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루비콘강을 건너서 로마 원로원을 굴복시킨 케사르의 거사는 일종의 교훈으로서의 보편성을 갖게 되며, 이와 마찬가지 이유로서 우리들은 로마 문명의 방향과 도덕적 위기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즉 모든 인간에게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공유되는 보편적인 인간의 본질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지나간 인간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 - 내적 자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신적 활동 영역. 善惡을 구별하는 능력, 正·不正에 대한 판단, 美醜에 대한 감수성, 행복에의 욕구와 추구 등.
역사의 교훈이 많은 상이한 역사적 사실의 일반성 때문에 합리화된다는 것.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여러가지 달리 보이는 사실 속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것.
나폴레옹의 제정 수립의 과정을 케사르의 군주제 수립과 비교하여 무엇인가 교훈적인 의미를 끄집어내려고 한다면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간에 이러한 두 사실의 일반적인 공통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독립운동-영국 시민혁명-프랑스혁명, “진주만을 상기하라” -미래 예측, 경고)
역사에는 많은 사실이 있으며 역사가는 그것을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화하려고 한다. 단순화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사실을 공통된 특징에 따라서 분류해 놓게 되는데, 이것이 곧 역사 연구에 있어서의 一般化의 문제이다.
역사적 교훈의 한계
① 역사의 교훈이 예언적 성격을 띨 수는 없음. 다만 역사적 교훈은 유형적 반복에 대한 경고이며 인간 본성을 도외시한 행동과잉에 대한 견제로서 작용할 뿐.
② 역사의 교훈은 윤리적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객관적 사실을 일반화한 것이다. 역사의 교훈은 어떤 사건이 옳다, 혹은 누가 나쁜 사람이다 등의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일어났던 사실을 냉철하게 제시하는 것.
3. 역사 연구의 대상
1) 인간 (인간에 대한 학문)
역사의 연구 대상은 ‘匹夫匹婦’의 행적이 아니다.
역사는 과거에 관한 학문. 따라서 역사가가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사실(facts)은 과거의 사실(the facts of the past)이다. 이 사실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 「인간의 사상과 행동에 관한 사실」(J.H.Robinson).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연구한다기보다 사료를 연구.
추측이나 역사적 상상력에 의한 역사 연구는 불가. 보통인의 역사 지식(인식)은 다음의 과정을 통하여 축적됨.
역사 해석(3차적인 역사) → 역사에 대한 지식 → 견해, 주관
* 역사의 대상은 무엇인가 ?
(인간만이 역사를 가질 수 있는가? 자연 현상에는 역사가 없는가?)
Collingwood - 인간의 행위만이 연구 대상임. 행위 자체로 나타나는 것이 있지만, 숨겨진 것(내적-동기·심리·사고, 사상 thought)도 있음.
“인간의 역사는 생각의 역사이다.”
자연의 역사는 없고, 있을 수도 없다.
역사의 대상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사료를 통해 본, 有意한(significant, relevance 관련성 있는) 과거여야 한다. 자연물 가운데도 인간의 행위에 영향을 줄만한 것은 대상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지성사가 James H. Robinson(1863-1936) - 역사란 것은 “about everything men have ever done or thought, or hoped or felt"
위와는 반대의 의견도 있음.
- 일어나는 모든 것이 역사적 현실·대상으로 여겨져야 한다.
E. Bernheim(1850-1942, 독일의 중세사가)
○ 식물, 동물, 지각의 역사를 말할 수 있다(자연의 역사)
- natural history(예전에는 박물학으로 번역하였으나, 최근에는 ‘자연사’로 번역됨)
- 지질학 : 자연의 역사학 (어떻게 지층이 형성되고 변화되었는가를 연구)
cf) 물리학과 같은 분석적 과학에서는 어떤 물리적 현상이 언제 어디서 일어났는가를 연구하지 않음.
그러나 인간의 역사에 관련되지 않은 자연현상을 역사적 사실 속에 포함시키기는 어려움
2) 시간ㆍ과거 (시간에 대한 학문, 변화에 대한 학문)
○ 역사학을 「인간의 學」이라고 해서는 설명이 부족
- “시간에 있어서의 인간의 학”이기 때문
- 역사학ㆍ사회과학 모두 인간을 다룸. 그러나 역사학은 항상 인간을 시간이라는 4차원에서 인식
○ 역사학에서의 시간
- 인위적인 토막난 시간이 아님
- 동질적이며 단편적인 시간도 아님
- 역사학에서의 시간은 비약할 수도 없도 역행할 수도 없는 생생한 현실로서의 시간
- 역사적 시간은 부단히 현재를 과거로 만들며 현재를 과거로부터 변화시킴
- 이리하여 과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현재와 다른 實在로 변해감
○ 근대 역사학의 대명제의 하나
- “과거는 다르다” (The past is different)
- 역사가는 현대와 중세가 얼마나 다르고 또 같은가 하는 뉘앙스에 대한 섬세한 감각의 소유자
- 역사적 시간의 본질은 변화며, 一回的임
- 시간은 곧 변화요, 역사학은 바로 이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
- Socrates, “철학은 「永久不變적인 것」을 연구하는 학문”
- Collingwood, “역사학은 「변화하는 것」에 대한 학문”
4. 역사관의 이해
○ 역사관의 개념 : 역사에 대한 견해, 해석, 관념, 사상 등의 의미
(광의 - 역사를 보는 눈, 역사의식)
- 인류역사 전체를 통일적으로 관찰하는 하나의 사고체계를 갖춘 사상
- 모든 역사를 일정한 원리에 따라서 관찰하고 해석하는 하나의 사고형식
(paradigm)을 지니고 있음
- 개별적인 사물들에 대한 단순한 관찰과는 다름.
연구 대상으로서의 역사사건을
① 인간적ㆍ물질적ㆍ자연적 힘들의 연관적인 작용과 또한 해당시대의 다른 사건들과의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생성된 것으로 보아야 하며
② 그것의 작용과 영향관계를 전후시대의 사건들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파악해야만 함
→ 자신의 연구 대상을 역사진행의 복합성(횡적)과 연속성(종적) 속에서 관찰해야 함
→ 나아가 개별사건들과 민족들, 시대들과 문화권들을 인류역사 전체의 흐름 속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경지로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함
⇒ 이상과 같은 관찰을 가능케 하는 것이 역사관임
○ 역사관 형성의 기본 전제
- 역사는 여러 시대들의 계기적인 연속관계를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진행(‘발전’)으로 파악할 때 형성됨
역사진행을 반복적, 단절적인 것으로 파악할 때 역사관은 세워질 수 없음.
직선적이든 나선적(순환적)이든, 변증법적이든 간에, 여하튼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파악될 때 역사관은 형성됨
- 인류역사 전체를 통일적으로 관찰할 때 형성됨
통일적 관찰이란 역사가가 여러 시대와 여러 지역에서 일어났었던 수많은 개별 사건들, 민족들과 문화권의 역사들을 하나의 원리 위에서 관찰하며 해석하는 것을 의미함
○ 역사관 이해의 주요 요소
- 역사 진행의 (원)동력 : 신의 의지, 물질적 생산력, 자유의지, 민중의 힘
- 역사 변화ㆍ발전의 양식 : 진보, 순환, 변증법, 나선형
○ 사관은 시대에 따라서, 인간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제약받음.
(시대나 개인이나 민족의 시대의식이나 역사의식, 인간관)
- 자연과학과 같이 하나의 파라다임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개가 동시에 존재
→ 사관은 고정적인 것이 아님
(cf. 길현모, 「역사와 과학」, 한국사시민강좌 8, 1991)
○ 실증적인 역사 연구에서 史實의 인식에 앞서서 방향을 부여하는 것이 역사관
→ 매우 중요
but, 역사의 연구는 어디까지나 사료가 중심
사관이 역사사실을 왜곡하는 것을 경계하여야
- 史實이 사관을 무시하였을 때 역사의 현재성은 부정, 사관이 史實을 무시하였을 때 역사의 과거성은 부정.
→ 사관과 사실의 상호 규제는 대립, 부정, 극복이라는 변증법적인 진전
○ 사관의 변천
- 사관은 인간관을 배후에 지니고 있음
→ 인간 내지 인생 파악의 제 시각이 구조적으로 사관의 유형화를 가능케 함.
- 사관은 시대나 장소에 따라 인간관이나 세계관의 제약받음
→ 사관의 역사적 파악은 사관과 시대와의 관련 등에서 정신사적 이해의 수단이 됨
→ 철학 사조의 변천과 유관(‘역사철학’)
5. 진보사관
○ 진보사관이란 ?
- 인류 역사가 보다 더 행복하고 완전한 상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일련의 역사관
- 18세기 계몽주의시대에 왕성하게 일어남
○ 계몽주의 사관과 연관
- 인류 역사가 미개사회로부터 문명사회를 향해 전진하고 있으며, 그러한 전진은 지식의 누적, 과학의 발전 등을 근거로 함
- 특히 이러한 발전의 원동력인 힘으로써 가능해졌다는 견해들이 제기됨
※ 과학과 합리주의는 서양의 근대화를 가져오고 서양을 세계의 중심으로 만든 지적 원천임.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을 낳게 한 지적 토대이며, 유토피아주의를 꽃피운 온상.
- 과학의 진보가 한없는 생산(마르크스), 절대적 자유(헤겔), 무한한 행복을 약속해 줌으로써 근대인들은 신국과 천년왕국(아우구스티누스)을 대신할 지상낙원을 기대함
- 여기에 해당되는 대표적 사상은 17세기에 시작된 합리주의, 18세기의 계몽주의, 19세기의 실증주의, 20세기의 실용주의임
- 합리주의 : 外界가 인간의 이성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믿음
- 계몽주의 : 인간이 발견한 법칙을 사회에 적용함으로써 인류사회가 무한히 진보할 수 있다는 신념
- 실증주의 : 계몽주의에 내포된 과학주의를 더욱 확대시킴. 모든 학문을 과학화함으로써 소모적인 논쟁과 분쟁이 종식된 완전사회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믿음
○ 계몽주의 사관 (18세기)
- 반역사적 시대, 과거의 상실
- 계몽주의는 인간의 본질을 추상적인 이성에 의해 판단. 추상적 이론 강조. 사물의 구체적인 실태를 인식하는 노력이 없음.
- 합리주의적 사고에 의해 일면적인 가치기준을 세운 결과, 과거는 무지몽매한 것으로 이성에 의해 타파되어야 한다고 주장.
- 진보의식을 강조 (과거에 대한 부정 - 춘원 이광수의 논조와 비슷).
○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계몽주의가 사관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함.
① ‘세계사’의 관점이 생김 - 이 시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유럽의 범위를 벗어나서 전 세계의 인류를 하나의 시야 속에 보는 경향이 생김.
② 역사에 대한 이론 적용과 법칙을 찾아내려는 감각이 나타남.
③ 진보사관의 창출
○ 진보사관과 기독교적 역사관
- 진보사관이 기독교적 역사관의 세속화된 모습이라고 해석됨
※ K. Loewith, 역사의 의미(1948) : 성서와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비코, 볼테르를 거쳐 헤겔과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이들 모두의 역사관이 근본적인 모형에 있어서는 기독교적 역사관을 근거로 하여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음.
- 역사의 시작인 천지창조가 미개사회로, 역사의 목표인 최후의 심판과 그 후의 영원한 제국은 문명사회로, 그리고 역사의 동력인 신의 의지는 이성으로 대체됨
- 발전양식은 “직선적”인 것으로 그대로 계승됨
- 진보사관에서는 기독교적 역사관의 형식과 구조는 그대로 따르면서, 다만 이전의 신학적 개념들 대신에 현실적인 개념들이 새로이 설정됨
○ 19세기, 진보사관에 대한 회의
- 낭만주의와 역사주의의 대두
- 모든 현상들이 역사적 형성체로 파악됨
- 개별현상들의 각각의 고유성과 독자성이 강조됨 : 상대주의적 이해 태도 성립
※ 낭만주의 : 계몽주의에 반기
- 이성 대신에 감정과 직관, 본능과 충동을 중시.
- 보편(법칙, 전체)보다는 개체(특수성, 역사성)를 강조.
- 개체사상은 민족주의의 원천이 됨 : 보편사와 세계사에서 각국의 민족사로 관심 돌리게 함. 나라마다 고유하고 독자적인 민족문화와 민족정신을 내세움으로써 민족의식이 각성됨.
→ 민족 통일을 달성하려는 19세기의 정치적 풍토(獨)와 맞물려 민족주의의 발전 촉진
→ 민족주의는 민족통일과 독립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지만, 민족의 번영과 영광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기능
→ 19세기말 제국주의 고취, 20세기의 극우민족주의는 파시즘과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 초래, 1ㆍ2차 세계대전 유발
- 사회다위니즘(Social Dawinism, 스펜서)의 적자생존 원리에 따라 경제적 개인주의에 입각한 자본주의 사회를 가장 자연스러운 사회상태로 간주, 제국주의ㆍ파시즘ㆍ나치즘에 나타난 인종주의의 이론적 바탕이 됨
※ 역사주의의 원천 : 역사는 미완성 단계에서 완성 단계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문화에서 다른 완성된 문화로 발전한다는 인식
○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에도 진보사관은 지속됨
- 실증주의(positivism)의 영향 : 역사 진행을 법칙적인 전개로 보면서, 그 법칙의 발견을 통해 사회의 조정과 역사의 진보를 확인하는 역사철학
- 자유주의 역사가들 : 과거의 역사 과정을 보다 더 완전한 자유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해석 (Hegel)
- 변증법적 유물론 : 생산력의 끊임없는 진전 과정으로 역사를 파악
○ 역사의 진보는
- 학문적 이론으로 확신되었던 것이 아님
- 18세기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믿음이자 신념으로서의 사상, 강력한 의식임
< 합리주의(rationalism) >
임상우, 서양의 지적 운동, 지식산업사, 1994.
○ 정의 : 우주의 삼라만상이 이성에 합치되게 존재하고, 이성에 합치되게 움직인다는 원리
○ 인간을 둘러싼 세계와 우주는 인간의 정신이 작동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믿음에 근거함.
- 뒤집어서 말하면 인간은 경험하는 모든 것을 궁극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과 통함.
-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고 우주에도 같은 이성이 존재하므로, 인간은 수학 문제에 내재되어 있는 이성적 질서를 합리적으로 풀어내듯이 이성에 지배되는 우주의 비밀을 합리적으로 하나하나 풀어갈 수 있다는 믿음
- 중세의 지배적 사고였던 기독교 신앙과는 판연히 구분됨
- 인간이 경험하고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의 세계를 부정 : 새로운 세계관 준비
○ 과학혁명은 합리주의적 사고의 결과물
- 우주를 수학적으로 해명 : 코페르티쿠스, 케플러, 뉴턴, 갈릴레오
갈릴레오 “우주는 수학적 언어로 씌어진 책”
- 우주는 균질의 공간. 우주의 어느 곳에서나 같은 수학적 질서가 적용되어야 함
※ 20세기 들어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붕괴됨
○ 근대 서구의 합리주의는 인간중심적 사고에 기반
- 르네상스의 인문주의(humainism)에서 비롯된 인간중심주의가 큰 영향 미침
- 중세의 대전제였던 ‘신의 완전성’ 대신에 ‘인간 이성의 완전성’이 들어앉음
- 합리주의는 신을 포함한 자연의 모든 비밀을 알아낼 수 있다는 막연한 신념
○ 철학의 합리론
- 데카르트(1596~1650), 스피노자(1632~1677), 라이프니츠(1646~1716)
- 데카르트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나’라는 정신이 명백히 존재할 때 그 정신의 인식 대상인 ‘내’가 명백히 존재하는 것이고, 이렇게 인식된 주체는 합리적으로 존재하는 이 우주의 사물을 궁극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
○ 17세기의 정치사상
- 홉스(1588~1679) : 군주의 신성성을 인정하지 않았음. 신의 주권만큼이나 절대적으로 올바른 정치적 관계가 인간 자신에 의해 성립될 수 있다고 믿음. 인간의 주권은 인간의 본성에 의해 합리적으로 창출될 수 있는 것.
→ 사회계약설의 근거 발견
○ 계몽사상(Enlightenment)과 합리주의
- 과학과 종교는 완전한 결별 선언
- 중세 이래의 기독교적 우주관은 이성과 자연법칙으로 대체
- 이성은 새로운 사회문화적 질서의 기반
○ 이성과 진보
- 계몽사상이 프랑스혁명의 발발 배경으로서, 혁명 진행의 원동력으로 지대한 영향 미침
- 공포정치를 이끌던 로베스피에르(1758~1794)는 이성을 신으로 하는 理性敎를 제도화하기까지 함
- 단두대(guillotine) : 공포정치의 잔혹성과 야만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그 기구를 사용했던 근거는 처형되는 사람에게 가장 짧게 고통을 주면서 소기의 목적으로 효율적으로 달성하려는 것. 가장 ‘합리적인’ 처형 방법
- 유물론과 무신론을 신봉
- 진보(progress)에 대한 신앙과 연결 : 인류는 한 단계의 문명에서 더 높은 단계의 문명으로 진보해 나간다고 믿음.
- 진보의 동력 : 이성의 확대, 즉 계몽(이성의 빛)의 확대
- 계몽에 의해 구질서의 모든 모순과 불합리는 궁극적으로 타파될 것을 굳게 믿었음.
- 이후 서구에서 ‘진보’는 이성숭배와 함께 근대인의 새로운 신앙이 되었음
- 이성과 과학과 진보는 점차 동의어가 되어갔음
○ 산업혁명과 진화
- 19세기에 들어서서 낭만주의의 유행에 따라 진보사상이 약간 주춤
- 그러나 진보에 대한 확신은 더욱 굳어짐
- 프랑스혁명이 내걸었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이상이 확산
- 산업혁명의 진행 :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중단 없이 계속됨.
- 과학적 역사학의 성립 : 인간역사뿐만 아니라 사회와 자연의 모든 부문이 역사적으로 탐구됨
- 다윈(1809~1903) : 진화론에 힘입어 생명계를 포함한 자연계는 물론 심지어는 인간의 역사 역시 진화(진보)하고 있음을 유추
- 스펜서(1820~1903) : 사회진화론 제창
- 당시 팽배한 국가 또는 종족의 진화론적 우월감 고취. 국가-민족 경쟁체제를 창출하는 데 기여
→ 이러한 합리주의의 세계는 그렇지 못한 (미개한, 야만적인) 지구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어야만 할 ‘명백한 운명’을 지닌 것으로 생각됨
→ 19세기말 서구인들의 제국주의적 팽창의 도덕적 철학적 기반을 발견할 수 있음
○ 국가와 이성
- 19세기 초 칸트(1724~1804)와 헤겔(1770~1831)로 이어지는 독일의 관념주의적 철학 : 이성을 또 다른 의미에서 최고의 지위에 오르게 함
- 칸트 : 우연적이고 불확실한 판단을 주는 悟性과 도덕적 직관을 통해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는 理性을 구별
- 헤겔 : 이성은 하나의 세계정신으로서 神과 같은 것
인간의 역사가 ‘세계정신 또는 절대이성의 구현 과정’이라고 설파
역사의 우여곡절을 ‘이성의 간지(奸智)’로 표현
독일의 국가체제에서 변증법적인 진테제(synthese)를 찾으려 함
→ 현실적 국가에서 절대이성의 실현을 구하려 함(보수성)
※ 독일적 특성 : 프로이센의 강력함 힘에 의한 독일 통일이 과제. 계몽주의 진보를 이끌어나갈 부르주아 세력의 미약함. 오히려 국가를 강조하는 보수성 띰.
○ 19세기말 합리주의
- 서구에서는 지식은 물론 일반 대중들까지도 이 지상에서 궁극적 행복이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계몽주의적 신조가 부정되지 않음
- 합리주의적 세계관은 자유주의적 원칙 아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비약적 발전기를 바라보면서 확고부동한 것으로 됨
- 사회주의 또한 진보적 낙관론을 가지고 진보ㆍ진화 대신 혁명이란 개념 세움
< 기독교적 역사관 - 헤겔의 정신사관 - 마르크스의 유물사관 >
1) 중세 크리스트교적 역사관
- 역사의 진행을 창조에서부터 종말에 이르는 직선적 과정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신의 섭리라고 하는 초역사적인 이념을 찾으려는 역사관.
(역사의 이념화, 절대화의 전형)
-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 세계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생애, 그 죽음과 부활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신자와 비신자간의 투쟁(신의 나라와 악마의 나라의 대립), 결국 최후의 심판에 이르러 신의 나라의 출현에 의하여 종말에 달하는 일대 드라마.
→ 그의 역사관은 역사서술로서는 완벽한 것이 못됨
(신앙의 입장으로 역사를 보는 것이지, 구체적인 사실의 연구와는 동떨어짐).
→ 그러나 그의 역사신학은 그 후 유럽의 역사적 사유의 강한 골조가 되어 근대역사철학의 중요한 정신적 기초가 됨 : 역사를 하나의 통일된 전체로서 오직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발전 과정으로 파악하려는 인식 방법을 얻게 됨
2) 헤겔의 정신사관
- 19세기 전반 독일의 역사철학(관념철학에 영향 받음) : 역사의 절대화, 이념화를 극한에까지 몰고감
- 헤겔에 의하여 정점에 도달
- 헤겔은 역사를 절대자인 정신의 자기 실현과정이며, 정신의 본질이 자유이기 때문에 역사의 목표는 잠재적 자유를 변증법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역사철학강의, 1837)
- 세계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유를 실체로 하는 세계이성(절대적 정신)의 실현이라 봄.
- 세계이성의 실현 장소는 객관적 정신(절대적 정신의 전 단계)으로서의 ‘국가’인 것.
- ‘세계정신’은 ‘민족정신’을 통하여 드러남.
- 세계사란 헤겔에게 있어서 세계정신의 역사이며 각 시대의 민족정신을 통하여 자기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다.
3) 마르크스의 유물사관
- 19세기 후반 마르크스의 유물사관 : 헤겔적 역사관의 계승
-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을 현실사회에 구체적으로 적용하여 역사 발전을 생산력과 생산수단과의 관계에서 파악하고자 함.
- 경제학비판(1857) : 역사의 변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함.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그 발달의 일정한 단계에서 이제까지 그 생산력을 육성해 온 생산관계와 모순이 된다. 왜냐하면 생산력은 발전하여도 생산관계는 본래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이기 때문에 고정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제까지 생산력의 발전에 있어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던 생산관계는 반대로 그 발전에 있어 속박되며, 결국은 상부구조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와 심각한 사회혁명으로 발전하여 가는 것이다.
- 유물사관의 핵심은 모든 중요한 사회 변화가 생산활동 및 그 조직에서 유래한다는 사회변동론에 있다.
6. 순환사관
○ 순환사관이란 ?
- 역사는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이 반복되면서 다시금 출발점으로 회귀하는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파악하는 사관
- 역사 진행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최초의 형식
○ 순환사관의 전통
① 고대 그리스 역사인식
- 헤로도투스 : Historia의 서술동기. “헬레네인들과 야만인들의 위대한 행위와 업적이 덧없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 투키디데스 : “일어났던 바에 관한 정확한 지식은 유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비슷한 일들이 다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 앞으로 반복될 사건들에 관한 분명한 이해를 위해서 자기 당대의 역사를 서술
② 로마의 역사인식
- 타키투스 : “모든 사물에는 일종의 순환이 지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도덕도 4계절처럼 변화한다.”
③ 중국의 역사인식
- 맹자의 ‘一治一亂’說, 五行說, 尙古主義(夏-殷-周 三代로 復古)
○ 순환사관의 특성
- 과거 역사로부터 현재에 필요한 교훈을 얻어내고자 하는 사고 특성이 있음
- 역사 서술이란 인간의 실제 생활과 연관되어야 하며 현재인들에게 유익한 지식을 제공해야만 하는 것 (중국의 鑑戒主義 : 資治通鑑)
○ 20세기 순환사관의 대두
- 19세기 이래 역사 진행은 ‘발전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었으므로 순환론이 논의될 여지는 없었음
- 20세기로의 전환기에 서구의 자본주의적 문명체제가 기독교 문화의 쇠퇴 현상 속에서 세계위기를 조장하고 있을 때, 순환사관이 다시 대두
- 1ㆍ2차 세계대전 전후 시기
- 역사 발전에 대한 회의론
① Oswald Spengler(1880~1936)
- 서구의 몰락(1918)
- 역사 진행을 인간의 생애 과정처럼 이해하는 형식으로 세계사의 진행을 관찰
- 세계사 속에서 8개의 문화권을 분류 : 이집트, 바빌로니아, 인도, 중국, 고대(그리스ㆍ로마), 아랍, 멕시코, 서유럽
- 각 문화권들은 상호관계를 갖지 않은, 분리되고 독립적인 개체로 봄
- 각 문화권은 유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의 과정을 겪으며, 이 과정에서 창조의 시기인 ‘문화’의 시대가 오며, 그 다음에는 쇠퇴의 시기인 ‘문명’의 시기가 온다
- 이러한 전환은 문화의 몰락이 시작되는 것 : 세계대전 발생
- 1차대전의 비극을 겪은 유럽인들에게 양심의 가책과 역사에 대한 비관주의를 불러일으킴
② Arnold J. Toynbee(1889~1975)
- 역사의 연구(1934~1954)
- 역사 진행을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의 과정으로 파악
- 세계사 속에서 28개의 문화권(→문명)을 분류
- 제대로 발육 또는 성장하지 못했던 ‘유산된’ 문화권(2), 도전을 극복하지 못한 ‘저지당한’ 문화권(5), 그리고 응전에 성공해 온 문명(21) 등으로 구분
- 응전에 성공해서 충분히 성장한 문명일지라도 이미 사망한 문명 14개(이집크, 미노아, 수메르, 마야, 유카텍, 멕시코, 헬레네 등)을 빼고 나면 생존 문명은 7개에 불과 : 인도, 이슬람, 극동(중국), 비잔틴, 동남유럽, 그리스정교, 서구 문명 등
- 응전에 성공한 21개의 문명을 각각의 성장, 발전, 노쇠, 몰락의 과정 속에서 서술
- 슈펭글러와는 달리 토인비는 문화권들 사이에 상호관계가 있을 수 있으며, 또한 각 문화권은 반드시 몰락에로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등종교로서의 ‘보편교회’의 등장과 그 전파를 통해서 몰락을 모면할 수 있다고 보았음
→ “문명은 순환하지만, 종교는 진보한다” : 제 문명의 흥망성쇠를 수레바퀴의 회전에 비유(문명은 바퀴, 종교는 수레). 종교의 발전을 차체의 전진에 비유
→ 순환론과 기독교적 역사관을 종합하는 태도
'Reading n See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기 행태주의’와 ‘후기 행태주의’의 차이점 (0) | 2021.06.05 |
---|---|
특고압 변압기 절연유 용존가스 분석 결과 (0) | 2021.06.05 |
[문학작품] 수난이대-하근찬 분석 (0) | 2021.06.05 |
[문학작품]삼대 - 염상섭 분석 및 줄거리 (0) | 2021.06.05 |
[문학작품]화랑의 후예-김동리 분석 및 줄거리 (0) | 2021.06.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