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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 Seeing

앨빈 토플러 “제 3의 물결”

by 휴리스틱31 2021.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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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 3의 물결

 

 

우리는 지금 속한 사회는 어떠한가? 어떠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사회에 살게 될 것인가? 이러한 의문들이 이 책을 읽은 뒤 나의 머리를 맴돌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명확히 규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더군다나 앞으로 어떤 사회에 살 것인가를 안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이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밀어닥칠 변화의 물결을 음미해 보고 그 흐름의 커다란 물줄기를 눈치챌 수 있을 따름이다.

또한, 이 책이 제시한 새로운 문명의 흐름이 맞을 것인지 아니면 미국사회라는 특수한 사회에서 적용된 변화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이 책이 제시한 새로운 유형의 문명이 우리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이 책이 제시한 새로운 유형의 문명의 흐름을 이 한반도 남쪽 나라의 현 모습에 비추어 보고자 한다.

생산과 소비의 분리라는 산업혁명의 특징이 300년간 지속된 이래 현사회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생태계의 전면적인 파괴와 에너지자원 그리고 값싼 원료의 소멸은 이것에 의존하여 온 현 산업사회-2의 물결의 사회에 커다란 위기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는 비단 선진 자본주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우리나라도 포함하여-만연된 위기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비록 산업화의 경력이 30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어느 나라보다도 급한 제2의 물결을 타고 왔으며 이제는 앞에서 말한 세계적 위기가 파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personality crisis를 가져왔고 기존의 역할체계의 위협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2의 물결 하의 남녀의 역할분담, 기업과 가정의 역할 분담들의 기본적 구조가 위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제3의 물결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표현을 빌리면 가까이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3의 물결이 벌써 멀지 않은 해변가에서 으르렁거리면서 밀려들어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 책이 70년대 말 미국을 기준으로 쓰여진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90년대 말의 사회는 그 모습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비록이러한 사고가 스페서의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생각이지만-책이 묘사한 모습은 지금의 우리사회와 유사한 면이 많다. 3의 물결이 밀려들면서 새로운 산업-컴퓨터산업이나 반도체산업 등-의 첨단산업이 성장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탈 대중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즉 컴퓨터의 보급으로 인한 쌍방향의 의사소통과 Cable TV의 등장, 지방방송의 성장은 다양한 매체의 양산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 탈 대중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제도도 변화하고 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보니 혼자 사는 노인이 60%에 이르며 혼자 사는 미혼남녀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사회는 전통적 가족제도-대가족제도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런 대가족제도는 60년대 산업화의 시작과 70,80년대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핵가족화 해갔으며 동시에 핵가족과는 또 다른 가족제도를 만들어 냈다.-예를 들면 미혼남녀의 독거나 계약결혼, 편부·편모슬하의 가족의 양산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는 핵가족제도가 보편화되고 또 다른 가족의 유형도 정착된 것이다.

 

 

 

 

근무제도의 변화 또한 90년대 이후에 나타난 풍속이다. 재택근무, 프리랜서의 등장은 이제 새로운 사건이 아니며 오히려 선망 받는 직업의 유형이 되었으며 9시 근무 5시 퇴근 또한 파괴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 반면에 아직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제2의 물결하의 근무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는 9시 출근 5시 퇴근조차 지켜지지 못한 채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스스로 근무시간을 정해 자유로이 출퇴근하는 것은 꿈과 같은 것이며 대량생산과 규격화의 틀 속에 8시간이상의 근무로 혹사당하거나 변형근로제의 도입과 승인으로 인한 또 다른 억압이 나타나고 있다.-지금 진행중인 노동법의 개정은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주도하기는커녕 오히려 주56시간의 변형근로제 도입 등을 추구하는 등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제3의 물결의 변화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정신적 위기에 대한 문제이다. 새로운 변화의 물결 하에 많은 이들이 정신적인 안정을 찾지 못하고 우울증이나 신경쇠약 등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스스로 아가로 지칭하고 정신적 혼란에 빠진 이들의 노동과 정신을 갉아먹는 세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것은 정신적 아노미현상에 빠진 이들이 정신적 안식을 찾지 못하고 빠져든 비극이라 생각한다. 이 일뿐 아니라 지존파니 막가파니 하는 것도 이러한 정신적 혼란의 양상을 적나라케 보여준다. 이렇듯 사회는 정신적 혼란에 빠져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나는 제3의 물결의 변화의 일부를 살펴보았다. 그러면 이러한 모습들이 정말 우리가 살아갈 세계의 보편적 모습이 될 것인가? 탈국가화, 탈대중화, 탈표준화, 가족제도의 붕괴, 새로운 근무체제의 도입이 일반화 될 것인가? 나는 여기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70년대 말의 오일쇼크의 충격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되었고-대체에너지의 개발도 미미한 수준이고-국가권력은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거대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핵가족제조는 아직도 굳건한 가족의 유형이며 자유근무시간제와 자택근무의 정착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아직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대량화 표준화 단계에 있거나 아직 그 단계에 조차 이르지 못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의 물결은 기존의 물결을 보충하는 정도이지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처럼 근본을 바꾸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

그러면 변화 자체에 대한 부인이 합당한가? 나는 이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세계는, 우리나라는 분명히 변하고 있다.-그 변화의 유형이 이 책과 일치하든지 아니든지에 상관없이. 그리고 그 변화가 긍정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자연친화적인 개발, 자원절약적인 개발, 조직의 부속품으로써의 인간을 개별화시키고 인격화시킨 것은 바로 그것에 해당한다. 비록필자가 말한 제3의 물결이 완전히 보편화되지는 않았고 반드시 그러한 변화를 겪을 지는 의문시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유사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적합한 윤리의식과 지식을 배양해 나가야 할 것이다.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거쳐온 세계는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사회도 그러한 변화가 일어 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사고의 수준은 제2물결 하에서 머무르고 있다. 탈국가화,탈조직화,탈대중화,탈표준화의 흐름에서 아직도 국수주의가 판을 치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삶의 질의 향상보다는 개발논리와 산업화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말로만 세계화니 신한국이니 외치는 것은 공허하다. 스스로 세계화된 의식수준과 논리를 가져야 한다. 새로운 물결이 다가온다고 경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경쟁은 이제 의식과 지식의 차이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좀더터인 생각과 논리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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