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지은이 이형기(李炯基, 1933 ~ ) 시인. 예리한 감각으로 존재의 실상을 탐구하는 주지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시집에 《적막강산》, 《돌베개의 시》, 《보물섬의 지도》, 《그해 겨울의 눈》 등이 있다.
작품감상 이 시는 이별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보이는 작품으로, 성숙함과 아픔의 감정이 어우러진 시이다. 이 시는 '낙화'와 '결별'의 두 축이 유사성에 의해 결합되면서 시상이 전개되는데, '개화→낙화→결실'로 이어지는 변증법적 논리로 자연의 법칙을 파악하며, 낙화는 결실을 위한 준비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주제 성숙과 슬픔을 함께 한 사랑의 결별
짜임 제1연 : 낙화(갈 때를 알고 미련없이 떠나는 일)의 아름다움
제2연 : 가슴에 쌓인 사랑의 아픔을 남겨 둔 채 이별의 시간이 도래
제3연 : 꽃이 지는 하강 이미지를 축복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낙화의 광경
제4연 : 이별을 수용하는 정신적 인내
제5연 : 이별의 미화
제6연 : 아픔을 동반한 성숙의 의미
♧ 꽃과 언어 : 문덕수 시
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가
불꽃처럼 타다간
꺼져도
어떤 언어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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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 1955년 유치환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문덕수는 '모더니즘'의 시 세계를 지향해 왔다. 서로 이질적인 이미지를 병치시켜 그 이미지의 상호 충돌에 의해 의미의 충격을 주는 것이 그의 주요 기법이다. 이러한 시 작법은 작가의 세계관, 주제 의식이 작품 전면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도 독자의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하여 넓은 의미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 나비 : 언어를 통한 존재 본질 파악이 매우 어렵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우리의 인식은 대상을 결국 주관적으로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나비
↑
* ←(본질인식×) 꽃 ← 언어
↓
꿀벌
* 주제 : 존재 본질 파악의 어려움
1. 김춘수 시 <꽃을 위한 서시>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여' (존재 본질 구현의 어려움)
♧ 아침 이미지
자료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 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屈服)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지은이 박남수(朴南秀, 1918 ~ ) 시인. 1939년 《문장》에 <초롱불>, <밤길>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초기에는 자연을 배경으로 하여 일제 시대의 암흑상을 서경적으로 형상화한 시를 발표했고, 후기에는, 존재성을 규명하려는 주지시의 경향을 보였다. 시집에 《초롱불》, 《갈매기 소묘(素描)》, 《신(神)의 쓰레기》, 《새의 암장(暗葬)》, 《사슴의 관(冠)》 등이 있다.
작품감상 일상 생활에 젖어 아침의 이미지를 별다른 감회 없이 맞이하게 마련인데 반해, 시인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온 사물들의 인상을 개벽을 보는 듯한 감격과 경탄으로 맞이하고 있다. 밝고 건강하고 즐겁고 생산적인 아침의 근원적인 모습을 그려 보게 하는 즉물적인 시이다.
주제 광명한 아침을 맞이하는 만상의 생동미(아침의 본질적 의미)
짜임 제1?2행 : 생명력을 잉태하고 있는 어둠(기)
제3~5행 : 물러가는 어둠(승)
제6~10행 : 깨어나는 어둠과 떠오르는 태양(전)
제11?12행 : 새롭게 태어나는 세상(결)
♧ 조국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에인 사랑
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 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 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 맺힌 열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
지은이 정완영(鄭椀永, 1919 ~ ) 시인. 호는 백수(白水). 1926년 《현대 문학》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1962년 조선일보에 <조국>이 당선되었다. 시조집으로 《채춘보(採春譜)》, 《묵로도(墨鷺圖)》 등이 있다
작품감상 이 시는 가얏고의 애절한 가락에 의탁하여 조국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가야금 가락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한 맺힌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에 의탁해서 분단 조국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3수로 된 구별 배행(句別排行)의 연시조로 적절한 시어의 선택과 절제된 시어의 구사를 통해 긴축미를 살리고 있으며, 전편을 관류하고 있는 가얏고의 유장한 가락을 통해 민족의 정한을 심화시키고 있다. 또한, 청각적 심상과 시각적 심상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시적 감흥을 고조시키고 있다.
주제 조국애(祖國愛)
짜임
제1~3연 : 가얏고에 대한 사랑
제4~6연 : 가얏고의 선율에 흐르는 겨레의 한(恨)
제7~9연 : 조국의 비극과 조국애
어구풀이 ?가얏고 : 가야금. 오동나무로 길게 공명관을 만들어 바탕을 삼고, 그 위에 12줄을 맨 우리 나라 고유의 현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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