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ing n Seeing

[현대소설 줄거리/해설]봄·봄(1935)-김유정-

by 휴리스틱31 2021. 10. 12.
728x90

봄·봄(1935)

-김유정-

 

● 줄거리

 

봉필이는 악랄하기로 유명한 마름이다. 그는 머슴 대신 데릴사위를 열이나 갈아치웠다가 재작년 가을에 맏딸을 시집보냈다. 점순이도 세 번째 데릴사위감을 들였다. 나는 그의 세 번째 데릴사위이다. 네 번째 놈을 들이려다가 장인은 내가 일도 잘하고 어수룩하니까 붙들어 둔다.

 

그러나 여섯 살인 셋째 딸이 열살은 되어야 데릴사위를 할 터이므로 장인은 나를 결혼시켜 주지 않는다. 나는 데릴사윗감으로 봉필이네 집에서 사경 한 푼 안 받고 일한 지 벌써 삼 년하고 일곱 달이 되었다. 작년에 내가 사나흘 누워 있자 장인은 울상이 되어 결혼시켜 준다고 나를 달랜 일이 있다. 그러나 기한을 정하지 않고 점순이가 자라면 성례를 하기로 한 애초의 계약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어제 화전밭을 갈 때 점순이가 밤낮 일만 할 것이냐고 했다. 나는 모를 붓다가 점순이가 먹고 키가 큰다면 모르지만 장인님의 배만 불릴 것을 생각하니 화가 난다. 나는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논둑으로 올라간다. 논 가운데서 이상한 눈초리로 노려보던 장인은 화가 나서 논둑으로 오르더니 내 멱을 움켜 잡고 뺨을 친다. 장인은 내게 큰소리를 칠 계제가 못되어 한 대 때려놓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장인을 혼내주고 집으로 가고 싶지만 남부끄러워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나는 장인이 될 봉필이를 구장댁으로 끌고 간다. 구장님은 당사자가 혼인하고 싶다는데 빨리 성례를 시켜주라고 한다. 봉필씨는 점순이가 덜 컸다는 핑계를 또 한 번 내세운다. 이틀 뒤에 점순이는 구장댁에 갔다가 그냥 오는 법이 어디 있느냐면서 얼굴이 빨개져서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점순이에게 병신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난 후, 어떻게든지 결판을 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일터로 나가려다 말고 나는 바깥마당 공석 위에 드러눕는다. 대문간으로 나오던 장인은 징역을 보내겠다고 겁을 주나 징역 가는 것이 병신이라는 말보다 낫다고 생각한 나는 말대꾸만 한다. 화가 난 장인은 지게 막대기로 배를 찌르고 발길로 옆구리를 차고 볼기짝을 후려 갈긴다. 나는 점순이가 보고 있음을의식하고 벌떡 일어나서 수염을 잡아 챈다. 바짝 약이 오른 장인은 나의 사타구니를 잡고 늘어진다.

 

할아버지까지 부르다가 거의 까무라치자 장인은 나의 사타구니를 놓아준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가서 장인의 사타구니를 잡고 늘어진다. 장인이 할아버지라고 하다가 점순이를 부른다. 점순이는 내게 달려든다. 나는 점순이의 알 수 없는 태도에 넋을 잃는다.

 

 

● 인물의 성격

 

◆ 나 → 순박하고 어리숙한 인물로, 장인과 결혼문제로 크게 다투는데 본인의 의사보다는 점순이의 의사가 많이 반영된 결과이다. 때문에 점순이가 화를 낼 때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게 됨.

◆ 장인(봉필) → 딸만 셋을 둔 마름으로 마을에서 인심을 잃고 사는 사람이다. 데릴사위를 바꿔치기 하면서 노동력을 착취하는데 일 잘하는 '나'를 놓치기도 싫고 셋째 딸이 여섯 살밖에 먹지 않아서 점순이와 '나'를 결혼시켜 내보내고 다시 데릴사위를 들일 처지도 못되어 고민을 한다.

◆ 점순 → 소극적인 태도를 지닌 '나'를 배후에서 조종하여 아버지와 싸움을 붙여놓고 종국에는 아버지의 편을 드는 다소 능동적인 인물임.

 

● 구성 단계

 

◆ 발단 : 결혼 문제를 둘러싼 '나'와 장인 간의 갈등 내용을 제시함

◆ 전개 : '나'와 장인 간의 갈등이 점차 심각해져 감.

◆ 절정 : '나'와 장인 사이의 해학적 활극 장면. 사타구니를 서로 잡아 당기고, '나'의 머리가 터짐

 결말 : 희극적 싸움이 끝나고 화해가 이루어짐. ― '절정' 부분 속에 삽입됨.

 

 

● 이해와 감상

 

 <봄 봄>은 1930년대 농촌의 모습과 김유정 특유의 향토색 짙은 언어를 통해 순박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삶을 해학이 넘치는 유머와 기지로써 표출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도 <동백꽃>과 마찬가지로 아이러니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열등한 주인공이 교활한 상대의 의도를 전혀 모르고 순진한 행동을 하게 됨으로써 아이러니가 성립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상대를 아주 모르지는 않는다. 알기는 알지만 완전히 모른다는 데서 아이러니가 생긴다. 주인공 '나'는 장인의 의도를 눈치채고 있기 때문에 역전의 기회가 오리라고 기대되지만, 번번이 실패만 하게 된다. 여기에서 독자들은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나'의 어리석음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인물들의 해학성 또한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나'는 세경 한 푼 없는 데릴사위로 죽도록 일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변변히 해보지 못하며, 만물이 자라는 봄을 맞아 여성으로서 성장하고 있는 점순의 충동질에 의해서나 겨우 장인에게 성례시켜 달라는 말을 건네본다. 그리고 장인과 엉겨 싸우다가 머리가 터지는 상처를 입은 다음에도 데릴사위 자리에서 쫓겨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이다.  장인 역시 해학적으로 묘사되고 있는인물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품삯을 아끼기 위해 데릴사위 명목으로 새경 안 주는 머슴을 부려먹으며, 성례를 시켜주지 않을 양이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화자에게 남의 농사를 버려두고 가는 것은 법에 어긋난다는 억지를 펴기도 하는 인물이 장인이다. 그 억지에 속는 화자나 그런 억지를 속임수라고 고안해 낸 장인은, 모두 우둔한 인물들이다. 욕심 사나운 장인도, 해학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미소를 자아낼 뿐이다. 이 독특한 분위기가 해학이 빚어낸 미의식이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단편소설, 순수소설, 해학소설, 농촌소설

◆ 성격 : 토속적, 해학적

◆ 배경

* 시간적 - 1930년대

* 공간적 - 강원도 농촌 마을(점순이네 집)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작품은 머슴인 '나'의 입장에서 사건을 관찰하고 서술하게 함으로써 강한 해학성을 띤다. 무지하고 어수룩한 '나'가 독자에게 사건을 보고하게 함으로써 독자는 '나'의 어수룩함과 우스꽝스러움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독자는 '나'의 인물됨과 성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받을 수 있으며 그의 중재를 통해 사건을 간접 경험하게 된다.)

◆ 구성 : 역순행적 구성

◆ 표현상 특징

* 아이러니의 구조, 육감적인 언어의 사용, 노골적인 표현과 거칠고 서투른 행동 묘사

* 해학적이고 토속적인 문장

* 사건의 시간과 서술의 순서가 일치하지 않는 역순행적 구성을 사용함.

* 1930년대 농촌의 현실을 인물 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해학적으로 풀어냄.

◆ 갈등구조 : 장인(봉필)과 나 사이에, 3년 7개월 동안 해결되지 않는 혼인 문제가 얽혀 갈등이 고조됨.

◆ 제목 : 만물이 약동하는 계절, 이성 간의 가슴 설레는 사랑의 감정을 샘솟게 하는 계절

◆ 주제  시골 남녀의 순박한 사랑,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한 현실 풍자

              나(어수룩함)와 장인(교활하고 의뭉스러움) 사이의 해학적 갈등과 일시적 화해

 

 

● 생각해 볼 문제

 

1. 나와 장인의 갈등의 성격에 대해 말해 보자.

⇒ 장인은 욕심이 많은 사람인지라 가능한 한 '나'를 머슴으로 더 부려먹으려 한다. '나'는 어서 성례를 시켜 주기만을 바란다. 이것이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다. 그런데 이 갈등이 그렇게 심각하게 그려져 있지는 않다. 장인이 욕심이 많은 인물로 그려지기는 하나, 악인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에, 두 사람의 갈등은 웃음만을 줄 뿐이다. 이 작품은 갈등이 중심이 된 것이 아니라, 그 갈등을 통해 유발되는 웃음이 핵심이다.

 

2. <동백꽃>의 '나'와 이 작품의 나를 비교해 보자.

⇒ 둘 다 약간 모자란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모자람의 정도에 있어서는 차이가 난다. <봄 봄>의 '나'는 <동백꽃>의 '나'보다 모자람의 정도가 얕고, 그런 만큼 일방적 수세에 몰리지 않으며, 그것 때문에 사건의 박진감을 더 생긴다.

 

3. 점순이의 마지막 행동의 의미는?

⇒ 점순이로서는 당연한 행동이다. 부녀 사이의 정이 남녀간의 정보다 더할 것임은 당연하고, 또 남녀 간의 관계가 아직 끈끈하게 맺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점순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가 낭패를 당했으며, 그것이 또한 이 작품의 해학성이다.

 

 

● 더 읽을거리

 

◆ '봄 · 봄'에 나타난 풍자와 해학

 

풍자와 해학은 모두 웃음을 동반하는 '현실 비판'의 방법이다. 그러나 풍자는 비판적 요소를 따끔하게 지적하여 비꼬는 공격적인 글쓰기 방식인 데 비해 해학은 대상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하는 익살이 담긴 글쓰기이다. 김유정의 '봄 · 봄'에는 해학적인 요소가 짙게 깔려 있는데 어리숙하고 바보 같은 한 머슴을 비판하고 있는 내용이지만 동시에 이 어리숙한 머슴에 대한 연민과 동정 그리고 인간적인 애정이 깔린 것이어서 풍자라기보다는 해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김유정의 소설은 고전 문학의 해학을 계승하면서 식민지 시기 농촌의 궁핍상과 순박한 생활상을 토속적 어휘로 표현함으로써 독자에게 한바탕 웃음을 안겨 주고 있는 것이다.

 

◆ '봄 · 봄'의 원형

 

'봄 · 봄'은 소설 제목 자체가 상당한 상징성을 갖는다. 봄이라는 계절이 갖는 자연적인 이미지는 물론이고 나아가 제의적 상징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중략>   봄에 밭을 간다는 것과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은 예사로운 관계가 아니다. 봄은 춥고 긴 침묵을 깨고 태어나는 탄생을 의미한다. 지난해의 묵은 질서는 봄의 기운을 빌려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밭은 우주의 대지이다. 여기서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 것이다.  

 

<중략>  

 

새로운 질서의 탄생은 이제 성례로 이어진다. 봄에 새로운 질서를 탄생시키기 위해 천지와 대지가 결합하듯이 나와 점순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성례하기를 열망한다. 이는 봄이 되어 산천초목에 물이 오르고 싹이 트듯이 사랑도 그러한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에 계절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봄이기 때문이다. 봄은 새 질서가 잉태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봄은 여성을 상징한다. 거대한 대지의 질서를 내재하고 있는 것이 여성이다. 모든 생명은 여성의 몸을 빌려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성례시켜 달라는 점순의 대사는 좀 더 적극적이다.  

 

<중략>

 

 자연적 질서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적 질서에 동참하고자 그것의 행위를 모방하게 된다. 그들은 봄에 만물이 싹트고 새로운 대지가 열리게 되는 것을 천지와 대지의 결합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것의 행위를 모의적으로 보여 주었다.  

 

<중략>  

 

오랜 원시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봄의 관습적 의미가 '봄 · 봄'에서 재현된 것이다. 물론 김유정은 봄의 원형적 의미를 복원시키려고 '봄 · 봄'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 · 봄'이 관습적 맥락에 놓여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홍숙, ''봄 · 봄'의 원형', "사림어문연구" 제11호, 사림어문학회, 1998

 

 

◆ 김유정의 문체와 현실 인식

 

민중이나 현실에 대한 김유정의 인식은 그의 해학적 문체와도 일체를 이루고 있다. 그 자신의 독특한 민중 사랑과 현실 인식은 그의 작품에 나타난 반어적 표현이나 해학적 문체, 혹은 민중 언어의 구사 같은 측면과 불가분의 관계로 형상화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민중 인식 내지 현실 인식이 당대의 역사적 · 사회적 진실을 추구함에 있어 일정한 수준을 지니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그의 해학적 · 반어적 문체를 비롯한 여러 표현상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가령 '봄 · 봄'과 같은 작품에서도 확인된다.

 

이 작품은 마름의 횡포가 자행되는 당시 농촌 사회의 모순과 그 모순에 희생되는 농민(민중)의 고통을 반영한 점에서 작자의 현실과 민중에 대한 인식을 제시한 것이다. 마름이 젊은 농부를 데릴사위라고 하는 정략적 약혼의 희생물로 삼아 그 노동력을 수 년 간 무보수로 착취함으로 해서 빚어지는, 데릴사위인 '나'와 '나'의 장인인 마름과의 갈등이 '봄 · 봄'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위선적 성격의 장인과 '나'와의 갈등이 뛰어난 해학적 기교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학적 표현은 그 갈등의 진정한 원인으로서의, 당시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제대로 추구하는 데 저해 요인이 된다. 소설이 현실의 중요한 것을 드러내는 동시에 흥미로워야 한다면 그는 해학적 문체로 그 중요한 것의 일부분을 희생시킨 대신 흥미로움을 살린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동백꽃'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 작품은 동백꽃 피는 농촌을 배경으로 계층이 다른 사춘기 남녀 간의 갈등과 화해를 밀도 있게 다룸으로 해서 향토적인 사랑의 미학을 보여준다. 눈치 없고 모자라는 '나'가 점순이의 은근한 사랑의 표현과 구애의 동작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이 둘 사이에는 반어적 상황 내지 해학적 싸움이 벌어진다.  <중략>

 

여기서 우리가 거듭 생각해야 할 것은 '동백꽃'이 주로 상대의 애정 표시를 깨닫지 못하는 주인공의 딱하고 우스꽝스러운 행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김유정의 그런 능청스러운 익살은 그의 창작이 지닌 특이한 흥미요 매력임이 분명하다. 또 그런 해학적 표현이 한국 농민의 전통적 언어 감각과 향토적인 정서를 생생하게 제시하는 데 공헌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 그것은 계층 문제를 비롯한 당시 농촌 사회의 당면 과제를 진지하게 추구하는 데 일종의 역작용을 가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그의 현실 인식이 지닌 일정한 한계가 반어나 해학의 문체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문체로 인해서 그의 현실 인식이 악화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선영, "리얼리즘을 넘어서", 민음사, 1995

 

 

◆ 김유정 문학의 '바보 열전'

 

김유정의 문학 세계는 단적으로 지적해서 해학적인 총체성으로 대변된다. 인간의 우매함에 대한 따뜻한 흥미와, 이에 대한 소박하고 관용적인 연민이 그만큼 융화를 이루는 작품들을 창작한 작가를 우리는 현대 문학에서 더 이상 알지 못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근원적으로 희화적이며 골계적으로 이루어진 '바보 열전'의 세계인 것이다. 순진하고 무식하고 우직한 인간 바보들이 연출해 내는 가지가지의 우행과 몽매함이 긍정적으로 보호 받는 세계이다.

 

그는 확실히 해학이라는 웃음의 요철경으로써 인간과 세계를 굴절시키고 있는 작가였던 것이다. '동백꽃', '봄 · 봄', '총각과 맹꽁이', '산골 나그네', '금 따는 콩밭' 등 그의 일련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해학미를 유발하는 단순하고 무식하고 우직한 바보들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인간적으로 약점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 순진무구한 소박성과 행동의 희극성을 지닌 바보 유형의 인물들이다.

 

점순이의 키가 모자람을 두고 벌이는 '나'와 장인의 희극적인 쟁투를 그린 '봄 · 봄'에서도 역시 보통 사람에게 다소 미치지 못하는 모자라는 바보 같은 남자가 등장하고 있다. '숙맥'인 데릴사위 '나'가 그이다. '나'는 딸 점순이와 성례시켜 주겠다는 장인의 말만 믿고 돈 한 푼 안 받고 3년 7개월 동안 머슴으로 들어가 일한다. 그러나 장인은 점순이의 키가 자라지 않았다는 핑계로 늘 약정된 혼사를 미루며 '나'가 아무리 항변을 해도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장인의 호통에 더 이상 반대도 할 수 없게 된 '나'에게 점순이가 항의와 함께 암시를 한다. 이런 현상은 민담에 나타나는 아내의 교화적 역할과 동일하다. 점순이의 부추김을 받은 '나'는 그제서야 일 나가는 것을 '사보타주(sabotage, 태업)'한다. 그러자 화가 난 장인은 지게 막대기로 '나'를 구타한다. 피할 길 없이 매를 감내하던 '나'는 점순이의 부추김대로 장인의 수염을 잡아챘다. 그야말로 바보다운 정직성의 반응이다.

 

그러나 사태는 점순이가 부추긴 수염 잡아채기에서 끝나지 않고 장인의 바짓가랑이를 잡아채는 것에까지 발전함으로써 믿었던 점순이로부터도 "에그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라며 '나'의 귀를 잡아당기는 낭패의 파국으로 끝난다. 신체 부분의 등장 등은 확실히 그 문화적인 계보에 있어서 바보 같은 사위와 단순 바보들이 나타내는 해학이나 전승 문학들과 친화력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장인, 즉 점순이의 아버지는 딸의 구혼자에게 난제(難題)를 부과하는 인물로서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재선, "한국 문학 주제론", 서강대학교 출판부, 2009

 

 

◆ 김유정 소설의 민중적 성격

 

김유정의 소설은 주로 사상이나 내용의 무게보다 형식적인 면, 즉 기교나 구성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다고 평가된다. 기교 가운데는 특히 반어와 해학이 돋보이며, 구성은 반복적이고 회귀적인 특성을 지닌다고 한다. 또 전통 계승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연구에서도 김유정 소설의 문체와 구성 같은 작품의 형식적 측면이 중시되는 일이 많다. 실제로 이런 연구들은 그 자체로서 일정한 근거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상당한 설득력을 갖춘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접근 방법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김유정의 작품들은 문학의 기교나 형식만 거론할 가치가 있고 사상이나 이념 같은 무시해도 좋은 것일까. 그의 작품들에는 사상과 유리된 기교나 형식미만 살아 있다는 것인가. 도대체 문학 작품이란 형식과 내용이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 대상 작품의 정체가 과연 제대로 밝혀질 수 있는 것인가.

 

한편 수적으로 약세이긴 하지만 김유정 소설의 사상성, 특히 당시 농촌 현실에 대한 그의 인식을 주목한 경우도 없지 않다. 그중에는 김유정 문학의 현실 인식을 높이 평가한 경우와 그 한계성을 주로 비판한 경우도 있긴 하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그런 현실 인식에 대한 평가의 적절성 문제를 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런 논자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문제시하는 것은 앞에 지적한 바와 같이 양자가 모두 내용을 형식과의 관계 아래 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작품의 이념이나 사상을 기교나 구조와 같은 형식미와는 상관없이 다루고 있다는 것이 이런 글들이 가진 문제로 지적된다는 말이다. 작가에게 현실 인식이나 세계관은 형식이나 미학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들 역시 형식주의자와 마찬가지로 도외시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김유정 자신은 이런 문제들에 관해서 정작 어떤 입장을 보여 왔을까. 그동안 논자들의 관심과 견해이 대세를 중심으로 본다면 그는 의당 문학의 기교나 형식을 강조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병상의 생각'이라는 서간체 수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술의 생명을 잃은 그들(신심리주의 문학가-인용자)에게 가장 중요한 간판으로 되어 있는 것이 형식, 즉 기교입니다. 그들은 괴망히도 치밀한 묘사법으로 인간 심리를 내공하야, 이내 산 사람으로 하여금 유령을 만들어 놓은 걸로 그들의 자랑을 삼습니다."

 

이것은 물론 심리주의 작가의 기교 위주의 태도를 비판한 말이지만, 김유정이 문학에서 기교나 묘사보다 이념이나 사상을 더 강조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그가 연애를 위한 연애나, 예술을 위한 예술이나, 형식주의 · 기교주의 예술 등을 부정하는 대신, 연애는 인류 상호 결합의 근본 윤리며, 사랑은 많은 대중(문맥으로 보아 '민중'이라는 편이 더 어울림)을 한 끈에 꿸 수 있을 때 위대한 생명을 갖게 되며, 예술은 그런 사랑에 기초하여 인류 사회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등의 진술로도 알 수 있다.  <중략>

 

여기서 우선 명백히 해 둘 것은 김유정의 핵심적인 문학 예술관이 민중에 대한 폭넓은 사랑에 기초하여 인류 사회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예술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그런 맥락에서 김유정 작품의 뛰어난 기교와 형식 문제도 생각할 여지가 있지 않나 싶다. 특히 그가 예술의 목적이 전달에 있는가, 표현에 있는가에 대하여 "표현이란 원래 전달을 전제로 하고야 비로소 그 생명이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런 진술은 문학에서 사상, 즉 메시지를 중시하는 그의 입장과 무관하다고 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시각과 주장은 그대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 부분 작품에 반영되어 있으며, 또 그것은 적어도 그의 창작의 기본 방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선영, '김유정 소설의 민중적 성격', "선청어문" 제23호, 서울대학교, 1995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