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1963)
-김승옥-
● 줄거리
사람들은 아름다운 황혼과 설화가 실려 있지 않은 해풍 속에서 영원의 토대를 마련할 수 없어서 도시로 몰려간다. 그들은 더러 뿌리를 내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처참한 모습으로 시들어간다. 도시로 간 지 이 년 만에 돌아온 누이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어제 저녁 어머니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말씨와 정성스런 손짓으로 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를 물었다. 누이는 어머니를 붙들고 왜 자기를 낳았느냐고 한다. 모녀는 같이 울음을 터뜨린다. 도시로 가는 사람들이 여간 해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다가, 나는 누이가 돌아온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가보겠노라고 황혼과 해풍에게 굳게 맹세한다.
소설가라고 자칭하는 작자는 자신의 치기가 사랑하던 여자를 잃고 나서부터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천부의 성격으로 보이며, 그는 세상의 여자들이 모두 자기 소유인 양 불쌍해 한다. 그는 자신의 성격 때문에 적이 많다. 술이라면 활명수만 마셔도 취하는 그가 친구만 만나면 술을 사라고 졸라댄다. 정작 술집에 데려가면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고 얼굴이 시뻘개져서 변소에 간다고 뺑소니를 치거나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시시한 유행가만 부른다. 성실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는 가난이 무슨 자랑이라고 마음에 드는 여자만 있으면 붙들고 가난과 순정 타령을 한다. 전쟁터의 군사라면 총살형의 법령을 알면서도 틀림없이 이중간첩을 했을 사람이다. 거만하지만 째째한 그는 용모에 자신이 없었는지 소설까라고 자칭하면서 으스대는데, 겨우 얄팍한 소설책 한 권을 출판해 놓았다.
그는 도대체 몇 달 동안이나 이발을 하지 않은 것인지 머리털이 코끝까지 닿았으며, 목욕도 얼마 동안에 한 번씩 하는지 곁에 가면 찌릿한 냄새가 난다. 그는 어느 여학교의 교무실에서 용무를 마치고 나오다가 현관의 학생 우편함에서 편지를 몽땅 훔친다. 편지 속에서 홀어머니가 있는 힘을 다해 구해서 딸에게 보낸 돈 이백원을 찾아내고 술집으로 가서 기분 좋은 태도로 술을 마셔댄다. 그는 생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을 빙빙 돌아다니면서 사는 놈이다. 시골의 어머니가 아들이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 심신 평안하다고 해서 성당에 다니기도 했다는 편지를 받고 북북 찢어 버린다. 그는 속아 넘어가 줄 만큼 순진한 사람을 만나면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 환심을 사려고 한다.
퍽 오래 전에 시골에서 편지가 왔다. 누이가 해풍 속에서 살결을 태우면서 자라난 젊은이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누구나 사랑하고 배반하기 마련이어서 나는 심판대에 세우기는 난해한 순환이라고 생각한다. 일기에 절망 도피 자살 등의 용어가 기록되어 있다.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무엇인가를 자꾸만 주고는 떠나간다. 남자는 그 물건들에 둘러 쌓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불러보고 자기에게 자살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자신을 센치한 치한인가 보다고 생각한다. 서울 역전 광장 남쪽의 공중 변소에 들어가 아버님께라는 희미한 낙서를 보고, 자신을 되돌아 본다. 오늘 새벽 '나는 착한 사람입니다'라고 마지막 남은 거짓말을 담은 유서를 썼으나 오후에 찢어 버리며, 도시에서 침묵을 배워왔던 누이가 도시에서 조리에 맞지 않는 감정의 기교만을 배운 나보다 얼마나 훌륭한가를 생각한다.
'가하'오빠라고 시작된 축전의 부호 사용이 자신의 감정의 뉘앙스와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향의 누이는 '축 순산'을 읽을 것이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문 속에서 이 모든 괴로움 속에서 태어난 누이의 자식이 우리가 그것을 겪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원받을 미래인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을 읽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그것이 실현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 인물의 성격
◆ 나 → 도시에서 실패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도시에 온 순박한 시골 청년이다. 그러나 도시에서 감정의 기교만을 배우고 좌절한다. 누이와 달리 귀향하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하기도 하는 동적인물임.
◆ 작자(놈) → 도시에서 닳고 닳은 타락한 인물이며,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치한이 되었다. 항상 유서를 소지하고 다니는 자칭 소설까이다. 바로 현재의 '나'의 모습으로 보이는 정적 인물임.
◆ 누이 → 도시에 가서 할퀴고 찢겨서 돌아온 여인이다. 모든 것을 잊고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살아가며, 시골 청년과 결혼한다.
◆ 어머니 → 누이를 이해하고 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살아가는 여인
● 구성 단계
◆ 1장(축전) : 누이의 순산 소식을 듣고 전보를 치는 이야기(시간상으로 가장 마지막 이야기)
◆ 2장(프로필) : '나'는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서울에 와서는 한 인물을 만난다. 그 인물은 시골에서 올라와 작가인 체하며 살아가는 위선적인 인물로 도시화의 물결 속에 파탄되어 가는 인물이다.
◆ 3장(갈대들이 들려 준 이야기) : 주인공이 도시로 떠날 계기가 되는, 누이가 도회에 가서 실패하고 돌아온 시기의 이야기로, 도시에서 침묵을 배우고 돌아온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누이에게 침묵을 가르친 서울에 직접 올라왔다.
◆ 4장(누이의 결혼) : 도회에 살면서 누이의 결혼 소식과 출산 소식을 듣게 된다.
◆ 5장(日誌抄) : 절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도시의 삶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이야기
◆ 6장(다시 축전) : 1장의 변용
● 이해와 감상
◆ 이 소설은 1960년대 한국 도시의 현상을 6개의 장으로 서술한 소설이다. 도시에 갔다가 실패하고 고향에 돌아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누이와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도시에 온 주인공의 삶을 통해, 도시화에 따른 인간성 상실과 도시인들의 타락한 삶을 고발하고 있다.
◆ 1장은 누이에게 축전을 보내는 이야기이다. "가하, 오빠.'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생소하기 이를 데 없다. '축하한다. 오빠가'라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작가는 굳이 모호하게 표현했다. 한자 병기조차 포기함으로써, 언어에 있어 감정이 배제된 상태의 의미성에만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 전달만 있고 감정이 없는 상태, 인간과 인간의 교감은 사라지고 사무적 교제만 있는 것, 현대인의 고립화되고 건조화된 삶의 심각한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 2장은 '나'가 '그 작자'에 대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그 작자'에 대한 냉소적 평가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 작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그작자'는 결국 '나'와 동일한 정신의 소유자이고, '나'가 나와 같은 인물에 대해 냉소적 비판을 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 이 작품의 배경은 크게 양분된다. 황혼과 해풍이 있는 해변은 산업화의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다변화되어 가는 현대적 삶을 인식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고, 이에 비해 도시(서울)는 수많은 사람들이 파괴되어 가는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누이가 그러했고 작중 화자가 서울에 와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좌절하고 파괴되어 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고향으로는 내려가지 못하고 부유하는 슬픈 공간이다.
◆ 여기서 '황혼과 해풍'은 변화와 생성이 없는 자연 환경으로서 변화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삶을 상징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전원적 삶이라 할 수 있는데, 생성과 변화의 물결 속에서의 자기 완성과 성공과 성취라는 의지의 신화가 없는 감각으로 느끼는 수동적 삶으로 도시를 알기 전에는 조그마나마 만족할 수 있었던 삶이었던 것이다. 또한 본문의 '이 황혼과 이 해풍이 누이의 침묵을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가 지니는 상징적 의미를 산업화한 도시적 삶과 관련해 정리한다면, 긍정적인 의미로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이지만 누이의 침묵을 만든 부정적인 의미는 점차 산업화되어 가는 시대에 적극적으로 변화하지 못하고 전근대적인 삶의 유물로 전락하는 것, 즉 변화 없는 전근대적 시골의 삶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 주인공 '나'는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다. 서울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서울을 흉내내고 있는 촌놈의 모습, 서울에 살고 생활은 촌놈의 그것이었던 자의 모습이다. 산업화 도시화의 물결에서 가장 심각한 피해는 문화적 충격이 준 정신적 외상(外傷)이다. 여기에서 내적 갈등은 첨예화되고 이중적 위상은 선명해지고 있다.
◆ 돌아온 누이 → 누이는 도시에서 우여곡절를 겪었지만 끝내는 돌아왔다.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침묵을 지니고 있지만, 해풍과 황혼으로 그 침묵을 씻고 있으며, 들판의 태양으로 그을린 시골 젊은이와 결혼을 했다. 결혼은 결국은 자연과의 합일을 의미한다. 의식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누이는 서울의 침묵과 아픔이 씻겨 갈 것이다. 그리고 서울에서의 아픔을 다 씻어줄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있는 것이다.
◆ 돌아오지 못하는 나 → 나는 어설픈 도시 흉내를 내고 있으며, 도시에 절망하면서도 도시적 습성을 익히려는 속물로 그려진다. 그야말로 '촌뜨기' 의식을 품고 있다. 시골의 원시성을 부정하고 도시의 문명성을 흠모하는 태도는, 도시를 겉으로는 저주하면서 속으로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이다. 그가 돌아오기 위해서는 누이의 침묵을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짙은 고뇌의 끝에서 흘리는 눈물이 따라야 하고, 기나긴 시간의 극기를 통해 새롭게 탄생할 수 있어야 한다.
◆ 이 작품은 지적 내용을 감각적인 언어로 구체화시켜 나가는 서술 방식으로 서정적이고 시적인 언어의 사용 속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지적인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성공의 신화를 쫓아 도시로 나아간 많은 시골 젊은이와 같이 누이는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갔으나 침묵만을 배워 온다. 즉, 누이는 도시에서 개인주의와 '군중 속에서 느낀 고독'에 의해 침묵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도시적 삶 자체에서 비롯된 것으로 누이만의 것이 아니다. 도시의 삶들에게도 제 나름의 사연은 있게 마련이지만 그것은 실타래같이 얽힌 이율배반성 속에 있는 것이어서 결국은 개인에게 밀려나고 마는 것이다. 도시의 사람들이 이와 같이 고독한데 반해 황혼과 해풍의 사람들은 의지의 신화에 소외된 채 짙은 패배감 속에 고독을 느낀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 소설
◆ 배경 : 해풍과 황혼이 깃든 해변 마을과 황폐하고 타락한 도시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특징
* 서정적이고 시적인 언어의 사용
* 지적 내용을 감각적인 언어로 구체화시키며 서술함.
* 서사적 줄거리보다 내면 의식의 서술에 치중함. 1인칭 독백체 서술이 중심
* 60년대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산업화로 인한 도시 진출 및 그로 인한 문화적 충격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표현함.
◆ 출전 : 『산문시대』(1963)
◆ 주제 ⇒ 도시화에서 비롯된 삶의 개별화 현상과 가치의 상대화
자기 정체성을 잃은 자의 방황과 파탄의 내면 풍경
● 생각해 볼 문제
1. 제2장의 '작자'를 '나'로 볼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 '나'가 비판하는 대상인 '그 작자'의 모습은 '나'의 행태와 일치하며, 이 작품이 서사적 사건과 무관하게 독백으로 일관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또 다른 인물로 설정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2. '해풍과 황혼'과 '푸른색 아스팔트'가 각각 뜻하는 의미를 대조적으로 살펴보자.
⇒ '해풍과 황혼'은 시골에서의 삶을 감각적으로 대유한 표현이고, '푸른색 아스팔트'는 서울을 감각화한 대유이다. '푸른색'의 색채 이미지가 주는 세련딤, 명랑함에 더하여 차가움이란 비정(非情)함을 지닌 곳이 서울이라면, '해풍'의 끈적거림과 '황혼'의 쓸쓸함이 배어 있는 곳이 시골이다. 누이와 나는 해풍과 황혼이 주는 지겨움과 절망을 벗어나기 위해 환상의 푸른 서울로 향했지만 결국 거기서 차가운 삶을 만나 더 깊은 절망에 잠긴다.
3. 누이의 침묵과 '나'의 다변(多辯)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가?
⇒ 서울로 갔다가 둘 다 원래의 자아를 상실했다는 점에서 일치하지만, 누이는 그 절망에 침묵하고, '나'는 그 절망을 위장하며 치기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면에서 '나'의 절망 극복의 방식은 누이에 비해 저급한 수준이라 할 것이다.
4. 누이의 결혼은 어떤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가 ?
⇒ 시골 청년과의 결혼은 시골에의 안착을 의미한다. 서울에의 동경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은, 변증법적 극복의 의미를 지닌다.
5. '나'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이지만, 그래도 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을 제6장에서 찾아보자.
⇒ "우리의 모든 괴로움 속에서 태어난 네 자식은 그것을 겪었었다는 이유만으로서 구원받을 미래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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