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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작품해설]봉산 탈춤 -중요 무형 문화재 제17호-

by 휴리스틱31 2021.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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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 탈춤                 -중요 무형 문화재 제17호-

 

 봉산 탈춤의 유래와 역사

 

봉산탈춤은 황해도 일대에서 놀아오던 탈놀이 가운데 내륙의 평야지대인 황주, 서흥, 봉산 등지의 탈춤을 대표하는 탈춤으로서 해안지대인 해주, 옹진, 강령 등지의 탈춤을 대표하는 강령탈춤과 함께 황해도 지역의 대표적인 탈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봉산탈춤이 대표격으로 된 것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일이며, 특히 일제시대에 들어와서의 일이라고 한다.

 

위의 분포 지역들은 농산물과 수공업 생산물의 교역지이며 또 소도시였고, 소위 남북직로의 주요 읍 및 장터가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탈춤 공연의 경제적 여건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황해도 탈춤은 북으로 대동강을 넘지 못한 반면에 남으로 중부 산대놀이 지역과 남북직로로 하여 연결되었고, 그 극본의 과장과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역시 산대도감 계통 탈춤의 한 분파인 해서형임을 알 수 있다.

 

이 놀이는 세시풍속의 하나로 5월 단오날 밤 모닥불을 피워놓고 연희되며 새벽까지 계속된다. 5월 단오에 노는 것은 조선조 말 이래의 일이고, 그 전에는 4월 초파일에 놀았다고 한다. 양주별산대 놀이도 4월 초파일에 등불놀이와 함께 성대히 놀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특히 고려 이래의 연등행사의 전통을 이은 결과인 것 같다. 단오는 중부 이북 지방에서 남부 지방의 추석과 맞먹는 명절로서 성대히 지냈는데, 시계적으로 이때가 모내기 직전의 망중한의 시기였으며 단오의 명절놀이로서 봉산, 기린, 서흥, 해주 등지에서 탈춤을 추어온 것은 벽사와 기년의 행사로서, 또 하지의 축제로서 그 민속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대놀이가 비교적 전업화된 놀이로서 관의 행사와 보다 많이 관련된 것에 비하면, 봉산탈춤 등 황해도 탈춤은 주로 농민과 장터의 상인들을 상대로 한 놀이였지만, 그러나 역시 원님의 생일이나 그 부임날 같은 관아의 경사와 중국 사신을 영접하는 놀이로도 특별히 연희되었다고 한다.

 

 

봉산탈춤은 원래 봉산 구읍 경수대- 지금의 봉산군 동선면 길양리에서 연희되었으나, 1915년경 군청 등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 옮겨가고, 경의선철도가 개통되자 이놀이도 사리원으로 옮겨져 경암산 아래에서 행해졌다.

 

봉산탈춤은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김진옥(1894~1969,첫목중·노장역), 이근성(1895~1978, 목중·취발이·사자역), 김용익(1902~79, 목중·마부·거사역), 양소운(1924년생, 사당·미얄역), 최경명(1912~85, 말뚝이·취발이역), 김선봉(1922~97, 상좌·소무역), 윤 옥(1925년생, 상좌·덜머리집·무당역), 오명옥(1906~87, 피리·해금·악사)등 8명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나 1997년 현재 양소운과 윤 옥 만이 생존하고 김기수(1936년생, 노장·목중역)가 1987년, 김애선(1937년생, 소무·상좌·목중역)이 1989년에 보유자로 추가 지정되었다

 

봉산 탈춤의 중흥자로는 약 200년 전의 봉산의 이속 안초목으로 일러오는데, 그가 전남의 어느 섬으로 유배되었다 돌아온 후 나무탈을 종이탈로 바꾸는 등 이 놀이를 많이 개혁하였으며, 그 후 안초목과 같은 이속들이 주로 이 놀이를 담당하였다고 한다. 양주 별산대놀이에는 없고 봉산 탈춤에만 있는 사자춤 과장도 약 80여년 전에 새로이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구전으로 미루어 보아서 봉산 탈춤은 200여 년 전부터 있어 온 것이며, 또 다른 지방의 탈춤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으면서 개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봉산 탈춤의 구성

 

# 제 1과장 : 사상좌춤 마당

        사방신에 대한 배례를 포함한 놀이를 시작하는 의식무

# 제 2과장 : 팔목중춤 마당

       * 제 1경 - 팔목중춤 놀이
                 팔목중들이 차례로 파계하는 춤놀이 장면

       * 제 2경 - 법고놀이
                 목중들의 법고놀이 장면

# 제 3과장 : 사당춤 마당

        사당과 거사들이 서도놀양을 합창하며 한바탕 노는 마당

# 제 4과장 : 노장춤 마당

       * 제 1경 - 노장춤 놀이
                산 속에서 도를 닦던 노장이 먹중들에 이끌려 속세에 내려와 소무의 요염한 교태와 능란한
                                 유혹에 빠져든다.

       * 제 2경 - 신장수춤 놀이
                노장이 소무와 자신의 신발을 사고는 신값도 안 주고 신장수와 원숭이를 쫓아내는 마당

       * 제 3경 - 취발이춤 노리
                젊은 취발이가 노장을 내쫓고 소무를 차지하여 아이를 얻는다.

# 제 5과장 : 사자춤 마당

        사자가 노장을 파계시킨 먹중들을 벌하러 왔다가 이들을 용서하고 한바탕 놀다간다.

# 제 6과장 : 양반춤 마당

        양반집의 머슴인 말뚝이가 양반 형제들을 희롱하는 장면

# 제 7과장 : 미얄춤 마당

        영감과 미얄할멈과 영감의 첩 덜머리집과의 삼각관계를 그리다가 영감에게 맞아 죽은 미얄할멈의
                             원혼을 달래는 무당굿으로 끝남

 

 

봉산 탈춤 각 과장에 대한 해설

 

제1과장 : 탈춤놀이의 시작 시간을 알리고 구경 온 관객의 안녕과 복을 빌고 놀이판을 정화 시키고 연희자가 공연을 잘 마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원으로 동서남북 사방신에게 제를 올리는 의식무이다.

 

제2과장 : 여덟사람의 목중이 승려의 신분을 파계하여 음주가무를 즐기며 흥에 겨워 풍류소리에 맞추어 차례로 나와 춤 자랑을 한다. 마지막 여덟째 목중이 나와 먼저 춤을 춘 목중들을 불러내어 합동춤을 춘다.

 

제3과장 : 사당이 거사의 등에 업혀 등장하자 홀애비거사가 사당을 뒤따르며 찝적거린다. 이때 거사들이 홀애비거사를 내쫓고 모두 서서 서도소리를 부른다. 놀량사거리, 앞산타령, 뒷산타령, 경발림을 부르는데 작은 공연 때는 주로 놀량가를 부르며 장고, 북, 소고를 친다.

 

제4과장 : 파계승놀이로 불도에 정진하던 노장스님을 꾀어 소무로 하여금 노장스님을 꼬이도록 노장스님 앞에서 교태스럽고 요염한 춤을 추어 노장스님을 파계시킨다. 이에 노장스님은 승려의 신분을 벗어나 파계를 하고 소무와 어울려 춤을 춘다. 이에 신장수와 원숭이가 등장하여 노장스님의 행태를 비꼬며 조롱을 한다. 이어서 취발이가 등장하여 노장스님과 대무대적을 하여 노장스님을 내쫓고 소무를 차지하여 함께 춤을 춘다.

 

제5과장 : 여덟목중과 취발이 노장스님 모두가 승려의 신분을 파계하고 세상사 즐거운 일에 전념하니 부처님이 노하여 이들에게 사자를 보내어 벌을 준다. 이에 모두 회계하여 잘못을 빌고 용서를 청한다. 사자는 이를 용서하고 화해의 춤을 춘다.

 

제6과장 : 여기에 등장하는 양반은 전통성 있는 양반이 아닌 양반 계급을 돈으로 사서 얻은 양반이다. 무식한 사람이면서 유식한 양반의 흉내를 내는 모양을 풍자한 내용이다. 양반들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비리와 몰락한 양반들의 생활상을 말뚝이가 등장하여 해학과 풍자로 신랄하게 고발한다.

 

제7과장 :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그린 일부 대처첩의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다. 난리 통에 영감을 찾아 나선 할멈은 갖은 고생을 하다가 영감을 만났으나, 영감의 애첩인 용산삼개덜머리집과의 삼각관계에 얽혀 사랑 싸움으로 영감에게 맞아 죽는다. 영감은 애첩을 데리고 간다. 이어 무당이 등장하여 죽은 미얄할미의 혼을 달래주기 위하여 지노귀굿을 한다. 이는 미얄할미의 혼을 달래는 의미와 놀이판의 끝맺음을 알리는 의미와 놀이판의 마지막 정화를 위하여 잡귀를 쫓는 의식으로 탈을 태우는 의식을 겸하여 끝을 맺는다.

 

 

봉산탈춤의 길놀이

 

봉산 탈춤의 길놀이는 탈놀이에 출연하는 일부가 악공의 주악을 선두로 사자·말뚝이·취발이·포도부장·소무·양반·영감·상좌·노장 그리고 남강노인의 순서로 열을 지어 읍내를 일주한다. 이 때 원숭이는 앞뒤로 뛰어다니며 장난한다. 일주하는 도중에 광장에 이르면 행렬자는 모두 어울려서 한참 춤을 추고, 다시 열을 지어 지정된 놀이터로 가서 본격적인 탈춤을 시작한다. 원숭이와 사자는 놀이판이 좁아지면 관객을 정리하여 이를 넓히는 일도 한다. 근래에는 길놀이가 없고, 대신 나무판에 광고문을 적어 사방에 붙였을 뿐이라고 한다.

# 탈춤은 크게 '길놀이 - 탈놀이 - 뒤풀이'의 3단계로 진행되는데, 그 가운데 '길놀이'는 본격적인 탈놀음에 들어가기 앞서 관중들을 불러 모으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봉산탈춤의 연희 형태와 탈

 

봉산 탈춤의 연출 형식은, 피리·젓대·북·장구·해금으로 구성된 이른바 삼현육각으로 연주되는 염불·타령·굿거리곡에 맞추어 추는 이 주가 되고, 여기에 몸짓 동작 재담 노래가 따르는 탈춤으로, 가무적부분과 연극적부분으로 그 구성을 크게 나눌 수 있다.

연희자는 모두 남자였고, 그것도 그 지방 이속들이었으므로 사회적으로 그리 천시되지 않았고, 그 연기가 세습되어 왔는데, 1920년대에 들어서 기생조합이 생긴 후로 남자 대신 기생들이 상좌와 소무를 맡게 되었다고 한다.

 

봉산탈춤에 사용되는 가면은 종이탈이며 그 종류는, 상좌(4), 목중(8), 거사(6, 목중탈을 겸용), 사당(소무탈 겸용), 노장, 소무, 신장수, 원숭이, 취발이, 맏양반(샌님), 둘째양반(서방님), 셋째양반(종가집 도련님) 말뚝이, 영감, 미얄, 덜머리집, 남강노인, 무당(소무탈 겸용), 사자로 모두 34역이나 겸용이 많아 가면은 26개가 사용된다.

 

 

봉산탈춤의 연극적 특징

 

⑴ 공연장소와 극중 장소가 엄격하게 나뉘지 않고 융통성있게 활용되다는 점.

→ 탈놀이가 벌어지는 실제의 공간이 공연 장소요, 작품 속의 상상적 공간이 극중 장소이다. 근대 사실주의 연극에서는 이 두 가지가 엄격하게 구별되지만, 가면극에서는 필요에 따라 일치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한다.

 

⑵ 악공(및 관중)의 극중 현실 개입

→ 극중 장소와 공연 장소가 동일시될 때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가면극에서는 음악 반주를 하는 악사(樂士)와 청중이 연극의 진행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어 있다.

 

⑶ 희극적 과장과 서민적 표현의 활용

→ 가면극은 인물의 형상과 대사 및 동작 표현이 뚜렷하고 희극적 과장을 많이 사용한다. 또한 언어와 동작에 있어서도 서민적 활력과 소박함이 풍부하다.

 

봉산탈춤 제6과장 "양반춤 마당"에 대해서

 

⑴ 갈래 및 성격 : 가면극, 민속극, 서민 문학, 종합예술,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문학

⑵ 의의 : 한국의 독자적인 연극 미학을 보여주고 있으며, 조선후기의 비판적 민중의식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⑶ 주제

     ① 말뚝이의 5가지 재담 → 양반의 어리석음에 대한 풍자
       ② 양반들의 글자놀이 → 양반의 허세와 위선에 대한 풍자
       ③ 취발이 잡아들이기 → 양반의 부정부패(비리)에 대한 풍자

 

 

⑷ 말뚝이 대사의 특징

⇒ 제6과장은 양반에 대한 풍자를 주제로 하고 있는데, 이 풍자의 주역이 바로 하인 말뚝이이다. 말뚝이는 익살과 과장, 열거와 대조, 양반의 어법을 흉내내며 뜻을 뒤집는 반어(패러디) 등의 자유로운 구사로 해학성과 풍자를 짙게 나타낸다. 마치 <흥부전>에서 놀부의 심술타령처럼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 가능한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⑸ 등장인물의  성격

    ① 말뚝이 → 봉산탈춤의 말뚝이는 양반을 모시는 하인이다. 그러나 말뚝이는 양반의 무능력을 비판하고 그들의 비현실적 세계관을 조롱한다. 말뚝이는 시대적 변화에 편승하여, 양반층의 권위를 부정하고 기회만 있으면 양반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성숙한 서민의식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말뚝이의 성격은 우리 나라 가면극에 공통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이러한 인물은 판소리에도 있지만 판소리보다는 탈춤에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또한 춘향전의 방자와도 통하는 면이 있어, 이런 일련의 인물을 '방자형 인물'이라고도 한다.

   ② 양반들 → 낡은 권위에 집착하고 시대적 변화를 감지하지 못함으로써, 서민들로부터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우스꽝스런 존재이다. 말뚝이와의 관계 속에서, 현재와 같은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고수하려고 하는 한, 양반들은 서민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⑹ 말뚝이의 재담 : 말뚝이의 재담은 다섯 개로 구성되어 춤 대목을 경계로 나누어지고, 서로 독립적임.

   ① 구성 → 양반에 대한 말뚝이의 희롱, 양반의 어리석음에 대한 풍자

   ② 특징(공식)

<1> 양반의 위엄

<2> 양반의 위엄을 파괴하는 말뚝이의 항거

<3> 말뚝이를 꾸짖는 양반의 호령

<4> 말뚝이의 변명

<5> 변명을 듣고 안심하는 양반

 

 

봉산탈춤 제7과장 "미얄춤 마당"에 대해서

 

 갈래 및 성격 : 가면극, 민속극, 서민 풍자 예술, 해학적이고 서민적임.

 

 주제 ⇒ 봉건적인 가족 제도 내에서의 여성에 대한 남성의 횡포 비판

 

⑶ 미얄춤 과장의 인물들

   ㉠ 미얄 : 난리로 유랑민이 된 평민 할멈. 직업은 무당이고, 천신만고 끝에 영감을 만나나 덜머리집이라는 첩 때문에 싸우다가 죽는다.

   ㉡ 영감 : 난리로 유랑민이 된 평민 영감.  직업은 맷돌 수선장이기도 하고 땜장이기도 하나. 첩으로 덜머리집을 맞아들여 가정 불화를 일으켜 미얄할미를 죽게 만든다.

   ㉢ 덜머리집 : 영감의 젊은 첩.  서울의 용산, 마포의 술집 출신

   ㉣ 남강 노인 : 일명 남극 노인으로, 인간의 수명을 좌우하는 초월적 존재임.

 

⑷ 미얄춤 과장의 갈등 구조와 성격

⇒미얄 과장에서의 갈등은 두 가지로, 첫째는 등장인물과 사회적 환경과의 갈등이다. 미얄과 영감은 사회적 조건인 난리통에 헤어져 온갖 고난을 겪으나 무당 일과 땜장이 일 등으로 그것을 극복해 나간다. 두 번째는 미얄과 영감의 갈등이다. 영감은 아들의 죽음을 빌미로 미얄을 구박하고 횡포를 부리며 헤어지자고 한다. 영감의 이러한 행동을 가부장제적 사회 내에서의 남성의 횡포로, 미얄춤 과장에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횡포를 비판받아야 할 것으로 부각시켜 놓았다.

 

⑸ 미얄춤 과장의 제의적 성격

⇒ 미얄과 영감은 그 동네에 잡귀가 못 들어오게 막아주는 일종의 신적(神的) 존재이다. 이 두 인물은 헤어졌다가 만나자마자 아이를 낳으려 하나 실패하고, 영감은 젊은 첩인 덜머리집을 선택하고 미얄은 부부 싸움에서 패배하여 죽고 만다. 이것을 제의적으로 해석하면 미얄과 덜머리집의 대립은, 곧 늙음과 젊음의 대립이며, 미얄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이 이의 근거이다. 이러한 갈등은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에서 기원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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