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1935) -유치진-
● 줄거리
<제1막>
국서네와 그 이웃들은 오랜만에 풍년이 들어 기쁘고 들뜬 마음으로 타작하기에 여념이 없다. 국서는 소를 가진 것을 긍지로 삼고, 아들보다 더 애지중지한다. 둘째 아들 개똥이는 만주에 갈 노자를 마련하기 위해 소를 팔아 달라고 부모를 조른다. 맏아들 말똥이는 농사 빚 때문에 팔려 가야 할 처지에 놓인 마을 처녀 귀찬이와 결혼하기 위해 소를 팔아 그 빚을 갚아 달라고 부모를 조른다.
< 제2막>
국서네는 빚을 내서라도 귀찬이네 빚을 갚아 주고 말똥이와 귀찬이를 결혼시키려고 한다. 개똥이는 만주로 가기 위해 소를 몰래 팔 궁리를 한다. 한편, 국서네는 돈을 빌리기가 어렵게 되자 소를 팔기로 결심한다. 그때 소 장수가 그 소는 이미 자신에게 팔기로 하지 않았느냐고 말해, 국서와 말똥이는 개똥이를 의심하게 되고 이에 집안에는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다. 그러나 개똥이는 소를 팔 생각만 하고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마름이 나타나 밀린 소작료 대신에 소를 끌고 가 버린다.
<제3막>
귀찬이는 결국 일본으로 팔려 가고, 국서는 배앗긴 소를 되찾기 위해 동생 국진에게 마름을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재판에 이겨 소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지주에게 집뿐만 아니라 소작논까지 떼일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다. 결국 재판은 무산되고 소와 빚이 상쇄되고 만다. 국서는 울분을 이기지 못해 소 울음을 울고, 말똥이는 지주의 곳간에 불을 질러 주재소로 잡혀 간다. 개똥이는 만주로 가겠다고 하며 유자나뭇집 딸은 따라가겠다고 한다. 한편 소는 마름을 들이받은 후에 집으로 돌아온다.
● 감상 및 이해
이 작품은 소를 둘러싼 인물들의 갈등을 그린 것으로,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우리 농촌 현실의 참담함을 보여주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극의 갈등이 소를 금전적 가치로 보는 아들과 교환 가치로 생각하지 않는 아버지 사이에 일어난 세대 갈등으로 비친다. 그러나 마지막에 소를 일본인 지주가 가지고 가면서 일어난 농가의 분열은 갈등의 근본 원인이 식민지의 착취 구조 때문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횡포는 농촌의 젊은이들조차도 빈곤과 고달픔에 절망하게 만들었다.
소를 사이에 두고 빚어지는 세 부자 간의 팽팽한 극적 긴장은 마름이 개입하면서 깨어지고, 다시 지주(마름)와 국서 가족 간의 갈등으로, 그리고 이는 다시 식민지 치하의 농민의 삶과, 일제라고 하는 더 큰 갈등의 축으로 바뀐다. 이렇듯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은 소를 중심으로 빚어지는데, 여기서 소는 농부가 아끼는 가축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일제에 대한 민족의 상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지주에게 소를 빼앗긴 국서, 사랑하는 약혼녀를 잃은 말똥이, 만주로 가는 여비를 구할 길이 없는 개똥이 등은 모두가 꿈을 상실한 당대 농민들의 모습으로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식민지 치하 농촌의 구조적 모순을 고발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농민들의 소망과 좌절을 그리고 있다.
● 정리하기
▒ 성격 및 갈래 → 현대 희곡(사실적, 현실고발적), 장막극(3막), 사실주의극
▒ 인물
* 국서 : 소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선량한 농민, 완곡하고 우직한 성격
* 말똥이 : 국서의 장남, 미련하고 단순하며 과격하다.
* 개똥이 : 국서의 차남, 선량한 성품을 지님.
▒ 배경 → 1930년대의 농촌(당시 일본은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하여 농경지의 실제 경작자였던 농민들을 토지 소유권에서 제외하고 소작농으로 전락시켰다. 이 일 때문에 지주와 소작농의 계급 구조가 양극화되어 당시 자작농은 16%에 불과할 정도였다. 이러한 농촌 계급 간 갈등은 국서의 소송과 말똥이의 방화로 구체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 출전 → 동아일보(1935), 이후 2차례에 걸쳐 개작됨.
▒ 갈등
* 소를 지키려는 아버지와 팔려는 아들 간의 갈등
* 소를 서로 차지하려는 형제 간의 갈등
* 소를 지키려는 소작인과 빼앗으려는 마름 간의 갈등
▒ 의의 → 사실주의 계열의 첫 장막극
▒ 주제 → 가난에 시달리는 일제 강점기의 농촌 현실
▒ 특성
1) 당대 사회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함.
2) 희극적 인물의 익살스러운 대사를 통해 비극성을 심화함.
3) '소'의 기능 : 작품 전체의 갈등을 제공함, 당대 농민들의 생존권을 상징함, 주제를 상징하는 소재
● 참고자료
◆ 흔들리는 농가와 '소'의 대상화
'소'는 1930년대의 시골 농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30년대는 자본주의가 일터와 삶의 방식을 재편하는 시기로 이러한 시류는 시골 농촌에도 불어 닥친다. 농촌의 젊은 세대들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가거나 도시로 팔려 갔다. 달구지나 연자방아 대신 트럭과 기계 방아가 사용되면서 농가의 상징이던 '소'는 단순히 교환 가치로만 평가받게 되었다.
이러한 시류는 한 농가를 위태롭게 하는데, 이 과정은 소를 대상화시키는 과정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소를 대상화시키는 과정은 주로 인물들의 욕망이 드러나면서 나타난다. 전반부에서는 국서의 아들들인 말똥이와 개똥이에 의해서 소가 대상화되며, 후반부에서는 마름에 의해 대상화된다. 점점 소가 수단화되면서 농가는 위태롭게 되고 급기야 한 집안이 파탄 위기에까지 이른다. <중략>
소를 판 돈으로 말똥이는 귀찬이네 빚을 갚아 주고 귀찬이와 결혼을 하고 싶어 하고, 개똥이는 일확천금을 얻으러 만주로 갈 노자를 마련하고자 한다. 소를 대상화함으로써 생긴 상호 간의 욕심은 싸움으로 번지고 결국 한 집안의 분란이 되어 농가의 평화로움을 깨뜨리게 된다. 그러나 농가의 분열이 가시적으로 나타나면서 한 집안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은 마름이 소를 '환금의 가치'로 대상화시키면서이다. 즉, 말똥이와 개똥이가 소를 대상화시키는 것이 농촌 세대와 비농촌 세대 간의 갈등 징후라면, 마름이 소를 대상화시키는 것은 본원적 계급 간의 갈등 때문에 빚어진 파국적인 갈등 심화로 이어진다. <중략>
즉, '소'에서는 위험에 빠진 국서네 집과 해체 양상을 띠는 농촌의 분열 기미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드러나며, 이를 소의 대상화 과정으로 극화시켜 놓고 있다.
-이명수, '유치진의 '소' 연구', "한국연극학" 제9권 1호, 한국연극학회, 1997
◆ 한국 근대극의 운동과 사실주의의 의미
한국 근대극 운동의 지도자들을 매혹시킨 연극 원리는 근대 유럽의 연극, 그 중에서도 사실주의 연극이다. 사실주의는 인간의 삶과 사회의 문제를 과학적인 근대 사상에 입각하여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논리적으로 추구함으로써, 무대에서 일어나는 연극적인 사태가 관객으로 하여금 최대한 현실성과 실제성, 인과성을 느끼도록 한다는 점에서 자연주의와 공통점을 갖는다. 사실주의는 무대의 사실적 실제성이 강조된 19세기 말기의 리얼리즘으로부터 현실 개혁을 위한 작가의 실천적 노력을 담으려는 노력, 직접적인 선전과 선동을 목적으로 하는 것, 혹은 부단한 현실 인식의 노력 속에서 당대적 삶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리얼리즘 정신 등 여러 가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중략>
한국 극작가들과 지식인들은 사실주의 연극이 한국을'선진' 사회로 이끌어 줄 매개체라고 믿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거기에는 네 가지 쥬요한 이유가 있었다.
먼저, 사실주의 연극의 제작은 과학적 합리주의를 반영한 정확한 이론을 토대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둘째로, 사실주의 연극은 연극 제작의 모든 측면에서 매우 정교하고도 치밀한 계획과 사전 작업을 요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한국 근대극 운동 지도자들은 20세기 초반 유럽과 미국이 과학 기술의 발달로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워 전 세계를 지배했다고 생각했다. 이 근대 자연 과학 정신이야말로 근대화를 이룩하는 핵심 동력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실주의 연극은 단순한 예술 행위가 아니라 과학적 제작 원리를 구현한 과학 정신의 예술적 구현체라고 생각했다. <중략>
또한 유럽의 사실주의 연극은 특정 계급이 아닌 대중들을 겨냥한 연극이자, 대중들이 향유하는 연극이었다는 점, 당대의 사회적 현안을 무대로 운반해 관객들로부터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한국 지식인들이 사실주의 연극을 이상적인 모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윤백남과 유치진은 근대극의 핵심은 사실주의라고 생각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근대극의 기능적인 측면을 옹호하고 강조한 대표적인 이론가에 속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고찰하고 나면, 한국 근대극 운동 시대를 견인한 한국 지식인들이 자국의 전통극과 전통 연희를 활용하지 않으려 한 나름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이성과 논리, 과학적 객관의 세계관을 예술적으로 구현한 결정체들이 근대극에 유용하거나 적합한 연극적 요소라고 생각했으나, 전통 연희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전무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처럼 '이성주의와 논리'라는 기준에서 전통극은 여러 면에서 미비한 연극 형식일 수밖에 없어 외면될 수밖에 없었다.
-장원재, '전통극과 사실주의', "외국문학연구" 제21권, 한국외국어대학교, 2005
◆ '소'에 나타난 유치진 희곡의 인물 형상화 방식
'소'의 주동 인물 말똥이와 개똥이는 각각 농사/노동, 강건/유약, 본능적/의지적이란 점에서 변별성을 지닌다. 말똥이는 우직하고 순박하여 현실 안주를 꿈꾸지만 끝내 실현되지 않으며, 제 살 궁리에 몰두하여 대안 모색에 나서던 개똥이도 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만다. 이들은 모두 풍년을 맞았다고 해도, 이태 연속된 흉년에다가 밀린 소작료를 감당 못해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마는 아이러니한 현실의 패배자들이다. <중략>
종결부에서 이들은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는데, 말똥이는 지주네 곳간에 불을 놓고, 개똥이는 상처가 채 낫지도 않은 상태에서 만주행을 강행한다. 결국 주어진 환경에 굴복하는 아웃사이더에 불과함을 명백히 보여 준다. 말똥이의 방화로 밤하늘이 붉게 물들면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은 이 극의 비극성을 한껏 고조시킨다. <중략>
'소'의 반동 인물은 외면상 지주를 대신해서 소작료를 받아 가고 밀린 소작료 대신에 농가의 명줄인 소를 끌고 가는 마름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소'에 등장하는 마름은 지주의 대리인으로서 풍년을 맞아 희희낙락하는 소작인들의 농작물을 무자비하게 수탈하는 데 앞장서는 인물로 나온다. 극중의 마름은 2년간 밀린 소작료를 받아 내기 위해 국서네 소를 허락도 없이 가져가 버림으로써 말똥이의 결혼에 대한 꿈과 개똥이의 만주행 꿈을 빼앗아 버린다. 하지만 '소'의 반동 인물은 마름만이 아니다. 친일 지주는 마름을 통해 농지령의 시행에 앞서 밀린 소작료를 모두 받아 내게 명령을 내린 존재다. 지주의 존재는 무대 전면에 나서지는 않지만 무대 이면에서 마름을 조종함으로써 소작농 위에서 군림한다. <중략>
이처럼 이들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소작농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며 소작농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가로막는 장애물의 역할을 하고 있다. <중략>
주요 인물의 형상화 문제에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 될 요소는 바로 인물과 무대 이면에서 주요 사회적 · 정치적 · 경제적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는 환경 간의 문제일 것이다. 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의 관계, 혹은 주인공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헤쳐 나가려 하는가? 유치진의 장막극에는 극적 환경이 은폐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1930년대 작품에서는 주동 인물과 환경이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가 결국 주동 인물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굴복하고 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재명, '유치진 희곡의 인물 형상화 연구', "한국연극학" 제28권, 한국연극학회, 2006
◆ 유치진의 리얼리즘극의 특징
1. 원심적 구성
작품 '소'에는 국서네라는 한 가족에 초점을 맞추면서 소를 둘러싼 여러 명의 욕망이 부딪치는 갈등의 서사들이 능숙하게 교직하여 나타난다.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병렬하면서도 그들의 중심 행동들이 모두 소를 획득하려는 욕망으로 중첩되기 때문에 단편들의 나열이 아니라 긴밀한 구조적 연관성이 만들어진다. 국서는 '농가의 명줄'인 소를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이 높은 농부이고, 말똥이는 소를 담보로 귀찬이네 빚을 떠안고 귀찬이에게 장가들려 한다. 둘째 개똥이는 소를 팔아 장사 밑천을 삼고자 하며, 사음(마름)은 밀린 도지 대신 소를 끌고 가려고 한다. 결국 국서네 가족이 외부 인물인 지주에게 소를 뺏기면서 국서의 가정에서 일어난 한 문제가 그 당시 식민지의 착취 구조가 만든 문제임을 축약적으로 보여 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2. 희비극적 요소
작품 '소'의 전체 장면은 풍년이 든 추수기를 배경으로 희극적 무드와 마을의 농악 행렬이 시종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나 결말에서는 소를 지주에게 빼앗겨 귀찬이에게 장가들지 못하게 된 말똥이가 지주네 곳간에 방화하는 결말로 급작스럽게 비극적 톤으로 전환된다. 이는 되도록 많은 소극적(笑劇的) 요소를 점철하여 웃음 속에 한 방울의 눈물을 뽑아내려는 의도의 반영이다.
3. 무대 밖 사건
작품 '소'에서 파국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사건인 말똥이의 방화는 무대 밖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처리된다. 또 풍년을 축하하는 흥겨운 농악 소리는 연속 무대 밖에서 들려와 무대 위 사건인 국서네 가족의 '박탈의 과정'과 대비되고 있다.
4. 부재 인물
지주를 대신하여 사음(마름)을 등장시켜 밀린 도지를 받아 가게한 설정은 배후에 정치적 배경을 숨기는 유치진의 극작 전략으로써 지주는 식민지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5. 민요, 전래 동요, 탈춤의 사용
각 인물들이 부르는 민요나 풍요는 그들이 처한 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분위기를 형성한다. 특히 '풍요/박탈'의 이중적 비전과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데 민요와 전래 놀이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무대 위에 일상적 현실의 재현을 넘어 민족 정서와 민족적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김성희, '유치진의 초기 리얼리즘적 연구', "드라마연구" 제24호, 한국드라마학회, 2006
◆ 한국적 리얼리즘극의 시초 유치진
해방 직후의 상황에서 극작가들이 생각한 것은 식민지 시대의 회고였고 그 반성이었으며, 외세로부터 민족의 자존을 지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민족정기를 기리는 독립 투쟁적인 현대극과 함께 식민지 유산인 민족 차원의 가난을 리얼하게 그린 작품들이 속출했다. 이러한 1920~1930년대의 경향 문학 같은 빈궁극과 함께 유행한 것은 통속극이었고, 이들은 대체로 일제 강점기에 대한 비판과 식민지적 잔재의 내재된 계몽적 리얼리즘이었다.
당시의 이러한 식민지 문학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었던 김영수, 김동식, 오영진 등과는 달리 1930년대 이후의 유치진은 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리얼리즘 수법으로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중략>
유치진은 관동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탔다."는 허위 사실을 믿은 일본인들이 무고한 조선인들을 학살한 사건을 겪고, 강렬한 반일 감정과 저항 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30년대 이르러 그는 카프(KAPF) 문학을 깊이 수용하게 되었다. 계속된 식민 정책으로 취약하기 이를 데 없는 민족적 저항 정신에 나름대로 연극으로써 그 사명을 다하고자 했던 그에게 예술은 그 시대의 가장 보편적이며 다수 사람들의 고통과 직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자연스럽게 자각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유치진은 일제에 대한 저항의 방편으로써 연극을 선택하게 되었다. <중략>
구조적인 부조리로 인해 일어났던 사회적인 사건들을 극화하여 공연함으로써 약한 자들의 대변자와 계몽 역할을 했던 '브나로드' 운동은 당시 한국의 현실에도 절실히 요구되었던 문화 운동인 셈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도 꿈으로 그칠 수밖에 없을 만큼 현실은 열악하였다. 그 대신 그는 극예술연구회를 설립하여 서구 리얼리즘극 소개와 함께 리얼리즘극을 우리 토양에 맞게 수용하고자 노력하였다.
-이강렬, '리얼리즘에의 반성', "한성어문학" 제16권, 한성어문학회, 1997
◆ 약속의 문학, 희곡의 특성
희곡은 관객이 상연되고 있는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관객과의 약속을 기본으로 한다. ① 극 속의 인물은 배우가 분장하여 연기하는 것이지만, 배우와 배우의 행동을 모두 실제라고 간주한다. ② 인물이 극 속에서 하는 독백과 방백은 무대 위의 다른 등장 인물이 듣지 못한다고 여긴다. ③ 희곡에서의 무대를 실제 현실로 받아들인다.
희곡은 배우의 행동과 대사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므로 서술자가 극속에 개입될 수 없다. 따라서 화자나 서술자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다른 갈래에 비해 객관적인 문학 형식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인물의 성격과 의지가 빚어내는 극적 대립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므로 인물의 개성이 뚜렷해야 하며, 사건 또한 압축, 생략, 집중, 통일된 행동의 연결로 드러나야 한다.
● 활동 다지기
1.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상황에 대한 등장인물의 태도를 살펴보자.
인물 | 상황 | 태도 |
국서 | 애지중지하던 소를 마름에게 빼앗긴 상황 | 딱히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괴로워 함. |
귀찬이 부 | 돈 받고 딸을 팔아서 일본으로 보낸 상황 | 딸의 소식이 없자 불안해하며 자식을 팔아넘긴 것을 자책함. |
우삼 | 딸을 팔아 보낸 귀찬이 부를 위로하는 상황 | 다소 수다스러운 분위기로 슬픔에 찬 이웃을 위로하고자 함. |
국진 | 형 대신 소 문제를 해결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상황 |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일을 해결하고자 노력함. |
2. '이전 줄거리'를 참고하여 각 인물에게 소는 어떤 존재인지 정리해 보자.
국서 | * 생명처럼 소중하여 팔 수 없는 존재 * 자식보다 귀한 소중한 존재 |
개똥이 | * 만주로 돈 벌러 갈 노자를 마련하기 위해 팔아야 하는 대상 * 물질적 가치로서의 존재 |
마름 | * 빚의 대가로 받아 내야 하는 대상 * 물질적 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 것 |
말똥이 | * 귀찬이와의 결혼을 위해 팔려고 했던 대상 * 결혼을 성사시키는 데 사용될 물질적 가치로서의 존재 |
3. 이 작품이 앞에서 배운 갈래들과 어떻게 다른지 말해 보자.
* 막과 장으로 나누어진다.
* 인물의 대사와 행동으로 작품이 전개된다.
* 서술이 아니라 지시문, 대사 등으로 내용이 구성된다.
*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하여 만들어진다.
* 등장하는 인물의 수나 장면 전환 등에 제약이 따른다.
4. 이 작품을 공연하기 위한 무대를 꾸며 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자.
(1) 다음을 참고하여 소품을 적절하게 배치한 무대를 그려 보자.
실재하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묘사한 사실주의 연극은 빈민 계층의 가난한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기 위해 실제 방을 옮겨 놓은 듯한 무대를 설계하였다. 이는 관객들이 4면의 벽 가운데 한쪽 면을 뚫어 몰래 들여다보는 듯한 효과를 노린 것인데 이를 '제 4 벽의 원리'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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