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1949) -오영진-
● 줄거리
이중생은 일제 강점기에 외아들 하식을 징용에 보내면서까지 친일을 하여 많은 재물을 모았다. 이후 광복이 되자 사회적인 혼란을 틈타 국유림을 차지하기 위해 무허가 산림 회사를 차리고, 둘째딸 하연을 미국인의 정부로 이용하면서 부를 유지하려 온갖 술책을 부린다. 그러다가 지금껏 저질러온 사기, 배임(주어진 임무를 저 버리거나 임무의 본래 뜻에 어긋남. 주로 공무원 또는 회사원이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임무를 수행하지 않고 국가나 회사에 재산상의 손해를 주는 경우), 횡령, 탈세 혐의로 체포 수감되었고, 그의 형 이중건은 땅을 팔아 산 집이 이중생의 명의로 된 것을 발견하고 집을 찾아내라고 동생의 집에 드러눕는다. 집안 식구들은 걱정을 하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고, 둘째딸 하연은 아버지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으면서 언니인 하주와 매일같이 충돌하고 자기 나름으로 회사에 취직한다. 이중생은 최 변호사의 도움으로 특별 보석으로 풀려나고, 이중생과 최 변호사는 이중생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것처럼 꾸며 재산을 보호하려는 모의를 한다.
그 다음날 저녁, 이중생이 재산 관리인으로 지정하고자 한 사위 송달지는 천성이 착하기 때문에 고민에 빠진다. 송달지는 망설이지만 이중생은 '자신의 전 재산을 송달지에게, 그리고 형 이중건과 최 변호사에게 상당한 돈을 주라'는 유서를 써 놓고, 면도칼로 손목을 끊어 죽은 것으로 위장을 한다. 송달지가 그 일에 쉽게 응하지 않자 이중생은 큰딸 하주에게 병원의 도장을 가져오게 하여 사망진단서까지 직접 작성하고 5일장으로 부고를 인쇄하여 치상(治喪)을 준비시킨다.
그러나 초상집에 온 김 의원의 제안 때문에 전 재산을 무료 병원을 설립하는 데 헌납하게 되고 만다. 이를 관 속에서 듣고 있던 이중생은 김 의원이 돌아가자 김 의원의 제안을 받아들인 송달지를 크게 꾸짖는다. 이때 징용에서 돌아온 하식이 아버지의 행위를 비판한다. 진퇴양난에 빠진 이중생은 일을 도와주기 위해 와 있던 아낙에게 귀신 취급을 받고 결국 진짜 자살을 하여 생을 끝마치게 된다.
● 감상 및 이해
이 작품은 1949년에 발표된 희곡으로, 친일파 경제 사범인 주인공 이중생의 몰락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광복 후에도 친일 잔존 세력이 활개치던 병든 사회상을 고발하는 동시에, 낡고 부패한 기성 질서의 지배로부터 정의롭고 건강한 새 시대로의 전환에 대한 희망을 전하고 있다.
3막 4장으로 된 이 작품은 영남지방에 퍼져 있는 인물 전설인 방학중의 이야기에서 소재를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데, 1949년 5월 '극예술 협의회'에서 초연되었으나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7년 극단 '신협'이「인생 차압」으로 개명하여 공연하면서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주인공 이중생은 일제 시대에 외아들을 솔선하여 징용에 보내면서까지 치부를 한 전형적 친일파다. 해방이 되자 이중생은 사회적 혼란을 틈타 국유림을 사유화하기 위해 무허가 산림회사를 차리고, 달러를 융자받기 위해 작은딸을 미국인의 정부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전에 그의 음모가 발각되어 사기, 배임, 횡령, 공문서 위조 및 탈세범으로 입건되는데, 여기서도 그의 교활성은 잠자지 않는다. 그는 고문변호사와 공모하여 거짓 자살극을 꾸미고 재산을 보전하려 하지만 진상 조사 과정에서 사위에게 넘긴 재산이 몽땅 무료병원 건립에 쓰이도록 결정된다. 진퇴양난에 빠진 이중생은 결국 진짜 자살로써 생을 마치게 된다.
● 정리하기
▒ 갈래 → 장막극(3막 4장), 사회 풍자극, 희비극
▒ 성격 → 풍자적, 해학적
▒ 인물
* 이중생(53세) →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이자 기회주의자. 일제 강점기에 친일을 하여 돈을 벌었으며, 광복 후에는 무허가 목재 회사를 차려 거드름을 부리며 산다. 본디 천박하고 무식한 인품을 가지고 있다.
* 우 씨(54세) → 이중생의 아내. 남편을 대단한 존재로 알고 부자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여인이지만, 집안 하인들에게조차 존경을 받지 못한다.
* 송달지(40세) → 이중생의 사위. 내성적이며 온순한 성격으로, 생활력이 없다. 아내에게 핀잔을 받아가며 처가에 얹혀 지낸다. 그러나 극의 끝부분에서 성격의 변화가 나타나는 인물이다.
* 이중건(63세) → 이중생의 형. 이중생의 비도덕적인 면을 비판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동생의 재산으로 편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위선적인 인물이다. 극중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여 웃음을 유발시키는 희극적인 면도 있다.
* 최영후 변호사(43세) → 이중생의 고문 변호사. 윤리의식이 결여된 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문제적인 인물 이중생에게 지식을 파는 인물이다.
* 김 의원 → 국회의 조사 의원. 합리적, 객관적, 의지적 성격의 소유자이다. 사건을 전환하고 극의 절정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하식 → 이중생의 아들. 아버지 이중생 때문에 일제의 징용에 끌려가 10년만에 집에 돌아오게 된다. 해방된 조국의 건강한 가치를 상징한다.
* 하주(35세) → 이중생의 맏딸, 단지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남편(송달지)를 천대함.
* 하연(30세) → 막내딸, 사업을 위해서는 불륜도 서슴지 않는 인물임.
* 임표운(32세) → 이중생의 비서
▒ 배경 → 광복 직후, 서울
▒ 주제
* 친일 세력 청산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구
*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인물에 대한 풍자와 비판
▒ 특성
1) 극적 긴박감과 희극적 분위기를 공존시켜 긴장과 이완의 효과를 줌.
2) 인물을 희화화하여 풍자함으로써, 전통적 해학극의 표현방식을 차용함.
3) 위장과 위장의 실패라는 서사적 구조를 취하며, 희극과 비극의 요소가 공존함.
● 참고자료
◆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라는 제목의 상징적 의미
* '살아 있는' → 살아 있으면서 죽은 척하는 인물의 이중적 행태, 살아 있는 사람을 살아 있다고 강조함으로써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는 조롱의 효과, 지키려 했던 재산도 잃고 자식에게 존재를 부정당하는 등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는 반어적 의미 등을 나타낸다.
* '이중생' → 인물의 '이중생'을 드러내고자 한 이름, 두 개의 생(生)이란 뜻으로 두 번 죽는 사람 혹은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 행세를 해야 하는 인물의 상황을 반영한다.
* 각하 → 붙일 필요 없는 높임의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인물을 조롱하고 야유하는 의도를 내포한다.
◆ 무대 장치
이 작품의 무대 장치는 일본식과 한국식이 절충된 가옥으로 해방 이후에 쉽게 볼 수 있던 형태이다. 특히 이중생의 집은 정원이 있는 등 호화롭게 표현되어 있는데, 그 화려한 가옥의 모습은 격조 없는 집안 분위기와 대비를 이룬다. 또한 이러한 무대 설정은 사건이 진행되는 시기가 광복 직후라는 것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는 한편 작품의 시사성, 세태 풍자적 성격과도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일본식이 가미된 가옥의 모습을 통해 해방이 되었음에도 친일 세력이 온갖 술수를 동원하여 득세하고 있던 시대 상황을 암시하며, 그러한 상황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의 시사성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는 광복 이후의 시대상을 선명하게 반영한 사회 풍자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이 쓰인 당시 친일 잔재의 청산 문제는 가장 큰 사회적 쟁점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다룬 문학 작품은 많지 않았다. 오영진은 드물게 이중생이라는 친일파 경제 사범을 극의 소재로 삼아 통렬한 고발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또한 징병에서 돌아온 하식이 보고 온 실상을 이중생에게 전하는 대사를 통해, 공산주의 세력이 강화되고 잇으며 그것이 민족의 장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작가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작품이 시사성이 강한 작품이라는 하나의 근거가 되고 있다.
◆ 희곡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와 시나리오 '인생 차압'
희곡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는 1958년에 시나리오 '인생 차입'으로 각색되어 영화로 상영된 바 있다. 희곡의 배경은 광복 직후이고, 시나리오의 배경은 6 · 25 전쟁 이후 5년이 경과한 때이다. 따라서 희곡에서 중요하게 다룬 광복 직후의 혼돈 상황, 친일파 청산에 대한 언급은 시나리오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희곡이 시대 변화 속에서 이중생의 운명을 추적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면, 시나리오는 하연과 임표운의 사랑 이야기 같은 대중적인 주제를 부각하고 있으며, 희곡에서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하연, 임표운, 하식, 송달지 같은 젊은이들의 모습을 상세하게 그리면서 젊은이들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세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희곡의 결말이 이중생의 진짜 죽음으로 비극적으로 처리된 반면, 시나리오는 이중생이 자신의 가까 상여가 집을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장면으로 끝나면서 희극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차이점이다.
◆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의 작품 배경 및 주제의식
오영진의 첫 희곡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는 1949년에 쓰인 사회 풍자 희극이다. 이러한 세태 풍자적 주제는 그가 민속 3부작을 계획했던 일제말 당시만 해도 민족주의자로서의 울분을 감내하면서 차마 다루지 못한 주제였다. 그가 '그 누구를 위해서' 영화를 선택했고,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고, 그 후 희곡을 썼는데, 결국 그가 의도하는 바가 선과 악의 대립에서 선의 승리를 거두는 것을 표현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우선적으로 전통 정신의 현대적 계승과 전통 생활미의 현현을 목표로 삼고 잔재한 봉건적 사고를 비판 풍자하고 선(善) 지향의 삶을 제시했던 것이다.
해방을 맞은 우리 민족이 환희와 희망의 기대만큼 자유스럽게 되고, 또 새로운 조국으로 건설되고 발전되리라 믿었던 그가 이데올로기로 인한 민족 분열과 친일 잔도들의 배신적 이중성에 사회 질서가 혼란되어 감을 보고 아픔을 느꼈으며, 이러한 시대적 현상을 작품으로 풍자했던 것이다.
특히,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는 해방이 된 후에도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떳떳이 애국 자연하는 친일 세력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반민족적 생태를 파헤치고 있다. 그래서 유영민은 이 작품에 대한 논평에서 '친일파 잔도들의 폐부를 찌르는 사회 풍자극으로서 해방과 함께 소각되어야 할 반민사의 전면에서 날뛰고 있는 사회상을 비판한 것'이라 했다.
이와 같이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는 역사적 현실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시했으며, 오영진의 사상적 배경 및 창작 의도와 방향을 확실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당시 극단 신협에서 공연된 후에 이춘인은 다음과 같이 연극을 평했다.
"오영진 씨가 가지고 있는 유머와 풍자는 그의 전작들에 있어서 이미 정평이 있거니와 금번 신희곡 속에 담겨 있는 풍자 또한 지금 대두되다가 흐려져 가는 반민자들의 교활하고도 가증스러운 발악 양상을 정면으로 날카롭게 찌르는 대신, 오영진 씨의 독특한 유머로 반공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민족을 배반한 자들의 교활하고도 가증스러운 발악 양상을 정면으로 공격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중략> 또한,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나라를 속이구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는 것과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이라면 나라를 팔아 먹으려는 새로운 세력과 새롭게 대두된 권력과 독재자가 있는 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서 그의 미래 지향적인 국민 자세를 암시해 주고 있다.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는 주인공을 통하여 해방을 전후한 격동기를 리얼하게 비판하고자 하는 작자의 의지가 작품 속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적 역량이 민족사 전면에 재림하고 있는 병든 사회상을 풍자 고발한 것이 주제이다.
-한옥근, '우천(又川)의 작품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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