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기계(1959) -차범석-
● 줄거리
양회기는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온 폐 전문 의사이다. 어느 날, 인옥이라는 여자가 진료를 받으러 온다. 연초 공장의 포장공으로 일한다는 그녀는 폐 수술을 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엑스레이 검사 결과 그녀의 상태는 수술을 할 수 없을 만큼 악화되어 있었다. 회기는 수술을 거부했지만, 그녀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꼭 살아야 한다고 수술을 간청한다. 그러나 회기는 그녀가 너무 가난한데다가 중환자여서 수술의 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그녀를 냉정하게 돌려보낸다.
잠시 후 그녀의 남편 상현이 회기를 찾아온다. 그는 회기에게 수술을 거부한 것에 대해 치하하며, 아내의 폐 수술을 해 주지 말 것을 거듭 당부한다. 이유인즉, 없는 돈에 어떻게 결과도 불분명한 폐 수술을 하겠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내의 바람기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설령, 아내가 수술을 받아서 정상인이 된다고 해도 부정하게 놀아날 것인데 돈을 들여서 수술을 해 주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이다. 결국, 그런 여자는 죽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회기는 그의 이기주의적이고 비정한 태도에 분노하고, 상현의 행위는 간접 살인이라고 주장하며 인옥을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회기는 간호사에게 인옥이 희망하면 수술을 해 주겠다는 내용의 속달 우편을 보내도록 지시한다. 기계처럼 빈틈없고 비인간적인 회기가 상현의 부도덕한 태도에 충격을 받아 인간적인 모습을 회복한 것이다.
● 감상 및 이해
이 작품은 1959년에 발표된 단막 희곡이다. 이 글의 전반부는 인옥의 인간적인 호소와 회기의 기계적 대응이 갈등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상현의 기계적인 태도와 회기의 인간적 면모 사이의 갈등이라는 극적 반전을 통해 전반부와 대립적 양상을 보인다. 기계로 불리던 회기가 자신보다 더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상현의 행동을 보면서 '성난 기계'로 변하여 내면에 잠재해 있던 인간성이 회복되는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가치관이 전도되어 비정하고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 대해 비판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회기의 성격 변화를 통해 휴머니즘(인간의 본성에 눈뜨고, 인간을 존중하며, 인간의 자유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정신적 기반으로 삼는 문학 사조를 말한다. 현대에는 기계 문명에 따른 인간들의 소외감을 극복하고, 인간성의 옹호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위기의식의 일단으로 나타나고 있다.)에 대한 옹호를 드러내고 있다.
● 정리하기
▒ 갈래 → 단막극
▒ 성격 → 사실주의적, 세태고발적
▒ 인물
* 양회기 → 종합 병원 과장으로 폐 전문 외과 의사. 기계처럼 냉정하고 빈틈이 없다. 자신보다 더 비정한 상현의 모습을 보고 잠재된 인간성을 회복한다.
* 최상현 → 김인옥의 남편. 경제적으로 무능력하며, 돈 때문에 아내의 수술을 반대하는 비정한 인물이다.
* 김인옥 → 최상현의 아내. 담배 공장의 포장공이며, 가족을 위해서 어떠한 모욕도 감수하는 헌신적인 인물이다.
* 정금숙 → 양회기가 근무하는 병원의 간호사. 양회기를 사모하며 상사에게 충성스러운 인물이다.
▒ 배경 → 현대, 어느 늦가을, 회기의 폐 외과 과장실
▒ 출전 → <사상계>(1959)
▒ 갈등
* 전반부 : 인옥의 인간적인 호소 ↔ 회기의 기계적인 대응 <기계>
* 후반부 : 상현의 비인간적인 처사 ↔ 회기의 인간적인 분노 <성난 기계>
▒ 주제 → 현대인의 인간성 상실 비판과 그 회복의 옹호
▒ 특성
1) 전반부와 후반부가 대립 구조를 취함.
2) 물질문명을 비판하고 휴머니즘을 옹호함.
3) 밀도 있는 심리 묘사로 갈등을 잘 보여 줌.
● 참고자료
◆ 제목의 상징적 의미
전반부에서 금숙이 회기를 '기계'라고 표현한 것은, 인간미를 상실한 채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양회기의 비인간적인 면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죽어 가는 여인을 살려야겠다는 판단을 내리는 회기에게 금숙이 "기계가 노하셨네요……." 라는 표현을 한 것은, '기계(양회기)'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제야 사람 같아 보이네요."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이 작품의 제목 '성난 기계'는 '상실된 인간성의 회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 '성난 기계'의 구성
이 작품은 구성이 매우 단순한 단막극이다. 어느 폐 외과 과장실(회기와 금숙이 근무하는 공간)이라는 단일한 공간에서 이루어진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등장인물도 야오히기, 정금숙, 최상현, 김인옥 넷뿐이다. 그리고 다양한 사건이 별도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대사를 통해 극이 전개되는 대사 중심의 희곡이며, 인물들의 행동도 많지 않다. 이 작품은 이와 같은 단일한 무대 장치, 소수의 등장인물, 단순한 사건 등을 통해서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 '성난 기계'의 갈등 관계
이 작품에는 등장인물 간의 다양한 갈등이 존재한다. 전반부에서는 양회기의 비인간적인 태도 때문에 그러한 갈등이 유발되는데, 양회기가 자신을 사모하는 정금숙에게 냉정하게 대하여 그녀로 하여금 울음을 터뜨리게 하는 것이나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한다며 수술을 해 줄 것을 애원하는 김인옥에게 '기계'와 같은 태도로 거절하는 것이 그것이다. 후반부의 갈등은 최상현의 반인륜적인 태도 때문에 유발된다. 양회기는 김인옥의 남편 최상현이 금전적인 문제와 의심 때문에 자신의 아내를 수술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자, 그의 반인륜적 처사에 분노를 느끼며 '성난 기계'로 변한다. 또한 최상현과의 대화 중에 그가 그의 아내와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음이 드러난다.
◆ 사실주의 극과 차범석의 작품 경향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유행한 연극 양식이 사실주의 극이다. 사실주의 희곡 작가는 실재하는 세계의 진실한 묘사를 위해 노력할 것, 가능한 한 직접적인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쓸 것, 최대한 객관적으로 묘사할 것이 요구되었다. 한국에 사실주의 극이 수용된 것은 1922년에 창단된 극단 토월회를 통해서였다. 이 새로운 사조는 '신극(新劇)'이라 불리었고 1931년에 조직된 극예술연구회에 의해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게 되었다. 사실주의 극은 1970년대까지 한국 희곡의 주류를 이루었다.
차범석은 사회성이 짙은 작품을 주로 썼다. 그는 지속적으로 리얼리즘을 고집하며 변천하는 현실을 작품에 그대로 담았다. 그의 작품은 제재의 폭이 매우 넓지만 대체로 가난한 서민들과 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 문명의 발달로 인간 인간성의 상실과 인간의 소외, 애욕의 갈등과 정치의 허위성,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과 그에 따른 전통의 몰락 등이 주로 다루어 온 주제들이다. 그리고 '성난 기계'는 문명 비판적인 그의 초기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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