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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줄거리/해설]닳아지는 살들(1962)-이호철-

by 휴리스틱31 2021.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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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아지는 살들(1962)

-이호철- 

 

● 줄거리

 

여름이 느껴지는 5월 어느 날, 밤 열두 시에 돌아온다는 맏딸을 언제나처럼 모두가  기다리고 있다. 조용하고 썰렁한 집안에는 은행에서 은퇴하여 명예역으로 남아 있으면서 거기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살림을 이끄는, 귀가 멀고 반백치인 늙은 주인, 딸처럼 시아버지를 부양하는 며느리 정애, 그리고 막내딸 영희가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다.

 

어디서 '꽝 당 꽝 당'하고 이상하게 신경을 자극하면서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쇠붙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온다. 정애는 이 집 맏딸의 시사촌 동생인 선재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을 떠올린다. 선재는 이북으로 시집 간 언니의 시사촌 동생으로 3년 전에 세상을 떠난 영희의 어머니가 몹시 아끼던 청년이다. 그러는 사이 이층의 구석방을 차지하기에 이르고, 영희와는 약혼까지는 안 갔지만 그렇게 되리라고 피차 간에 각오하고 있고, 주위에서도 그렇게 알고 있다.

 

 

 

마침 이층에서 내려온 성식은 왜들 그러구 앉아 있느냐고 가시 돋친 말을 한다. 바짝 야윈, 파자마 차림의 오빠를 영희가 비꼰다. 차가운 안경알만 반짝이는 오빠와 시선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는 정애는 우수에 젖은 얼굴이다.

이북에 있는 언니가 열두 시에 돌아온다는 것은 따져 볼 성질도 못된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모두가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거기에 익숙해져 있다. 늙은 주인의 고집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은 아직은 그 귀가 먼 늙은 주인이 이 집안의 주인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집안 전체를 통제해 나가는 줄이 끊어지면서, 식모는 자유스럽고 활달하고 뻔뻔해졌다. 식모는 선재가 돌아왔음을 영희에게 알리고, 술에 만취된 선재가 들어오자 영희가 그를 부축하고 올라가고 성식도 이층으로 올라간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정애는 까닭없이 불안해지고 갑자기 조급해지는 것을 느낀다. 영희는 선재가 쓰는 초라한 방에서 선재의 품에 안기어 쇠망치 소리를 혼자 감당하기 힘들고 무섭다고 그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그녀는 오빵의 방을 찾아가서 '오늘 밤 지금 막 결혼을 했다'고 이야기하나 성식이 물끄러미 천장만 쳐다볼 뿐 반응을 보이지 않자 영희는 쓰디쓴 웃음을 보인다. 여전히 쇠붙이 두드리는 소리가 투명하게 조급해진 듯 들려오고, 영희는 우리가 왜 자지 않고 이렇게 앉아 있느냐, 어쩌다가 우리 집이 이렇게 되었느냐는 둥 이것저것 자꾸 지껄인다.

 

 

점점 열두 시는 가까워지고 늙은 주인은 푸념을 하는 어린애처럼 코의 사마귀를 만지면서 기묘하게 예리한 것을 담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린다. 혼자 있기가 힘들었는지 다시 내려온 성식이 어쩔 줄 몰라하는 몸짓을 보이자, 영희는 정애에게 이야기하던 잔잔한 목소리 대신 신경질적으로 오빠를 대한다.

 

순간, 시계가 열두 시를 치고, 모두의 시선이 시계와 노인의 얼굴을 향하는데, 복도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기묘한 웃음을 띤 식모가 나타나 변소에 갔었다고 말한다. 발작이나 일으킨 듯 영희는 식모를 가리키며 아버지에게 언니가 정말 왔다고 소리친다. 아버지는 영희의 부축을 받으며 허공에 대고 허우적거린다. 성식과 정애도 엉거주춤하게 의자에서 일어서 있었다. '꽝 당 꽝 당'하는 쇠붙이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진다. 밤내 이어질 모양이다.

 

● 인물의 성격

 

◆ 영희 → 이 집의 막내 딸이며 선재와 약혼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주위에서는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 노처녀이다. 선재와 정사를 벌이기도 하며, 가족들의 의미없는 삶에 불만을 토로하다가 결국에는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 정애 → 이 집의 며느리요 성식의 아내이다. 시아버지를 정성껏 모시며 직업없이 무위도식하는 남편에게도 무감각하다.

◆ 성식 → 도수높은 안경을 끼고 파자마 차림으로 코카콜라나 빠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패배주의자로, 아내와의 애정이 결핍된 채 이층방에 칩거하는 작곡가 지망생.

◆ 주인 노인 → 은행에서 은퇴하고 반백치가 된 70세의 노인이다.  이년 전부터 귀가 멀면서 말수가 적어지고 언제부터인지 맏딸을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한 가정을 무대로, 20년이나 돌아오지 않는 맏딸을 기다리는 초조한 상황을 소설화한 것인데, 작가 자신도 밝히고 있듯이 속편 격인 '무너 앉는 소리'와 함께 안톤 체호프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꽝당꽝당 하는 쇠붙이 소리를 배경음으로 하여 분단의 비극이 한 가정에 가져다 준 정신적 고통을 상징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호철 문학의 뼈대는 '실향의식'이다. 이 작품은 바로 실향의식이 밑바닥에 우울하게 드리운 가운데, 그 실향의식이 한 가족의 이상야릇한 행태들 속에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이 소설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 중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쇠망치 소리이다. 멀리에서 은은하게, 그러면서 식구들의 내면을 콕콕 쑤시면서 들려오는 이 소리는 바로 외부의 소리이며, '맏딸'과 같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집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집안의 내부를 비집고 오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에 의해서 모든 식구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과 맏딸이 현재 집안의 일원으로 자리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그들 집안의 암울한 분위기를 가져다 준 요인이 되며 모든 식구들이 그것 때문에 황폐해져 가는 것이 이 둘의 동질성이다.

 

 표면적으로 뚜렷한 사건의 전개가 없고, 등장인물들간의 주고받는 대화의 내용 역시 한결같이 단절된 마음의 벽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등장 인물들간의 심리적 갈등은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특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스토리는 경우 영희가 주절거리는 말에 의해서만 진행되고 있다. 마치 성격극과 같은 인상을 주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내면의식의 흐름이 중심이 된다.

 

 

 이 소설의 기본틀을 '기다림→기다림의 좌절→기다림을 재촉하는 쇠붙이 소리'로 본다면, 이 가족은 또다시 끝없는 기다림의 늪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세월 속에서 가족간의 유대감은 점점 마멸되어 제목 그대로 '살이 닳아지는' 아픔만이 남게 될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이 초점화하려는 것은, 전쟁의 후유증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황폐하게 하는가 하는 문제라고 하겠다. 전쟁의 아픔은, 멀리서 오지만 집요한 쇠망치 소리처럼 우리를 파고드는 은밀한 그림자인 것이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단편소설, 심리소설, 전후소설

 

◆ 배경

* 시간적 : 5월의 어느 날 저녁에서 열두 시까지

* 공간적 :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점점 폐쇄되어 가는 어느 가정

◆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전지적 서술이 부분적으로 나타나기도 함)

 

◆ 주제  전후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가족의 권태와 비극

             전쟁이 가져다 준, 가족의 내면적 파탄의 비극

 

◆ 출전 : 「사상계」(1962. 7)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작품의 주요 인물들은 결코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이 소설의 배경 공간인 '집'의 의미에 대해 말해 보자.

⇒ 집안으로 한정된 배경은 인물들이 6.25이후 황폐화된 현실을 벗어날 방법이 없는 암담한 상황을 암시함.

 

2. 이 작품의 전면에는 '꽝 당 꽝 당'하는 쇠붙이 소리가 울린다. 집 안에 갇혀 있다시피 살면서, 실제로는 돌아오지 않을 큰언니를 기다리는 영희 가족들에게 이 소리가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가 ?

⇒ ① 집안의 암울한 분위기를 고조시켜 주는 배경음의 구실을 하면서, 식구들에게 집요하게 파고드는 부담감과 정서적으로 일치시키고 있다.

    ② 실현되지 않을 희망을 품고 폐쇄된 세계 속에 사는 인물들과 무관하게 변화하는 외부 세계의 움직임

 

3. 이 작품의 인물 유형은 영희 가족과 식모·선재 등 둘로 나뉘어진다. 각 유형의 성격적 특성을 말하고, 이러한 인물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

⇒ 일상적 삶 속에서 속물적으로 살아가는 선재와 식모, 폐쇄된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영희 일가족, 그러나 작가는 이들 모두에게 비판적이다.

 

4. 영희가 집에서 선재와 동침하는 것에서 읽을 수 있는 영희의 심리는 무엇인가 ?

⇒ 숨이 막힐 듯한 집안의 분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심리적 일탈감을 읽을 수 있다. 일종의 히스테리라 할 수 있다.

 

5. 오빠의 안경알은 그의 어떤 성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가 ?

⇒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안경알로만 인상을 그림으로써 그의 성격의 폐쇄성, 차가움, 냉정한 침묵 등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6. 이 가족의 비정상적 삶의 근원은 무엇인가 ?

⇒ 식구들이 이렇게 방황하는 것은, '맏딸'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맏딸은 20년 전에 북에 두고 온 이산가족으로 이 집의 맏이이다. 그것은 전쟁에 의한 이산이었으므로 가족들의 내면적 황폐화는 오로지 전쟁 때문인 것이다. 전쟁은 이렇게 오랜 세월을 두고 삶을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7. 영희가 열두 시에 나타난 식모를 가리키며 아버지에게 언니가 왔다고 소리치는 의도는 무엇인가?

⇒ 아버지가 맏딸인 영희의 언니를 기다리는 것은 아내가 살아 있었고 또 행복했던 과거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현재 이러한 상황은 막막하기만 하다. 따라서 아버지의 기다림은 무의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영희의 태도는 무의미한 기다림을 이제 그만두자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식모의 등장으로 인해 아버지의 기대가 좌절된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운 연민의 감정 때문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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