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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줄거리/해설]금시조(1981)-이문열-

by 휴리스틱31 2021.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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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시조(1981)

-이문열-

 

● 줄거리

 

죽음을 앞둔 서예가 고죽은 유년시절을 회상한다. 고죽은 5, 6세 되던 해 아버지를 여의고 숙부의 손에서 자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죽의 아버지는 천 석 재산을 유람과 주색 잡기로 탕진하고 끝내는 건강까지 상해 서른 몇에 요절한 한량이었다. 더구나 어머니는 자식을 버리고 개가를 해 버렸다고 한다. 숙부 또한 고죽이 열 살 되던 해, 그를 남의 손에 맡겨 버리고 상해로 독립운동을 떠난다. 숙부가 고죽을 부탁한 사람은 유명한 서예가 석담 선생이었는데, 그는 숙부와 동문이요 오랜 지기로, 퇴계의 학통을 이었다는 영남 명유의 후예였다.

 

선생은 당시 뛰어난 서예가로 추앙받고 있었고 수하에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집안도 넉넉해서 고죽 하나 거둬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고죽을 거두어주기는 하되, 다른 문하생들처럼 서예를 가르쳐주지 않으려 한 점이다. 오히려 고죽을 신식학교에 보내 새로운 학문을 배우도록 했다. 그러나 고죽은 신학문보다는 석담의 서예 쪽에 더 마음이 끌렸다. 어깨 너머로 글씨를 배우고 석담 몰래 글씨를 써보던 고죽은 심지어 석담의 집안 살림까지도 도맡아 하며 서예를 배우게 된다. 고죽은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재주가 뛰어나서 어깨 너머로 배운 솜씨가 이미 온 동네의 인정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석담은 이렇게 재주가 승한 아이는 오히려 염려가 된다고 한사코 제자 삼기를 꺼려했다. 심지어는 왠지 악연이라며 고죽을 내치기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고죽을 문하에 받아들여 가르치지만 따뜻한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고죽은 이런 스승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해서 몇 번이나 스승의 곁을 떠나지만 결국에는 다시 돌아오게 된다.

 

 

 

고죽은 스승을 떠나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재주를 뽐내기도 하고 부호의 지원을 받아 풍족한 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스승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스승 또한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았을 뿐, 제자의 재주를 아끼고 있었다. 정신적 가치를 전달하는 도구로서의 예술을 추구했던 스승과 예술 그 자체를 추구했던 고죽은 서로 예술관이 달라서 어쩔 수 없이 대립할 수밖에 없었지만, 서로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스승은 유언으로 제장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고 고죽 또한 그 유지를 받드는 것으로 석담에 대한 애증을 풀고 화해를 이루어냈다. 그 이후 고죽은 스승 못지 않게 저명한 서예가가 되어 수많은 작품들을 남긴다. 그리고 이제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지금까지 자신이 그린 그림과 글씨들을 사모으며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는 스승이 말한 최고의 예술 경지 즉 금시조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일평생 자신이 완성해놓은 예술 작품들을 엄격한 기준으로 다시 평가해보면 어딘가 부족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고죽은 마지막 순간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불살라 버린다. 예술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거기에 못 미침을 깨달았기에 금시조는 이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쌓아온 모든 명성과 헛된 가치들을 버리는 이 순간, 고죽은 예술의 최고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 인물의 성격

 

 고죽 → 작품의 주인공, 숙부에 의해 자란 고죽은 서예가 석담 선생에게 맡겨진다. 그 후 스승에 대한 애증으로 일관한다. 죽을 날이 가까워 오자 자신의 작품들을 모두 거둬들여 불태운다. 스승 석담에 대해 애증이 많았고, 스승을 비판하며 예술을 위한 예술관 즉 자신의 생각을 고집해왔다. 그러나 나중에는 스승의 예술관을 이해하게 된다.

 석담 → 구한말 서예가, '예(藝)'보다 '도(道)'를 더 우선시하는 인물. 어린 고죽을 거두어주고 문하생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제자의 승한 재기가 진정한 예술을 창조해내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그를 혹독하게 다룬다. 예술이란 작품의 예술적 가치보다는 정신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 구성 단계

 

 발단  죽음을 앞둔 서예가 고죽은 유년시절을 회상한다.

 

 전개  스승 석담은 고죽을 제자로 인정하지 않고 한사코 그를 내치려 한다. 고죽은 스승에 대한 애증 속에서 27살 때 집을 나가 약간의 성취감을 맛보지만 다시 스승의 곁으로 돌아오게 된다. 2년 뒤 겨우 용서받고 제자로 받아들여지나 고죽과 석담은 대립되는 예술관으로 이내 서로 논쟁을 벌인다. 다시 집을 나갔다 돌아온 고죽을 석담은 또다시 받아들여주고 이러한 애증의 사제 관계는 석담이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위기  회상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온 고죽은 젊은 제자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일어난다. 화랑을 돌며 자신의 서예 작품들을 거둬들이기 위해서다.

 

 절정  화랑을 돌며 자신의 예술 인생을 정리해가던 고죽은 삶의 거의 마지막 순간에 스승 석담의 예술관을 이해하게 된다.

 

 결말  고죽은 그동안 모아온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우게 하고 그날 밤 불길 속에서 홀연히 솟아오르는 금시조의 비상을 본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숨을 거둔다.

 

 

 

● 이해와 감상

 

 이 소설은 서예에 대해 대립되는 견해를 가진 스승과 제자 사이의 긴 세월에 걸친 대립 의식이, 죽음에 임박한 제자의 회상에 의해 펼쳐지는 소설이다. 글씨를 쓰는 것이 예(藝)인가 도(道)인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 그리고 애증(愛憎)이 교묘하게 교차되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인간적 갈등이 작가의 유려한 문체에 의해 긴밀하게 구성되고 있다.

 

 죽음에 임박한 고죽의 회상을 통해 전개되는 이 작품에서, 고죽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작품들을 불사르게 한다. 그것은 석담과 고죽에 의해 대표되는 두 개의 상인한 예술관이 맞부딪치며 타오르는 순간이다. 동시에 그것은 고죽이 추구해 온 자족적(自足的)인 존재로서의 예술관, 곧 기교와 정감을 예술의 본질적 요소로 생각했던 고죽이 당면할 수밖에 없었던 허무감의 분출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죽은 바로 그 순간 거대한 금시조의 비상(飛翔)을 본다. 스승이 그의 재기를 억누르기 위해 내려 주었던 교훈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 순간은 또한 무엇보다도 고죽이 죽는 순간까지 추구했던 예술혼의 진정성이 완성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1982년 제 15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이문열의 초기작에 해당한다. 스승 석담과 제자 고죽 사이의 애증과 갈등을 통해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있는 일명 예술가 소설로 작가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이문열은 <젊은 날의 초상>, <들소>, <시인> 등 예술가 소설 계열의 작품을 많이 남기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금시조>는 그의 예술관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유미주의 또는 탐미주의로 요약되는 이문열의 예술관은 주인공 고죽처럼 예술 지상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예술은 다른 무엇의 수단이 될 수는 없으며 예술 그 자체로 분명한 목적과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문열의 예술관은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크게 부각되던 1980년대 상황에서는 많은 오해와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리얼리즘 문학의 전통이 강한 우리 문단에서 작가는 예술가이기 이전에 정치가이자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문학이 민중을 계도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당대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이문열은 철저하게 문학 그 자체만을 추구한다. 따라서 이문열은 다른 작가들과 끊임없는 논쟁을 벌이게 되는데, <금시조>의 고죽은 그런 작가 자신의 분신처럼 보인다.

 

작가 이문열은 일견 두 예술가의 대조적인 삶을 객관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고죽의 예술관이 더 가치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술의 자율성과 유미주의에 대한 옹호는 작가의 다른 예술가 소설에서도 반복되어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작가 자신의 굳건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예술이 사회적 효용성에 봉사하거나 도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값진 것이라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야말로 고죽이 자기부정을 통해 이뤄 낸 예술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생동안 그 자신을 이끈 미적 충동의 총결산인 자기 작품들을 모두 불태우는 행위야말로 가장 예술지상주의다운 선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서예에 대해 대립되는 견해를 가진 스승과 제자 사이의 긴 세월에 걸친 대립의식이, 죽음에 임박한 제자의 회상에 의해 펼쳐지는 소설이다. 글씨는 쓰는 것이 예(藝)인가 도(道)인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 그리고 애증(愛憎)이 교묘하게 교차되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인간적 갈등이 작가의 유려한 문체에 의해 긴밀하게 구성되고 있다. 죽음에 임박한 고죽의 회상을 통해 전개되는 이 작품에서, 고죽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의 작품들을 불사르게 한다. 그것은 석담과 고죽에 의해 대표되는 두 개의 상이한 예술관이 맞부딪치며 타오르는 순간이다. 동시에 그것은 고죽이 추구해 온 자족적인 존재로서의 예술관, 곧 기교와 정감을 예술의 본질적 요소로 생각했던 고죽이 당면할 수밖에 없었던 허무감의 분출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죽은 바로 그 순간 거대한 금시조의 비상을 본다. 스승이 그의 재기를 억누르기 위해 내려 주었던 교훈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 순간은 또한 무엇보다도 고죽이 죽는 순간까지 추구했던 예술혼의 진정성이 완성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중편, 순수, 유미주의 소설, 예술가 소설

 성격 : 관념적, 이상적, 동양적, 현학적

 배경

* 시간적 → 일제시대 ~ 1980년대

* 공간적 → 전국 각지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예술관의 차이

* 석담(스승) → '도(道)'를 중시하는 동양적 예술관(예술의 보편주의)

                        예술이란 정신적 가치 즉, 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 고죽(제자) → '예(藝), 미(美)'를 중시하는 서양적 예술관(예술의 상대주의)

                        예술이란 예술 그 자체를 위한 것으로 무엇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논쟁 : 매죽 논쟁, 예도 논쟁

 제목의 의미 : 자기 부정을 통해 도달한 예술의 절대 경지

 출전 : 현대문학(1981)

 주제  스승과 제자가 추구해 온 진정한 예술혼

              자기 부정을 통한 예술혼의 완성

 

● 생각해 볼 문제

 

1. 제목 '금시조'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 고죽은 스승 석담이 써준 '금시벽해 향상도하'라는 글귀에 나오는 금시조의 경지에 이르고 싶어했다. 석담은 예술의 궁극적 이상태로 금시조를 제시해준 것인데, 이는 제자가 지나치게 재예로만 흐르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입으로 불을 뿜으며 용을 잡아먹는다는 전설의 새 금시조는 마군을 쫓고 사악한 용을 움키려는 사나움과 세참의 기세가 있다고 한다. 석담은 그런 힘찬 기상을 고죽에게 요구한 것인데, 막상 고죽은 다른 의미로 금시조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석담과는 달리, 사나움과 세참의 기세 대신 보다 밝고 아름다운 세계를 향한 화려한 비상의 자세를 보이는 금시조, 즉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금시조를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고죽이 꿈속에서 본 금시조는 그가 일생을 다바쳐 추구해 온 예술적 이상 즉 아름다움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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