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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CEO 리더십 - 정주영

by 휴리스틱31 2021.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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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리더십 - 정주영

 

현대의 신화, 정주영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기업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줄만한 경영자를 한국에서 찾는다면, 단연 현대그룹의 정주영 명예회장을 손꼽을 수 있다.

단순히 정주영 회장의 자산이 60억 달러로 아시아의 10대 재벌에 속하는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30인 가운데 한 사람이란 점 때문은 아니다. 정주영 회장이 한국 경제발전사의 핵심을 꿰뚫는 기업인이자 건설,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산업 근대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 아산리 두메산골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소학교를 겨우 마친 정주영 회장이 '경일상회'라는 쌀집에서 시작하여 '현대그룹'이란 거대한 기업체를 일구기까지의 창업과정 은 하나의 신화에 견줄만하다.

지칠 줄 모르는 승부근성과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대담성, 명확한 비전제시 등 경영자로서 최고의 지략을 지닌 정주영 회장의 리더십을 살펴본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말하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라정회장의 수많은 성공담은 그의 끈질긴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주영 회장에게 '적당히'란 말은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만큼'이나 '요 정도'의 노력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다가는 날벼락 맞기 십상이다.

일례로 현대의 역사적 작품 가운데 하나인 경부고속도로 공사는 430억원의 최저 공사비로 전장 428의 고속도로를 3년 안에 건설한다는 계획이었다. 사실 건설회사로서는 자칫 잘못하다간 손해와 위험을 안게 되는 '골치 덩어리' 공사인 셈이었다. 그렇다고 대충 부실공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 정주영 회장이 공사기간을 앞당기기 위해 내세운 전략은 공사의 기계화였다. 그 때로서는 천문학적이라 할 수 있는 800만 달러의 중장비를 구입해 900만 명에 달하는 인원을 동원했다. 순조로운 공사 진행에도 불구하고 대전대구 구간 공사에서는 터널 벽이 무너져 내리는 낙반사고가 13차례나 있었다. 빈번한 사고로 도저히 연내에 완공이 불가능하다고 하자, 정주영 회장은 12시간 이내에 굳는 조강 시멘트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주로 사용하던 단양 시멘트에 비하면 몇 배나 비싼 재료이지만 기한내 경부고속도로를 개통시키는 것이 정주영 회장에겐 최대의 관건이었다. 결국 1970627, 최대 난제였던 당제터널 공사를 끝내고 예정대로 경부고속도로 준공식을 치르게 되었다.

정주영 회장이 집요하리만큼 노력을 기하는 자세는 천성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어떤 분야이건 일단 뛰어들면 모든 장비와 엄청난 투자를 아끼지 않는데, 하버드대학의 경제학자 마이클 포터는 이러한 정주영 회장의 사업 스타일을 일컬어 미국의 서부 카우보이 총잡이에 비유하기도 한다.

한가지 이채로운 것은 최선의 노력을 쏟아 부으면 성공 못할 일이 없다란 교훈을 정주영 회장이 빈대에게서 배웠다는 점이다. 인천에서 막노동을 하던 열 아홉 시절, 노동자 합숙소에서 빈대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밥상 네다리에 물 담은 양동이를 하나씩 고여 놓고 자는데 어느 날엔가 빈대들이 별을 타고천정으로 올라가 사람들을 향해 툭툭 떨어지더라는 것이다.

그것을 충격으로 받아들인 청년 정주영은 빈대도 목적을 위해서 저토록 머리를 쓰고 죽을힘을 다하는데, 무슨 일이든 절대 중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의 노력만 쏟아 붓는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하며 집념의식을 갖게 되었다.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는 경영인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안목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특히 기업의 경영자에게 제1의 덕목은 비전제시이다. 기업체를 설립하고 성장시키는 것은 쉽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며 발전해 나간다는 것은 생각처럼 간단치 않다.

그러한 점에서 정주영 회장은 늘 새로운 일들을 꿈꾸고 계획하는 전략이다. 현대모터스아메리카의 전명헌씨는 정주영 회장을 아이디어 뱅크로 묘사할 정도인데 아산리의 소년기를 회상하면 정주영 회장은 나는 어릴 때부터 일찍 일어났다. 저녁에 잠들 땐 내일 무엇을 할 것인가 소풍가는 어린아이의 기대감을 갖고 잠들곤 했다.”고 말한다. 미근한 예로 현대의 반도체 사업, 서울올림픽 유치, 금강산 개발사업 등은 창업주의에 기반을 둔 정주영 회장만의 미래 청사진이다.

80년대 초, 정주영 회장이 전자산업에 눈을 돌린 것은 고객의 소비 성향의 변화를 읽었기

때문이다. 어느 사이엔가 고객들은 CD플레이어와 통합 사운드시스템을 지닌 자동차를 원하고, 선박들은 첨단 통신 레이더시스템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83년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일류 전자회사를 세우고자 입성했지만 연속 세 번이나 참담한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정주영 회장의 말처럼 95년 오리건주에 현대반도체를 세우고 9712월에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전세계에 한국의 위상을 높인 서울올림픽 유치 또한 사회 각계의 분분한 여론 속에서 정주영 회장이 서울올림픽유치위원장에 임명되자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정부관리자를 비롯해 서울시장까지 행여 올림픽 유치가 실패로 돌아갈 것을 염려해 제각기 몸 사리기에 바빴지만, 정회장은 곧바로 자신이 계획한 지하철 등 교통망, 주요 체육시설, 고층 아파트, 쇼핑지역 등 종합적인 올림픽 선수촌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나서지 못하는 대북외교의 일환이라 할 수 있는 금강산 개발사업은 여든 두살의 정주영 회장이 민간인으로서 이뤄낸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정주영 회장이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다는 실증적인 예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정주영 회장은 많은 미래의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찾는 것일까. 정주영 회장은 많은 시간을 들여 문제를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한편 각 개인의 태도를 예의주시한다고 한다. 항상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 이것이 아이디어를 얻는 비결이라는 설명이다.

 

 

 

 

 

 

 

무대뽀로 나가라

 

현대가 조선사업에 뛰어들 때만 해도 주위의 비웃음을 한 몸에 받았다. 70년 건설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지고 소형 차량을 생산하는데 성공했지만 어떻게 큰 선박을 만들어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 국내의 전반적인 평가였다.

이 때 정주영 회장은 울산에 조선소를 지을 땅부터 구입한 후, 프랑스와 스위스 은행에 4,300만 달러의 대출을 요구했다. 당시 현대그룹의 총 자산보다 많은 액수였고, 은행가들은 "쪽배도 만든 경험이 없는 회사에 어떻게 돈을 내줄 수 있느냐"며 일언에 거절했다.

결국 런던 바클레이 은행으로 날아간 정주영 회장은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은행 대표측 에게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어 거북선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배가 뭐란 말이요? 안에 엔진이 있고 밖은 철강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한국은 이미 16세기에 철갑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그런 배를 19세기에나 만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잊으셨습니까?"

한동안 정주영 회장이 '불도저'로 불린 적이 있다. 사업 추진력을 빗대어 붙여진 별명이다. 일단 해보겠다는 목적의식이 들면 뛰어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게 주변의 평가이다.

혹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이 '배운 것도 없는 사람이 무슨 일이든 덮어놓고 무모할 정도로 덤벼드는 탓'에 우스워 보일지 모르나 정주영 회장은 어떤 일이든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으로 시작한 일은 단 한번도 없다고 강조한다.

비록 학교에서 배운 학식이 없다고 해서 생각도 지혜도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치밀한 계산 능력과 적극적인 모험심과 용기, 그리고 신념이 있었기에 오늘의 현대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주베일 산업항 건설공사 역시 정주영 회장 특유의 저돌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한국 예산의 50%에 해당하는 93,100만 달러의 주베일 프로젝트는 해안에서 7마일 떨어진 바다 한 가운데 4척의 초대형 유조선 정박터널을 건설하는 공사였다. 물론 현대가 이러한 시설을 설계한 경험은 전무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그 어떤 화물보험에도 가입하지 않은 채, 792월 주베일 항구를 완공한다.

정 회장이 보험료가 비싸다는 이유로 화물보험에 가입하지 않자 현장의 부하 직원들은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대놓고 우려를 표했지만 정주영 회장은 나름대로의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 어차피 배가 난파되면 보험사는 보상을 늦추기 위해 장시간 조사를 할 것이고, 현대가 보상받을 때쯤은 공사기간을 지키지 못해 그 손실을 막지 못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 해 현대건설은 세계4위의 건설업체로 급부상하고, 회사의 수익은 5년만에 100배로 늘어나는 부흥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정주영 회장의 모험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상식에 얽매인 고정관념 속에 갇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스스로도 하고자 하는 굳센 의지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능력과 창의성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는 지론이 정주영 회장의 인생을 점철해 온 것이 아닐까 한다. 정주영 회장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나는 생각하고 계산하고 예측하는 불도저로 남보다 나쁘지 않은 머리라는 것을 달고 남보다 훨씬 더 많이 생각하고, 궁리하고, 노력하면서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살고 현장에서 죽는다(?)

 

공습경보 해제

갑자기 산업 현장에 나타난 정주영 회장이 떠나는 순간, 직원들 사이에 은연중 흘러나오는 이야기 한마디다.

흔히 정주영 회장을 현장주의자라고 말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업 현장을 직접 찾는 정주영 회장이 어느 순간 불시에 나타날지 몰라 현장의 직원들은 항상 긴장과 초조의 날들을 보낸다는 것이다. 조금 긴장을 늦추려고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 불호령을 떨어뜨리는 통에 직원들 사이에 오늘은 호랑이 오냐? 안 오냐?”란 얘기가 오고 갈 정도였다.

유명한 일화로 단양시멘트를 방문하려던 어느 주말, 야간 열차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정주영 회장은 이미 단양역을 출발한 열차에서 뛰어내려 족히 30리 걸리는 산골길을 걸어 아침밥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서는 직원들 앞에 턱 하니 나타나 직원들을 혼비백산하게 한 일은 꽤 오랫동안 전해지고 있다.

정주영 회장이 유별나리만큼 현장을 쫓아다니는 데는 까닭이 있다. 경영자가 직접 현장을 챙기느냐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경영자가 지켜보면 현장 직원들의 걸음걸이조차 다르다는 게 정회장의 얘기다.

회사 초기부터 공사 현장의 준비에서 진행과정까지 일일이 보고 직접 챙기는 것이 습관화 되버린 탓에 마냥 사무실 한 구석을 지키는 것은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이란 냉정한 현실이고, 행동함으로써 성장해 나가는 만큼 경영자가 똑똑한 머리만 굴려서는 성공할 수 없으며 몸소 행동해야 기업을 키울 수 있다고 역설하는 것이 정주영 회장이다. 어줍잖은 이론보다는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지식과 경험이 기업에 더 절실하다는 얘기다. 정주영 회장이 현대라는 기업을 세운 이후 모든 시간을 현장에 투자했기에 경영자의 위치에서도 세세한 부분까지 파악하고 지휘할 수 있는 사령탑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잃어도 신용은 잃지 말자

 

정주영 회장이 기업의 경영인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이 신용이다. 평소 간부회의 등에서 "신용이 돈이다. 신용만 있으면 항상 돈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해 온 것은 젊은 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1940'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수리 공장을 차린 후 화재로 고객의 올스모빌 자동차까지

몽땅 태워버린 정주영 회장에게 선뜻 6천 여 만원을 빌려준 정미소 주인은 "나는 이날까지 단 한번도 담보를 잡고 돈을 빌려준 적이 없네. 신용만을 보고 빌려주지. 그런데 신용만 보고 빌려준 돈을 떼인 기록도 없는 사람이야. 그게 내 자랑이지."라며 정회장의 신용을 담보로 자금을 빌려준 것이다. 자신의 근면성에 근거한 신용 덕분에 정회장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때부터 정주영 회장은 사업이 돈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 사람이 착실하다, 성실하다, 정직하다는 신뢰만 얻으면 그것을 자본으로 얼마든지 사업을 확대· 발전시켜 나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무일푼으로 고향을 등지고 나와 한국 제일의 재벌그룹을 만든 정주영 회장이 몸소 체험한 것이기도 하다. 정직과 성실로 주인의 쌀가게를 물려받았고, 믿을 만한 청년이란 신용 하나로 자금을 얻어 사업을 시작해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온 정회장에게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그가 쌓아올린 신용도는 '현대건설'이란 이름만으로 국제 금융가에서 손꼽히는 20여 개 은행과 거래가 가능하고, 정부의 지불보증 없이 2030억 달러까지 융자받을 수 있을 정도이다.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영자들에게 정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자본이 없는게 아니라 신용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 됨됨이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당신한테 돈을 빌려주어도 된다는 확신이 들 만한 신용을 쌓아놓지 못했기 때문에 자금 융통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당신이 일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신용만 얻어 놓았다면 돈은 어디든지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고가 행복을 부른다

 

정주영 회장은 낙천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처지가 불행

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 한창 자랄 나이에 밥보다는 죽을 더 많이 먹고 점심은 매번 거르는 것이 생활인데도 말이다.

정주영 회장은 되도록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느끼도록 노력하는 소질을 지녔다고 한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항상 정주영 회장이 강조하는 행복의 제1조건은 건강이다. 우선 몸이 건강해야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조건은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보라는 것으로 마음이 편해야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다.

3조건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공부하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뜻이 강하고 굳은 사람은 어떤 난관에 봉착해도 기어코 자신이 마음먹었던 일을 성취하고야 만다'는 불굴의 의지로 관철해 온 정주영 회장의 여든 인생에서 한국 최고의 경영자를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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