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리더십을 배우자 - 잭 웰치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GE의 잭 웰치
98년 <포천>지 선정, 가장 존경받는 CEO 1위 잭 웰치
98년 <포천>지 선정, 가장 존경받는 기업 GE
98년 <파이낸셜타임스>선정, 가장 존경받는 CEO 1위 잭웰치
98년 <파이낸셜타임스>선정, 가장 존경받는 기업 GE
98년 시장가치 2천 500억 달러가 넘는 역사상 가장 가치 있는 기업
이것이 지난 18년간 GE를 이끌어 온 잭 웰치의 성적표인지 모른다. 얼마전 AT커니가 아시아의 100대 기업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에 대한 조사에서 60퍼센트가 GE의 잭 웰치를 꼽았다. 특히 한국기업의 경영자들은 75퍼센트가 잭 웰치를 뽑았다.
1876년 에디슨 전기로 출발한 제너럴일렉트릭(GE)은 지난 120여년간 미국을 대표하는 최대 기업이자 세계적인 초우량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무엇이 세기를 뛰어넘어 세계 최강의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었는가? 그 이유는 탁월한 비전과 우수한 두뇌, 그리고 추진력을 지닌 CEO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고, 그 가운데서도 잭 웰치는 단연 주목을 끈다. GE를 시장가치 250억 달러의 회사를 2,500억 달러가 넘는 거대기업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잭 웰치의 전략과 리더십 비밀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 세계에서 1등 아니면 2등이 되라
1975년 치밀한 과학적 경영과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GE의 전 CEO 레지널드 존스는 스탭진이 제출한 차기 CEO 후보 12명의 명단을 훑어보고는 아무도 추천하지 않는 젊은 경영자를 추가시켰다. 그가 바로 사원을 잘 해고하고 독단적이라는 평판이 있지만 저돌적인 추진력을 가지고 있던 잭 웰치였다.
존스는 5년간 평가기간을 거친 후 최종적으로 압축된 3명의 후보에게 각자 소견서를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다른 두 사람은 보수저인 존스의 성격과 조직문화를 고려해서 자랑보다는 겸손한 논조로 소견서를 작성한 반면, 웰치는 평소 그의 성격대로 열심히 자신의 업적을 부각시켰고 자신의 단점으로 곧잘 지적되어 온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신중히 변호를 하였다. 최종적의 GE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존스의 선택은 적극적인 경영자 잭 웰치였다.
80년대 초 마흔 다섯이란 젊은 나이에 GE의 회장이 된 잭 웰치는 ‘웰치혁명’이라고 불릴 정도의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개혁적인 기업문화를 이끌어내면서 GE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였다. 게다가 ‘1등 아니면 2등이 되라’는 철저한 선도기업을 강조하는 한편 다가올 21세기를 준비하려는 잭 웰치의 비상은 지금까지 좀처럼 꺾일줄 모르고 있다. 특히 거대한 기업 GE를 작은 기업처럼 효율적이고 민첩하게 움직이도록 ‘벽 없는 조직’ ‘워크아웃’ ‘학습하는 문화’ ‘6-시그마’등 혁신적인 경영전략을 제시함으로써 오늘의 GE를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게 하였다.
현재 구조조정의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달리 잭 웰치는 이미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걸쳐 구조조정의 시나리오를 마무리 지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그를 ‘창조적 파괴자’라 부른다
어려운 환경에서는 누구나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하기 마련이다. 진정한 리더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에야 비로소 대책을 강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움이 닥칠 것을 예견하고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웰치는 45세의 젊은 나이에 회장으로 지명되었고 올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과 경영자로 손꼽힌 인물이다. 그가 CEO로 취임했을 때 경제계는 GE를 건실한 기업이며 전 세계 산업계의 선도기업이라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GE는 바위처럼 단단한 회사가 아니라 벼랑에 매달려 있는 기업으로 보였다. 잭 웰치는 소매를 걷어올리고 혁명적인 변화의 바람을 주도해서 취임 6개월부터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시장 경쟁력에 근거한 철저한 평가로 세계 1위나 2위가 될 가능성이 없는 사업은 과감하게 처분하거나 폐쇄하겠다는 각오로 추진되었는데 350개 사업부 모두가 구조조정 대상이었다. 그 많던 사업부가 현재 12개 사업부로 축소된 것을 생각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구조조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남들은 GE가 잘나간다고 생각하던 시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웰치 리더십의 백미이다. 잭 웰치의 구조조정은 너무도 급진적인 변화이어서 사원들의 불만은 물론이고 ‘미국의 전통적인 국민기업을 파괴하는 짓’이란 비난 여론까지 들끓었다. 그러나 잭 웰치의 의지는 단호했다. 1983년, GE의 얼굴과 같았던 가정용품사업부를 없앤 것에 대해서 사언들의 반발이 쏟아지자, “도대체 21세기에 선풍기 사업을 할 것인가 아니면 단층 촬영스캐너 사업을 할 것인가”라는 한 마디로 이를 무마시켰다.
GE는 토마스 에디슨과 시작하여 미국기업의 상징으로 또오르기까지 103년 역사와 전통의 뿌리를 두고 있는 초우량기업이다. 그누구도 강력한 GE의 분위기를 감히 바꾸려고 시도해 본 사람이 없다. 그러나 잭 웰치는 흔들었고 바꾸었다.
42만 명이었던 직원을 27만 명만 남길 정도로 줄여서 사람들이 그를 건물에는 피해를 전혀 주지 않은 채 사람들만 살상시킨다고 해서 ‘중성자탄 잭’이라고 별명 지었을 정도였다. 잭 웰치는 기업의 구조조정 원칙을 ‘고쳐라, 폐쇄하라, 아니면 매각하라’에 두었다. 경영자는 사업을 퇴출 시점을 명확히 간파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과 구조조정과 개혁을 생존전략으로 삼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경영마인드를 가지고 GE를 새로운 패러다임 속으로 이끌었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와 미국의 대부분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상실하고 위기에 처한 상황에 반해 GE는 혁신적인 구조조정을 사전에 수행함으로서 세계최고기업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만일 웰치가 다른 기업처럼 현재 실적과 경제계의 평가에 안주했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성과임을 명심해야 한다.
조지 버나드 쇼는 이 세상에는 이성적인 인간과 비이성적인 인간,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이성적인 인간은 세상에 적응한다. 비이성적인 인간은 세상을 자기한테 적응시키려고 발버둥친다. 따라서 모든 진보는 비이성적인 인간에 의해 좌우된다.” 혁신은 비이성적인 사람들이 주도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잭 웰치도 혁신을 주도할 당시에는 온갖 험담을 다 들었다. 그러나 자시의 명성과 축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조직의 미래를 위한 과감한 준비였기에 혁신의 길로 리드할 수 있었다. 세상에 적응한다는 자세에서 탈피하여 미래에 대비하기 위하여 발버둥쳤던 것이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탄탄한 현재도 과감히 파괴했던 ‘창조적 파괴자’, 바로 GE의 잭 웰치가 보여준 리더십이다.
☆ 열린 기업을 위한 ‘워크아웃’
1989년대 말, 잭 웰치는 자신이 이룩한 GE의 구조조정에 어느정도 성과가 있음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변화를 시도한다. 그것은 GE가 직원들을 대하는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이었다.
1980년대 엄청난 정리해고와 다운사이징의 열풍에서 살아남은 직원들이 그 동안 얼마나 당황스러웠고 불안해 했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여전히 자신들의 일자리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직원들에게 자심감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조치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안정감과 자부심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회사의 의사결정에 직원들을 참여시키고 많은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직원들이 회사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하면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칭이 될 수 있으며 회사는 더 경쟁력을 갖추게 되고 생산성은 급격하게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웰치는 이렇게 직원들의 참여와 두뇌를 이용하기 위해 그리고 직원들에게 좀더 많은 권한을 주기 위해 ‘워크아웃(Work-Out)’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잭 웰치는 GE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그저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일상에 안주하기보다는 기업의 ‘주인’이 되어 사업의 운영에 직접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경영진으로부터 무엇을 하라는 지시를 받지 않았을 때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는지 직원 각자가 체험하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다. 잭 웰치가 워크아웃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88년 9월 크로톤빌의 GE리더십개발센터를 방문한 직후였다.
연설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이 상사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고 ‘왜 이 사업부내에서는 서로 대화가 없을까’를 고민하던 중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각 사업부의 관리자에게 직접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잭 웰치는 직원들의 마음 끌어안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워크아웃은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고 싶어하던 잭 웰치의 간절함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모든 사람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서로에게서 배우는 문화, 잭 웰치는 비형식적이고 개방적 문화를 창출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워크아웃이 갖는 특징 역시 첫째, 직원들은 상사들에게 얼굴을 마주하고 당당히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둘째, 직원들은 그들의 제안에 대한 대답을 가능하다면 즉석에서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잭 웰치는 워크아웃의 실행에 필요한 일곱 단계를 설정했는데, 우선 토론할 주제를 선택한 다음 여러 부서에서 그 문제를 잘 다룰 수 있는 사람들로 팀을 구성한다. 워크아웃의 제안 사항들이 실행될 때까지는 확인할 ‘챔피온’을 정하는 것이다. 이후 해당 팀이 3일동안 모여 회사의 프로세스를 향상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짜낸다. 관리자와 함께 각 제안에 대한 결정을 즉석에서 내리고, 실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 추가 모임을 갖도록 하며 여타 제반 사항과 다른 아이디어를 포함해 워크아웃 프로세스를 계속 진행하는 형태로 이끄는 것이다.
89년 3월 GE의 타운미팅을 시작으로 워크아웃이 시도되기는 했으나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워크아웃을 의심스런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 이 프로그램이 다운사이징의 일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GE의 직원들은 경영진의 동기가 순수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98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직원이 워크아웃에 참석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회사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에 이르렀고, 즉석에서 100여개가 넘는 제안서들이 쏟아졌다. 예를 들면 켄터키주 루이스빌의 GE가 전제품 공장에서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제작되고 있던 1번 건물의 환경 개선문제가 다루어지는가 하면 기관차를 제작하는 펜실베니아주 이리에서는 일관성 없는 페인트칠 때문에 작업이 지체되거나 재작업을 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렇듯 GE의 사업과 관련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제안되었고 동시에 실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워크아웃이 GE의 성공적 사례로 꼽히는 것은 의사결정이 공개적으로 이뤄졌다는 데 있다. 직원들이 마음놓고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의 GE가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해를 거듭할수록 GE에서는 많은 대화가 이어지고 워크아웃의 개념과 실행에 대한 이야기들이 회사에 확산되면서 여러 가지 파급효과를 낳고 있다.
애초에 잭 웰치가 계산한 부분이 적중한 것이다. 만약 워크아웃에 성공할 경우 생산성은 증가할 것이고, 불필요한 일은 사라질 것이며, 직원들은 해방감을 느끼면서 만족감을 되찾을 것이란 전략이 훌륭하게 성공했던 것이다.
“리더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와 존엄성을 찾고, 소중히 여기며, 키워주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왜냐하면 만약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참여하고 자신을 개발하고 아이디어를 쏟아놓도록 목소리, 존엄성, 동기를 부여한다면,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인 분위기를 만든다면, 그러면 모든게 다 잘 풀릴 것이다.” 지난 10년동안 워크아웃의 확산을 위해 노력한 잭 웰치는 자신의 경영전략중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워크아웃을 손꼽고 있다. 그만큼 GE의 워크아웃은 경영자라면 한번쯤 검토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 관료주의에서 벗어난 ‘벽 없는 조직 만들기’
잭 웰치는 줄곧 GE의 방만한 인력이 과다한 비용을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겹겹이 쌓인 관료주의의 벽이 경영자와 관리자, 직원의 빠른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웰치는 효과적이고 스피디한 기업 GE를 만들기 위해서 ‘계층 없애기’라는 선결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모든 계층은 불필요한 계층이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터무니없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 만약 뉴델리에서 무언가를 원한다면, 그들은 나에게 직접 팩스를 보낸다. 그것이 훨씬 빠르다.”
잭 웰치는 무엇보다 계층간의 벽을 없애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했다. 일단 사람 수가 적은 만큼 서로를 더 잘 알고 이해하고, 작은 회사처럼 빠르게 움직이고, 계층 수가 더 적은 작은 회사에서는 리더들의 능력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쓸데없는 검토 · 승인 등 서류작업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등 낭비가 적다는 이유로 ‘계층 없애기’를 중요하게 여겼다.
실제로 그는 경영층 사이에, 엔지니어들과 마케팅 부서 사이에, GE와 고객들 사이에, 점임 직원들과 시간제 직원들 사이에, GE와 외부사회 사이에 벽들을 깨고 싶어했다. 이런 장애물들이 기업의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일을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업은 단순하게 운영되어야 한다는 것이 잭 웰치의 경영이론이다.
웰치의 ‘벽 없는 조직’이 성과를 본 것은 1986년 경영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부터이다. GE의 고위 임직원들이 처음으로 서로에게 격의없이 직접 이야기를 하고, 서로에서서 배우고, 스스로 사용하기 위해 ‘최고의 실행방법’을 채택하는 등 벽이 없는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 후반, 웰치는 ‘벽 없는 조직 만들기’가 GE의 기업문화이자 직원들의 행동좌표라고 규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벽 없는 행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용하는 경우는 절대 없을 것이다.”
☆ 학습하는 기업문화
‘가장 좋은 아이디어를 찾아내어 실행에 옮겨라’
오늘날 잭 웰치가 가장 신봉하고 있는 벤치마킹 경영비법이다. 항상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GE에 학습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NIH(not invented here) 문화, “그건 우리 것이 아니야”란 중후군을 탈피하여 좋은 아이디어라면 GE 내부에서 얻었건 월마트, 모토로라, 미쓰비시 등 어디에서 온 것이든 상관없이 연구하고 발전시킬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웰치의 견해다.
90년대 워크아웃의 성공이래 잭 웰치는 학습하는 기업문화를 만들고자 다음과 같이 학습조직 구축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곧 복합기업이 반드시 개방적이고 학습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배우고, 배운 것을 행동으로 빨리 전환할 수 있는 조직의 능력 속에서 경쟁우위가 있다. 조직은 위대한 과학자들, 좋은 경영 관행, 또는 마케팅 기법 등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학습을 한다. 그러나 조직은 그 학습 내용을 빨리 흡수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궁극적으로 잭 웰치는 좋은 아이디어라면 합법적인 범위내에서 표절하라는 주의이다.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면 전 세계 어느 곳이든 찾아간다는 게 그의 전제인데, 이는 GE의 수준을 끊임없이 높이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잭 웰치는 93년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밝힌 것처럼 GE가 상당수의 아이디어를 다른 기업으로부터 빌렸다고 인정하면서 결코 창피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GE는 크라이슬러와 캐넌으로부터 새로운 제품의 개발과 출시 기법을 배웠고, GM과 도요타로부터는 효과적으로 부품을 납품받는 방법을 배웠으며, 모토로라와 포드로부터는 품질관리에 대해서 배웠다. 오히려 다른 기업들의 충고와 선진적인 방법을 수용함으로써 해외시장 진출을 선점했으며 많은 것을 공유한 것에 자랑스러워했다.
이러한 잭 웰치에 대해 크로톤빌의 스티브 커는 “웰치는 어떤 최고 실행기법이 실행되고 있다면 그 사업부에서 기거이 배우려고 한다. 그리고 ‘최고 실행기법’을 찾지 못하면 불안해 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잭 웰치는 학습하는 문화를 권장하기 위해서라도 직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려고 한다. 적어도 자신이 GE의 가장 귀중한 자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직원들에게는 아낌없는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의지이다.
이러한 잭 웰치의 경영전략에 힘입어 GE 직원 87%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자체 조사결과만 보더라도 학습하는 기업문화의 파장을 확인할 수 있다. 잭 웰치는 GE의 아이디어를 위해서 전 세계의 두뇌를 활용하려고 한다.
☆ 미래를 향한 전략 ‘6-시그마’
1990년대 후반, GE에는 또 하나의 경영 개념이 휘몰아치고 있다. 그 맹렬함은 전 세계 모든 GE 사업장에도 드러나고 있다. 이 개념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품질혁신”이다. 1996년 1월 GE의 연례모임에서 잭 웰치는 이렇게 말했다. “2000년까지 우리는 훨씬 더 나은 회사가 되고 싶다. 단순히 경쟁자들보다 품질이 더 나은 것이 아니라, 경쟁자들보다 1만 배나 더 나은 기업이 되고 싶다.”
회사 전통에 따라 2000년 은퇴를 하지만 잭 웰치가 GE를 다음 세기의 초우량 기업으로 남기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다름 아닌 ‘6-시그마 품질향상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완성품의 품질은 물론 생산, 영업, 관리, 서비스등 경영관리 체계의 전 프로세스에서 무결점을 추구함으로써 불량이나 관리시스템의 착오가 유발시키는 막대한 손실 비용을 사전에 제거하여 최고의 경영품질과 원가 경쟁력을 목표로 달성하자는 것이다.
GE는 2000년까지 6-시그마 품질 회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80년대의 구조조정이 그러했고, 90년대 초반의 ‘워크아웃과 벽없는 조직’이 그러했듯이 90년대 후반에 잭 웰치는 ‘품질’이란 개념을 놓고 마지막 정열을 뿜어내고 있다. 품질향상이야말로 GE를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만들어 줄 혁신적인 경영전략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1시그마는 68%의 제품들이 만족스럽다는 의미이고, 3시그마는 99.7%의 제품들이 만족스럽다는 의미이다. 6시그마는 99.999997%의 완벽한 만족을 지향하는 것으로서 백만 개의 제품에 단지 3,4번 정도의 오류 가능성을 나타낼 정도로 고품질을 목표로 한다.
잭 웰치는 6-시그마 프로그램을 수행하기 위해 GE의 새로운 ‘전사집단’을 구성하기에 이른다. 그린벨트, 블랙벨트, 매스터 블랙벨트로 짜여진 구성원들은 6-시그마 달성에 필요한 통계적 기법에 대한 교육훈련을 받은 관리자들을 나타낸다. 품질향상을 위한 결연한 의지를 반영하듯 잭 웰치는 97년 1월 GE의 관리자 모임에서 품질향상 프로그램에 “동참”아니면 “해고”를 각오하라는 선언까지 했다. 말하자면 ‘벨트를 못 따면 승진 탈락을 각오하라’는 얘기이다.
마치 전쟁을 방불케하는 GE의 품질향상운동인 6-시그마 프로그램이 조금씩 두각을 나타낸 것은 97년 여름, 잭 웰치가 “매우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고객만족, 향상, 성공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모든 사람들에게 생산성을 높여주고 고객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해준다. 품질향상을 추진하는 것은 GE를 위한 것이 아니다. 품질향상을 추진하는 유일한 이유는 고객의 경쟁력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고객의 품질이다. 고객이 이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인정하면서부터이다. 이제까지 GE가 추진해왔던 그 어느 프로그램보다 6-시그마는 많은 자원이 지원됐다. 98년 6-시그마운동은 3만 7,000개의 프로젝트를 4억 5,000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실시하여 10억 달러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GE가 6-시그마를 도입하여 GE의 시설을 둘러볼 수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나 사무실과 복도 어디서나 부흥회 같은 분위기를 느끼며 언제나 하나의 구절이 울린다고 한다. “6-시그마, 6-시그마, 6-시그마” 그것은 GE의 새로운 주문이며 90년대 후반 GE의 함성인 듯하다. 어마어마한 자본과 고도의 전문인력이 투여되는 6-시그마운동은 기존의 생산 및 관리체계의 일대 혁신을 가져올 무결점주의, 고객최우선주의의 완결편이 될 것이다. 새 시대를 준비하는 경영자 잭 웰치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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