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영

일로 생긴 스트레스는 일로 푼다.-손길승 SK그룹 회장

by 휴리스틱31 2021. 5. 4.
728x90

일로 생긴 스트레스는 일로 푼다.

 

손길승 SK그룹 회장

 

삼성의 이병철, 현대의 정주영과 같은 존재가 SK에서는 창업자이면서 2대 회장이었던 고() 최종현 회장이다. 그 최종현 회장의 분신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바로 SK 역사의 산증인인 손길승 SK그룹 회장이다.

1999년 한국경영하회가 손길승 회장에게 한국경영자대상을 줄때 공적서에는 ‘SK그룹 성장사의 핵심 주역이자 산 증인으로 SK그룹이 에너지 · 화학과 정보통신산업에서 명실상부한 선두주자로 성장하는 데 있어 그 중심에 있는 전문경영인이라고 적혀 있다. 최종현 회장 사망 이후 그는 항상 재계를 대표하는 전문경영인 재벌 총수로 호평을 받았다. 드디어 20032월에는 재계 최고 단체인 전국 경제인연합회 회장에도 선출됐다. 물론 오너 경영인들이 서로 회장직을 기피하는 바람에 된 이유도 있지만, 그렇다고 손 회장이 전경련 회장에 선임된 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만큼 한국 재계에서 그는 일정 부분 카리스마를 확보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일평생 기업에서 일하면서 무서울 정도로 지독한 성실함을 보였고 끊임없는 조직 혁신을 추구해 왔기 때문이다. 물론 2003년 초 불어닥친 SK 글로벌 분식회계 파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경영인으로서 그의 일생에 치명타를 입힐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손 회장은 어린 시절 라인강의 기적을 보면서 한국에서도 경제 발전만이 이 가난한 나라와 만족을 구하는 길이라는 신념을 갖게 됐다고 한다. 서울대 상대 재학 시절에는 발전 가능성이 많은 중소기업에서 꿈을 펼쳐 보라는 당시 최문환 교수의 권고를 마음에 새겼다고 한다.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손 회장은 진주중과 진주고, 서울상대를 졸업한 뒤 ROTC 1기로 군 복무를 마쳤다. 군대 동기 중에는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을 비롯하여 수많은 재계 원로들이 있다. 군대 시절에 손 회장은 경리장교를 했다. 대학과 군대생활 내내 경영 수업을 받은 셈이다. 그는 제대 후인 1965년 당시 수원에 있던 중소기업체인 선경직물을 찾아갔다. 당시 선경직물에는 형의 부탁으로 미국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하여 사업을 돕고 있던 청년 최종현이 있었고, 두 사람은 그때 인연을 맺었다. 당시 손 회장은 최 회장의 경영 철학에 홀딱 반했고, 그때부터 유비와 제갈공명의 만남처럼 인연을 시작했다. 만약 그가 최 회장의 말을 단순한 지시와 명령으로만 여기고 그 앞에서만 복종하는 척하면서 딴 생각을 했다면 아마 오늘날의 손길승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최종현 회장은 늘 손길승 회장을 동지라고 불렀다. 두사람은 ‘SKMS’라는 그룹의 이념 설정에서부터 호흡을 같이 했다.

손 회장의 성공 비결은 한 마디로 그가 선경직물에 입사한 날부터 지금까지 정통파 일벌레라는 데 있다. 그는 일을 통해 생긴 스트레스는 일로 푼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일을 겁내면 스트레스가 생깁니다. 일을 사랑하다 보면 일이 없을 때 오히려 심심해집니다. 일이 오면 당당하게 맞서서 이겨내는 데 희열을 느끼는 것입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회사에서 며칠 밤을 새우는 것은 예사였다고 한다. 가령 SK가 이동통신을 인수할 당시에는 실무진을 지휘하면서 12일간을 꼬박 밤샘 작업했다. 무엇이든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고자 하는 성격 때문에 어떤 때는 새벽부터 자정이 넘도록 일에 골몰하다가 꼭두새벽에 느닷없이 부하 직원의 집에 전화를 걸어 업무를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손 회장은 자신이 계속 엄청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끔 기회가 생겼던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1971년 당시 SK계열이었던 대연각호텔에 화재가 났을때 경리과장이던 손 회장은 경리부 직원들과 함께 불이 채 꺼지지 않은 건물에 가장 먼저 올라가 경리 장부와 회사 금고를 찾아내 회제가 되기도 했다. 손 회장은 그후 비상하고 치밀한 기획력과 천부적인 부지런함으로 워커힐호텔, 유공, 한국이동통신 등 각종 대형 M&A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SK그룹의 오늘을 만들었다.

어디에서나 바른 말을 잘하기로 유명한 손 회장과 직접 인터뷰를 해보니 성격이 화통했다. 그는 투박한 경상도 억양을 가끔씩 내뱉으면서도 저처럼 부족한 사람이” “제가 그정도 식견이 없어서란 말로 겸손함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부분에서는 패기를 강조하는 SK맨답게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손길승 회장은 재계에서 몇 안되는 바른 말하는 경영인으로 유명하다. 재벌개혁을 강조하는 노무현 시대가 열리면서 그도 비슷한 시기에 전경련 회장을 맡게 됐고, 따라서 경제단체 대표로서 손회장은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우리 나라가 세계적으로 기업하기 어려운 국가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지난 2001년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21세기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국력은 경제력이 결정하고, 경제력은 기업의 경쟁력이 결정합니다. 정치와 경제는 불가분 관계인데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정치를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경제 회복의 돌파구는 경제 안정화 대책과 함께 기업 활력의 제고에서 찾아야 합니다. 선진국에서 보듯이 일류 국가 뒤에는 항상 세계 일류 기업이 있게 마련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시장경제 원칙을 갖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 기업들은 정부뿐 아니라 많은 사회단체, 이익단체 등에 의해 감시와 견제를 받으며 기업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업 임장에서는 70·80년대 급격한 경제 성장을 하는 와중에서 투명성을 확보하거나 선진국형 경쟁체제를 갖추기에는 좀 부족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도 인위적으로 시장에 대한 통제를 할 필요가 생기다 보니 규제가 불가피했습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부실 기업 퇴출과 기업 투명성 확보 등 구조조정을 거치며 시장의 자율 경쟁구도가 많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아직 정부 규제가 존재하고 있으며, 오히려 강화하자는 목소리도 있어 걱정됩니다. 우리 나라 기업들이 경쟁할 상대는 이제 국내가 아니라 세계적 규모를 갖고 있는 외국 기업들입니다.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에서 이기면 이 모두 국가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연결됩니다. 출자총액 제한제, 집단소송제, 30대그룹 지정제 등은 모두 기업활동을 억제하는 제도들입니다. 기업 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기업들이 세계적 기업들과 경쟁을 하는데 정부가 나서서 기업에 무엇이 필요한지 연구하고 지원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SK그룹 회장으로서 그가 모든 힘을 다해 관심을 쏟고 있는 곳은 최대 시장인 중국이다. 국내 대부분 기업이 중국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고 있겠지만, 손 회장은 어느 그룹 총수보다도 더욱 적극적이다. 내수 위주의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SK그룹으로서는 중국 비즈니스가 그 어느 그룹보다도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의 중국 투자전략을 들어보자.

 

 

 

 

중국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블랙홀입니다. 가장 원시적인 분야부터 최첨단까지 모든 걸 다 할 수 있고 서비스산업도 대단합니다. 한국 기업들은 중국을 단순히 경쟁상대로 보면 안 됩니다. 더불어 같이 간다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중화학이나 전자, 자동차, 경공업 등에서 우리 나라가 일찍 시작해서 지금은 약간 앞서 있지만 곧 중국이 우리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지금의 격차는 그리 큰 차이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골프칠 때 보세요. 골프장에 안개가 끼면 중국인은 안개가 사라질 때까지 그저 기다립니다. 하지만 우리는 앞에서 신호를 보내면서 계속 진행합니다.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는 신념과 역동적인 모습이 중국보다 낫습니다. 역사적으로 보세요. 중국이란 거대한 나라 옆에서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민족이 도대체 얼마나 됩니까.”

그래서 SK그룹의 중국 진출 전략은 기업문화와 비즈니스 모델은 한국과 중국이 공유하지만, 그밖의 모든 것은 철저하게 현지에서 만들어 현지인들에 의해 운영되는 완벽한 중국 기업을 지향한다고 한다.

다른 국내 기업들의 중국 진출에서는 전례가 벌로 없지요. 판매 법인이나 생산법인을 진출시키는 형태와는 대조적인 전략입니다. 국내 기업들이 그 동안 벌여 왔던 중국 진출 전략인 한국 기업의 중국 기업화가 아닙니다. 저희는 애초부터 회사를 중국 기업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제가 중국을 여러 차례 다니면서 보니까 중국 속에는 모든게 녹아들게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중국이란 나라는 단순하게 투자해서 과실만 가져오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대안은 중국 속의 SK’를 만드는 것이었지요. 이렇게 하면 저희가 동북아시장에서 리더 지위를 확보하고, 나아가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하는 발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손 회장은 그렇게 회사 일에 열심히면서도 가족에 대한 얘기는 무척 꺼린다. 19993월 서울 공항터미널에서 있었던 차남 결혼식 때 외부에 이를 전혀 알리지 않아 뒤늦게 화제가 됐고, 그해 5월 어머니 김정숙 여사가 별세했을 때도 절대 알리지 못하게 해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영안실이 썰렁했다고 한다. ‘SK그룹 임직원들은 절대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특명을 내려 사장단만이 간신히 조문을 했다는 것이다. 손 회장 자신도 최종현 회장의 유지를 따라 사후에 화장해 달라고 유언했다.

그는 평소에는 기()수련을 통해 건강 관리를 하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골프를 친다. 이동하는 시간에는 무조건 독서를 한다고 한다. 역사 서적에 관심이 많고 시간이 더 있다면 본격적인 연구를 해보고 싶단다.

뒤늦게 시작한 골프에서도 그는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골프는 사실 1994년까지 치지 않다가 선배의 조언으로 시작했습니다. 누구는 어떻게 50대에 골프를 시작해 싱글에 가까운 실력에 이르렀느냐고 칭찬하지만 저는 골프가 기 수련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필드에서 정신 집중을 하며 매타 최선을 다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온 것 같습니다. 골프는 집중력입니다. 한 타, 한타를 잘 쳐야 합니다. 앞으로 어찌 되느냐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남이 잘 치는 것을 시샘해서도 안됩니다. 지나간 것은 잊어버리고 버어도 겁내면 안 되지요. 경영자로서는 꼭 배워 두어야 할 운동이지요.”

 

약력

 

1941. 2. 6 경남하동 생

1959 경남 진주고 졸업

1963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65 선경직물 입사

1978~1998. 1 선경그룹 경영기획실 사장

1982~1997. 10 유공해운 대표이사 사장

1994 한국이동통신 부회장

1997. 10~1998. 12 해운 대표이사 사장

(19973월 한국이동통신이 SK텔레콤으로 개칭)

1998. 1 SK그룹 경영기획실 사장

1998. 4~1998. 9 SK구조조정추진본부 본부장

1998 SK텔레콤 대표이사 회장

(20021월자로 SK텔레콤과 SK신세기통신이 합병)

2003. 2 전경련 회장

728x90

'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례) AT&T는 왜 컴퓨터시장에서 실패했나?  (0) 2021.05.20
충성도 제로 소비자  (0) 2021.05.17
리더십 CEO - 콘라드 힐튼  (0) 2021.05.04
CEO 리더십 - 카네기  (0) 2021.05.04
리더십 CEO - 월트 디즈니  (0) 2021.05.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