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도 제로 소비자
¶ 코코스의 몰락
세계적인 패밀리레스토랑 기업들이 한국을 보는 시선은 남다르다. 아시아권은 물론이고 전세계에서 가장 성장이 빠른 시장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브랜드인 TGIF의 매장수는 23개로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계 3위다. 또한 정통 스테이크가 주메뉴인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는 미국 다음으로 매장수가 많고, 그 뒤를 캐나다가 잇고 있다.
지금에야 다양한 브랜드들이 즐비하지한 사실 우리나라에서 대중화된 패밀리레스토랑의 역사는 긴 편이 못된다. 기억하기로 일본의 패밀리레스토랑 브랜드인 코코스를 백화점업체인 미도파에서 도입해, 1987년 오픈 한 것이 본격적인 가족형 외식업의 시작이었다. 당시 분식점이나 중국요리집 정도의 입맛에 길들여져 있던 소비자들에게 코코스의 등장은 한 차원 높은 고급 식당 문화를 선사했다.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고급형 음식점의 대표격으로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세를 이어갔다. 가격도 만만치 않은 고급형 컨셉이 연상되던 곳이었다. 코코스를 시발로 데니스(1987년), TGIF(1991년), 로터스가든(1991년), 판다로사(1992년), 스카이락(1994년), LA팜스(1994년), 누메로우노(1995년), 플래닛 할리우드(1995년)등이 국내에 속속 들어왔다.
그러던 패밀리레스토랑의 한국판 시조 코코스가 지난해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유사 경쟁 패밀리레스토랑들의 공격적 시장 잠식이 치명타였다고 한다. 고급형 개념으로 시장에 안착했던 코코스의 상대로 TGIF,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 베니건스, 마르쉐, 토니로마스 등 전세계 최고의 브랜드들이 승부수를 띄웠다. 경쟁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식이었다. 고급화 이미지의 코코스를 뛰어넘는, 마치 미국 본토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키게 할 만큼의 월등히 세련된 인테리어는 기본이었다.
또한 이동통신이나 신용카드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20% 안팎의 할인 혜택이 주어졌다. 주문을 받는 종업원들은 손님을 아래로 내려다볼 수 없다며 바닥에 무릎을 꿇는 극한의 서비스까지 시도했다. 오래지 않아 소비자들의 발길이 하나 둘 좀 더 고급스럽고, 좀 더 친절한 곳으로 옮겨가면서 왕년의 고급 패밀리레스토랑 코코스는 더 이상 견딜 수 있는 기반을 상실한 것이다.
¶ 반했다고 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코코스의 몰락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적어도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맹목적인 충성도를 기대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감성 소비의 시대라고 하지만 소비자들은 냉혹하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이득이 되는 곳으로 내가 더 만족스러운 제품으로 쉽게 변심했다.
여기에는 쉽게 싫증을 내는 한국인의 공통 성향도 한몫을 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휴대폰 교체 주기 1.6년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읽자. 온라인에 한정되어 주로 신세대 소비자를 중심으로 거래되는 제품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인터넷상의 아바타가 입는 3~4천 원대의 의상을 바꿔 입히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휴대폰 착신 벨소리를 최신 음악으로 바꿀 수 있는 필링 서비스를 하루가 멀다 하고 교체하는 10대 소비자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정감이 가는 ‘단골집’이라는 용어가 설 곳을 잃을 때가 멀지 않은 듯하다. 자신의 소비 만족을 조금이라도 높여준다면 어렵지 않게 자리 바꿈하는 일은 더 이상 변덕스럽지 않고 지극히 합리적인 보습이 되어가고 있다.
¶ 충성도 몰락의 2가지 근거
한국의 소비자들은 왜 흔들리는 갈대일 수밖에 없는가. 우선 지극히 계산적인 소비자 특성 변화를, 다른 하나는 유독 새로운 것에 민감한 한국인 고유의 특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부차적인 설명으로 기업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와 제품 수준의 급격한 상승, 경쟁적인 마케팅 노력들을 배놓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소비 행위의 기저에는 기본적으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용’이라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가 깔려 있다. 내가 지불하는 돈을 통해 최고의 만족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계산적이라는 사실은 별로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다만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보들이 풍부해지면서 보다 현실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전에는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었지만, 이제 인터넷상에 원하는 제품명을 입력하기만 하면 순식간에 전국에서 가장 저렴한 구입 방법을 알려준다.
빠른 변화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도 온전한 충성심에 상당한 방해가 된다. 새로 출시된 제품에 열광하는 것도 잠시, 곧바로 시장에 쏟아지는 최신 제품에 주저한 국민이 또 있을까. TV 드라마에 나온 연예인의 액세서리가 불과 며칠 새 시장에 등장한다.
¶ 신용카드와 휴대폰의 충성도는 무슨 이야기
이례적으로 유독 강한 소비자 충성도를 보이는 영역이 있다. 바로 신용카드와 휴대폰 이동통신 서비스다. 제품의 품질이나 제공 서비스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닌데 소비자 이동이 심하지 않다. 각자 나름대로 이유가 다르다.
신용카드의 경우는 연회비의 발목 잡기가 대부분이다. 현재 사용하는 카드가 있고 연회비도 이미 납부한 상황에서 추가로 카드가입을 하는 건 명백한 손해다. 소비자 마케팅의 대가들이 카드사가 이를 외면할 리 없다. 가입 첫해에 연회비를 면제하는 등의 틈새를 이용해 고객 쟁탈전을 이어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극심한 신용불량자로 카드 돌려 막기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다음해 둘 중 하나의 카드를 선택해 연회비 지출을 사전 차단하는게 일반적이다.
휴대폰의 경우는 조금 더 복잡하다. 소비자 충성도가 휴대폰보다 높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휴대폰의 이동통신 번호 때문이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현재의 전화번호에 익숙해 있는데 어떻게 쉽게 바꿀 수 있을까. 이 때문에 신용카드에 비해 소비자 이탈 방지를 위한 마케팅 노력을 덜 들여도 되는 사업이기도 하다. 사실 요금 할인 혜택과 다양한 제휴 서비스로 영화, 레스토랑 비용을 할인해주는 프로그램 등은 기존 소비자 유지보다는 신규 소비자 유치 목적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번호 이동성이 그것이다. 본격적으로 내년 초반이 되어야 이동통신 3사 간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효과는 지금도 상당하다. 지지대가 무너지면서 이동통신사들 간에 다시 치열한 고객 쟁탈전이 시작됐다. 최종적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제나 기억할 것은 소비자는 너무나 똑똑하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맹목적인 충성심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 CRM의 타깃을 전환해야
인터넷 도입과 수십억 원의 인프라 투자를 요하는 정보화 시스템 투자가 줄을 이었다. 기업들은 너나없이 ERP, SCM, CRM 등의 시스템 인프라 구축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통제 시스템과 대고객 서비스가 한결 업그레이드 되었다.
이 가운데 대고객 서비스 제고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이 CRM이다. 이론적으로 CRM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에 진정한 가치를 주는 고객에 대해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고객이 해당 기업제품에 대해 창출하는 생애가치를 극대화 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마케팅활동의 효과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고객 관리의 새로운 대안으로 나온 것이다.
여기서 관계란 기업과 고객과의 관계로 장기적인 신뢰를 기반으로 한, 인구와도 같은 개인적인 친밀감의 수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기업은 개별 소비자에 대해 일대일 관계를 맺고,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을 이해하고 개별 고객에 대한 차별적인 대응을 통해 고객과의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장에 한계를 공감하는 다수 기업을 중심으로 CRM 투자 규모가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론과 다르다. 더구나 똑똑한 한국 소비자들에게 신뢰와 친밀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CRM 구축 초기의 생애가치 극대화라는 목표는 많이 변질되었다. 어쩔 수 없는 시장 상황, 즉 냉정한 소비자의 변심 때문이다.
CRM 도입기에 다른 기업과는 차별되는 우위 수단이었던 것이 이제는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왕따당하는 격이 되었다. 고객에 대한 치밀한 데이터를 가지고 일대일 마케팅을 전개하는 상황에서 혼자만 손 놓고 있다가는 고객 이탈은 불 보듯 뻔하다. 평생고객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있는 고객을 빼앗기지 않는 것으로 CRM의 본질이 바뀌었다.
시장 변화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CRM은 고객관계 관리 수단보다는 고객흐름 일기 정보에 한정해야 마음이 덜 아프다. 적어도 현재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무한한 평생충성을 기대하는 일은 환상일 수 있다.
동일한 제품 품질,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소비자 충성을 기대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막대한 마케팅 비용이 아무런 효과없이 소진되고 마는 허탈한 결과로 귀결되는 게 일반적인 경로일 것이다. 이보다는 본질의 차별화에 승부를 거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한 대안이다. 물론 마케팅 수단을 통해 소비자를 설득하는 일이 비용 투자도 수월하고 당장 가시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경쟁자는 곧 따라온다. 마케팅 방법들에 특허 등록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은 상호수렴하기 마련인 만큼, 장기적인 시각으로 본질에서의 차별화가 필요한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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