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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 Seeing

비오는 날 - 손창섭

by 휴리스틱31 2021.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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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 손창섭

 

읽고나서...

 

우선 이 책의 제목은 무언가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암호처럼 느껴졌다. 아름답거나 화려하지는 않을 것 같은 짐작을 하게 했다. 오늘또한 밖은 비가 촘촘히 내리고 나는 기회삼아 비오는 날의 책장을 넘겨 보았다. 원구가 바라보는 동욱과 동옥 남매의 삶을 그려넣은 문학이었다. 한국전쟁 직후의 장마철 부산마을의 배경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원구가 불구가 되어버린 동옥을 보면 느끼는 연민의 감정처럼...마지막에 동옥이 없어져 사창가에 팔아버리진 않았을까 하며 분개하는 원구의 마음처럼...사회에 생활을 하지 못하는 빈민생활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1. 요점 정리

 

- 작자 : 손창섭(孫昌涉)

- 갈래 : 단편 소설. 전후 소설

- 배경 : 육이오 전쟁 직후의 여름 비 오는 날(장마) 부산 동래 부근 외딴 마을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어조 : 소외된 인간상을 피학적(被虐的) 어조로 묘사함.

- 문체 : 간결체

- 성격 : 실존적, 허무적, 냉소적, 비극적

- 구성 : 단순 구성, 평면적 구성

- 제재 : 월남한 동욱과 동옥 남매의 삶

- 주제 : 전쟁의 극한 상황이 가져다 준 인간의 무기력한 삶과 허무 의식

- 구성 : 단순 구성, 평면적 구성

· 발단: 비가 내리는 날이면 원구에게는 동욱 남매의 음산한 생활 풍경이 회상됨.

· 전개: 원구는 황폐한 동욱의 집을 방문하여 동욱과 그의 누이동생 동옥을 만남.

· 위기: 동옥의 자조적인 웃음. 그들의 유일한 생계인 초상화 작업을 못하게 함.

· 절정: 동옥이 노파에게 돈을 떼이고, 세 들어 살던 집마저 떠나게 됨.

· 결말: 원구가 그 집을 방문했을 때 이미 그들은 떠나고 그는 자책(自責)감에 빠져 돌 아옴.

 

2. 경향

 

전후의 실존주의와 휴머니즘[손창섭 소설의 인물들은 대체로 우울하다. 동시에 상식을 깨뜨리고 의외의 충동으로 삶과 대치하며, 비사회적이고 우발적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넓은 세계에서 호흡할 수 없으며, 늘상 폐쇄되어 있다. 그 상징적 공간이 '혈서' 등에 중심 배경으로 놓여 있는 '' 이며 이 소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작자 자신도 그의 소설을 '나와의 공존과 공감을 허용하지 않는 기성 사회, 기성 권위에 대한 억압된 인간적 발산' 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그의 소설을 냉소와 자조, 허위에 대한 불신, 애정의 마비, 생활의 분열로 성격 짓게 한다. 특히, '비 오는 날' 의 경우는 전쟁 상황의 한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삶이기에 그 분위기가 더욱 어두울 수밖에 없고, 특히 '비가 온다.'는 눅눅한 배경 설정은 이를 더욱 짙게 물들인다.]

 

3. 특징

 

원구라는 인물이 동욱 남매의 불구적 삶의 형태를 회상하는 구성, 사회적 배경과 상황적 배경, 시간 공간적 배경이 적절히 배합되어 생존의 비극성을 밀도있게 구현. '- 것이다'라는 강조 또는 간접 화법 표시의 종결 어미를 자주 사용(사건을 간접적 제기, 사건 자체보다는 그 사건에 의해 환기된 서술자의 냉소적인 감정을 전달),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부사어를 자주 사용한다.(인물이 처한 열악한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는 양상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다시 말해서 상황이 그만큼 인물들이 거부할 수 없이 '압도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려준다.)

 

4. 등장 인물

 

정적(靜的) 인물로 직접 묘사 방법이 주종(主從)을 이루고 있다.

 

동욱 : 1·4후퇴시 불구인 여동생 동옥을 데리고 월남하여 미군의 초상화 주문을 맡아 생계를 꾸려 나가던 동욱은 초상화 주문을 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동생 동옥을 버리고 가출해 버리는 절망적인 인물이다.

동옥 : 불구의 몸으로 초상화를 그리는 일로 소일하는 동옥은 원구를 믿고 사랑하나 생계가 막연해지고 오빠마저 가출하자 어디론가 떠나 버리는 정적 인물이다.

- 동욱과 동옥을 비교한다면 동욱은 현실 타개를 하려는 형이고, 동옥은 현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내면에 칩거하는 형

원구 : 이 소설의 나레이터로서 동욱 남매의 비참하고 절망적 삶을 이야기하는 정적 인물로 동욱 남매에 대한 동정적이지만 무기력하다.

 

동욱과 동옥은 세상에 내던져져 방향을 상실하고 절대적 가치도 잃은 존재로 파악된다. 이러한 인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실존주의적 인간관에 바탕을 둔 것이다.

 

5. 줄거리

 

6·25 전쟁 당시 임시 수도에 피난 와서, 대학생이던 원구는 달구지 목판 장수를 하다가, 친구 동욱을 만나 그의 집으로 가 본다. 원구와 동욱은 한 마을에서 자라, 국민 학교에서 대학까지 줄곧 동창이었으므로 원구는 어린 시절의 동욱의 누이 동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옥이가 중도에 소아마비를 앓아서 불구가 된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재회를 통해 알게 된다. 원구가 자주 동욱이네 집으로 와서 동옥을 만나는 사이에 둘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동욱이 원구를 찾아와, 초상화 그리는 일도 이제 끊겼다고 하면서 동옥이 더욱 외롭고 불안해 하니 가끔 찾아와 위로해 줄 것을 부탁한다. 다시 비 오는 날 그들을 찾아간 원구는 동옥이 그동안 모아둔 돈을 빚낸 주인 노파가 도망을 가버려 절망하는 동옥의 모습에 안타까워한다.

 

한달 가까이 계속된 장마로 일을 쉬고 있던 원구가 다시 동욱을 찾아갔으나, 주인은 바뀌고 동욱 남매는 어디론가 가출한 채 돌아오지 않는다. 주인이 혹시 동옥을 사창가에 팔아먹은 것은 아닐까 하는 격분을 안고 원구는 돌아온다.

 

6. 작품 개관

 

'비 오는 날'은 전쟁의 고통과 비참상을 다루거나 전쟁의 후유증과 가치관의 혼란을 다룬 1950년대 문학으로서 전쟁이 우리 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 주기 위한 제재로 선정되었다. 이 작품은 전후 소설을 대표하는 것으로, 절망의 시대 분위기가 빚어낸 비인간적이며 무기력하고 참담한 삶의 모습을 그려 내어 전쟁이 가져다 준 물질적, 정신적 상처와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 인간을 얼마나 무기력하고 황폐하게 만드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이 작품은 그로 인한 절망이 단순한 인간애로 극복될 수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 주고 있다.

 

7. 이해와 감상

 

손창섭은 전후 세대(前後世代) 문학의 대표 작가이며, 그의 작품이 보여 주는 음울한 분위기와 비정상적 인물만이 등장하는 불구성(不具性)은 전후 문학의 상징적 의미를 집약시킨 것이다. 이 작품의 의미는 첫 단락에 나타나 있다. 원구에게 동욱 남매의 삶은 항상 비 오는 날의 음울한 분위기와 결부되어 회상되고 있다. 비 오는 날의 음산한 풍경은 작품 전체의 분위기뿐만이 아니라 작중 인물의 심정과도 관련되어 있다. , 등장 인물들의 무기력, 우울, 절망, 나아가서는 불구성(不具性)까지 비 오는 날의 구질구질함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피난지 부산에서 동욱 남매의 삶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전쟁이라는 극한적(極限的) 상황이 가져온 이 무기력한 삶은 아무런 필연성도 없이 '우연히' 살아 있는 인간의 허망함을 말해 주고 있다. 신체 장애자 동옥이 보이는 까닭없는 모멸(侮蔑)과 반항 역시 이 허망함에서 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격변기의 사회에서 뿌리를 잃어버린 자들이 얼마나 빨리 철저하게 허물어지는가를 예리한 관찰로 보여 주고 있다.

 

이해와 감상 1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가 내리는 음습한 분위기 속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불구인 등장 인물들의 무의미하고 무기력한 삶이 그려져 있다. 절망에 처한 전후의 폐허 상태와 맞물려 있는 인간의 병적이고도 무기력한 내면 상태를 파헤침으로써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모멸의 극한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인간 모멸 의식'으로 일관한 손창섭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 가져다 준 인간의 무기력한 삶, 또는 허무 의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된 이 소설은 그 배경부터 전쟁이 가져다 준 폐해와 절망을 느끼게 한다. 여기서의 전쟁 중의 부산은 절망적인 삶을 유지해 가는 비극적인 공간이다. 더욱이 이동욱 남매의 황폐한 거처는 그들의 무기력과 허무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시간적 배경은 장마철, 비오는 날이다. 장마철의 고습하고 눅눅한 느낌, 그리고 그로 인한 불쾌와 우울은 이 작품의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의 ''란 소설의 분위기 전체를 지배하고 나아가서는 전후의 상황을 암시하는 요소이다.

 

음울한 분위기와 비정상적인 인물들이 보여주는 불구성은 전후 상황을 상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삶은 모두 비정상적이다. 전쟁이 가져다 준 정상적인 삶의 파괴는 무기력과 절망적인 삶을 가져다 주고 이는 무의미함으로 확대된다. 즉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 인간을 얼마나 무기력하고 황폐하게 만드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라는 배경, 그리고 부산이라는 피난지 배경과 인물들이 보여주는 불구성과 비정상성을 통해서 더욱 고조시킨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작가의 시선 역시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이다. 전쟁의 상흔, 그리고 그로 인한 절망이 단순히 인간애에 의해서 극복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작가는 어떠한 극복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그저 우울과 무기력만이 가득한 공간, 그것이 1950년대의 부산의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냉소적이고 허무적인 시선이야말로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황폐화를 오히려 적나라하게 그려내는 바탕이 되고 있다.

 

비정상적이고 불구적인 인물들이 등장하여 전쟁으로 인한 삶의 황폐화를 표현하면서 상황에 의해서, 그리고 우연에 의해서 희생당한 인간들의 무기력을 통해서 현실의 부조리함을 파헤친 작품이다. 더욱이 이 작품은 결말, 즉 해결이 부재되어 있다. 비 내리는 날의 우중충한 분위기는 작중 인물들의 남루한 삶과 황폐한 내면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그대로 절망과 무기력과 무위로 구질구질한 작중 인물들의 심경을 드러내 준다. 또한 그 비는 계속해서 내린다는 점에서 앞이 캄캄하게 막혀 있음을 암시한다. 아무 것도 끝나지 않으니 소설 속의 모든 사태는 끝내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결말 부재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절망적이고 무의미한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죽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기존의 문학에서 인간을 가치 있고 이성적인 존재로 보고 그 바탕 위에서 인간을 탐구하려 했다면 손창섭은 인간의 생활을 더 무의미한 면의 누적으로 파악하였다.

 

손창섭의 초기 소설은 넓은 의미에서의 병자가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때의 남성 인물들 대부분이 무능하거나 나약하거나 떳떳치 못한 인간상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 작품 역시 그렇다. 현실 앞에서 동욱은 끝내 신경질 환자로 변화해 가며, 대학까지 나온 그는 장차 목사가 되겠다면서 불구자인 누이동생 하나 건사하는 것마저 실패하는 무능한 인간으로 나온다.

 

이들 남매의 새디즘과 매저키즘으로 동욱은 동옥을 이유 없이 학대하고 동옥은 그 학대를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동욱은 목사가 되겠노라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냉소와 자조, 실의와 체념, 윤리의 파탄 등이 이 작품에서 그려지고 있는데 이러한 인물과 그들 간의 관계의 형상화는 전쟁의 폐허 위에 남은 지식인의 뿌리 뽑힌 삶과 좌절, 상실의 감정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피난지 부산이다. 당시 부산은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비극의 장소이다. 그리고 시간적 배경은 장마철로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가 지배한다. 이는 전후의 절망적이고 무기력한 당대의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사건 자체가 전쟁 후의 현실 적응 문제이며 그 문제에 부닥친 인물들은 모두 병적인 인물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즉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과 비정상적인 인간들의 삶을 통해 전쟁이 가져다 준 물질적 정신적 상처와 전후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그 방법에 있어서는 작가는 끝까지 냉소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결국 허무주의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해와 감상 2

 

이런 류의 작품으로 이범선의 <오발탄>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 준다. 이 작품은 6·25 직후의 부산을 배경으로 동욱 남매의 불행을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비가 오는 음산한 풍경을 배면(背面)에 깔면서, 이상 성격자 동욱과 동옥의 절망과 무기력이 음울한 문체로 표현되어 있는데, 손창섭의 소설의 인물들은 대체로 음울하다. 동시에, 상식을 깨뜨리고 의외의 충동으로 삶과 대치(對峙)한다. ()사회적이며 우발적이다. 때문에 그들은 넓은 세계에서 호흡할 수 없으며, 늘상 폐쇄되어 있다. 그 상징적 공간이 '혈서(血書)' 등에 중심 배경으로 놓여 있는 '()'인데, 이 소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작가 자신도 그의 소설을 '나와의 공존과 공감을 허용하지 않는 기성 사회, 기성 권위에 대한 억압된 인간적 발산'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그의 소설을 냉소와 자조(自嘲), 허위에 대한 불신, 애정의 마비, 생활의 분열로 성격 짓게 한다. 특히, '비 오는 날'의 경우는 전쟁 상황의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삶이기에 그 분위기가 더욱 어두울 수밖에 없고, 이를 짙게 물들이는 것이 '비가 온다'는 눅눅한 배경 설정이다.

 

역사적 조건이 빚어 놓은 병리적 사회 현상이 개인을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아넣고, 그 상황 속에서 개인은 무기력하게 피폐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의 주제다. 이 때 '비 오는 날'이란 상황 설정은 피난지에서 폐가나 다름없는 동욱의 집과 함께 주제를 더욱 선명히 부각시켜 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소설은 사회적 배경과 상황적 배경,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을 적절히 배합함으로써 생존의 비극성을 밀도 있게 구현해 내었다고 볼 수 있다. 육체적 불구로 인해 소외될 수밖에 없는 동옥. 그녀가 그린 초상화를 미군들에게 팔아 연명해야 하는 동욱 이들은 삶의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린 인생들로, 그들 남매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희생된 인물들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부산이다. 부산은 한국전쟁 중에 고향을 떠나 남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비극적인 장소이다. '폐가와 장마'라는 배경 또한 주제 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의 우울한 내면 심리를 다룬 전후문학이다. 사건의 직접 제시보다 어떤 사건에 의해 환기된 심경의 변화를 그리는 일이 앞서고, 객관적 인물 묘사보다 처음부터 작가에 의해 주관화된 냉소적인 관찰로 인물 묘사가 행해지는 특이한 소설양식을 갖고 있다. 주로 간접 화법에 의해 대화가 처리되며, 부사어 및 '것이다'가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으로 이를 알 수 있다. 아무튼 이 작품은 6.25 라는 전쟁이 개인을 어떻게 황폐화시킬 수 있었던 지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이해와 감상 3

 

6.25 직후 젊은이들의 뿌리뽑힌 삶과 정신적 방황을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만드는가를 보여주고, 그 비정상적인 인간들의 비정상적인 삶을 통해 전후의 사회를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손창섭의 작품이 보여주는 다른 작품들처럼 "비 오는 날"에도 예외 없이 정상적인 인간과 비정상적인 인간이 등장한다. 대학생 신분으로 행상을 해서 먹고사는 주인공 원구는 비교적 정상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절름발이면서 '백지에 먹으로 그린 초상화' 같은 여자 동옥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조소하고 멸시한다고 생각하여 맑은 날에도 일절 바깥출입을 않고 두더지처럼 방에만 처박혀 지낸다. 불구인 자기 누이동생을 터무니없이 구박하는 동욱은 영문과를 다닌 경력으로 미군 부대에 드나들면서 초상화 주문을 받으러 다닌다. 이 세 사람이 6.25 직후 썰렁한 부산에 내던져 있다.

 

동욱이가 들어 있는 집은 인가에서 뚝 떨어져 외따로이 서 있었다. 낡은 목조 건물이었다. 한 귀퉁이에 버티고 있는 두 개의 통나무 기둥이 모로 기울어지려는 집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다. .... 전면은 본시 전부가 유리창문이었는데 유리는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았다. 들이치는 비를 막기 위해서 오른편 창문 안에는 가마니때기가 드리워 있었다. 이 을씨년스러운 폐가 속에서 동옥 남매는 서로에게 증오를 키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 위에 40일 간 계속되는 장마는 끊임없이 비를 뿌린다. 소설 구성의 한 요소로 일컬어지는 배경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퇴락해 가는 폐가와 음산하게 계속되는 장마비, 이것은 6.25 직후의 아무런 희망도 찾아볼 수 없었던 '물탕에 젖어 꿀쩍거리는 신발 속' 같은 시대 상황이면서 동시에 절망과 무력감에 젖어 사로잡혀 있던 전후 청년들의 심리 상태에 다름 아니다.

 

이 소설에서 주의 깊게 읽어야 할 대목은 외부 세계에 적대감을 가진 채 철저히 불신으로 살아가던 동옥을 향한 원구의 관심이다. 처음 친구 동욱을 찾아 이 폐가를 방문한 원구에게 보여지던 동옥의 태도는 적대감과 무관심 바로 그것이었다. 처음 이러한 동옥에게 원구는 불쾌감을 갖는다. 그러나 동옥의 적대감이 그녀의 신체적 불구에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원구는 그녀에게 따뜻한 관심과 시선을 보낸다. 자기의 관심에 따라 변화를 보이는 동옥의 태도에 흥미와 기쁨을 느낀다. 인사불성에 빠졌던 환자가 제 정신으로 돌아온 때처럼 고마웠다. 첫 번 불렀을 때는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반응도 없던 환자가, 두 번째 부르자 눈을 간신히 떴고, 세 번째 불렀을 때는 제법 완전히 눈을 떠서 좌우를 둘러보다가 물 좀, 하고 입을 열었을 경우와 같은 반가움을 원구는 동옥에게서 경험하는 것이다.

 

상기한 내용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아주 작지만 화해가 싹트기 시작한다는 인간성 회복의 조짐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중한 믿음은 이내 산산이 깨어져 버리고 만다. 초상화를 그려 어렵게 모은 돈을 집주인이 사기를 쳐 달아나고 이에 참지 못한 동욱은 불구의 여동생을 버려 둔 채 입대해 버리고 동옥조차 원구가 찾아가 보지 못한 사이에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만 것이다. 작품 끝머리에, 새로 집주인으로 들어온 사내가 동옥을 사창가에 팔아 넘겼을지도 모른다는 강한 암시가 나오는데 이로써 인간 대() 인간의 화해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8. 심화 자료

 

손창섭(孫昌涉 1922- )

 

평양 출생의 소설가로서 착실한 필치로 이상 성격의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 내어 1950년대의 불안한 상황을 형상하는 데 주력했다. 대표작으로는 "비 오는 날", "잉여 인간", "낙서록" 등이 있다. 6.25 전쟁의 충격으로 뒤틀린 한국 현실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구 상태를 압축하여 인간 본래의 면목을 드러내는 다수의 작품을 썼다.

 

손창섭 소설의 형식적 특징은 우선, 결말의 부재이다. 즉 사태가 끝나지 않고 있다. 종래의 소설에 대한 도전이다. 그리고 모든 등장 인물의 명칭이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종래의 표기 방식에 대한 거부이다. 이런 표기 방식은 사건 또는 스토리를 거의 무시하고 인물의 성격만 문제 삼는 그의 소설 세계와 맞물린다. 또 문장의 대부분이 '것이다/것이었다'란 특이한 종지형으로 서술된다. 이는 어떤 감정도 가치 판단도 개입되지 않은 철저하게 방관적인 이방인과 같은 태도를 드러낸다. 손창섭은 전쟁이라든가 그로 인한 1950년대 현실의 황폐상 등 객관 현실의 탐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작품은 주로 해방 후의 혼란과 6.25라는 민족사의 비극 속에서 불구적인 육체와 비정상적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인간에 대한 부정과 야유의 시선을 던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인간의 따스한 애정에 대한 향수가 깃들어 있다.

그리고, 손창섭의 작품 중에 "비 오는 날" 외에 가장 널리 알려진 "잉여 인간"이 있다.

 

"잉여 인간"(1958)"비 오는 날", "혈서" 등과 함께 손창섭의 전후(戰後)소설에 속하는 작품이다. 한국 소설은 전후 소설에 이르러 그 의식이나 기법 면에서 현대 소설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전후 소설이란 한국전쟁 이후 약 10여 년간 손창섭 ,장용학, 서기원, 오상원, 이범선 등의 소설에 나타나는 어떤 경향으로 특징지어졌는데 전쟁의 참혹성과 거기에서 오는 허무의식, 인간성의 파괴, 그리고 생활의 의욕을 상실하고 방황하는 황폐한 삶의 양태 등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손창섭의 소설은 전후(戰後) 의식을 새로운 소설 기법으로 수용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작가는 전쟁의 상흔을 숙명적으로 안고 살아가는 처참한 인간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인간의 출현은 인간 자체의 정신적 결함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전쟁과 전후 현실의 어두운 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 특징적이다. 바로 이러한 점, 다시 말하면 인간의 모든 문제를 인간 밖의 역사나 사회로 돌리고 자신들의 고통을 과장한다는 비판을, 전후세대를 이어 등장한 60년대 작가들로부터 듣게 된다.

 

소설 "잉여 인간"은 전후의 사회상과 그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도는 인간의 몇 가지 유형을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제시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한국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경험하였으며 동시에 전쟁의 후유증이 산재해 있는 비정상적인 사회 구조에서 배된 인물들인 것이다. 작가는 전후의 현실과 그 속에서 음지식물처럼 서식하는 인물 유형을 제시함으로써 전쟁이 남긴 참상을 고발한다.

 

서만기 치과의원의 원장인 서만기, 그의 아내와 처제, 간호원 홍인숙, 거의 날마다 치과의원에 출근하다시피 하는 채익준과 천봉우, 천봉우의 아내, 이들이 이 소설의 중요 인물들이다. 주인공 서만기는 어떤 사람인가? 작품의 일부를 통해 알아 보기로 한다.

 

. 자기의 분수를 알고 함부로 부딪치지도 않고 꺾이지도 않고 자기의 능력과 노력과 성의로써 차근차근 자기의 길을 잃고 나가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놀라운 일에 부딪치거나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을 대해서도 도리어 반감을 느낄 만큼 그는 침착하고 기품 있는 태도를 잃지 않는다. ... 문벌 있는 가문에 태어나서, 화초 가꾸듯 정성어린 어른들의 손에서 구김살 이 곧게 자라난 만기는, 예의범절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을 뿐 아니라 미술, 음악, 문학을 비롯해서 무용, 스포츠, 영화에 이르기까지 깊은 이해와 고급한 감상안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만기는 서양 사람처럼 후리후리한 키와 알맞은 몸집에 귀공자다운 해사한 면모를 빛내고 있었다. 또한 넓고 반듯한 이마와 맑고 잔잔한 눈은 그의 총명성과 기품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

 

말하자면 그는 완벽한 인간이다. 전쟁의 참화도 서만기의 그 고상함만은 비켜 갔는가? 거의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서만기는 살아 움직이는 인물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작가의 관념 속에서 만들어진 생명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서만기를 둘러싸고 있는 인간들은 그의 아내와 간호원 홍인숙(그녀들도 지나치게 선하다는 점에서 현실감이 없지만)을 제외하고는 전부 문제를 안고 있는 인물들뿐이다. 채익준은 마음에 들지 않는 신문기사를 보면 탁자를 내리치며 고함을 지르기 일쑤인 비분강개파이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가 죽어 가고 있는 사실조차 모르고 떠도는 인간이며, 천봉우는 성적으로 문란한 아내와의 가정 생활에는 서만기에게 노골적인 추파를 던지고, 더욱 가관인 것은 만기의 처제는 형부임에도 불구하고 만기를 향한 애정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두드러진 악인은 없다. 그러나 모두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살지 못하고 잘못 짜여진 시간표에 휩쓸려 잘못된 열정에 들떠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 시사해 주듯 그 전쟁통에도 죽지 못하고 살아남은 나머지 인생들인 셈이다.

 

이 작품을 통해 볼 때 작가 손창섭은 전후에 살아남은 자들에게 어떤 저주를 퍼붓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서 그 험악한 세월을 살아남은 비애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또한 부인할 수 없다.(출처 : 서주홍의 문학속으로 다운 자료)

 

9. 손창섭 소설의 인물과 묘사상의 특징

 

손창섭 소설의 인물들에게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인물 묘사가 거의 없다. 용모라든지 신상 등에 대해서 작가는 거의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희극적인 대사나, 깊은 것은 아니면서도 작가의 인간 통찰에서 나온 심리적 묘사나, 인간에 대한 냉소적인 관찰로서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있다. 또한, 인물들은 정상적인 육체와 삶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의 초기 단편들은 심신 장애자가, 후기는 비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인간들이 주인공이다.

 

이 작품에서도 여주인공인 동옥은 절름발이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인물을 더욱 절망적으로 만드는 것은 우울한 배경이다. 이 작품에서도 동옥 남매의 사는 곳이 '금방 도깨비가 나올 듯한 폐가같은 집'이고 시간적 배경도 비가 오거나 저녁 때의 음산한 분위기이다. 원국 동옥 남매를 방문하는 때는 늘 비가 오는 날이고, 반대로 동옥이 원구를 찾아갈 때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이지만 저녁 때이다.

 

게다가 그 인물들은 현실 상황이 주는 압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물이어서, 그들의 불행한 생활 조건을 더욱 절망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의 소설에는 반공 포로, 상이 군인, 병역 기피자, 고아 등 해방과 6?25전쟁으로 정신적, 물질적 상처를 입은 인물들이 주로 등장하는데, 이들이 보여주는 부정적 생활관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비롯된 작가의 운명론적 인간관이 투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소설들은 이 격변기의 사회에서 뿌리를 잃어버린 자들이 얼마나 빨리 철저하게 허물어지는가를 예리하게 묘사한다. 그의 숙명적 인간관은 바로 격변기를 사는 인간의 부정적 생활관의 한 장면이다.

 

10. '비오는 날'의 공간적 배경과 주제의 상관 관계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피난지 부산이다. 부산은 6?25전쟁 중에 고향을 떠나 남으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원구나 동욱 남매에게서 보듯이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는 비극의 장소이다. 더구나 폐가나 다름없는 동욱 남매의 집을 배경으로 설정한 것은 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해 작품 전체의 흐름을 이끌고 있다.

 

또 시간적 배경은 장마철이다. 이것 역시 작품의 분위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장마철의 눅눅한 분위기와 같은 끈끈한 불쾌감, 우울함이 이 작품의 주제와 관련하여 무기력함이나 허무, 절망 같은 정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한다. 원구가 동욱의 집을 방문할 때는 반드시 비가 오는 날이었음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 질척하게 내리는 비는 아내의 죽음을 알리는 암시

김승옥의 '무진기행' : 안개는 주인공의 우울과 혼돈이라는 내면 의식을 상징

김유정의 '동백꽃' : 배경은 농촌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닭싸움과 같은 농촌의 풍물을 매개로 사건이 진행되고, 토속적인 농촌 분위기가 인물의 심성과 조화됨

 

11. '비오는 날'의 문체상 특징

 

이 작품의 서술은 ‘- 것이다라는 종결 어미를 많이 활용한 간접 화법이 주를 이룬다. 인물들 간의 대화에서도 사용된 이러한 문체는 작가의 목소리를 개입시키고자 하는 의도에 따른 것이며, 이것을 통해 사건의 추이를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동시에 주인공에 대한 작가의 냉소적·비판적 묘사가 가능해진다. (출처 : 구인환·김흥규, 문학() 한샘출판사)

 

'~ 것이다'라는 종결 어미의 사용은 사건을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동시에 독자들의 의식 속에 사건보다는 그 사건에 의해 환기된 나레이터의 감정을 전달한다.

 

손창섭의 소설 문체는 지적인 비판이나 서정적·시적 묘사보다도 정서 환기를 목적으로 한다. 대개 '점착력 있는 집요한 문장'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정의된 그의 문장은 주의를 환기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가뜩이나, 걸핏하면, 툭 하면, 벌컥' 따위의 부사들과, 사건의 추이를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동시에, 상황의 압도적 작용을 속도 있게 제시하는 '것이다'라는 종결 어미의 빈번한 사용으로 독자들의 의식 속에 사건보다는 그 사건에 의해 환기된 감정을 전달해 준다.

이 소설에서도 역시 '것이다'는 작가 자신이 그의 주인공을 냉소적으로 묘사할 때 예외 없이 쓰이고 있다.

 

12. 실존주의(實存主義, existentialism)

 

세계 내의 인간 실존에 대한 해석에 힘쓰며 인간 실존의 구체성과 문제적 성격을 강조하는 철학으로 주로 20세기의 철학운동으로 대표자는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와 카를 야스퍼스, 프랑스의 가브리엘 마르셀, 장 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 퐁티, 스페인의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러시아의 니콜라이 베르댜예프, 이탈리아의 니콜라 아바냐노 등이다. 그러나 실존주의의 주요특징은 이미 19세기에 프리드리히 니체와 쇠렌 키에르케고르에게서 나타났다. 에트문트 후설과 G. W. F. 헤겔은 실존주의자는 아니지만 실존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실존주의 사상의 성격

 

실존주의의 기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실존은 항상 특수하고 개별적이다. 둘째, 실존은 주로 실존의 존재양식에 대한 문제이다. 따라서 실존은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셋째, 존재 의미에 대한 탐구는 끊임없이 다양한 가능성에 직면하며 인간은 이 가능성들 가운데서 선택하고 이 선택에 몸을 맡겨야 한다. 넷째, 이 가능성들은 인간과 다른 사물 및 타인과의 관계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에 실존은 항상 세계내존재이다. 즉 실존은 선택을 제한·제약하는 구체적 상황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인간은 현존재(Dasein)라 불린다.

 

이상의 주장들로 인해 실존주의는 첫째, 인간을 절대적이거나 무한한 실체의 현현(顯現)으로 보는 견해와 대립하며 의식·정신·이성·이데아 등을 강조하는 관념론 대부분의 형태에 반대한다. 둘째, 인간을 주어진 완성된 실재로 보고 이 실재의 요소를 분석해야만 인간을 인식할 수 있다고 여기는 학설과도 대립한다. 그래서 실존주의는 외적 사실의 실재성을 강조하는 객관주의나 과학주의의 모든 형태에 반대한다. 셋째, 모든 형태의 필연주의와 대립한다. 넷째, 유아론(나만이 존재한다)이나 인식론적 관념론(인식대상은 정신적인 것이다)과 대립한다. 실존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로서 항상 자기자신을 넘어서는 초월이기 때문이다.

 

실존주의는 이와 같은 토대에서 출발하지만 그 방향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실존(existence)과 관련해 존재(being)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이 초월성이 실존의 기초 또는 기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유신론적 형태를 취할 수도 있고, 인간 실존은 절대적 자유로서 자신을 기투(企投)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급진적 무신론의 형태를 띨 수도 있으며 인간 실존의 유한성, 즉 기투와 선택의 가능성에 내재한 한계를 강조함으로써 인문주의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실존주의는 이렇게 여러 방향을 취하면서 실존의 여러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첫째, 인간 상황의 문제적 성격인데, 이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다양한 가능성에 직면하며 선택하고 기투할 수 있다. 둘째, 이런 인간 상황의 현상 특히 부정적 현상으로서, 이를테면 사물·타인과의 관계에 매달려 있는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관심이나 선입견, 죽음·고통 등 넘을 수 없는 '한계상황'으로 인한 '난파', 상황의 반복에서 오는 권태 등이다. 셋째, 실존에 내재하는 상호주관성으로서, 이것은 나와 너(타인 또는 신) 사이의 인격적 관계일 수도 있고, 익명의 군중과 개별 자아 사이의 비인격적 관계일 수도 있다. 넷째, 존재의 일반적 의미에 관한 학설인 존재론이다. 다섯째, 실존적 분석의 치료적 가치로서, 실존적 분석은 일상생활에서 빠지기 쉬운 미혹과 타락에서 인간 실존을 해방하고 실존이 그 본래성을 향하도록 한다.

 

방법론적 논점

 

실존주의자들이 실존 해석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해석자와 해석되는 것, 존재 문제와 존재 자체 사이의 관계가 직접적이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2가지 항은 실존 속에서 일치한다. 왜냐하면 '존재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인간은 이 물음을 자신에게 제기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자신의 존재에서 출발하지 않고서는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공통적 배경에서 출발하면서도 실존주의 사상가들은 각기 실존 해석의 독자적 방법을 발전시켰다. 하이데거는 후설의 현상학을 이용한다. 하이데거에서 현상은 단순한 가상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현현이다. 현상학은 존재의 구조를 드러낼 수 있으며 따라서 존재론이다. 다만 이때의 존재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존재, 곧 인간이다.

 

야스퍼스는 실존의 합리적 해명방법을 채택한다. 그에 따르면 실존은 존재에 대한 추구로서 인간의 합리적 자기이해 노력 또는 의사소통 노력이다. 그의 방법은 실존과 이성이 인간 존재의 두 기둥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이성은 가능적 실존이다. 사르트르에서 철학의 방법은 실존적 정신분석 즉 인간 실존을 구성하는 '근본 기투'에 관한 분석이다. 마르셀에 따르면 철학의 방법은 존재의 신비 대한 인식에 의존한다. 다시 말해서 객관적·합리적 분석이나 증명을 통해서는 존재를 발견할 수 없다. 아바냐노와 메를로 퐁티 등의 인문주의적 실존주의는 실존을 구성하는 구조 즉 인간을 다른 존재와 연결해주는 관계를 과학을 비롯한 모든 이용가능한 기술을 사용하여 분석하고 규정한다.

 

내용상의 논점

 

존재론과 인간 실존의 방식은 모두 실존주의의 관심사이다.

 

존재론

 

실존주의적 존재론의 근본 특징은 실존의 본성에 대한 연구에서 가능성에 우위를 둔다는 것이다. 이때 가능성은 모순의 부재라는 순수 논리적 의미도 아니고 현실성이 될 운명에 처해 있는 잠재성이라는 형이상학적 의미도 아니며 인간 실존의 구조인 존재적·객관적 가능성의 의미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특유한 양상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주장은 이런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주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은 그 존재 및 행동 양식을 결정하는 본성을 갖지 않으며 이 양식이란 곧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하이데거는 "현존재는 항상 그 자신의 가능성이다"라고 말한다. 가능성으로서 인간 실존은 미래의 선취·예기·기투이다. 미래는 근본적인 시간의 차원이며 현재와 과거는 부차적이다. 또한 가능성으로서의 실존은 초월이기도 하다. 초월한다는 것은 그 자신을 넘어서 세계의 다른 존재(사물과 타인)로 총체로서의 세계로 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실존주의자에 따르면 이 다른 실재의 존재는 인간 실존의 존재와는 다른 양상을 가진다. 즉 실존에 고유한 양상은 가능성인 데 반해 존재에 고유한 양상은 현실성 또는 사실성이다. 그결과 가능성으로서의 실존은 존재의 무(), 사실의 모든 현실성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난다.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Was ist Metaphysik?(1929)에서 "인간 실존은 무의 한가운데 머무르지 않고서는 존재와 관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실존주의자들에게 ''란 사실의 현실성에 대한 부정으로서 가능적 실존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가능적인 것은 그 자신(itself)'되기에는' 대자(For-itself)가 결여된 '어떤 것'으로 그것은 객체가 되기에는 주체가 결여된 것이며 결여로서만 존재할 뿐이다"라고 했다.

 

실존을 무로 환원하는 것은 두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첫째, 사르트르, 카뮈, 무신론적 실존주의처럼 의미의 결여를 주장하는 방향으로, 즉 실존과 모든 기투의 부조리로 나아갈 수 있다. 둘째, 후기 하이데거, 야스퍼스, 신학적 실존주의처럼 실존을 구성하는 가능성을 넘어서 실존과 존재 사이의 더욱 직접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런 방향에서 존재는 실존 속에서 언어적·신앙적·신비적 종교 등을 통해 그 자신을 드러낸다.

 

인간 실존의 방식

 

실존주의는 때로 인간의 운명을 인간 자신이 맡는다는 의미에서 인문주의 성향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실존에 대해 존재의 우위를 강조하는 조류도 있다. 2가지 관점의 차이는 자유의 문제를 푸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항상 일정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인간을 구성하는 가능성은 이 상황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에서는 상황이 인간의 선택을 결정한다. 반대로 사르트르에서는 선택이 상황을 결정한다. 이처럼 실존주의는 운명 개념과 급진적 자유 개념 사이에서 동요한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의 결정론적 관점에서는 과거가 미래를 결정하며 사르트르의 자유론적 관점에서 과거의 의미는 현재의 기투에 의존한다. 그러나 운명론적 관점에서도 인간에게 선택의 여지는 있다. 이때의 선택이란 자신의 무를 이해하느냐 않느냐 사이의 선택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이 실존의 뛰어넘을 수 없는 가능성(그 표지는 죽음)을 이해할 때 '진정한 실존'을 달성한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인간에게 제공된 유일한 선택은 상황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 사이의 선택이다. 이처럼 실존주의적 존재론은 존재와 무 사이를 동요하면서 무를 존재에 관한 유일한 계시로 여긴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에서 인간은 "신이 되려고 분투하는"(사르트르) 자이다. 우주론적·신학적 실존주의에서는 존재가 인간을 무로부터 되찾기 위해 다소 신비적인 방식으로 개입한다.

 

실존주의의 사회적·역사적 기획

 

인문주의적 실존주의는 인간이 역사에서 가질 수 있는 어느 정도 적극적이고도 결정적인 역할을 인정해왔다. 예를 들어 메를로 퐁티는 인간이 사회 변혁을 위해 효과적으로 행동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했다. 따라서 실존주의는 마르크스주의를 향해 나아갔다. 실존주의는 인간은 자연·사회와 원초적이고 제거할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일치한다. 변증법적 이성 비판 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1960)에서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옹호했던 '기투' 개념을 수정하고 마르크스가 이해한 변증법 개념을 이용하여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종합하려 했다. 실존을 구성하는 기투는 전에 사르트르가 주장했듯이 자의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객관적 가능성의 제약을 받는다. 사르트르는 마르크스처럼 이 객관적 가능성을 '실존의 물질적 조건'과 동일시한다. 물론 기투는 어디까지나 유일무이한 의식을 가진 특수한 개인의 기투이다. 그러나 이 의식은 총체화하려고 노력하는 즉 점차 포괄적인 인간 집단을 구성하기 위해 타인과의 관계에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의식이다. 변증법적 이성은 바로 이런 총체화 증대의 과정이다. 나아가 변증법적 이성은 역사의 진정한 주역이 되며 역사에 참여하는 개인의 내적 자유와 동일시된다. 사르트르는 이처럼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태도에서 역사의 절대적인 변증법적 필연성(물론 이 필연성은 개인들에 의해 내면화하고 체험됨)을 옹호하는 태도로 옮겨갔다.

 

실존주의는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철학과 현대 문화 전반에 개념적 도구를 제공해왔다. 이 도구의 성격과 사용 기술은 아직도 해명되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도구란 '문제성'·'기회'·'조건'·'선택'·'자유'·'기투'와 같은 용어들을 말한다. 이런 도구는 인식론·윤리학·미학·교육·정치학 등의 분야에서 실존의 해석을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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