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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 Seeing

'서정주'에 관해서

by 휴리스틱31 2021.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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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1915>

 

 

 

아호는 미당, 전라북도 고창에서 출생. 1936<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시 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1936년에 <시인부락>을 주재했다. 시집에 화사집(1938), 서정주 시선(1945), 신라초(1960), 질마재 신화(1975), 떠돌이의 시(1976)등이 있다.

유치환과 더불어 생명파로 알려져 있다. 보들레르와 니체의 영향을 받은 듯한 초기시는 관능과 육체의 몸부림을 보였으나, 귀촉도무렵부터 한국의 토속과 고전, 그리고 동양 사상으로 접근하기 시작하여, 신라초이후부터 신라의 전통과 불교적인 세계의 심화를 보여주고 있다. 1969년의 동천은 불교의 세계를 더욱 심화시켰고, 1973서정주 문학 전집을 간행하여 그의 시, 수필, 잡록 등을 망라하여 간행했다. 불교 이후 그의 시세계는 샤머니즘과 의 원초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질마재 신화>로 변해갔다.

 

작품세계

<동 천>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감상> 3음보 율조의 5행 한 문장으로 된 이 시는 짧은 형식 속에 인간의 본질과 의미라는 무게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일체의 설명을 배제하고 고도의 상징적 수법을 구사함으로써 강렬한 언어적 긴장을 이루고 있는 차원 높은 시가 되었다.

싸늘하면서도 유리같이 투명한 겨울 밤하늘 '동천(冬天)'에 초승달이 떠 있고, 그 한켠에 한 마리 '매서운 새'가 날고 있는 것이 이 시의 전부이다. 이 시는 화자의 행위를 나타내는 13행까지의 전반부와 그에 대한 반응, 즉 새의 행위로 나타나는 반응인 45행의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1행의 '고운 눈썹'은 초승달을 의미한다. 이 초승달이 화자의 마음 속에서 천 년 동안 맑게 씻긴 것임을 고려한다면, '눈썹'은 곧 사랑의 표상이다. 2행의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는 행위는 지금까지 겪어온 온갖 모순과 갈등을 투명화하는 작업을 의미하며, 3행의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는 절대적 경지로 비약하려는 행위로,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하는 화자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 4행의 '매서운 새'는 공격적 특성을 환기하는 시어로 차가운 겨울 밤하늘과 어울려 그 '매서움'이 배가되고 있다. 그러나 '매서운 새'는 달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5행의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는 유순함으로 나타난다. 결국 새는 달을 공격하지 않는, '매서움'으로서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동지 섣달의 밤하늘을 날며 '시늉하며 비끼어 가''매서운 새'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 시의 평면적 의미는 '내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임의 고운 눈썹을 천 년 동안 마음 속에 아로새겨 하늘에 옮기어 놓았더니, 동지 섣달 하늘을 나는 매서운 새가 눈썹의 절대적 가치를 알고 비끼어 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운 눈썹'인 초승달이 '즈믄 밤의 꿈'으로 이어지는 것은 초승달이 여러 차례의 변신을 통해 최종 단계인 '만월'에 다다르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초승달은 화자가 염원하는 동경과 구도의 상징물로서, 그가 추구하는 어떤 절대적 가치를 ''(절대적 대상) '초승달'(미완성의 상태) '만월'(완전한 영원의 세계)의 순서로 전개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매서운 새''만월'인 영원의 세계를 동경하는 인간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매서운 새'가 현실 세계인 '동천'에 존재하며 끈질기게 영원의 세계인 '만월'에 접근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시늉하며 비끼어'가는 한계에 부딪치고 말 뿐이다. 이렇게 이 시는 절제된 시어와 짧은 형식을 통해 절대적 가치에 대한 외경(畏敬)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감상> 가장 한국적인 시를 쓴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당의 대표작이자 우리나라 현대시를 대표하는 명시의 하나이다. 국화의 개화(開花) 과정을 통하여 어떠한 생명체라도 치열한 생명 창조의 역정을 밟고 태어난다는 것을 선명히 보여 주는 이 시는 불교의 연기론(緣起論 因緣說)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한다고 할 때, 그것이 단독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며, 강한 힘을 부여하는 인()과 약한 힘을 보태는 연()과의 상호 결합의 결과로 본다. 이 시에서도 국화 자체의 힘()과 소쩍새천둥무서리가 봄부터 가을까지 작용()함으로써 국화가 꽃을 피우는 것이다. 여기서 국화는 모든 생명체의 대유이자, 나아가 생명이 그러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상태의 상징이며, 동시에 시적 자아의 '누님'과 같은 40대 중년 여인이 도달할 수 있는 원숙하고 평온한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원래 국화는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꽃이지만, 이러한 관습적 상징의 차원을 넘어서서 시인은 생명 탄생의 고귀함과 원숙한 중년 여인의 불혹(不惑)의 미를 상징하는 창조적 상징의 차원으로 국화를 노래하고 있다. 이와 같은 함축미를 지닌 국화의 개화를 위해서 외적(外的)으로는 소쩍새의 울음천둥무서리 등의 협동이 필요했고, 내적(內的)으로는 설움과 번민의 시련과 고통 등을 극복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국화는 마침내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피우게 되는 것이고, 무수한 괴로움과 역경을 극복한 인간은 거울 앞에 앉아 조용히 자신을 투영, 성찰하는 완전한 모습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귀촉도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하(銀河)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감상> 이 시는 사별한 임을 향한 애끓는 정한과 슬픔을 처절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귀촉도'란 흔히 소쩍새 또는 접동새라고 불리는 새로, 이 작품에서는 촉제(蜀帝) 두우(杜宇)가 죽어 그 혼이 화하여 되었다는 (杜宇死 其魂化爲鳥 名曰 杜鵑 亦曰子規 ; 成都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죽은 임을 그리워하는 비통함을 표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귀촉도'는 말 그대로 '촉으로 돌아가는 길'을 뜻하여, 멀고 험난한 길[촉도지난(蜀道之難)]의 의미로도 사용되는 중의적인 어법이다.

1연에서는 ''이 가시던 모습과 그 가신 길이 너무 멀기에 다시는 돌아 올 수 없음을 '삼만 리'라는 거리감으로 보여 주고 있다. '삼만 리'가 상징하듯 그렇게 먼 곳으로 떠난 임을 그리워하는 화자인 여인은 억누를 수 없는 슬픔 때문에 눈물이 '아롱아롱' 맺힌다. 두견화인 '진달래꽃'은 새의 전설과 관련된 시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에서도 죽음의 이미지와 함께 백의 민족(白衣民族)이 갖는 근원적인 한()을 느낄 수 있다. 2연은 돌아오지 못하는 임에 대해 '신이나 삼아 줄 걸',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하면서 생전에 좀 더 잘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를 나타내는 한편, 임이 다시 살아 돌아오기만 한다면, 지극한 정성을 다할 것이라는 비원(悲願)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 3연에서는 화자의 감정 이입인 '귀촉도'의 울음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 새는 그리움서러움후회스러움 등의 감정이 사무치고 북받쳐서 '목이 젖은 새'이며 '제 피에 취한 새'이다. 그러므로 새의 울음은 겉으로 표출되지 않고 안으로만 조여든다.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이기에 그 임을 생각하는 그리움의 고뇌는 안으로 응어리져 피맺힌 눈물을 이룬다. 따라서 귀촉도의 울음은 바로 시인 자신의 애끓는 슬픔이자 사랑인 것이다. 1연에서 '아롱아롱' 하던 눈물이 마지막에 와서는 내면으로 깊이 스며드는 피맺힌 눈물로 깊어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는 '임의 떠남' '화자의 회한' '귀촉도 울음'이라는 기본 구조로 짜여 있으며, 사랑의 본질, 더 나아가서는 생의 본질이 이 같은 비극적인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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