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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광야] -- 분석

by 휴리스틱31 2021.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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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 야

 

1. 이육사

 

육사는 1904년 음력 44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이퇴계의 14대손으로 태어났다. 이 시절 선비의 자녀들이 대개 그러했듯이 육사도 다섯 살 때 할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우는 등 어린 시절에는 전통적인 한학을 공부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맡고 있던 보문의숙(寶文義塾)에 다니기 시작한 열두 살 이후(1905) 백학서원을 거쳐(19) 일본에 건너가 일년 남짓 머물렀던 스무 살(1923) 무렵까지는 한학과 함께 주로 새로운 학문을 익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그는 1925년에 폭력도 서슴지 않던 항일투쟁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의 대열에 참여한다. 610만세사건이 일어난 1926년 북경에 갔다가 다음해 귀국한 그는 장진홍 의사가 일으킨 대구은행 폭파사건의 피의자로 붙들려 형님 및 동생과 함께 옥에 갇혔다가 장진홍 의사가 잡힘으로 석방되었지만 같은 해 10월 광주학생사건이 터지자 또 예비검속되기도 한다. 1931년 북경으로 다시 건너간 육사는 이듬해 조선군관학교 국민정부군사위원회 간부훈련반에 들어가서 두 해 뒤에 조선군관학교 제 1기생으로 졸업한다. 그는 이 시절에 북경대학 사회학과에서 공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언제 대학을 졸업했는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1943년 일본 형사대에 붙잡혀 해방을 일년 남짓 앞둔 19441월 북경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무려 열일곱 번이나 옥살이를 했다. 육사(陸史)라는 그의 아호는 그가 스물네 살 되던 해인 1927년 처음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의 그이 죄수번호가 264번이어서 그것을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육사는 투쟁론의 입장에 선 독립운동가이며 또한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저항시인이다. 1933{신조선}[황혼]을 발표하며 등단하였으나 작품 수가 많지 않고 문단활동도 별로 하지 않았다. 시대의 질곡(일본의 식민통치)에 대결하는 강인한 정신을 정제된 시형식으로 표현한 점이 그의 시가 지닌 특징이다. 유고시집으로 {육사시집}(1946)이 있다.

 

이육사의 호에 대하여

1925년 조선은행 대구 지점에 폭탄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검거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른다. 이때 대구 형무소에서 복역 중 수인(囚人) 번호가 "64"번이어서 일본인이 항상 '64' 하고 부르자 그것에 연유하여 호를 육사(陸史)라고 하였다. ([나라사랑] 16집 참조)

 

2. 단원 개관

이 작품의 서정적 자아가 작자라고 할 수 없지만 거기에 작자의 목소리가 배어있는 흔적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작자는 왜 이 작품을 썼을까 하는 의문이 곧바로 그 의미의 심층을 헤아리게 만들 것이며, 그 결과는 자신에게 울려오는 반향을 느낌으로써 문학의 즐거움을 맛보는 쪽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 따라 대처해야 하는 다양한 삶의 한 방식을 터득하게 해 줄 것이며, 국가관, 인생관 등의 가치관을 정립해 볼 수 있는 적절한 기회를 가져볼 수 있다.

 

시대적 배경

육사가 생존했던 시대는 민족사적으로 볼 때 가장 불행하고 암울했던 시기였다. 민족의 주체성과 국권의 상실이라는 일제 강점기를 맞이한 것이다. 유구한 역사와 민족 자존이 크게 훼손된 시대였던 것이다. 이런 시대에 육사는 순국(殉國)의 정신으로 투쟁과 저항으로 일제에 맞섰던 것이다.

 

작품의 창작 동기

육사의 생애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민족의 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민족적 지사(志士)였다. 조국 광복을 위해 이념과 행동으로 일관하면서 남긴 문학 작품이 많은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광야]이다. 자신의 신념을 씨앗으로 묻어 언젠가 찾아올 초인(超人)에게 노래로 부르게 한 것이 이 작품이다.

 

 

3. 본문

 

광 야(曠野)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山脈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光陰

부지런한 季節이 피여선 지고

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千古의 뒤에

白馬타고 오는 超人이 있어

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작품의 구조와 설명

() - 1 , 2

아득한 옛날 천지가 개벽하던 때, 이 광야에는 사람 소리는 물론 닭 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산줄기들이 바다를 향하여 뻗어날 때에도 차마 이 곳만은 침범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광야'의 의미는 민족의 역사를 말하는 '조국의 터전'이다. 이 서두는 웅장하고 절묘하게 개벽과 태조, 태고의 시간으로서 구원한 조국의 터전을 제시한다. 그것은 산맥도 범하지 못한 신성한 터전이었다.

-> 광야의 원시성(原始性)과 광야의 신성성(神聖性)

 

() - 3

오랜 세월에 걸쳐 계절이 바쁘게 바뀌는 동안에, 이 광야에는 물줄기들이 모여들어 큰 강을 이루고, 그 흐름에 따라 비로소 길이 열렸다. 여기서 '큰 강물'은 인류 문명이기도 하고, 도도한 조국의 역사를 상징한다. 인류 문화의 발상지가 본래 강에서부터 비롯된 일반적 개념과 연결시켜 형상화하고 있다.

-> 역사와 문명의 태동

 

() - 4

지금은 눈이 내리는 겨울, 내가 바라는 매화 향기의 계절 봄은 아직도 멀다. 그렇지만 나는 이 광야에서 봄이 어서 오도록 노래의 씨를 뿌린다. 여기서 ''(43)가 위치한 '지금'(현재)으로 시상이 급전한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암담한 현실을 '지금 눈 내리고'의 겨울로 인식한다. 그 다음에 '매화 향기'가 등장하여 겨울과 대조되는 봄을 설정하고 있다. 바로 이 매화는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행기를 토해내는 지조(志操)의 상징이며, 조국 광복의 징조를 암시하기도 한다.

-> 현실적 상황 또는 민족의 현실

 

() - 5

또다시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백마 타고 호는 위대한 초인(超人)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니 그로 하여금 내가 뿌린 노래의 씨를 거두어 웅장한 노래를 부르게 하리라. 여기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강인한 초인적 모습 또는 부활한 민족의 정신을 상징한다. 바로 민족 구원자의 화신(化身)인 것이다.

-> 미래의 조국

 

 

4. 요점 정리

 

갈래 : 서정시, 자유시, 상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의지적, 희구적, 상징적

표현

1. 화자의 의지를 강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표현하고 있다.

2. 고도의 상징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3. 각 연과 행이 균제미를 있고 있다.

제재 : 광야

출전 : <육사시집> (유고 시집, 1946)

주제 : 절망적인 현실에도 굴하지 않는 굳은 의지와 신념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내 고장 칠월은 /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로 시작되는 청포도의 시인 이육사는 으레 그 머리에 민족, 애국, 지사 같은 수식어를 가지고 다닌다. 무장 항일투쟁단체인 의열단에의 가담, 열일곱 번에 걸친 감옥살이, 북경 감옥에서의 죽음 등 그의 행적을 생각할 때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당연히 명예스러워야 할 이러한 이력이 이육사 시를 위해서는 반드시 행복한 것만도 아니다. 그의 비유나 상징이 의심의 여지없이 애국적이고 민족적인 것만으로 한정 해석되면서 그의 시적 상상력은 제한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독자로부터 존경은 받되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그는 행복한 시인은 못 된다.

 

 

 

 

육사는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낙동강변에서 태어났다.

육사의 생가터에서 바라본 마을의 모습

 

육사(본명 源祿)가 태어난 곳은 경북 안동, 더 상세하게 말하면 도산면 원천 퇴계 이황을 모신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그 자신 퇴계의 14대 손으로, 말하자면 그는 전통적인 유가의 집에서 태어났다. 원천은 낙동강변의 강마을로서 '먼내' (안동을 기준으로)라는 뜻. 지금은 안동에서 차로 불과 20분 안팎의 거리이지만 초행도 아닌 이번 길에 그 멀다는 사실을 다른 뜻으로 실감한 것은 실로 아이러니다.

원천이란 똑같은 지명을 가진 곳이 또 있어 헷갈린데다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이육사라는 이름을 몰라 물을수록 혼란이 가중되어 무려 두 시간이나 허비했던 것이다. 특히 차를 몰고 다니는 젊은이들은 육사 생가 운운의 말을 들을 적마다 무슨 생뚱한 질문이냐는 얼굴들을 했는데, 일본이나 프랑스에 갔더니 웬만큼 알려진 시인이나 소설가의 생가를 찾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학생을 잡고 물어도 알더라는 시인의 얘기가 생각나면서 새삼스럽게 우리 문화수준이 돌아보아졌다.

그래도 육사 생가 찾아가는 길이 지루하거나 짜증스럽지 않았던 것은 산과 들과 마을을 뒤덮은 꽃 덕이었다. 산은 진달래와 싸리꽃과 벚꽃으로 울긋불긋했고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는 온통 과수원으로 사과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복숭아꽃과 배꽃이 한창이었다. 개나리가 울타리를 뒤덮었고 집집이 살구꽃은 서 있는 뜰이 비좁아 담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퇴계가 즐겨 읊던 매화는 보이지 알았지만 "이른 매화 만발하고 늦은 매화 피기 시작 / 진달래 벚꽃들도 보란 듯 다닥다닥 / 꽃다운 물건치고 열흘 없다 뉘 일렀노 / 아마도 딴 봄 만나 오래도록 남은 게지"라 한 [늦봄에 도산 精舍에 돌아와 우거하면서 본 것을 기록하다]라는 시가 절로 입에서 나왔다.

한창 온천이 개발 중인 도산 면소재지 어름을 지나 다시 고개를 하나 넘어서 있는 원천은 안동댐이 세워지면서 차 두 대가 가까스로 비킬 수 있는 길을 경계로 반은 헐리고 반은 남았다. 그 간은 당장 물이 들어오지는 않더라도 장마가 지면 물이 들어올 수 있는 수몰 예상지역으로 육사가 살던 집도 바로 거기 들어간다. 그래서 집은 1975년에 안동 시내의 태화동으로 이전, 민속자료 제10호로 보존되었고, 옛 집터에는 유허비(遺墟碑)와 시비가 서 있다. 옛날에는 집터에 이곳이 육사의 생가임을 알리는 팻말 정도가 서 있던 것을 19923백여 평의 터를 잔디와 나무를 심어 다듬고 유허비와 시비를 세운 것이다.

유허비에 새겨져 있는 육우당(六友堂)은 이 집의 당호, 그들이 육형제(육사는 둘째임)라 해서 형이 명명한 것이다. 유허비에는 그들 여러 형제(형 원기, 동생 원일)가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테러사건(1927)에 연루되어 함께 옥에 갇혔다가 나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장진홍은 일본에서 피포 본국으로 송환되어 사형언도를 받고 대구감옥에서 복역하다가 자결한 분이다. 문학평론가 이원조는 육형제 중 다섯째로, 월북했다가 50년대 초의 남로당 숙청 때 반당분자로 몰려 숙청당했다.

시비 비양(碑陽)에는 청포도가 새겨져 있고, 비음(碑陰)에는 능참봉이던 조부에게서 한문을 배우고 북경으로 가 무장 항일단체인 군정서와 정의부와 의열단에 가담하고,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테러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고, 조선군관학교와 북경대학을 다니고, 광주학생사건, 대구격문사건 등으로 검거되는 등 무려 17회나 대구와 북경에서 징역을 살고 마침내 북경의 감옥에서 옥사한 일대기가 쓰여 있다. 육사라는 이름이 수인 번호 64에서 유래했다는 내력도 적혀 있다. 깨끗이 잔디를 심고 가로는 벚나무, 소나무, 은행나무를 심은 유허지는 무르익은 봄볕과 함께 자못 윤기가 흐른다. 마을 앞에는 승용차 세 대가 놓여 그리 메마른 고장만은 아님을 말해주고 있고, 비닐하우스가 드문드문 박힌 들판에서 사람들은 땅 고르고 씨 뿌리기에 한창이다. 장마가 지면 물이 들 땅에도 이 고장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다. 보상금을 타가지고 안동읍내 등 외지로 나갔다가도 농사철만 되면 농사꾼들은 돌아온다. 장마지면 파농할 것이 뻔하지만 에멜무지로 옛날 자기땅에 농사를 짓는 것이다. 장마 안들어 그대로 남기를 바라면서다. 검은 강물이 멀리 보이니 옛날에는 그곳이 곧 흰 돛단배가 뜨던 곳이다. 청포도"횐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은 필시 여기서 얻은 시상일 것이라는 추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안동시 태화동에 자리잡고 있는 복원된 육사의 생가

 

안동 시내로 들어와 안동댐 아래 있는 시비를 찾아가 본다. 안동댐이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아니한 1968년에 세워진 비로, 비양에는 시 [광야]가 새겨져 있고 비음에는 "광야를 달리는 준마의 의지에는 탄식이 없고 한 마음 지키비에 생애를 다 바치는 지사의 천고일철(天古一轍)에는 성패와 영욕이 아랑곳 없는 법이다"로 시작되는 일대기가 쓰여 있다. 조지훈 시인이 동탁(東卓)이라는 본명으로 찬한 글이다. 시비는 안동댐에서 흘러나오는 도도한 강물을 내려라보고 있다. 뒤로는 수몰지역에서 옮겨다 놓은 고가들이 몇 채 서 있다. 초라한 백성의 집이 호화스러운 양반의 집 사이에 섞여 있다.

옛날 낙동강변에 박씨 성을 가진 집에 종살이를 하는 계집종이 있었다. 얼굴이 뛰어난 데다 재주도 출중했는데 특히 시문에 능했다. 주인 박가는 처녀에게 혹해서 달콤한 말과 협박으로 유혹하지만 계집종은 시한 편을 써 놓고 낙동강물에 몸을 던져 그 갈등을 푸니 낙동강이라는 시 한 편이 지은이의 이름없이 19세기 중엽 조종섭이 엮은 {해동시선(海東詩選)} 전한다.

 

위엄은 서릿발 같고 은혜도 또한 태산 같소

안 따를 수도 없고 따를 수도 없습니다

 

낙동강 강물은 끝없이 푸르니

이 몸 빠져 죽으면 이 마음 펀안하겠지요

 

태화동으로 옮겨 심은 민속자료 10호의 생가는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아침 일찍 찾아간다, 홀처마 일자집으로 맞배지붕의 안채와 팔각지붕의 사랑채가 나란히 붙어 있는데, 간수가 같다. 안채와 사랑채가 본디도 이렇게 붙어 있었을까? 집터가 유허지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터무니없이 좁다. 뜰은 을씨년스럽게 비어 있고 이 구석 저 구석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널려 있다. 육사 6형제가 뜰에 꽃나무 하나 심어 늘지 않고 살았으리라고는 아무래도 생각할 수 없다 이왕 복원했을 바에는 제대로 보존하는 노력도 기울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가령 일본이나 프랑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거듭 우리의 문화수준이 돌아보아지면서 새삼 참담해지는 기분이다.

낙동강변의 시비에 새겨져 있는 광야(曠野)]로부터 들어가는 것이 육사 시 읽기의 순서일 것 같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山脈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光陰

부지런한 季節이 피여선 지고

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千古의 뒤에

白馬타고 오는 超人이 있어

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曠野전문

 

다섯 연으로 된 내용의 첫 연과 둘째 연은 광야의 생성과정이다.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하고 이어 "모든 산맥들이"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함으로써 사람이니 짐승 하나 없는 태초의 막막하고 광활한 광야를 보여준다. 바다를 연모해 휘달리는 산맥들도 범하지 못했다는 표현은 광야의 이미지에 신비감마저 더한다. 셋째 연은 광야의 역사다. 그 광야에 많은 세월(광음)이 지나고 숱한 계절이 바뀐 것이다. 주목할 곳은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라는 대목. 이를 설명하면 강에 사람이 모여 살고 길을 만들었다로 될 것이니, 곧 광야에 인간의 역사와 문명이 시작되었음을 나타내는 말일 터이다. 뿐 아니라 이 말은 사람이 사는 온갖 세목을 함축함으로써 시의 맛을 뽐낸다.

 

 

 

생가터에 세워진 시비. 안동댐이 생기면서

생가는 안동시내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다음 연에서 시는 많은 말을 생략한 채 오늘로 돌아온다. "지금 눈 내리고 / 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라는 한시 한 가락을 떠오르게 하는 이 표현은 고결한 삶, 이 시인이 가장 이상으로 생각하는 삶의 은유일 수도 있다. 눈 내리는 속에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다니 얼마나 높고 맵고 깨끗한가. 이 시인이 뿌리는 "가난한 노래"는 곧 이러한 삶을 기리는 노래임이 분명하다. 마지막 연에서 시는 아주 먼 훗날로 달려간다. "초인"은 누구이며 "백마"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을 쉽게 단정해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초인"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 초인은 기차를 타거나 달려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백마를 타고 온다는 점이다. 그 초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뿌린 가난한 노래를 목놓아 부르게 한다니 실로 도도한 기상으로, 이 시인의 세상을 사는 자세와 시를 쓰는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난 시가 이 시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초인은 [청포도]에서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다.

 

내 고장 칠윌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횐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청포도] 전문

 

육사의 시로서는 드물게 세련되고 아름다운 이 시에서 말하자면 "초인""내가 바라는 손님"으로 모습을 달리해 있고, 백마를 타고 오는 대신 "청포를 입고 찾아온". 여기서 그가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의 연대기로 미루어 그것이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킬 사람으로 추론하기도 하는데, 터무니없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더 주목할 것은 선명하고 밝고 깨끗한 이미지이다. 전설-하늘-푸른 바다-청포도-청포로 이어지는 푸른 빛깔과 흰 돛 단 배-은쟁반-하얀 모시수건의 하얀 빛깔의 대비가 시를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만든다.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의 표현도 그야말로 곱다.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은 이 시가 발표될 당시 아직 맞춤법이 제대로 성립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할 때, "좋으련만"의 뜻으로 읽어야 옳을 것이다.

청포도가 우리 나라에 들어와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다고 시비하는 소리도 있지만 공연한 트집이다. 시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마을 전설", "흰 돛 단 배" "청포" "은쟁반" "모시수건"에도 불구하고 시가 전체적으로 서구적 정서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절정도 그 치열성으로 해서 자주 인구에 회자된다.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끓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절정전문

 

"매운 계절의 채쭉"은 일제의 압박을 얘기하는 것이요, 북방은 만주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그렇게 볼 때 이 시는 만주로 망명했을 때의 그 절망감을 노래한 시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라고 했으니 그곳이 얼마나 척박하고 삭막하고 가파른 땅이랴.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는 종교적인 뜻을 포함하고 있다기보다 오히려 의지할 데가 없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비유는 두드리면 쨍그렁 소리가 날 것 같이 새파랗게 얼어 붙은 북방의 겨울 하늘, 산도 들도 미동도 않는 그 겨울의 모습을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표현일 터이지만 아무래도 작위적이다. 실재하지도 않고 아무도 본 일이 없는 "강철로 된 무지개"가 상기시키는 이미지는 너무 막연하다.

 

 

 

경주 불국사에서 친지들과 함께. 앞줄 오른쪽에 앉은이가

이육사 시인이고, 왼쪽 끝이 백형 이원기이다.

 

다 아다시피 육사는 평생을 민족의 해방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옥사했다. 반드시 우리 민족은 일제로부터 해방될 것이요, 나라는 독립을 성취하리라고 믿지 않았다면 이러한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시 곳곳에서 역사에 대한 낙관주의 같은 것을 읽을 수 있는데 그것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는 시가 감옥에서 남긴 유시로 추정되는 []이다.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 방울 나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속 깊이 맹아리가 옴자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라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바리지 못할 약속이여

 

한 바다 목판 용솟음치는 곳

바람결 따라 타오르는 꽃에는

나비처럼 취하는 회상의 무리들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보노라

- 전문

 

이 시에 대해서 김영무 교수가 "자유로운 삶의 공간인 하늘도 끝나버리고 생명의 물줄기인 비는 한방울도 내리지 않는 척박한 절망의 고장, 시인은 이러한 절망의 땅에서 오히려 붉게 피어나는 꽃송이의 존재를 믿으며, 얼어붙은 시베리아의 동토대 깊은 얼음 속에 불씨처럼 살아 숨쉬며 제비떼 까맣게 날아올 봄을 기다리는 꽃봉오리가 있음을 믿"(이육사 시집 [광야] 해설-절망의 변증법민음사)었다고 한 말은 적절한 것 같다.

 

 

 

중국 북경을 드나들던 시절의 이육사(부여 사비루에서)

 

육사가 남긴 시는 36편뿐이다. 25, 6세에 첫작품을 발표, 작고하기까지 15여 년간의 문학활동 치고 되게 과작인 편이다. 더욱이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는 작품은 불과 6,7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위대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시가 전부 위대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위대한 시가 위대한 삶에서 나오는 것은 분명하지만, 위대한 삶이 다 위대한 시를 낳는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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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정(絶頂) /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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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 소개

 

 

 

육사 이원록(또는 이 활:1904-1944)은 지금도 유교의 전통이 살아 있는 경북 안동에서 조선 시대 최대 유학자 퇴계 이황 선생의 14대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이런 가문이었기에 육사는 어려서부터 전통적인 선비 교육을 받으며 자라게 되는데, 이는 훗날 타협을 모르고 지사적으로 독립 운동에 참여하는 그의 삶에 정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교는 봉건주의 사회의 붕괴에 따라 차츰 그 영광을 잃어가던 때였습니다. 육사도 유교적인 전통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그는 많은 고뇌와 방황 속에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마침내 식민지 시대에 등불을 밝히는 혁명가로서의 삶을 선택합니다.

1927년 조선 은행 대구 지점 폭파 사건의 피의자로 검거되어 27개윌의 형량을 받은 첫번째 투옥부터 시작하여, 비밀 지하 운동 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하여 독립 운동을 하면서 무려 17번이나 투옥된 경력을 볼 때 그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아호 '육사'1927년 첫 투옥 때의 죄수 번호 64번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육사는 선구자로서의 삶을, 죽음과 같은 고난의 길을 이때 보다 확고하게 다짐했으리라 짐작됩니다.

끝내 육사는 1943년 일본 형사대와 헌병대에 피검되어 19441, 그토록 그리던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한 채 안타깝게도 북경 감옥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문인으로서 육사의 활동은 7년여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 짧지만 치열했던 삶의 발자취가 많지 않은 작품 속에 잘 집약되어 있습니다.

육사는 1933{신조선}황혼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현재 한시 3수를 포함하여 34편의 시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육사는 암울한 식민지 상황을 철저히 인식하여 그 시대를 '어둠'으로 규정하고 국권이 상실된 겨레의 음영을 철저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야 할 삶의 방향을 고뇌하고 마침내 강한 투쟁 의식을 불태웁니다. 그의 시는 바로 행동의 시입니다. 그렇다면 육사의 행동은 조국 광복을 위한 것이고, 그의 시 역시 광복에 대한 의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윌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중략)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교목중에서

 

이 시처럼 어떠한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교목의 모습을 통하여, 꽃피우는 생명 작용을 거부하고 마침 호수 속에 거꾸러져 죽음이 올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육사의 독립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육사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강인한 대결 의지는 앞으로 분석할 시 [절정]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서 한발 디딜 곳조차 없는' 처절한 대결 속에서 육사는 다가올 광복의 미래를 예감하고 청포도], [], [광야등의 시를 씁니다. 이 시들은 '기다림'의 서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청포도중에서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광야] 중에서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 속 깊이 꽃맹아리가 움짝거려

마침내 저버리질 못할 약속이여 -중에서

 

이러한 '손님', '초인', '새벽'의 기다림은 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꼭 와야만 하는 필연성이라서 절대성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다가올 영광된 미래를 위하여 육사는 '지금 눈내리고 매화 향기 흘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광야) 준비를 합니다. 자신이 바로 '씨앗'이 되어 희생할 것임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로 육사의 시는 우리에게 엄청난 감동과 진실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어두운 시대에 온몸으로 민족의 비참한 현실을 껴안으며 함께 아파하고 어떠한 희생이 따를지라도 민족의 아픔을 극복하려 했던 이육사. 그는 민족 시인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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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감상 노트

 

 

 

 

이 시는 48행의 매우 짧은 작품입니다. 이 시는 육사의 다른 시 중에도 특히 '혁명 시인'으로서의 그의 삶이 매우 잘 형상화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를 단순히 육사의 사회, 역사 의식을 표현한 작품으로서만 볼것이 아니라, 육사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 즉 존재로서의 자기 확인을 시화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사 역시 독립 운동가이기 이전에 고뇌하는 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매우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이 시를 분석해 보기로 합시다.

1--2연은 서정적 자아의 공간적인 한계 상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연에서 그는 '매운 계절''채찍'이라는 가혹한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북방으로 쫓겨온 신세입니다. 여기서 '북방'이란 수평적인 한계 상황을 나타냅니다. 2연에서 그는 이제 앞으로 쫓겨갈 수 없어 위로 쫓겨 올라가 수직적 한계 상황인 '고원'에까지 밀려나게 됩니다. 1~2연은 삶의 중심에서 밀려나 삶의 영역이 축소되는 서정적 자아의 절박한 처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3연에서는 마침내 '한발 재겨 디딜 곳' 없는 극단의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서정적 자아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둘 중 한 가지일 것입니다. 고통을 무릅쓰고 발꿈치라도 들고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 있거나, 아니면 어디든지 무릎을 꿇어야겠지요. 그러나 뜻밖에도 서정적 자아는 자신와 존재를 부정하는 극한 상황을 초윌하려 합니다.

4연에서 서정적 자아는 더이상 외적 상황에 쫓길 것도, 빼앗길 것도 없는 절정의 공간에서 문득 '눈감아 생각해' 낸 것입니다. 자신을 버림으로써 자신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까지 가혹한 상황에 쫓겨다닌 자신의 비굴했던 삶을 내던지고 가치있는 삶으로, 대결하는 삶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자기를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축소된 삶의 영역을 확대하는 역설로 시인은 극한 상황에 처해 있는 한 인간이 비극적으로 초월해 나가는 의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4연을 해석하는 이유는 바로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는 시구에 있습니다. 이는 은유(겨울=무지개), 상징(겨울, 강철,무지개), 역설(강철로 된 무지개)의 수사법이 구사되어 많은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겨울'은 서정적 자아의 삶을 시간적으로 축소시키는 이미지로서 쓰였습니다. 즉 서정적 자아의 삶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절망적 상황의 이미지입니다. 특히 겨울을 차가운 금속인 강철에 비유함으로써 서정적 자아로 하여금 비생명의 상황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겨울은 강철인 동시에 무지개' 라는 작가의 해석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무지개란 강철과는 다른 속성을 지닌 사물이지요. 즉 희망적이고 정신적인 아름다운 세계, 극단적인 절망에서도 삶의 의미를 주는 존재로 해석됩니다. 따라서 '겨울'은 단지 '죽음과 소멸만이 아닌 재생을 내포하고 있는 세계입니다. 결국 서정적 자아는 죽음으로부터 재생을 확인하는 비극적 초월의 삶을 선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조국 상실과 민족 수난 속에서 한 독립 투사의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음을 다짐하는 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외부 세력에 의해 시간적 공간적 삶의 영역이 축소되는 절박한 상황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전혀 감상적이지 않고 한계 상황 속에서 굳건히 자신이 나아가야 할 삶을 찾아가고 있는 시입니다.

특히 이 시는 '대륙적이고 남성적이며 웅흔한 기상'이라는 육사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되는데 '북방', '고원' 등의 대륙성과 상황과 대결하는 남성적 어조가 두드러집니다. 또 상황에 끝내 굴하지 않고 죽음까지도 각오하는 자세는 육사의 삶을 지배했던 선비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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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생각해 보기

 

 

 

 

1) 일제 치하에서 저항적인 시를 썼던 한용운과 윤동주의 시에 비하여 나름대로 독특했던 육사의 시적 특성을 생각해 봅시다.

2) 육사의 시에 나타난 지사적인 정신은 어디서 유래하고 있습니까? 육사의 성장 배경과 관련하여 생각해 봅시다.

3) 이 시에서 극한 상황의 대결과 극복의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해 쓰인 대표적이 수사법은 무엇인가 생각해 봅시다.

4)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를 해석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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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또 다른 시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 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횐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실향 의식이 배경으로 깔린 이 시에는 조국을 떠나 독립 운동에 나선 육사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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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목(喬木)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이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절정(絶頂)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 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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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을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아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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