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비둘기
1. 김광섭 金珖燮(1905 ~ 1977)
시인, 수필가, 호는 이산(怡山), 함북 경성 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수 모교 중동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창씨 개명 반대로 4년 가까이 옥고를 치르기조 함. 해방 후 공보처장, 대통령 공보 비서관, 자유 문인 협회 위원장, '자유 문학' 사장, '세계 일보' 사장 및 경희대 교수 역임.
저서 : 1927년 '해외 문학'과 '문예월간' 동인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 이래, (동경), (마음), (해바라기), (성북동 비둘기), (반응), (겨울날) 등 왕성한 시작 활동을 계속함.
2. 단원 개관
우리들은 예로부터 자연에서 교훈을 얻기도 하고, 정신적 안식을 찾기도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 왔다. 보기에 따라서는 자연의 두려움 앞에 체념적이고 소극적인 태도였다고 비판을 해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공존의 자세가 오랜 세월 우리의 삶에 안정감을 준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자연을 단순히 이용의 대상이나 나아가서는 정복의 대상으로 적대시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의 활동 영역이 무한히 넓어진 것만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인간의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신비에 가득찬 자연은 어디에도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인간의 이러한 변화가 바람직한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얻은 것 만큼, 아니, 얻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인간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의 획득은, 정신적 안식처와 맞바꾸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교환에 불과하다고 혹자는 말하고 있다. 현대인이 겪고 있는 이러한 방황과 소외는 사실 자연을 버린 인간 자신의 자업 자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비애를 '성북동 비둘기'는 노래하고 있다.
3. 본 문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삶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4. 요점 정리
문종 : 내용상 - 서정시, 형태상 - 자유시, 성격상 - 참여시, 경향시, 주지시
어조 : 관착과 고발의 비판적 어조
성격 : 주지적, 상징적, 비판적, 산문적
표현 : 하나의 사태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해 주제를 뚜렷이 부각함.
비둘기를 의인화시켜 인간과 자연의 문제를 대립적으로 설정함.
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다음, 주제로 집약시킴
선명한 감각적 이미지를 제시하여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나게 함.
제재 : 거처를 잃은 비둘기의 처지
주제 : 우리 나라의 이상적인 미래상
5. 참고 사항
1. 김광섭의 작품 세계
초기에는 고요한 서정, 엄숙한 절제가 어울리어, 강직한 지조를 드러냈으나, 차츰 지적인 사색고 관조, 시대적 고뇌와 성격적인 우수가 잘 조화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어느 한 사상이나 정신만을 추구하여 집중하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고, 광범하고, 다채로우면서도 인간의 삶과 시대에 밀착된 정신을 드러내었다.
(1) (고독)의 새대 : 고요한 서정과 냉철한 지적 성격
(2) (동경)의 시대 : 식민지 시대의 지성이 겪는 고뇌의 민족 의식
(3) (마음)의 시대 : 부드럽고 여유 있는 인생의 정취
(4) (해바라기)의 시대 : 해방을 마징한 기쁨과 의지
(5) (성북동 비둘기)의 시대 : 근원에의 향수와 사회 비평 의식, 추상의 극복
(6) (반응)의 경우 : 행사시, 사건시 등 사회성을 띤 작품들수록
2.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잃어 가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강렬한 아쉬움과 동경을 노래한 시이다. 그의 다른 어느 작품보다도 인간의 삶과 시대에 구체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시로,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를 통하여 변화되어 가는 현대의 그늘에서 발 붙일 곳을 자꾸만 잃어 가는 인간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북동 비둘기'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인간의 모습, 바로 시인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현대의 물질 문명은 문명의 이기를 낳았지만, 그러나 그 문명의 이기 속에서 현대의 인간들은 안주할 땅을 잃어 가고 불안해하고 무엇엔가 쫓기는 의식 속에서 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인간의 근원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인간 자신들에 의하여 자꾸만 파괴되어 가고, 따라서 생활의 둘레는 자꾸만 살벌해지기 때문에 인간들은 스스로 파괴한 환경 속에서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현대인들이 안주할 고향을 상실하고 불안해하고 고독해하는 의식 세계를 잘 반영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관념어의 나열이나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구체적인 표현과 세련된 수법으로 시의 세계를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작품이다.
참고 사항
기계화 시대에도 시인은 필요한 존재인가?
시가 인간 정신의 앙양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시인은 인간의 각자성과 내부적 창조를 무시하고 평균화된 일의성(一義性)을 강조하는 기계 시대의 기구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시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기술의 양적 사상에 맞선 시의 질적 사상이다. 질적 사상은 배금 퐁토와 물량주의로 비대해진 이 시대의 저질적인 풍속 문화를 정화하는 소독제라 말 할 수 있다. 정화 작업은 시만을 위한 시의 초연한 고립에서 절대로 이루 어지지 않는다. 시의 도피적인 순수성은 시인 일종의 이기주 의의 양이며, 현실이 더럽다고 거기에서 몸을 빼는 행위는 결국 현실의 오욕을 모르는 체 넘겨 버리는 방조적인 행위가 된다. 외면은 그것 자체가 무능인 것이다.
- 김병결, '기계화 시대의 시'에서
열린 마음, 열린 눈
'성북동 비둘기'가 이토록 우리들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를 어디서 찾아 무어라고 설명할 수 있으며, 과연 설명될 수 있을까. 문명 비평? 근원의 향수? 우리들이 처한 상황? 도무지 잡히지 않아 확실하게 오는 느낌은 약하지먄 오는 공감만은 어쩔 수 없이 크다. 오랜 투병 생활에서 지적으로 얻어진 시라고만 말할 수도 없다. 이는 자연과의 친화에서만 이룩될 수 있는 시겠지만 마음을 닫아 놓고는 아무나 쉽게 자연과 친화를 가질 수는 없다. 삶의 어려움을 겪고 이겨 냄으로써 마음이 열려 있는 자면이 자연의 평등함과 신비함과 고귀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산(김광섭)'은 '시에 있어서 진미(眞美)에 이르는 첩경은 단순성에 있다.'고 했다. 계속해서 이 단순성에 이르는 길은 만물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마음이 열려 있는 상태는 시에 있어서 관념적이고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고 하는 경지를 이미 넘어서 있는 후에 오는 상태이다. - 조태일, '고여 있는 삶과 움직이는 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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