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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 설일-김남조

by 휴리스틱31 2021.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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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일

 

1. 김남조 (1927- )

경북 대구 출생. 1951년 서울사대 국어교육과 졸업. 1951년 첫번째 시집 목숨(수문관, 1953)을 간행하여 등단. 자유 문협상, 오월 문예상, 한국시인협회상,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

1950년대에 등장하여 전세대인 모윤숙노천명과 후세대인 1960년대 시인들을 잇는 교량적 역할을 담당한 대표적 시인이다. 그의 시의 정신적 지주는 카톨릭의 사랑과 인내와 계율이다. 때문에 모든 작품은 짙은 인간적인 목소리에 젖어 있으면서도 언제나 긍정과 윤리가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배경으로 인해 종교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종교적인 배경은 인간적인 목소리를 더욱 짙고 깊이 있는 것으로 만드는 구실을 한다. 한편 기법상으로 보아 관심을 끄는 것은 리듬이 대부분 시행의 자유로운 배열로 형성되는데 그 형상이 우아하고 유연한 리듬으로 정밀하게 계산되어 있다. 이미지보다는 의미가 강한 그의 언어가 생생한 생명력을 지니는 것도 언어를 꿰뚫는 이러한 리듬 때문이다.

시집으로는 나아드의 향유(남광문화사, 1955), 나무와 바람(정양사, 1958), 정념(情念)의 기()(정양사, 1960), 풍림(楓林)의 음악(정양사, 1963), 너를 위하여(어문각, 1985), 빛과 고요(서문당, 1982) 10여권이 있다.

 

 

 

 

2. 본문

설 일

김남조

 

겨울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나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나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작품 내용

1: 나무와 바람을 보는 마음

2: 절대자에 대한 신뢰감

3: 삶과 사랑에 대한 신앙적 이해

4: 긍정적 삶에 대한 다짐 - 주제표출의 연

5: 백설을 바라보는 마음

 

 

 

구절풀이

 

머리채 긴 바람

바람에게 머리채가 있을 수는 없다. 그런데 바람에 흔들려 휩쓸리는 나뭇가지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휩쓸리는 가지들이 마치 바람에 머리채가 날리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혹은 시인이 바람이 부는 모습을 인간의 형상으로 바꾸어 생각하여 머리채를 휘날리는 모양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습에서 그 둘은 각각이 아니라 함께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시인은 이러한 자연의 모습을 통해 다음 연에서 자신의 삶의 모습을 유추하여 누구도 혼자는 아니라는 결론을 얻게 되는 것이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에서 자연이 혼자가 아니라면 인간 또한 혼자가 아니라는 단정적인 진술이다. 이때 ''도 당연히 혼자가 아닌 것이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

인간이 외부의 모든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만을 바라볼 때는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나타내는 진술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독은 신과의 관계를 더 밀접하게 한다. 이는 다음 행의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라는 진술로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인식은 기독교적인 시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인식 태도로, 인간은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듯한 고독감을 느낄 때 비로소 신을 인식하게 된다는 발상에 의한 것이다. 김현승 시인이 '가을에는 고독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인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은총의 돌층계

한 발을 디디고 올라서면 또 하나의 층계가 나타나는 돌층계의 모습처럼 인간은 하나하나의 과정을 거쳐가면서 살아가고 있고 그런 삶은 신의 은총이라는 은유적 표현이다.

 

섭리의 자갈밭

삶이 자갈밭처럼 고통스럽더라도 그곳에서 신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고 그것은 신의 섭리라는 은유적인 표현이다.

 

황송한 축연

삶에 대한 겸손한 인식 태도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황송하다'는 것은 '과분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신으로부터 자신이 받은 삶이 자신에게는 과분하다는 태도로 살아가자고 하는 표현이다.

 

승천한 눈물

눈시울 -> 눈물 -> 승천 -> 백설 -> 얼음꽃의 순환 과정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눈물의 순수함과 백설의 순수함으로 연상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설일" 해설>

첫째 연은 부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광경에서 비롯된다. 흔들리는 나뭇가지로 하여 시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존재를 지각하게 되고 시인은 그 바람의 파동과 유동성을 머리채 긴 바람과 투명한 빨래로 형상화한 것이다.

공기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바람도 우리 눈에 보일 리 없다. 그런데 바람이 어떤 물체를 날리 때 우리는 바람의 존재를 지각할 수 있게 되고 바람의 속성까지도 느낄 수 있게 된다. 시인은 이 때의 지각 경험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나 바람은 시각적인 것은 아니다. 시인이 시각적이 아닌 것을 시각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바람이 부는 양상과 그 속성을 여실히 전달하고 있다. 그 비시각적인 속성까지도 '투명한'이라는 말로써 살려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시의 나무는 이 세상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특별한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나무라도 상관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나무 일반의 (, 모든 나무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어떤 속성이나 본질에 관계하는 것도 아니다. 이 시에서 그것은 단지 외로움을 상징하는 것이자 바람과 함께 하는 존재로서 가치를 지닐 뿐이다. , 외로움을 상징할 수 있고, 또 바람과 함께 상호 공존하는 것으로 형상화될 수 잇는 것(예컨대, 깃발)이 있다면, 나무는 그것으로 대체되어도 무방한 것이다. 이처럼 실제 존재하는 구체적인 나무나 나무 일반의 속성 등과 무관하게 형상화될 수 있는 점이 문학에서의 형상화의 특성이다. 그러나 그 형상이 아무렇게나 자의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시에서처럼 바람과 어울리는 광경이 '그럴 듯하게'(즉 개연성 있게) 그려질 수 있어야 하며, 또 상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 시에서의 겨울 나무는 그 자체로도 외로운 존재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며, 또 바람과 어울리는 모습이 그럴듯하게 그려지고 있다. 나아가 바람과 어울리는 모습을 통해 '혼자가 아닌 게 된다.'라는 더 높은 차원의 깨달음을 이끌어 내는 데 아주 적합한 형상인 것이다.

둘째 연에서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둘째 행의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앞뒤로 되풀이되고 있으며, 다시 연의 말미에 그 증거가 제시됨으로써 뒷받침되고 있다.

'(나무와 바람도) 혼자는 아니다(어느)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나도(혼자는)아니다.'의 시상 전개는, 나무와 바람이라는 구체적 경우로부터 보편적 진실을 '귀납'해 내고, 또 그로부터 다시 ''의 경우를 '연역'해 가는 과정이다. , '세상의 모든 것이 혼자가 아니므로 나 역시 혼자가 아니다.'라는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다. 화자는 세상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에도 사물을 통해 이러한 깨달음을 재삼, 재차 확인하면서 그 외로움을 떨쳐 버리고 삶의 의지를 새롭게 다져 나가고자 하고 있다.

우선 '혼자는 아니다.'라는 말의 반복이 독자들을 설득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경우에 비추어 자신의 경우를 인식하는 화자의 태도에서 독자들은 신빙성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시상 전개는 독자들로 하여금 시적 화자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화자의 심리에 공감하는 심리적 실재를 형성하게 한다. 더 나아가 마지막의 '않던가'라는 표현은 시적 화자 자신의 체험에 대한 확인이면서, 동시에 독자들에 대한 물음의 기능을 한다. 그 물음에 속으로 답하게 되면서 독자는,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에 이어지는 시적 화자의 진술에 자신을 더욱더 동일시하는 태도가 형성되어 시의 내용에 공감하게 된다.

'돌층계'''을 연결지어 생각해 보면, 삶이 돌층계를 오르는 것에 비유되고 있으며, 돌층계는 '단단함, 올라가는 것, 끊임없는 과정, 오르기 힘듦'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이 또한 '은총의 돌층계'로 표현되어 있는 만큼 '오르기 힘듦 끝에 얻게 되는 성취'라는 의미도 지닐 수 있다. 또한, '자갈밭''사랑'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사랑이란 자갈밭을 걷는 것과 같다는 것이겠고, 결국 '수고로움, 괴로움, 나아가기 힘듦' 등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 '섭리의 자갈밭'으로 표현되어 있는 만큼 사랑하는 데 따르는 괴로움이나 역경 같은 것도 신의 섭리에 따른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마지막 연에서는 새해 벽두에 내리는 눈을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로 형상화하고 있다.

'순수의 얼음꽃'은 곧바로 '백설'을 상징한다. '얼음꽃'이란 표현은 미화법이며, 그 성격이 순수하다고 한 것은 '백설'자체가 일반적으로 순수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 역시 관습적이라 할 만하다. '순수의 얼음꽃'은 단순한 해석이 가능한 반면, '승천한 눈물'은 그 의미가 모호하다. 우선, 백설이 순수한 연유를 '승천한 눈물들이 떨구이는'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눈물이 승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땅 위에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삶과 사랑의 고통과, 깨달음에서 솟아나는 눈물의 순수함이 은총과 섭리의 뜻에 따라 승천했다가 다시 땅 위에 축복으로 내리는 것을 백설로 본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승천한 눈물''삶과 사랑의 고통이 은총과 섭리에 의해 순환된 것', 그리고 그것을 아는 깨달음 정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3. 요점 정리

글의 종류 : 자유시, 서정시

운율 : 내재율(음운, 음절, 통사 구조 등의 반복에 의한 리듬감 형성)

서정적 자아 : 차분하면서 설득적이며 자신을 성찰하는 자세

심상 : 시각적 심상이 두드러짐

제재 : 나무, 바람,

성격 : 서정적, 종교적, 관조적, 서술적

표현 : 서술적 문체고 시적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운율적 언어의 사용으로 시적 의미를 더욱 강화시켜 주고 있다.

시각적 심상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미를 실감 있게 전달하고 있다.

은유법, 직유법, 대구법 등의 표현법이 쓰였다.

청유형 어미의 사용으로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출전 : 김남조 제 7 시집 '설일(1971)'

주제 : 긍정적 삶의 인식과 새해의 다짐

 

 

 

 

<"정념의 기" 해설>

 

김남조의 시는 수직, 수평의 구도가 주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나무, 기둥, 깃발' 등이 그것인데, <겨울 바다>에서는 기둥의 이미지를 통해 주제 의식이 구현되고 있으며, 이 시에서는 깃발을 통해 화자의 의식이 드러나고 있다.

'()'는 이중성을 지닌다. 지상에 박혀 있으면서도 하늘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지상은 한계 상황이고 하늘은 자유의 공간이다. 인간이 지상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숙명이다. 그런데도 지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내부에 존재하는 것도 인간 조건이다. 이런 인간 존재의 모습을 ''로 표상한 것이다.

제목의 '()''()'은 이런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데, 인간적 삶의 모습이 ''이라면, ''은 초월적 삶의 모습이다. 인간적 고뇌와 초월에의 기도를 함께 지니고 살아가는 화자는 그대로 '정념의 기'가 되는 셈이다.

이 시의 기독교적 성격도 이런 구도 속에 형상화 되는데, 기도와 인고의 성숙한 모습은 하늘을 향한 끊임없는 지향성으로 드러나고 있다.

화자는 하늘에 쉽게 도달하려는 염원을 가지지 않는다. 꽃잎이 쌓여 가듯, 비애가 무겁게 가라앉듯, 하나씩 쌓아 가며 마침내 하늘에 도달하려고 한다. 그 속에는 수없는 눈물과 기도가 쌓여 간다. 그리하여 깃대도 더욱 단단해져 간다.

김남조 시의 기도와 고독, 인내의 모습은 이런 구도 속에서 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마음을 사랑과 염원의 깃발로 표상하고 있다. 붙박인 푯대 끝에서 먼 곳을 향해 가냘픈 기폭을 나부끼고 선 존재, 바라보는 곳은 아득히 멀고, 나를 바라보는 이가 없는 허허로운 공간에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나부끼고 있다. 정념(情念)의 대상은 멀기만 하고 나는 알아줄 이 없는 고독한 모습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치솟아 오르는 정념의 열기는 스스로만 타 가눌 수 없다. 눈 오는 거리에 서면 아득히 그늘이 드리워지고 마음은 안식에 젖는다. 눈이 자아내는 고요와 안식과 서정의 분위기에 젖기도 한다.

뉘우침 없이 종말을 맞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군가 보아주지 않아도 내면에 가득히 쌓아 올린 순결한 그리움, 차곡차곡 쌓인 애틋한 고독감, 그것은 꽃잎처럼 쌓여 가는 일몰(日沒)의 광경과 같으며, 그것이 유일한 소망이다.

비애감에 젖어 있는 사람, 명랑하지 않지만 성숙한 슬픔의 소유자, 그 맑은 애상(哀傷)을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벗으로 사귀고 싶다.

나는 정념으로 나부끼는 깃발, 보는 이 없어도 나대로 고뇌하고 기원하며, 고통으로 울기도 하고 때로 순결한 영원을 간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기도 하는 나는 고독한 실존.

 

 

 

 

정념의 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 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 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悲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

 

 

(시집 {정념의 기},1960)

 

 

 

김남조론 - 정념의 시인

 

시인은 독자들에게 어떤 이미지로서 다가온다. 가령 이육사는 '천고 뒤에 백마 타고 올 초인'이란 그의 시구와 더불어 광야에 말 달리는 선구자, 민족의 앞날을 내다본 예언자의 풍모로서, 윤동주는 고뇌하는 나르시시스트, 청교도적 순결성을 지닌 영원한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는지? 또 김수영 - 하면, 비리와 팽팽히 대결하려는 반골 정신의 표본 쯤으로 독자들에게는 알려져 있다고 본다.

이런 뜻으로, 필자는 시인 김남조를 시의 전당을 지키는 여사제로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의 시, 기도의 시를 누구보다도 많이 또 철저하게 써 온 이 시인은, 끓어오르는 정념을 순백의 사제복으로 감싸고, 영과 육의 갈등, 천상적인 것과 지상적인 것의 양면성을 변증법적으로 합일시키는 과정을 보이고 있는 것같이도 생각되는 것이다.

플라톤은 그의 파에드루스(Phaedrus)에서 레스보스섬의 여류 시인 사포(Sappho)를 제 9위의 뮤즈의 여신으로 추가하였는데, 김남보 시의 애독자들, 특히 젊은 여성 독자들에게 이 시인은 비슷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 박목월은 김남조에 대한 인물평에서, 이 시인의 눈을 고층 빌딩의 유리창에 비유한 적이 있다. 너무나 높은 데 달려 있어, 이따금 하늘에 흘러가는 흰구름이나 비칠 뿐, 감히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유리창에 비유함으로써, 이 시인의 고고한 인품과 아름답고 신비로운 눈동자를 예찬한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평소에 눈동자들을 시에서 애용어로 삼고 있던 시인인만큼, 박목월의 이 비유는 김남조의 아름다운 육신의 눈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으로서의 그의 안목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김남조는 부지런한 시인, 다작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1955년 이래 지금까지 숙명 여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단 활동도 왕성한 편이다. 서울대 후배인 김후란, 숙대 제자인 신달자, 허영자, 김윤희, 가톨릭교의 대녀인 강은교 등 역량 있는 여류 시인들이 그의 지도 아래 배출되었다.

그는 1953년 제 1시집 <목숨>을 간행한 이래로 지금까지 열한 권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평균 3년에 한 권 꼴이다. 그의 문필 활동은 시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 사이 10여 권의 수상집에다 최근에는 꽁트집까지 간행하였는데, 이 모두는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다.

어떤 충동이 그로 하여금 부단히 시를 쓰게 하는지, 무엇이 그의 시와 글의 매력인지 하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이에 대한 답을 시에만 한정하기로 한다.

김남조의 시집들의 간행순은 다음과 같다. <목숨>(1953, 25), <나아드의 향유>(1955, 27), <나무와 바람>(1958, 33), <정념의 기>(1960, 35), <풍림의 음악>(1963, 33), <겨울 바다>(1967, 41), <설일>(1971, 22), <사랑 초서>(1974, 102), <동행>(1980, 33), <빛과 고요>(1983, 46), <바람 세례>(1988, 61, 산문 7)

위의 시집들은 지은이가 시인으로서 성숙되어 가는 과정을, 또는 시의 경지에 깊이와 폭을 더해 가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을 것인데, 어떤 이는 이중 제 5시집 <풍림의 음악> 이후에 시가 크게 나아졌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초기의 시에는 지나친 자기애에서 나타나는 고립과 지배와 우월의 형태가 보였으나, 1960년대를 기점으로 <풍림의 음악> 이후는 사랑의 퇴행과 구원의 승화로 일관하고 있으며, 그 밑바닥에 뿌리 내리고 있는 것은 생명의 긍정적인 것에서 오는 기꺼운 화평의 충만함이라 한다.

그러나 김남조 본인에게 들은 바로는 '남들도 그렇게 말하더라'는 전제 아래, 7시집 <설일>(1971)을 분기점으로 삼고 있다. 그 이전의 시는 미숙한 상태에서 쓴 것이고, 그 이후가 자신의 목소리로 썼다고 한다. 초기의 시는 아무래도 세상을 들뜬 마음으로 바라보며 썼고, 또 생각의 깊이도 모자랐던 듯하다고 말한다.

시의 경지가 달라지게 된 계기를 그는 모친과의 사별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후술하기로 한다.

그런데 김남조의 시는, 최근에 다시 한 번 크게 바뀐다. 이번에 부군 김세중 교수의 갑작스런 타계로 말미암는다. <바람 세례>에는 사랑할 대상의 상실감과 회한이 절절히 사무치고 있다.

이렇게 보면 김남조의 현재까지의 시작(詩作) 활동은 대략 3기로 구분이 되겠는데, 시를 쓰게 된 동기가 6.25 동란 중의 무수한 죽음 때문이었음을 고려한다면, 그가 한결같이 노래해 온 사랑이 단순한 에로스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허망함과 현상의 세계에 도사리고 있는 부조리에 대항하여 삶의 근거와 의미를 확보하려는 강인한 시 정신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게 된다.

 

김은전, '한국 현대시 탐구'에서

 

 

 

 

김남조 시에 나타난 여성 문체의 의미

 

1. 시적 대상의 관계화

 

김남조 시에서 두드러지는 문체 징후의 하나는 사물의 의인화와 부름(돈호법)의 양식을 통한 내적인 관계 맺음이다. 시인은 사물을 바라볼 때,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아의 외부에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로서의 '그것'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화와 돈호법의 표현 양식을 빌어 주체인 ''와 내적인 조응을 이루는 등가물로서 보려는 무의식적 성향을 드러낸다.

모든 외적인 사물들, 혹은 나 아닌 타자를 나와 1 : 1의 특수한 관계를 가진 대상으로 의미화하는 것이다. 그 대상이 되는 것은 산, 돌 등의 사물에 국한되지 않고, 연인, 신 등 인격체도 포함되며 심지어는 나 자신까지도 객관화하여, 타자화(他者化)된 자아와 '- '의 관계를 맺는다. 이는 남성이 자율성을 지향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가장 깊게 그리고 가장 고통스럽게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는 사실은, 김남조 시에서 가장 선명하게 확인되고 있으며, 사람을 여성이라는 단어로 대치했을 때 그 의미는 더 깊어지리라 본다. 모든 사물, 나 아닌 타자, 심지어는 나 자신까지도 타자화하여 관계망을 얽어 짜려는 집요하기까지 한 노력은 결국 대상과 시적 자아 사이를 밀착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 시적 대상에 대한 심미적 거리가 짧아지는 것이며 작품은 주관적 정조를 띠게 된다.

 

2. 품음과 여성의 수용성

 

김남조 시에 유난히 많이 사용되는 '품음'에 관계된 시어들은 그의 시의 중핵에 도달케 하는 중요한 언어적 징표가 된다. '안다', '뉘이다', '덮어 주다', '지나다'와 같은 시어들은 '품음'과 등가적 의미를 지니는 표현들이다. '품는' 주체는 대체로 표현 주체인 ''로 나타나지만 '어머니, 지구, 달빛'으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들은 모두 여성이거나 여성적인 속성을 지닌 존재이다. 한편, 품어지는 수동적 객체는 '초원, 당신(), 바다, 아들, 태양' 등 사물에서부터 추상적 개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품음이라는 동사가 담고 있는 의미도 단순히 품는 동작만을 지시하는 것에서부터, '그리워하다, 생각하다, 느끼다, 하나가 되다, 맞이하다, 감싸 준다, 위로한다, 기른다'와 같이 상징적인 내포를 가지는 것까지 매우 다양하게 의미화된다. 이같이 다양한 '품음'의 구조들은 모두 그 대상을 나 안에 '머금는' 행위를 상징적으로 언어화한 표현들이다. 대상을 나의 내부에 머금음으로써 주체와 객체는 병합이 되고, 그것은 '잉태'의 상태, 혹은 어머니와 유아의 공생 관계를 상징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신은경, '여성성의 구현으로서의 여성 텍스트와 여성 문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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