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덤불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 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뜯지 않았느냐?
그러는 동안에 영영 잃어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멀리 떠나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몸을 팔아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맘을 팔아 버린 벗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서른여섯 해가 지나갔다.
다시 우러러 보는 이 하늘에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오는 봄엔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그 어느 언덕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
지은이 신석정(辛夕汀, 1907 ~ 1947) 시인. 본명은 석정(錫正). 일제 강점기에는 이상향을 그리는 목가적 서정시를 주로 써서 전원파로 불리었으나, 이후에는 사회적 관심을 드러내는 작품과 관조적 성찰의 시를 주로 썼다. 시집으로 《촛불》, 《슬픈 목가》, 《빙하》, 《산의 서곡》 등이 있다.
작품감상 이 시는 조국이 광복된 후에 보인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미래의 밝은 세계가 도래하기를 갈망한 작품이다. 앞부분(제1~3연)에서 시적 화자는 일제 시대의 수난 어린 삶을 회고하고, 뒷부분(5연)의 '태양을 안고 ~ 꽃덤불에 아늑히 안겨 보리라'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서 '태양'은 말할 것도 없이 진정한 조국의 광복을 의미하는 것이며, 밝은 미래를 표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태양은 시적 화자가 궁극적으로 소망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광복은 말할 것도 없이 빛의 회복을 뜻한다. 빛의 회복을 위해서는 태양이 다시 떠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일제 시대를 암흑기라 한 것도 태양이 없었기 때문이다. 1연과 2연에서 태양은 조국의 해방을 의미한다. 2연 1행에서처럼 '달빛이 비 오듯 쏟아지는' 밝은 밤도 그것이 밤인 한 어둠이고 암흑인 것이다. 그러기에 3연에서 보인 것과 같은 민족의 수난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 수난은 분수처럼 쏟아지는 태양을 안고 꽃덤불에 아늑히 안기는 순간 끝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소망이 실현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주제 광복의 기쁨과 새로운 민족 국가 수립의 염원
짜임 제1연 : 일제 치하에서의 지하 독립 투쟁
제2연 : 독립에 대한 노력
제3연 : 애국 투사의 죽음, 유랑, 변절, 전향에 대한 안타까움
제4연 : 일제 식민지 36년이 지나감
제5연 : 새로운 민족 국가 건설에 대한 기대
짜임 ? 태양 : 조국의 광복
? 헐어진 성터 : 빼앗긴 조국
? 겨울밤 달이 아직도 차거니 : 혼란한 광복의 정국
? 꽃덤불 : 광복 후의 새로운 민족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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