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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문학 줄거리/해설] 원고지(1959) -이근삼-

by 휴리스틱31 2021.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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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1959)   -이근삼-

 

● 줄거리

 

장녀와 장남이 나와 가족을 소개하고 나면, 아내가 돈 문제로 남편인 교수를 추궁한다. 교수는 중압감에 못 이겨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인다. 교수는 밤 8시 시계 소리를 듣고 아침인 줄 착각하고 출근하려고 하는 등 일상생활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면서 살아간다.

이때 감독관이 나타나 번역 원고 쓰기를 독촉하고, 아내는 원고 한 장이 나올 때마다 이것을 돈으로 환산한다. 교수는 우연히 190칸만 있는 원고지를 발견하고 환상 속에서 젊은 날의 희망과 정열을 상징하는 천사를 만난다. 교수는 자신의 꿈을 찾아 줄 것을 갈구하나 천사는 곧 사라져 버리고 감독관이 나타나 번역하는 일을 독촉하자 또다시 기계적으로 번역을 한다. 신문은 과거와 똑같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리고 교수는 번역하는 일에, 아내는 장녀와 장남에게 용돈을 나누어 주는 일에 쫓기는 가운데 감독관은 또다시 번역을 독촉한다.

 

 

● 감상 및 이해

 

이 작품은 1959년에 발표된 이근삼의 등단작이다. 젊은 시절의 꿈과 이상을 잃어 버리고 돈 버는 기계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대학 교수와 그 가족을 통해 돈이 최고의 가치로 군림하고 있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꿈과 이상을 되찾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무력하기 짝이 없으며, 가족 간의 의사소통은 애당초 기대할 수조차 없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부조리극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작중 인물이 해설자 역할을 겸하고 있다는 점, 작중 인물이 어떤 관념을 표상하는 존재라는 점, 비현실적인 상황을 구성하는 소도구가 등장한다는 점 등에서 이 작품은 실험극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어떤 배경이나 특수한 심리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매일매일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일상사 중의 한 토막을 다루어, 갈등을 느낄 수 있는 대상에 대한 갈등의 포기를 그리고 있다. 겉보기에는 근엄한 대학 교수와 그 가정의 이중성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소극(笑劇)의 형식으로 처리하여 현대인의 무의미한 일상성과 인간 소외의 문제를 아이러니컬하게 보여 주고 있다. 특정한 사건의 전개나 갈등이 없이 하나의 상황을 희극적으로 과장하는 이 작품의 수법은 20세기의 새로운 연극인 부조리극의 대표적 형식이다. 부조리극에서는 전통극의 인과관계에 의한 플롯을 거부하고 허구적 과장, 희극적 형상화 등의 수법을 통해 인간의 부조리한 상황을 드러내는 데 주력하며, 극적 몰입을 거부한다.

 

이 작품에서 유사한 행위가 반복된다든가 무의미한 대사가 반복되는 것은 일상적 삶의 무의미함, 무가치함을 반영한다. 또한, 거대한 조직 사회 속에서 개인의 위치가 축소되고, 인간이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외형적으로는 가족 공동체이지만 유대감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가족으로서의 인간적 관계뿐만 아니라 각자의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그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 채 기계적인 순환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므로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 위기 등도 없이 다만 한 가족의 상황만 제시되고 있다. 그 상황의 한복판에 교수인 아버지가 서 있는데, 그는 자신의 직업인 번역하는 일에만 기계적으로 일상화된 반응을 보이는 무기력한 현대인이다. 또, 그 아내는 남편에게는 원고 독촉자(궁극적으로는 돈벌이를 재촉하는 일에 해당)이며 남편과 자녀를 잇는 중간 매개자로서, 현실적인 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또, 장남과 장녀는 갖가지 명분으로 용돈을 타내고, 시끄러운 음악에 도취되어 살아가는 현대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인의 무의미한 일상과 인간 상호간의 소외를 희화적으로 보여준다. 허리에 쇠사슬을 매달고 원고 뭉치가 든 큼직한 가방을 수의 의상은 물론, 무대 배경까지 온통 원고지 무늬로 채웠다. 똑같은 소리가 되풀이되는 축음기, 하염없이 화장만 하고 있는 장녀, 돈 계산만 되풀이하는 아내의 모습은 무대 배경인 원고지의 무늬와 어울려 현대인의 비인간적인 삶을 압축적으로 제시한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실제의 현상이 아니라, 어느 정도 희극적으로 과장된 허구이다. 그러나 이러한 희극적인 형상을 통해 단순한 웃음거리 이상의 교훈을 읽어내는 데에 이 작품의 의의가 있다.

기법상으로는 전통적인 희곡에서 요구되는 인물의 전형성이나 사건의 유기적 흐름 등과는 거리를 둔 채, 희극적으로 과장된 인물 제시와 비사실적 장치들을 동원하여 현대인이 지니고 있는 부조리와 비극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단막극이다.

 

이 연극은 등장 인물을 사건의 해설자로 등장시킴으로써, 좀더 서사적인 형식에 근접하고 있다. 서구의 표현주의극이나 우리의 전통극에서는 이처럼 해설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와 같이 현대인의 무의미한 일상생활의 모습과 부조리한 상황을 비판과 풍자의 시각으로 실험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있다. 특히, 교수가 3년 전의 신문 기사 내용과 오늘의 신문 기사 내용이 똑같다는 얘기를 하는 대목은 현대의 삶이 창조적이지 못하고 기계와 물질 속에 정체된 채로 단순한 순환만을 거듭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 정리하기

 

▒ 갈래 → 희곡, 단막극, 풍자극, 부조리극(상황극, 반극), 서사극

▒ 성격 → 반사실적, 서사적, 풍자적, 실험적(전통적인 리얼리즘의 극작술을 벗어남.)

▒ 배경 → 현대 어느 중년 교수의 가정

 

 인물

* 교수 → 기계적으로 번역에 종사하는 인물. 한때는 꿈과 이상에 대한 정열과 희망을 품었던 사람. 그러나 지금은 현실과 아버지로서의 의무감에 짓눌려 사고 능력을 상실한 무기력하고 무의지적인 인물임.

 

* 처 → 인물 설정의 의도로 볼 때, 교수와 똑같은 부류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교수와 자식 사이의 줄을 잇고 있는 매개자로서, 현실에 대한 인식 상태도 교수와 자식들 사이의 중간자적 위치이다. 남편을 현실에 묶어 두는 감독관이지만, 역시 현실이라는 감독관에 의해 다시 감독을 당하는 점에서 교수와 같다.

 

* 장녀, 장남 → 육체적으로는 건강하나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욕구에 가득 찬 인물로 현대인의 현실에 대한 욕망을 나타내고 있다. 두 인물로 설정되어 있으나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이들은 오직 육체적 · 물질적 욕망만을 추구한다. 이들이 심하게 과장되어 있는 것은 현대인의 욕망이 크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작가의 의도이다. 극의 해설자 역할을 하며 세속적 · 이기적인 인물이다.

 

* 감독관 → 관념적인 인물로, 교수를 기계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강압적인 힘을 상징한다. 인간을 조종하고 억압하는 구속성의 상징.

 

* 천사 → 감독관과 상반되는 인물이다. 교수의 분열된 자의식으로, 잃어 버린 꿈과 희망을 상징함.

 출전 →  <사상계>(1960), 희곡집 <제 18공화국>(1965)

 제재 → 현대인의 인간성 매몰과 부조리한 현실 상황

 주제  인간성을 상실한 현대인의 기계적인 삶에 대한 풍자

 

▒ 특성

1) 특별한 사건 전개 및 뚜렷한 갈등 양상 없이 극중 상황만을 보여줌.

2) 인물의 전형적 성격보다는 주제 의식의 표현에 중점을 둠.

3) 무대 장치, 소도구, 인물의 대사와 행동 등이 희극적으로 과장되어, 풍자와 반어적 의미를 드러냄.

 

 

● 참고자료

 

◆ 이근삼의 작품 세계

이근삼은 종래의 리얼리즘적인 극작술을 거부하고 무대 위에서의 연극적 재미를 십분 추구하는 희극 작가다. 따라서 그의 희극은, 셰익스피어류와도 다르고, 몰리에르의 작품과도 다르다. 오영진의 한국적 희극과도 거리가 있다. 어떻게 보면 현대 미국 희극 계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면서도 그 나름대로 우리 현실을 통렬하게 고발하는 극술(劇術)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지나치게 연극적 재미를 추구하고, 현실 풍자를 위해 작품을 쓰고 있기 때문에 작위적인 데가 있고 경박한 감마저 주며, 그렇기 때문에 풍자 정신도 깊이가 부족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와서는 관념적 대사라든가 작위적인 것을 많이 극복하고 우리 현실에 대해서도 밀도 있게 풍자한다.

 

① 리얼리즘극에 반발하여 부조리극을 시도함.

② 작품에 비상식적인 인물이나 의식적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소극적인 요소를 동워낳여 연극적 재미를 유발시킴.

③ 현대인의 삶의 비극과 모순을 파악하려는 현실적 관심을 보임.

 

◆ 부조리극의 성격

부조리(不條理)란 인생의 무의미 · 무목적 · 충동성 등을 총칭한 표현이다. 부조리 연극은 1950년대 등장한 것으로 현대인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고발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부조리 연극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삶의 자세만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고 부조리하더라도 인간은 스스로의 존엄성과 실존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는 이를 대표한다. 산의 정상에 바위를 올려 놓으면 곧 굴러 떨어지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끌어 올리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이다. "원고지"도 이런 긍정적인 삶의 의지를 가르치고 있다.

 

 

◆ <원고지>의 실험적 성격

이 작품의 인물들은 물질에 대한 욕망과 기계적인 순응만 보일 뿐,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가족들 사이의 진정한 의사소통이나 연대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이처럼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의미를 망각한 채 기형화된 삶을 아무런 자각 없이 살아가는 한 가족의 소외된 삶의 모습을 희극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수법을 활용한 점이 사실주의 연극의 극작술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작중 인물이 직접 해설을 한다든가 무대 장치와 소도구들은 일부러 비현실적으로 과장한 것도 현대극의 실험적 수법을 활용한 것이다.

이러한 실험극에서는 사실을 충실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주로 사실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반사실적이며, 반표현적이어서 현대인의 정신적 상황을 대변해 주는 현대 희곡의 한 특징이 된다.

 

◆ '원고지'에서 교수가 주인공으로 설정된 것의 의미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직업은 '교수'이다. 교수는 학문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지식인 계급이다. 여기서 지식인이란 자신의 지식을 토대로 하여 자기가 속한 시대나 사회의 문제를 통찰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현실의 문제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교수는 한때 학문 추구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현재는 지식인은커녕 속물적 인간으로 변해 있다. 이 작품은 이와 같이 사회의 지식인으로 대변되는 교수까지도 물질의 노예가 되어 버린 상황을 보여 줌으로써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허구성을 강하게 풍자하고 있다.

 

◆ '원고지'에 쓰인 호칭과 그 효과

이 작품에는 등장인물의 명칭이 이름과 같은 고유 명사가 아닌, '교수', '처', '장남', '장남' 등 보통명사로 되어 있다. 이러한 호칭은 가족 안에서 쓰이는 호칭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객관화된 호칭이다. 이처럼 보통 명사화된 호칭은 등장인물들이 개성을 가진 특수한 개인이 아니라, 그 인물이 속한 집단을 대표하는 유형화된 인물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풍자의 범위를 사회 전체로 확대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등장 인물들이 한 가족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호칭 사용을 통해 가족 구성원 간의 유대 관계 상실과 거리감을 보여 주게 되었다.

 

◆ '원고지'의 부조리극 형식

이 작품은 현대인이 겪고 있는 일상사 중의 한 토막을 제시하고 있는데, 특별한 갈등 없이 극중 상황만을 전개해 가는 실험적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잃어 버린 현대인에 대해 풍자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20세기 등장한 부조리극의 형식을 실험한 것으로 평가된다. 더욱이 이 작품에서 사용되고 있는 암시적인 무대 장치나 음향과 조명의 사용, 그리고 유사한 행위나 무의미한 대사의 반복 등은 현대인이 경험하는 일상적 삶의 무의미함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서 기능하고 있다.

 

◆ '원고지'의 서사극적 특성

서사극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전통적 이론에 대립하는 새로운 연극 이론을 의미한다. 서사극에서는 이성, 판단, 객관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무대의 사건은 어디까지나 '연극적인 것'이지, 사실 그 자체나 현실일 수 없다고 본다. 서사극의 특징은 첫째로 해설자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극이 실제 상황처럼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해설자의 개입에 의해 극이 진행되면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게 되고, 관객은 그 극이 실제가 아닌 '연극'임을 인지하게 된다. 두 번째는 두 가지 이상의 장면이 서로 개입하거나 의식하지 않은 채 동시에 진행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원고지'에서 '장남'이 '교수'와 '처'를 소개하고 있을 때, 같은 무대 위에 있는 '교수'와 '처'는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듣지 않은 것처럼 일련의 행위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실제 공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행위이다. 이러한 서사극은 관객을 극에 몰입하는 존재가 아닌 극을 판단하는 존재로 만든다. 또한 관객에게 무대의 문제를 현실 속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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