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1960)
-최인훈-
● 줄거리
이명준은 철저한 공산주의자 이형도의 아들이다. 이형도는 박헌영과 더불어 남로당을 만들어 활약하다가 이북으로 도피한 자다. 그러나 이명준은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철학도이다. 그에게는 넉넉한 집안의 딸인 윤애라는 사랑스런 여자 친구가 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로 대치되어 있는 남북의 상황이 이명준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북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아버지가 방송을 통해 남쪽을 비방 공격하는 선전을 하게 되고, 남쪽의 치안당국자들은 비위에 거슬리자 이명준을 불러 와 심한 추궁과 고문을 감행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명준은 세상이 싫어지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된다. 여자 친구 윤애 집에 머물면서 바닷가를 배회하던 중, 이북으로 가는 밀선을 알선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의 주선으로 명준은 이상적인 사회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북으로 간다. 아버지는 민주주의 민족 통일 전선 선전 책임자로 있으면서 중류 부르조아의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명준이 본 것은,잿빛 공화국이었다. 시민은 열기를 잃었고, 코뮤니스트들의 교양은 교조적인 것에 머물렀고,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일하는 보람이 아니라,위선과 독선, 치사한 아첨과 비굴이 넘치고 있었다.
명준은 아버지에게 대들며 신랄하게 비판했고, 그의 아버지는 말없이 계속 따뜻한 정감을 자식에게 보여준다. 그런 어느 날, 자원해서 노동현장에서 일하다가 실족하여 부상을 당하게 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무용수인 은혜를 알게 된다. 퇴원해서 명준은 신문사의 명으로 남만주에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집단 농장 취재를 떠난다. 거기서 그가 발견한 것은 일종의 타성과 무기력뿐이었고, 이것을 기사화했을 때, 신문사 당간부들의 질책이 떨어지고, 개인주의와 소부르조아 근성을 청산하지 못하고 사회주의 건설의 의도를 왜곡시켜 기사를 쓴 자로 낙인 찍힌다. 그런 가운데서도 은혜와의 사랑은 익어가고, 은혜는 모스코바로 유학을 가도록 내정되고, 그러던 차에 6.25가 터진다.
전쟁 중에 명준은 북한 군관 신분으로 서울에 오면서 우익 사상범들을 다룬다. 거기서 뜻밖에 옛날 자기집 생활을 돌보아 준 변선생의 아들 태식을 만난다. 태식이 윤애와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된 명준은 윤애를 농락하고 태식을 처형하고는 낙동강 전선으로 자원해서 나간다. 낙동강 전선에서 인민군의 간호원이 되어 온 은혜를 만난다. 둘은 아비규환을 이룬 전선의 어느 동굴에서 사랑을 맹세하지만 약속한 다음 날에 은혜는 나타나지 않는다. 유엔군의 폭격에 그녀는 죽었고 명준은 포로로 잡히게 된다.
결국 명준은 북쪽과 똑같이 남쪽에도 그가 마음놓고 삶을 꾸려나갈 광장이 없음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휴전이 성립되고 포로수용소를 나오게 되자 중립국으로 갈 것을 희망한다. 그들을 태운 송환선은 인도로 향해가는 항로에서 남지나해를 지나간다.
뱃길에서 명준은 평소 익힌 영어 덕으로 통역 일을 본다. 그리고 그가 친해진 선장과 스스럼 없이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 선장은 인도에 가면 조카를 명준에게 소개시켜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명준은 그런 말을 귀끝으로 흘린다. 그는 푸른 파도를 가르며 가는 배의 갑판 위에서 심한 고독을 느낀다. 그리고 바다를 푸른 광장이라 생각하게 되고, 그 날 명준이 탄 배에는 한 사람의 실종 사실이 선장에게 보고된다.
결국 명준은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를 모두 초월할 수 있는 광장, 이상적인 광장의 모습을 바다에서 발견하고 그 속으로 투신해 버리는 것이다.
● 인물의 성격
◆ 이명준 → 치열하게 남과 북을 오가면서 존재의 확인을 위해 투쟁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일종의 '지적 응석'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인물.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적 현실을 직시하고도 제3국을 선택한 것은 남과 북의 공간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개인주의적이고 관념적인 지식인이라고도 할 수 있음.
◆ 이형도 → 명준의 부친. 남로당원으로 월북하여 북한에서 고위 관리를 하고 있지만 명준에게 이상적 혁명가의 모습을 보이지 못함으로써 역시 회의의 대상이 됨.
◆ 선 장 → 명준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인물로 삶에 대하여 어느 정도 스스로의 가치관을 지님.
◆ 무라지 → 석방자를 실어 나르는 인도 관리. 나태하고 방탕하여 삶에 대한 별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인물임.
◆ 윤애 → 명준의 남쪽 애인. 명준이 월북하자 명준의 친구인 태식과 결혼하여 평범하게 살아간다.
◆ 은혜 → 명준의 북쪽 애인. 발레리나였으나 북한군 간호 장교로 종군하다가, 명준의 아이를 가진 채 전사한다. 명준의 삶에 어떤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었던 여인이다.
◆ 변성제 → 명준 아버지의 친구로 아버지가 월북하자 명준을 돌봐 준다.
◆ 영미, 태식 → 변성제의 자식으로 전형적인 부르조아 인물이다.
● 구성 단계
◆ 발단 : 철학과 3학년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가 대남 방송에 나왔다는 이유로 S서에 호출되어 심한 폭행과 모욕적인 취조를 받는다. 이로 인하여 남한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월북한다.
◆ 전개 : 월북한 명준은 아버지의 주선으로 노동신문의 기자가 되어 일하나, 공산주의 사회의 현실에 매우 실망한다.
◆ 위기 : 명준이 발레리나 은혜를 만나 삶의 보람을 느끼지만 은혜가 모스크바 공연을 떠나게 됨으로써 헤어지게 된다. 이후 명준은 남부전선에 배치되어 전투하는 중에 간호원으로 나와 있는 은혜를 다시 만나게 되나 은혜는 전사하고 만다. 명준은, 인민군으로 종군하다가 포로가 된다.
◆ 절정 : 포로 교환시 명준은 남한과 북한을 모두 거부하고 제3국인 중립국을 택한다.
◆ 결말 : 명준이 배를 타고 제3국인 인도에 거의 도착할 무렵, 더 이상 자신이 서 있을 광장이 없음을 느끼고 배에서 투신자살을 한다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새벽](1960)에 발표한 작품으로서, 분단의 상황, 이데올로기적인 대립 속에서 한 인간이 겪게 되는 이데올로기적인 선택과 죽음을 다룬 작품이다. 작가가 서두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구정권 하에서는 감히 다루지 못할 소재를 다룬 것으로, 4 · 19가 가져온 자유당 정권하의 모순과 비리를 북조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소설에 나타나는 광장은 두 개이다. 하나는 독재주의를 위장하고 서구적 자유의 풍문으로 가득 차서 진실한 광장은 없고 밀실만이 존재하는 남한의 부조리한 광장이며, 다른 하나는 혁명이라는 풍문 속에 갇혀 있지만 진정한 혁명은 존재하지 않고 혁명의 화석만이 존재하는, 밀실은 인정되지 않고 허위에 가득찬 광장만이 존재하는 북한의 광장이다.
이명준은 이 두 개의 광장 모두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며 제3국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명준의 이러한 선택은 죽음으로 이어지며 그것은 진정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명준이 제3국을 선택한 것은 남과 북의 문제를 선택의 문제로만 받아들인 자신의 한계 때문이다. 즉 개인주의적이고 관념적인 지식인의 제3국행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조국의 문제에 대한 투철한 인식도, 광장을 개선할 만한 의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갈매기와 파도 그리고 제3국의 허망성에 의한 영원한 광장에의 귀의가 이 소설의 의미를 더해 준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다분히 철학적이고 관념적이며, 대상을 통해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시적 문체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다분히 사색적인 성향과 추상적인 문체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주인공의 무의식의 공간을 끌고 가는 것으로 갈매기가 등장하는데 이 갈매기는 은혜와 그의 딸을 상징하는 것으로 남한과 북한에서 자신의 광장을 찾지 못한 명준이 제3국이라는 밀실로 들어가는 데에 새로운 밀실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이로써 명준을 자살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구성면에서는 과거 회상과 현재 진행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즉 중립국으로 가는 배 안이라는 현재적 상황 속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을 택하여, 자신이 배에서 투신 자살하기까지의 인과 관계를 밝히고 있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중편소설, 사회소설, 분단소설
- 관념적, 철학적
◆ 배경
⑴ 시간 - 6.25 전후 (광복∼전쟁 종전)
⑵ 공간 - 제3국으로 석방 포로들을 싣고 가는 배 안
타락과 방종에 가까운 자유가 있는 남한과 이데올로기를 빙자한 무자유의 북한
⑶ 사상 - 분단 이데올로기와 실존주의
* 배경이 지닌 의미 (이 작품은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 타고르 호에서 주인공 이명준이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시간적인 배경은 우리 민족의 혼란기에 속하는 광복으로부터 종전에 이르는 시기이며, 이 시기에 주인공은 남과 북을 오가며 방황한다. 작자는 남한의 타락과 방종에 가까운 자유, 북한이 이데올로기를 빙자한 부자유를 보여줌으로써 진실로 인간적인 사회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실제의 시 · 공간적 배경은 타고르 호에서의 이틀, 회상의 시 · 공간적 배경은 광복에서부터 한국 전쟁 종전에 이르는 시기의 남한과 북한(주로 서울과 평양)을 설정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이라는 배경은 이데올로기의 실상과 허상을 밝히기 위한 장치로 이용된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문체 : 독백체와 관념적 문체를 사용함으로써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성격을 띠고, 이명준의 심리적 갈등을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문장으로 표현해 낸다.
◆ 갈등구조 : 개인과 사회(이데올로기)와의 갈등
◆ 주제
* 분단 이데올로기 속에서, 존재에 대한 근원적 의미 추구
* 분단의 과정과 비극 속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소설과 전후소설과의 차이점을 말해 보자.
⇒ 전후소설이 전후의 상처와 그로 인한 절망, 그리고 무기력과 허무를 주로 그림으로써 전쟁의 본질적인 문제, 즉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문제를 다루지 못하였던 반면 이 작품은 남북분단의 문제를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다룸.
2. 이명준이 제3국행을 택한 이유는 ?
⇒ 이념적 대립이 없는 세계에 대한 동경
3. 이명준의 자살을 결행하게 되는 이유는 ?
⇒ 중립국행 결의가 결국은 밀실행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고 방향을 상실하게 된다. 그 때 그는 바다의 이미지를 통해 부활을 꿈꾼다. 은혜와 그의 딸이 죽음을 통해 절대 자유와 평화로 재생되었듯이 부활의 공간인 바다에 뛰어들어 새롭게 소생하고자 함.
4. '주인공의 중립국 선택이 죽음으로 귀결되는 이유는?
⇒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의 중립국을 선택한다. 그러나 조국의 현실을 벗어난 제3의 길이란 있을 수 없으며, 그것은 현실에서의 패배를 의미한다. 인간의 삶은 광장과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이 광장이 없는 현실에서 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인 것이다.
5. '큰 새' 와 '작은 새'의 상징적 의미를 말해 보자.
⇒ 은혜와 그의 딸의 화신으로, 죽음을 넘어 새로 태어난 부활의 상징이자 사랑의 결정체
6. '갈매기' 와 '바다'의 상징적 의미를 말해 보자.
⇒ 이 작품 전체를 통해 갈매기는 중요한 문학적 장치로 활용된다. 우선 이명준의 항해하는 내내 동행해 오던 갈매기는 이명준이 자살해 버림으로써 어디론가 사라진다. 여기에서 갈매기는 이명준의 의식이 투사된 대상이 된다. 또한 이명준은 두 마리의 갈매기에서 죽은 은혜와 죽은 자신의 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결국 이명준은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 끝끝내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갈매기는 이명준에 있어서 실패와 절망으로 점철된 과거 삶의 흔적이다. 자신이 탄 배를 끝까지 따라다니는 갈매기를 통해 이명준은 자유로울 수 없었던 과거의 기억을 만나고, 그런 아픈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죽음을 택하게 된다.
한편, 이 소 설에서 '바다'는 여성을 상징하는 원형적 의미로 쓰인다. 이명준이 바다에 빠져 자살하는 것을 '은혜와 그 아기에 대한 사랑의 희구'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주인공은 인간 중심적인 삶을 살다가 좌절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짐으로써 사랑을 구한다. 여기서 자살은 가치 있는 삶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7.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①주인공이 바다에 빠져 죽는 장면의 문학적 상징과 ②'바다'의 상징적 의미를 말해 보자.
① 방황하는 회색 지식인인 명준의 새로운 탄생으로 이 사회는 건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 또는 역사에 절망한 지식인의 마지막 항거의 몸짓
② 바다(=푸른광장) :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를 모두 초월할 수 있는 이상적인 광장이요, 자유와 이상이 넘치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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