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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10년 만에 ‘1등 은행’을 만든 부드러운 카리스마-김승유 하나은행장

by 휴리스틱31 2021.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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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1등 은행을 만든 부드러운 카리스마

 

김승유 하나은행장

 

김승유 하나은행장에게 이메일로 CEO를 대상으로 한 경기 설문조사를 보냈더니 하루가 지나도록 답장이 없었다. ‘이상하다. 웬만하면 금방 답장을 보내는 분인데라고 생각하고 은행측에 물어보니 츨장을 갔단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로 연락이 왔다. “최 기자, 제가 중국에 출장와 있습니다. 여기서 여유있게 이메일 답변을 보낼 처지가 못되니 전화로 설문 답을 불러 주겠습니다.” 역시 무엇이든 책임감 있고 야무지게 처리하는 경영자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김 행장의 외모는 영화배우 뺨친다. 커다란 눈에 짙은 쌍꺼풀과 반듯한 콧날, 균형잡힌 몸매와 세련된 매너, 그리고 부드러운 말씨는 당장 영화에 등장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옛날이나 요즘이나 은행장의 이미지로 금테 안경에다 윤기 흐르는 얼굴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김 행장은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카리스마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하나은행을 키우면서 외부에 보여 주었던 카리스마는 부드럽지만 강하다.

1금융권과 제 2금융권을 모두 거친 김 행장은 2002년 가을 서울은행과의 합병작업을 끝내고 하나은행을 자산 기준 국내 3위 은행으로 올려놓았다. 자신의 이미지에 또하나의 카리스마를 덧붙여 놓은 것이다. 그는 서울은행과의 통합이 정착된 뒤에도 합병이란 전략을 계속 펴나가겠다고 말했다.

겉으로는 사람 좋은 듯 잘 웃지만 그는 실속으로 꽉 찬 사람이다. 경기은행 인수, 보람은행 합병에 이어 독일 알리안츠그룹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하나은행을 은행업계 막내둥이에서 총수입 기준 3~4위의 대형 업체로 도약시킨 주인공이 바로 김 행장이다. 주변에서는 창립 10년도 안돼 은행권을 평정했다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노하우가 어느날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김 행장 자신은 20여년 동안 금융기관 중역을 하면서 인수 합병, 외장 유치, 외국 기관과의 전략적 제휴 등 실무적이면서도 굵직한 일을 모두 처리해 보았다. 실무 경험을 차곡차곡 쌓았다.

김 행장은 일찍부터 우리 나라 금융권의 대형화를 선호했다. 서울은행과 합병하기 이전에도 이미 하나은행의 두 배 정도는 되어야 적정한 규모라는 말을 자주 했다. 세계적인 금융회사들과 경쟁하려면 그 정도 규모의 경제는 필요하다는 얘기다. 적어도 자산 규모로는 100조원에 육박하고, 그래야 세계 랭킹 100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시켜서라기 보다는 은행 스스로 살아 남기 위해 대형화를 추구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국에서는 은행들이 우선 대형화의 길을 걸은 다음 다시 특화된 분야를 살리는 쪽으로 나가야 합니다. 먼저 규모의 경제효과를 살리는 것이 급합니다.”

김 행장은 우리 나라 은행들의 문제점과 전망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그 동안 대출 자산을 운용하는 데 과학적이지 못했습니다. 흔히 은행들은 관치(官治)금융으로 고생했다고들 하는데,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은행 스스로도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는데 데나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 소홀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은행도 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신용 일변도의 대출을 해왔으나 이제는 사업성을 보게 됐지요. 금융권의 벽과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자동차 제조업체가 세운 GE캐피탈이 같은 업체들이 급속히 소비자 금융을 키우고 있지요.”

김 행장은 일반 은행이 갖고 있는 경직되고 답답한 전통이 없다는 것이 하나은행의 장점이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시발체였던 한국투자 금융 시절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단다. 투자금융사 시절에는 직원이 200여명밖에 안돼 서로 입사연도나 경력 등을 훤하게 알았다고 한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업무 이탈을 상호 견제했다. 그런 전통은 지금까지 하나은행에도 살아 있다고 한다. 지금도 만일 누가 규정에 어긋나면, 가령 금액이 아무리 작아도 정직성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르면 무조건 사표를 받는다. 열심히 일하다가 실수로 사고를 낸 경우는 예외지만 중요한 것은 의도라는 점을 김 행장은 분명히 했다.

 

 

 

 

 

하나은행은 원래 돈 많은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해주는 프라이빗 뱅킹으로 유명하다. 금융자산 1억원이 넘는 고소득 층을 겨냥한 프라이빗 뱅킹센터는 모두 특급 호텔 수준으로 내부 설계를 했다. 고소득층의 고객들은 CP(기업어음)도 사고 주식도 하는 사람들이므로 국내외 증권사들과도 적극적으로 연결시켜 주고 있다.

금융업은 리스크 매니지먼트’(Risk management)가 가장 중요합니다. 여기서 리스크위험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불확실성을 뜻합니다. 지금까지 단순히 리스크를 방어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뚜렷한 수익원을 찾아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게 됩니다.”

한때 우리 사회에선 은행장이 되면 훗날 대형 스캔들이 터질 때 구속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맡지 말아야 하는 자리라는 풍설까지 나돌았다. 한국 여건에선 은행장이란 자리는 그만큼 어렵다. 김 행장이 갖고 있는 한국의 은행장론은 무엇일까.

수년째 은행장을 하고 있는데, 워낙 변화 속도가 빨라서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과제입니다. 은행도 하루빨리 성과 중심의 문화로 바뀌어야 하는데 쉽지 않지요. 흔히들 은행장이 만능이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렇지도 않고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힘든 자리입니다. 앞으로 우리 나라 기업들이 계속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은행장들이 계속 도와 주어야 하는게 과제입니다.”

원래 그는 학문의 길에 뜻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형편이 어려워 한일은행에 들어가 3년 가까이 근무한 뒤 도미(渡美), 미국 남가주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 창립 멤버로 들어가 전무이사까지 지냈다. 1991년 은행으로 전환하면서 제 2금융인에서 제 1금융인으로 재변신했다. 그 와중에 모교인 고려대를 비롯한 몇몇 대학에 강사로 나가 투자론과 증권 분석 등을 가르쳤다. 그리고 37세에 다시 박사 유학길에 오르려고 했으나 회사에서 파격 승진을 시키는 바람에 꿈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미련은 많다. 그는 승용차 안에서도 책을 읽는다. 그리고 스스로를 다듬는다. 김 행장은 매월 한번씩 임원들을 지방으로 불러 토론회를 연다. 여흥이 곁들여진 토론회가 아니라 5~7시간씩 무한 토론이 진행된다. 임원들은 이 토론회를 고문이라고 말한다. 금융업 만큼 합리성이 필요한 산업이 또 어디 있을까. 최고의 합리성은 그런 과정을 거쳐 도출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김 행장은 수려한 외모에 어울리게 취미도 다양하다. 젊었을 때는 카메라를 들고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활동하기도 했고, 그림에도 안목이 깊다.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해 예술 작품을 마음껏 감상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약력

 

1943. 8. 19 서울생

1961 경기고 졸업

1965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71 미국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졸업

1965. 11~1968 한일은행 근무

1971 한국투자금융 입사

1974~1980 고려대 경영대학원 강사

1979 한국우자금융 영업부 부장

1980 한국투자금융 부사장

1991.7~1997.2 하나은행 전무이사

1997. 2~2002. 12 하나은행 은행장

2002. 10. 1 하나·서울은행 통합추진 위원회 위원장

(2002.12월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이 통합, 하나은행으로 출범)

2002. 12 하나은행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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