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리더십
IBM의 토머스 왓슨
북미 아이스하키 리그의 웨인 그레츠키는 아이스하키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일컬어진다. 그는 농구에서의 마이클 조던 이상으로 절대적인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에게 비결을 묻자 “나는 퍽(아이스 하키 공의 이름)이 현재 있는 곳이 아니라 앞으로 굴러갈 곳을 향해 달려갑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말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퍽이 어디로 굴러갈지를 미리 알아야 하고 남들보다도 빨리 그곳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IBM의 창업자 토머스 왓슨 1세. 그도 비즈니스 세계에서 미래 산업을 정확히 예측하고 탁월한 경영으로 정상에 도달한 기업인이다. 왓슨의 사업전략은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이 의미하듯이 업종을 비즈니스의 기계화 및 전산화에 필요한 주변기기를 생산하는 것으로 정하고 정상 정복을 위해서 철저한 세일즈맨과 고객 관리에 회사의 운명을 걸었다. 경영의 귀재 왓슨에게서 본받을 만한 것이 많지만 특히 세일즈맨 중시, 인간 존중, 그리고 2세 경영교육 측면에서의 그를 조명해 본다.
☆ 회장도 세일즈맨
IBM이 가장 중요시하는 사원은 단연 세일즈맨들이다. 그들은 유능한 세일즈맨을 확보하기 위해서 높은 연봉, 체계적인 교육, 그리고 업무실적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으며, 또한 세일즈맨들에게 그러한 대우에 상응하는 경쟁력을 요구하고 있다. 세일즈맨을 우대하는 전략은 물론 왓슨 1세에게서 비롯되었다.
왓슨은 ‘근대 영업정책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존 패터슨 밑에서 18년 동안이나 세일즈맨으로 근무했다. 당시만 해도 세일즈맨은 하나의 지업이라기보다는 오갈 데 없는 사람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알려져 있었다.
패터슨은 그러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세일즈맨들을 아주 고임으로 우대하는 경영수완을 선보였다. 왓슨은 워낙 판매에 자신이 있었으므로 단순히 봉급을 받는 것보다는 판매실적에 따른 인센티브 봉급체계를 선호했는데, 그는 이러한 계약으로 엄청난 수입을 울렸고 비슷한 시스템을 IBM에도 적용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원이 세일즈맨이다”라는 가치를 내걸고 사업을 주도했던 그의 경영철학이 무엇을 배경으로 하는지 이해가 간다.
IBM의 세일즈맨으로 취업한다는 것은 많은 졸업생들의 대단한 자랑거리이다. 필자가 부교수로서 연봉 4만 5,000달러를 받고 있을 1991년 당시 석사학위를 갓 마친 제자가 IBM 의 세일즈맨으로 가면서 연봉 4만 8,000달러를 받고 입사했다. 평범한 주립대의 한 공학도를 세일즈맨으로 만드는 데 보이는 그들의 적극성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우리도 이제는 전문 세일즈맨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직업의 평판 및 안정성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회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우리의 교육시스템을 살펴보면 발표력, 대화술, 보고서 작성법 같은 대인 기술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많지가 않다.
한 가지만 지적해 본다면, 기업에서 사원을 채용할 때 영어나 상식 같은 것을 가지고 평가하지 지원자들이 그러한 능력에 대해서는 등한시하는 듯하다. 기업들이 필요한 인력의 자질을 특화해 홍보하고 신입사원이 채용전략으로 삼으면 어떨까. 수요가 있으면 공급은 창출되게 마련이다.
☆ 휴가도 돈을 빌려서 간다?
IBM은 사원을 해고하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미국에서는 경기가 안 좋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표현할 때 IBM도 드디어 감원한다고 떠들어댈 정도로 IBM은 사원들을 아낀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평생직장 개념은 일본에서는 흔한 기업이념이고 우리나라도 그러한 방향으로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다. “돈은 내 돈으로 내가 번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돈과 다른 사람의 머리를 이용해서 벌었다” 왓슨은 누구보다도 이 말을 신봉하는 사람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에게 충분히 긴 지렛대를 주면 지구를 혼자서도 움직일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왓슨은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면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1920년대에 이러한 판단을 한 것은 상당히 앞선 사고방식이었다. 그가 가족들과 휴가를 떠날 때도 돈을 빌려서 갔다는 일화는 소유한 모든 것을 항상 재투자하는 R의 비즈니스 정신을 잘 설명해준다.
왓슨은 다른 사람의 돈과 지혜를 질리는데 있어서 중용한 요소로 원만한 대인관계와 철저한 이미지 관리를 꼽았다. 공석에서는 절대 화를 내지 않았으며, 자식들을 체벌할 때도 자신이 극도로 화가 나면 부인에게 대신 시킬 정도로 자제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게다가 퇴임 공무원을 채용하는 등 자금동원과 정부지원을 받기 위해서 남다른 사업상의 수완을 보였음을 물론이다.
식당이나 호텔 같은 곳에서도 그는 항상 팁을 많이 주는 습관이 있었다.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아들 왓슨 2세에게 “그들이 애쓰는 것이 고마워서도 많이 주지만, 이 세상에는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너에 대해서 쓸데없이 험담할 ASK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단다.”하고 말했다고 한다. 사언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존중은 그의 몸에 밴 대인관계 중시와 인간 존중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 100% 신뢰한다
IBM의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곱으라면 천공카드에 의한 데이터 처리에서 프로그램을 내장한 계산기인 현재의 컴퓨터 시스템으로 사업전환을 시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업은 제품이 잘 팔리고 있을 때 기존의 제품과 호환이 전혀 없는 신제품을 엄청난 돈을 들여 개발한 대모험이었다. 아마 이 변화가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IBM의 명성은 없었을 것이다.
이 변화의 주역은 다름 아닌 토머스 왓슨 2세이다. 왓슨은 아들을 탁월한 경영자로 성장시키는 데에도 성공했던 것이다. 성격이 소극적이어서 사업하는 것을 아주 부담스럽게 생각을 하는 아들을 어릴적부터 임원회의에 대동해서 경영마인드를 심어주는 등 2세 경영교육에도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왓슨 1세가 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던 당시에 있었던 일화이다. 평소 IBM은 독점금지에 대해서 정부로부터 심한 압력을 받아오고 있다가 마침내 고발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왓슨 1세가 합의서에 서명하는 것을 결사 반대하여 재판에 회부될 상황이 되자 2세는 어떻게 하든지 재판만은 피하기 위해 아버지 몰래 검사와 판사들을 만나 협의를 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막 법원으로 갈려는 2세를 아버지가 우연히 만나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 바람에 그만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아버지가 “가서 그 사람들을 만나긴 하되 어떠한 결정도 하지 말아라!”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아들을 법원에 보내게 됐다. 크게 무시를 당한 것에 극도로 화가 난 아들은 법원에 와서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어떠한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때, 아버지의 비서가 들어와서는 조그만 쪽지를 하나 주었다. ‘이거 혹시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얘긴가’하고 걱정하면서 쪽지를 펴보자,
“100% 신뢰한다··· 고맙다··· 잘했다···. 사랑하는 아버지가”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아들은 감격하여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합의서에 서명을 했음은 물론이고 이후로 아버지는 아들의 ‘예스맨’이 되어서 그를 항상 격려해 주었고 아들도 아버지에 못지않은 경영능력을 발휘했다. “THINK”는 IBM의 모토이자 2세 경영교육의 키워드였다. 사보, 메모지, 그리고 회장의 집무실에도 이 단어가 타이틀로서 이용되었다. “THINK SMART!(지혜롭게 생각하라)”
'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CEO 리더십-도요타의 도요타 기이치로 (0) | 2021.05.04 |
---|---|
CEO 리더십 - 데이비드 팩커드 (0) | 2021.05.04 |
CEO 리더십을 배우자(스티븐 잡스) (0) | 2021.05.04 |
CEO 리더십 - 록펠러 (0) | 2021.05.04 |
10년 만에 ‘1등 은행’을 만든 부드러운 카리스마-김승유 하나은행장 (0) | 2021.05.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