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영

CEO 리더십 - 데이비드 팩커드

by 휴리스틱31 2021. 5. 4.
728x90

CEO 리더십 - 데이비드 팩커드

 

휴렛팩커드의 데이비드 팩커드

 

1933, 스탠포드대학 전기공학과의 젊은 교수가 대학원생 과목인 라디오 엔지니어링이라는 과목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을 대동하고 근처에 있는 무전기기 회사들을 차례로 현장 답사했다.

회사들을 다니면서 각 업체의 시설 뿐만 아니라 누가 어떻게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가를 차근차근 살펴보고 생각해 보도록 학생들에게 권유하고서는 학기말 즈음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한다. “자네들도 이제 알았겠지만 소위 성공했다는 무선기기 업체들의 대부분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세운 것이네!” 무선기기 분야 쪽에 대한 연구개발 의욕을 북돋우기 위한 그 교수님의 말씀에 유독 귀를 기울인 두 명의 젊은이가 있었다.

아직 학부 4학년생이면서도 교수님의 권유로 대학원 과목을 듣고 있었던 학생들이었는데, 그들이 바로 휴렛팩커드를 일으켜 세운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였다.

철저하게 기술혁신으로 컴퓨터와 전제업계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휴렛팩커드의 데이비드 팩커드의 경영철학을 살펴본다.

 

 

교수가 창업 일등공신

 

대학에 몸담고 있지만 교수의 방향제시가 제자들의 인생에 있어 큰 갈림길이 되는 것은 자못 흐뭇하고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닐 수 있다. 많은 학생들이 교수들이 추구하고 있는 학문 분야에 매력을 느껴서 학문에 매진하여 뛰어난 연구 업적을 쌓게 되는 경우는 흔히 보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휴렛과 팩커드는 프레드 터만이라는 젊은 교수가 무선기기와 전자업계 분야에서 사업을 하도록 적극 권장하고 무선기기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기술적인 지원을 해주었다는 면에서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팩커드는 휴렛과 다른 동료 두 명을 합쳐서 이미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사업을 하기로 결심을 했을 정도로 세상에 일찍 눈을 떴다. 그들이 당시 세운 비전이 '과학과 산업의 발전, 그리고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는데 필요한 기술적인 기여'였을 만큼 꿈이 원대했으며 그러한 비전을 실천하기에 앞서 시간만 나면 친구들과 함께 하이킹을 가는 등 사고의 여백을 넓히는 일에도 열성적이었다.

최근 컴퓨터와 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그와 관련된 많은 업종에서 국내외의 젊은 두뇌가 맹활약을 하는 장면은 이제 사회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정도이다. 조금 더 기억을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실제로 과거 모 기업이 네 명의 친구들끼리 힘을 합쳐서 엄청난 기세로 성장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들의 얘기는 훗날 TV에서도 훠이 훠이 훠이라는 단막 시리즈로 방영된 적도 있다.

필자와 친구들도 대학교 1학년 때 해변으로 하계 캠핑을 가서는 일주일 내내 비가 오는 덕분에 칠팔 명이 모여 앉아 그들을 모델로 한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지혜를 모으던 기억이 난다. 제법 그럴듯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열심히 꿈을 모아서 반드시 실현시키자고 역설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그와 비슷한 토론들을 주고받을 터이며 실제로 꿈을 펴기 위해서 주야로 컴퓨터 앞에 붙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팩커드가 이끌어간 네 명의 친구들의 특색을 살펴보면 같은 전공을 하는 친구들이면서도 성격들이 다양했다는 것이다.

팩커드는 리더십이 뛰어났으며, 휴렛은 공부에 관심이 많았고, 한 친구는 꼼꼼했으며,

한 친구는 아주 성격이 활달했다. 네 명의 친구 모두가 훗날 휴렛팩커드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였다. 물론 팩커드의 리더십이 없었던들 이루어지기 힘들었을 꿈이었지만 동료들의 하모니와 또한 뒤에서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을 대가 없이 해준 프레드 터만 교수가 이루어낸 걸작이다.

학창시절을 꿈으로 그리며 보내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과 그들을 다양하고 비전 있는 방향으로 이끌고자 노력하는 교수들에게 하나의 도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동전을 던져서 이름을 짓다

 

휴렛팩커드사는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동전을 던져서 결정한 상호이다. 휴렛이 이겨서 그의 이름이 먼저 사용되었음은 물론이다. 굳이 두 사람의 역할을 구분해 본다면 휴렛은 기술적인 면에서 강하였고 팩커드는 경영적인 측면과 리더십 측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휴렛은 대학원을 가는 등 기술적인 측면에 대한 애착을 많이 보였었으며 그러한 두 사람의 조화가 함께 사업을 일으키는 데 있어서 보이지 않는 힘이 되었다. 휴렛팩커드의 독특한 경영스타일은 그들이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단계에서 잘 나타난다. 초심인 사회에의 기여를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현재의 능력을 근거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를 새로운 사업으로 고려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대승적인 방침이 그들로 하여금 이윤 추구의 맹목적인 목표를 삼는 것을 자제 하게 해 주었다. 또한 이미 오래 전부터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였으며 기업의 지역사회에서의 의무를 잘 인식하여 지역 단체들에 공헌함으로써 좋은 기업 이미지도 구축하였다.

팩커드는 당연히 터만 교수도 잊지 않았다. 1950년 초기에 스탠포드대학에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연구단지가 조성된다. 요즘에는 이러한 개념이 워낙 확산되어서 상당히 많은 대학들이 산학 협동 연구단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단지는 기업에서 출자하여 대학 내에 전용 연구소를 설립하여 산학 협동도 강화하고 연구실적도 높이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다.

스탠포드대학 연구단지는 바로 팩커드의 스승인 터만 교수가 추진한 사업이며 휴렛팩커드에서 건물과 연구 시설을 지원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The HP Way>라는 팩커드의 자서전에 그들이 기증한 연구소 사진이 소개되어 있다. 건물 앞에서 휴렛이 지켜보는 가우데 터만 교수와 팩커드가 활짝 웃으며 악수하는 장면은 볼수록 흐뭇한 장면이다.

 

 

회장도 상관없다

 

데이비드 팩커드가 한번은 수행원을 몇 명 거느리고 현장을 시찰하다가 문득 멈추어서 한 작업자가 플라스틱 금형을 만들고 있는 것을 열심히 구경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작업을 해서 윤기를 잘 내고는 이제 막 마무리를 하려던 참이었던 모양이다. 너무나 잘된 표면 처리가 신기해서 팩커드가 무심코 손으로 만지려 하자 그 작업자가 대뜸 손대지 마세요!”하고 소리를 질렀다. 옆에서 수행하던 담당 부장이 당황하여 이보게 이분이 누구인지 당신 몰라요?”라고 질책을 하자, 그는 한 술 더 떠서 상관없어요!”라면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사태가 이쯤 되자 팩커드가 나섰다. “미안합니다. 사전에 좀 양해를 구했어야 하는데 말이죠. 우리 회사에 당신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하고 격려를 하고 자리를 떻다. 단편적이긴 하지만 팩커드가 사언드를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회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팩커드와 휴렛은 친근감 있는 리더십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힘을 합쳐 창업한 회사이니 만큼 당연한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직원들에 대해서 휴렛팩커드사는 인센티브 제도를 적용해 생산량이 어느 정도 초과

했을 경우 기본 급료의 비율에 따라 모든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었다. 또한 주식매입제도를 도입해서 직원들에게 회사의 주식을 급료에 따라 일정한 비율까지 우대 가격으로 살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를 통해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사원들에게 주인 의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했으며 그러한 노력 덕분에 사원들이 더욱 더 회사에 애착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팩커드는 직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단지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의 관계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회사가 사원들에게 기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직원들의 복지나 처우에 큰 관심을 쏟았다.

휴렛팩커드사는 이미 1960년대부터 자율적 근무시간제를 도입했다. , 직원들이 자율적

으로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출퇴근을 하도록 허락할 정도로 사원들의 개인적인 필요성이나

특성을 인정하고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사원들 고용이 사회에 대한 기여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이처럼 직원들을 보다 믿고 신뢰했으며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이는 결과적으로 생산량의 향상이나 능률의 향상을 가지고 왔다.

사원들에게 있어서 CEO인 팩커드는 그리 어려운 사람이 아니었다. 한 사업장에서 아주 일을 잘하는 작업자가 있어서 그를 감독자로 승진을 시켰다. 며칠 후, 그 감독자가 느닷없이 팩커드의 사무실로 찾아와서는 팩커드씨, 작업장 사람들을 다루는 데 애로 사항이 많습니다. 좀 오셔서 그들에게 내가 그들의 상사라고 좀 선언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하고 웃지 못할 부탁을 하였다. 팩커드는 웃으면서 사람 다루는 일이 내가 가서 지원할 정도로 힘드시면 좀 다른 일을 하시는 것이 어떤지요.?”라는 우회적인 질문으로 정답게 위기를 피해 가고 그 사람의 기분도 상하지 않게 했다.

이러한 회사의 분위기가 다소 우스꽝스러운 며도 없지 않지만 그야말로 열린 CEO의 사무실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사원을 주인 의식을 갖게 하고 참여정신을 갖도록 유도하는 그의 능력이 돋보인다.

 

 

권한의 집중을 경계하라

 

휴렛팩커드사는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기 때문에 초기부터 업무분담이 잘 이루어져 있었다. 권한이 적절히 분산되어 있었으며 그러한 권한분산은 신속하고도 군살 없는 경영 체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한 그들도 어려운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본격적으로 컴퓨터 사업에 뛰어들면서 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컴퓨터 사업을 시스템적으로 도전하기 위해서 권한을 컴퓨터 분야로 집중시키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권한의 중앙 집중은 서서히 부작용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의사결정 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했으며 쓸데없이 위원회만 이것저것 결성되고 있었다. 게다가 회사의 주식 값은 곤두박칠 치고 있어서 팩커드는 당신 고문으로 있었지만 위기의식 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중앙집중형 조직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잘 분산된 조직 구조도 쉽사리 중앙집중형으로 탈바꿈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당시를 회상하며 팩커드가 강조하는 얘기이다.

빌 휴렛과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그간 대화의 문을 열어 논 덕분에 직원들이 사무실에 들러 문제점에 대해서 솔직히 얘기를 해주었고 어떤 사람들은 회사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해왔습니다. 팩커드는 군살을 제거하기 시작했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경영인들을 영입해서 다시 권한의 분산을 시도했습니다. 팩커드는 휴렛팩커드가 규모는 크지만 중소기업처럼 유연성 있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탄력성을 갖추는 것을 바람직한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 때에야 비로소 하나의 진정한 비전 아래서 기업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운영 표준을 준수하며 공동의 목표와 미션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권한을 분산시킨다는 것은 보기보다 그리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얘기를 할 때는 당연히 권한을 위임해야지하면서도 막상 자신의 일이 되면 여러 가지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결단이 쉽지 않게 마련이다. 모든 것을 장악하고 원하는 대로 통솔하기를 원하는 리더는 결코 권한을 분산시키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너무나 오랜 기간 기성 정치인들이나 기업가들의 실사례를 통해서 지칠 정도로 목격해 왔다. 그러한 인간 리더십과 리더의 속성을 생각해보면 팩커드의 리더십은 좋은 귀감이 된다. 사업의 시작을 함께 공유하면서 한 때문일까?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의식, 일찍이 터득하지 않으면 몸에 익히기 어려운 리더십 요소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의식을 버리지 않고서는 리엔지니어링이고 다운사이징이고 모두 다 소용없는 일이다.

 

 

초원을 거닐면서

 

팩커드는 어려서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으며 집 주위가 초원이어서 자연에 친숙하였고 이러한 배경이 그의 경영 방식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과학이나 수학과 같은 과목에 재능을 보이면서도 그는 특히 운동에 소질을 보여 각종 스포츠를 즐겼고 그러한 학과 외의 활동을 통해서 친화력과 리더십을 쌓아 나갔다.

어린 시절부터 초원을 돌아다니며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팩커드는 카누, 등신, 하이킹 등 학창시절에도 틈만 나면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었고 항상 그 시간을 친구들과 함께 해서 우정을 돈독히한 것으로 유명하다.

팩커드는 사업을 사면서도 추원에 집을 짓고 큼지막한 농자을 경영하면서 틈만 나면 가까운 사람들을 불러서 함께 사냥을 즐겼다. 그의 넉넉한 친화력이 빡빡한 기업 경쟁 속에서도 큼지막한 여백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198612, 팩커드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데이비드, 펜타곤(미국 국방부 건물)의 스탭으로 쓸 만한 사람을 몇 명 추천해 주겠나?”바로 대통령 당선자 닉슨의 국방장관 지명자이고 10년 전에 연락이 끊긴 멜 맥레어에게서 온 전화였다. 며칠 후 팩커드가 몇 명을 추천하자 맥레어는 다시 전화를 걸어 워싱턴에서 만나자고 초대를 한다. 장관은 데이비드, 나와 함께 일해 줄수 있겠나?” 하면서 국방부차관으로 일해 줄 것을 제안한다. 회사에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고 각료가 되면 회사로부터 생기는 개인적인 수입을 포기해야 되는 일이지만 그는 고민 끝에 수락을 한다. ‘국가의 부름으로 생각하고 따른다는 그의 자세도 돋보이지만 민간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그러한 공직의 위치에 추천을 받을 정도로 다져논 신선한 팩커드의 이미지와 그의 폭넓고 격의 없는 인간관계에 한층 눈길이 간다.

자칫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각박한 경쟁 환경에서 참여 경영을 모토로 하는 그의 경영철학에 멋지게 어울리는 개인적인 특성이다. 자기의 적성에 맞는 리더십이야말로 효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리더십 유형인 셈이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