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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정지용(1902-1950)의 시세계 ◆

by 휴리스틱31 2021.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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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지 용 (1902-1950)

 

 

 

시인, 충북 옥천 출생. 1918년 휘문고보에 입학, 이 때부터 습작 활동. 이듬해 12[서광]창간호에 유일한 소설 <삼인>이 발표됨. 1925[학조] 창간호에 <카페 프란스>를 비롯하여 동시와 시조시를 발표함. 1930<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여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됨. 1939[문장]지의 추천 위원이 되어 청록파 시인과 김종한, 박남수 등을 등단시겼다. 그의 시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어와 선명한 이미지를 구사하여, 1930년대 시의 모더니즘과 이미지즘을 대표하는 것으로 새로운 언어 감각으로 시를 만들어냈다고 평가된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시풍이 바뀌어 동양적인 관조와 고독의 세계를 많이 다루었다. 1950년 납북되었다가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집으로는 [정지용시집(1935)], [백록담(1941)], [지용시선(1946)] 등이 있다.

 

시세계의 변모양상

 

1> 1925-1933: 감각적 이미지즘의 시

초기의 시세계는 서구문명을 지향하고 이미지즘의 영향을 받았으나 단순히 서구의 이미지즘의 시인만으로만 판정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지용이 이미지즘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았다고 할 지라도 그는 동야의 시적 전통과 방법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지용과 이미지즘의 관계를 확증할만한 직접적인 자료는 현재로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다만 지용이 교토에 유학하던 시절(1924-1929)에 이미지즘 시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한다, 이미지스트들에게 없던 지용시의 특질은 그의 산수시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는 근본적으로 한시의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2> 1933[불사조]-1935년경: 카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한 종교적인 시

지용의 종교시는 초기의 감각적인 시와 후기의 고전적인 시들의 교량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관심의 촛점이 되는 것은 지용의 신앙시가 19342[카톨릭 청년]에 발표된 [다른 하늘],[또하나의 다른 태양] 이후 자취를 감춘다는 사실이며, 4년여의 침묵 다음인 1937[옥류동], 19388{청색지}[비로봉], [구성동] 등의 시를 발표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를 카톨릭 신앙의 전면적인 포기라고 할 수 없으며 이는 이후에 계속적인 나름의 각고의 방향의 모색을 시도한다.

3> 1937[옥류동]-1941년 이후: 동양적인 정신의 시(산수시)

최초의 모더니스트 정지용이 왜 카톨리시즘을 벗어나 동양적인 정신에 침잠한 것일까가 밝혀진다면 1942년 이후 지용의 침묵과 해방이후 지용이 취한 현실대응 방식은 물론 초기시가 지닌 감각적 시들의 정신사적 기저도 밝혀질 것이다.

지용이 30년대 후반에 시도한 정신적 탐구의 핵심은 동양적 은일의 정신에 있으며 그 정신이 표현된 것이 산수시라 할 수 있다. 지용의 산수시는 그의 시적 능력과 시대적 중압 속에서 그의 시가 필연적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길이였다고 볼 수 있다.

 

시세계의 특징

1>모더니즘적 성격

정지용이 첫선을 보인 1926년은 초창기 시단을 장식한 낭만주의 및 상징주의 시운동이 퇴조하고 사회주의 문학 운동이 한참 성행한 시기이다. 또한 1920년대 중반에는 '다다이즘'이니 '모더니즘'이니 하는 서구 현대시의 사조들이 처음으로 소개되었을 뿐 실제적인 작품의 제작이나 이해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하였다. 이런 시대의 일반적 흐름을 외면하고 언어의 예술로서의 시의 본질로 탐구하는 데 앞장 선 그는 마침내 자기 시대에 알맞는 새로운 시의 감수성을 개척하는데 이바지했다. 이런 현대 서구사조들의 유입과 상황은 새로운 시형을 구축하게 하는데 이는 한국 모더니즘에 있어 주지적인 경향인 언어에 의한 자각과 이미지 제시라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감정이나 관념을 배제한 사물에 대한 이미지의 중시가 지용시의 특징이 되고 있다.

 

오리 목아지는

호수를 감는다

 

오리 목아지는

자꾸 간지러

-호수2

정지용에 있어서 이미지는 유추, 비유 및 직관의 언어 문제와 관련된다. 대상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인습적인 언어를 피해야 했으며 평범한 언어를 가지고 창조적인 표현을 하기 위해서 유추 비유의 기능이 중시되었던 것이다.

.축어적 이미지는 시각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며 이 시각의 대부분은 다른 감각과 더불어 공감각적 이미지를 낳는다.

.묘사적 이미지의 선택의 원리는 회화적인 심미감, 감각적 인상의 신선함, 동화적 환상성 등으로 사물시의 단순성과 순수함을 보여준다.

.비유적 이미지들에서의 주지와 模寫된 재료와의 결합은 단순한 유사성 보다는 이질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독창성과 아울러 긴장감을 지니게 된다. 사물에 대한 주지적 객관적 인식과 새로운 경험의 세계를 보여준다. 또한 모방론적 심상에 그치는 것과 아울러 새로운 의미를 생성시켜 의미론적 변용을 일으키게 하는것도 있다.

2>리듬의 특질

시의 리듬에서 이미지에 의한 제작방법에 이르기까지 그는 이미지즘의 영향을 다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원래 리듬과 이미지는 상보적 관계를 맺으면서 작품 속에서 하나의 전체적 구조를 형성하기 때문에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씩 나누어 살펴보면 그의 시는 비교적 짧으며 대체로 10행 내외의 단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영미 이미지스트 시의 영향으로 한때 일본에서 성행했던 단시운동과 궤를 같이 한다. 또한 음악성을 중시하여 소리내어 읽을 수 있도록 율격을 정제한 것도 서구 이미지즘의 영향이라고 하겠다.

3>종교시의 특질

종교시는 그의 초기가 띠고 있는 감각적 인상의 언어의 유의성을 극복하고 시에 사상을 도입하는 새로운 지평이 되었다. 시적 개성의 변신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종교시는 그의 시사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이런 종교시는 신앙적 자아의 신에 대한 외경과 공경으로부터 출발한 정지용의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인간의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으마 이미지즘에 경도된 등의 초기시가 즉물시의 좁은 틀을 벗어나지 못하자 그에 대한 반성의 일련으로 종교시의 시도라 평가되기도 한다.

 

-작품소개-

<카페프란스>

 

옮겨다 심은 종려(棕櫚)나무 밑에

비뚜로 선 장명등(長明燈)

카페프란스에 가자.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 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비쩍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먼트에 흐느끼는 불빛

카페프란스에 가자.

 

이놈의 머리는 비뚜른 능금

또 한 놈의 심장은 벌레 먹은 장미

제비처럼 젖은 놈이 뛰어간다.

 

"오오 패롵[鸚鵡] 서방! 굳 이브닝!"

 

"굳 이브닝!"(이 친구 어떠하시오?)

 

울금향(鬱金香) 아가씨는 이 밤에도

경사(更紗) 커튼 밑에서 조시는구료!

 

나는 자작(子爵)의 아들도 아무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大理石) 테이블에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

 

오오, 이국종(異國種) 강아지야

내 발을 빨아다오.

내 발을 빨아다오.

 

<감상> 이 시는 지상(紙上)에 발표된 정지용 최초의 작품으로 <향수>에 나타난 향토적 서정과 상반되는 모더니즘 색채를 띠고 있다. 이 시에서는 생경한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모더니즘의 특징을 더욱 잘 드러내고 있는데, 아마도 이것은 젊은 시절 영문학도였던 시인 자신의 이국 취미(異國趣味)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이러한 모더니즘의 냄새가 막무가내로 풍겨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바로 식민지 치하에 놓인 지식인의 힘없는 고뇌가 행간에 속속 배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밤비는 뱀눈처럼 가늘', 나는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픈' 것이다. 이와 같은 차갑고 싸늘한 이미지는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 대리석 테이블에 닿는 내 뺨이 슬프구나!'로 이어지게 됨으로써 시적 화자가 안고 있는 망국민의 설움은 결국 이국종 강아지에게 자신의 발을 빨게 하는 자학적인 심상으로까지 확대되고 만다.

또한 이 시에 등장하는 공간적 배경도 한국적인 것이 아니다. '프란스'라는 카페의 이름부터가, 아니 '카페'라는 공간 자체가 1920년대의 한국인에게는 너무도 낯선 분위기인 것이다. 이러한 낯선 곳에서 슬픔에 겨워 자학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은 바로 무기력했던 당시 지식인의 실제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10연의 이 시는, 형태적으로 안정된 14연의 앞 단락과 불안정한 510연의 뒷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앞 단락에서는 1연과 3연이, 2연과 4연이 서로 비슷한 형태로 짝을 이루면서 대응되고 있다. 13연은 시적 화자가 동료들과 함께 '프란스'란 상호(商號)의 카페로 갈 때까지의 거리 모습이다. '옮겨다 심은 종려나무', '비뚜로 선 장명등',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멘트에 흐느끼는 불빛' 등으로 제시된 시적 화자의 현실 공간은 '옮겨다 심은''비뚜로 선''뱀눈처럼 가는데''흐느끼는'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곳으로부터 이식된 공간, 또는 화자가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곳임을 알게 한다. 24연에서 '루바쉬카''비뚜른 능금', '보헤미안 넥타이''벌레 먹은 장미', '비쩍 마른 놈''제비처럼 젖은 놈'과의 결합을 통해 이질적인 서구 문화의 풍조 속에서 살아가는 소시민적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뒷 단락은 '카페프란스' 내부의 정경이다. 처음 56연은 앵무새와의 대화 부분으로 앵무새가 나타내는 말의 이질성을 의도적으로 보여 주고 있으며, 89연은 시적 화자가 '자작의 아들도 아무것도 아님', '나라도 집도 없음' 등으로 자신의 처지를 표현하고 있다. '카페프란스'는 거리 모습과 동일한 이국적 공간으로 화자에겐 다만 '옮겨다 심은' 폐쇄적 장소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 곳에 존재하는 것은 '앵무새''졸고 있는 아가씨''이국종 강아지'뿐으로 화자와의 대화가 전혀 불가능한 사물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카페프란스'는 시적 화자의 폐쇄된 현실 공간을 상징하는 곳으로 '흰 손'을 가진 지식인 화자의 무기력한 독백만이 가능할 뿐이다.

<향 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감상> 1988년 월북 작가들에 대한 대규모의 해금 조치가 단행된 이후 비로소 밝은 세상에 얼굴을 내민 정지용의 대표작이다. 한때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문학사에서 실종되었던 그는 최근 납북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 그에게 씌워진 멍에가 하나씩 벗겨지고 있지만, '한국 현대시의 효시요, 자각(自覺)'이라는 명예에 어울리지 않게 그의 문학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비한 실정이다. 정지용의 시사적 위치를 이것저것 장황하게 말하기보다는 청록파 세 시인을 {문장}지에 등단시킨 그들의 스승이었다고 하면, 그의 위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시는 우리말로 씌어진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정지용만큼 체득하고 있던 시인은 드물다는 평가에 적합한 이 작품은, 그가 일본에 유학 중인 22세 되던 19233월에 쓴, 그의 초기시의 대표작이다. 이 시가 씌어진 20년대 초가 {백조}를 중심으로 한 낭만적, 퇴폐적 감정 분출의 풍조가 문단을 지배하였던 시기였음에 비추어 볼 때, 주로 30년대나 되야 나타나는 '고향 회상'의 시정(詩情)을 이처럼 차분한 어조로 시대를 앞당겨 노래했다는 것에서 그의 선도적 시 세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는 음악의 반복 형식처럼 구성되었는데, 각 연 모두 '-() '으로 끝맺고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향의 정경을 실감있게 제시하고 있으며, 그 뒤에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독백이 이어짐으로써 간절한 그리움을 반복, 강조하는 단순한 표현 기법을 통하여 감동의 극대화를 이루고 있다. 한편, 홀수 연은 고향의 정겹고 따스한 모습을, 짝수 연은 고향의 아픈 모습을 교묘하게 배합시켜 고향의 밝고 어두운 모습을 번갈아 보여 줌으로써 고향을 아름답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푸근한 흙내음과 간난(艱難)한 삶의 고난이 함께 존재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지줄대는''해설피''풀섶''함초롬'이라는 감각적 우리말 구사와 청각적, 시각적 이미지와 공감각적 이미지, 냉온 감각 등의 수준 높은 이미지 활용은 그의 시를 현대시의 효시로 평가받게 하는 데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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